1040화. 연신술 1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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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성 관할 구역마저 벗어난 한립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두 달 후에는 푸른 빛줄기가 드디어 녹음이 푸른 어느 산봉우리 위로 내려갔다. 한립은 둔광을 거두고 바위에 앉아 강대한 의식을 퍼트렸다.
잠시 후, 그는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쓸 만한 영맥이 흘러 주변 수백 리에 영기가 자욱했다. 그러나 그리 넓지는 않아도 영맥이 흐르는 곳이니 주인이 없을 리 없었다. 의식으로 훑어보니 크고 작은 동부가 열댓 개는 되었다.
어떤 동부에는 열댓 명이 모여 지내기도 했고 홀로 하나의 동부를 차지하고 있는 이도 있었다. 그 중 원영기 수사 두 명의 수행이 가장 높았고 다른 이들은 대부분 결단기나 축기기 수사들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수행이 더 높은 이들은 이렇게까지 구석진 곳에 동부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
화신 이상의 수사는 수만 리를 홀로 독점하기도 했는데 이곳은 그런 고계 존재들에게 부족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오래 머물 생각이 아닌 한립은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파앗-
수결을 맺어 온몸에서 금빛을 발산한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마치 누군가에게 전음을 보내는 것 같았다.
한립이 있는 곳으로부터 대략 백 리 떨어진 어느 산속,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금제로 겹겹이 둘러싸인 밀실 안에서 커다란 솥 형태의 화로를 앞에 두고 수결을 맺고 있었다.
화로 아래에서 남색 화염이 피어올라 춤을 출 때마다 진한 약 향기가 밀실에 퍼져나갔다. 그때 강력한 의식의 힘이 겹겹이 펼쳐진 금제를 뚫고 밀실 안으로 들어왔다.
긴장한 얼굴로 단약 제련에 매진하던 노인은 저항할 틈도 없이 의식에 억눌려 바닥에 납작 엎드려야했다.
“엇!”
노인이 기겁하고 있을 때 냉랭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 이곳을 잠시 써야겠으니 전음이 들리는 자들은 당장 떠나거라. 하루가 지나도록 남아 있는 자는 영원히 떠나지 못하게 될 것이야.”
그의 말이 끝나자 강대한 의식의 구속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몸이 가벼워진 노인은 바들바들 떨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잠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대로 발을 굴러 밀실을 박치고 뛰쳐나갔다.
정성을 기울이던 화로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이다. 한 시진 후 하얀 빛줄기가 산봉우리에서 날아올라 하늘 저편으로 날아갔다. 방원 백 리 내의 모든 동부에서 똑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다채로운 색깔의 둔광들이 다급히 산봉우리를 떠나 어딘가로 사라졌다. 반나절 만에 주변 산맥에는 한립을 제외한 수사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텅 빈 동부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한립은 의식으로 일대를 훑어보고는 숨어 있는 수도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산중턱으로 날아갔다. 그는 푸른 암벽 앞에 내려서서 명청령안을 발동해 살피고 저물탁에서 거대한 원숭이 형태의 꼭두각시 몇 마리를 불러냈다.
한립이 따로 분부할 것도 없이 꼭두각시들은 열 손가락에 푸른 기운을 일으켜 암벽으로 달려들었다.
서걱 서걱 서걱!
푸른빛이 반짝일 때마다 암벽이 갈라져 순식간에 커다란 문이 만들어졌다.
꼭두각시들이 먼저 그 안으로 들어가고, 한립은 소매 속에서 금빛을 분출했다. 허공을 선회한 금빛이 바닥에 착지하며 작은 짐승의 모습을 드러냈다. 금색 털이 복슬복슬 난 표린수였다.
표린수는 사람만 하게 커져 송곳니가 겉으로 삐져나오고 몸에는 괴이한 검은 문양이 떠올라 있었다. 게다가 머리에는 한 쌍의 은색 뿔까지 돋아났다. 무서운 기운이 표린수에게서 발산되었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아무도 산봉우리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거라.”
한립의 명에 표린수가 네 발에서 검은 기운을 일으켜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한립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동부가 완성될 때까지 생각에 잠겼다.
사실 표린수가 지금의 모습으로 변한 것은 예상 밖이었다. 아마 광한계에서 복용한 암수앙의 내단 때문일 것이다. 당시 표린수는 내단을 집어삼키고 십여 년 동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깨어난 영수는 수행이 크게 늘어 연허기 경지에 이렀고 지금의 흉악한 모습을 갖추었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잠에서 깨어나고 수십 년 동안 영수는 한립이 내준 대량의 단약을 통해 또 한 번 경지를 높일 수 있었다. 연허 중기의 존재가 되어 각종 강력한 신통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짐작컨대 평범한 연허 후기 수사도 표린수의 적수는 되지 못할 것이다. 한립은 영수를 방출해 주변을 순찰하게 하니 마음이 편했다.
‘합체기 성계 수사만 아니라면 절대 산봉우리로 접근할 수 없겠지.’
몇 시진이 지나서야 거대 원숭이 꼭두각시들이 동부를 완공하고 걸어 나왔다. 한립은 꼭두각시들을 거둬들이고 몸을 일으켜 진법 법기 한 벌을 뿌렸다.
사방으로 날아가 종적을 감춘 진법 깃발들이 하얀 안개로 떠올라 주변을 자욱하게 덮었다. 산봉우리를 포함한 주변 백 리가 운해(雲海)로 변해 그의 동부를 가려주었다.
한립은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하얀 진법 원반을 꺼내들었다.
“봉하라.”
손끝을 원반에 가져다 대자 안개 속에서 수백수천 개의 은색 주술문자들이 떠올라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 사라졌다. 그제야 진법 원반을 거둔 한립이 암벽 속의 동부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푸른 암석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석문이 쿵! 하고 떨어져 입구를 닫았다.
파앗.
석문 표면에 영기의 빛이 반짝이고 주위의 석벽과 융화되어 웬만한 사람은 입구를 찾을 수 없었다.
한립은 즉시 약재 밭으로 가서 영약들을 심어두고 동부 내부에도 여러 소형 금제를 펼치고 밀실로 향했다. 이리저리 모퉁이를 돌아 밀실 석문이 보일 때쯤 그가 허리춤을 건드렸다.
하얀 그림자가 날아올라 하얀 의복을 걸친 여인으로 변했다. 전신에서 한기를 발산하는 꼭두각시는 통령괴뢰 ‘와와’였다.
와와는 이전과 달리 미간 사이에 조그만 남색 구슬이 박혀 있었고 눈빛이며 표정에서 훨씬 생동감이 느껴졌다.
‘이수주(璃水珠)’가 불러온 효과였다. 백 년간 구슬을 품고 있던 와와의 몸은 매우 차갑게 변해갔고 점점 이수체(璃水體)에 가까워지는 듯했다.
미세하게 꾸준히 효과를 발휘해 한립을 크게 만족스럽게 만들었다. 거기다 와와의 영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도 의외의 수확이었다.
한립은 의식으로 여인에게 간단한 명령을 남기고 밀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저물탁에서 방석을 꺼내 앉고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도록 한립은 눈을 뜨지 않았는데 그가 머무는 산맥 바깥은 점점 더 소란스러워졌다.
이렇게 많은 수사들이 한 번에 보금자리에서 쫓겨났으니 몇몇은 친분이 있는 수사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인근의 다른 수사들도 높은 수행을 지닌 고계 수사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식의 힘만으로 원영급 수사를 제압할 수준이면 연허급 고계 수사일 가능성이 컸다.
그들은 이 선배가 자신들을 쫓아내지 않을까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립이 머무는 구역이 하얀 안개구름으로 봉쇄되었다는 소식이 퍼지고서야 소란이 진정되었다.
고계 수사가 이곳에서 세력을 확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수련을 위해 산봉우리만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었다. 조금 심란하기는 해도 동부를 버리고 달아날 필요는 없어졌다.
나흘 째 되는 날 아침, 한립이 미세하게 몸을 떨더니 얼굴에 푸른빛을 응결한 채 눈을 떴다. 순간 두 눈에서 남색빛이 일렁였으나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한립은 길게 숨을 토해냈다. 사흘간의 휴식으로 의식과 법력을 충만하게 회복해서 그간 쌓인 피로를 많이 해소할 수 있었다.
그는 잠시 침음하다 은은하게 금빛을 내뿜는 옥간을 꺼내들었다. 특이하게도 옥간은 영성을 지닌 것처럼 스스로 수축했다 늘어났다 했다. 그의 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은 듯했다.
한립은 신경 쓰지 않고 다섯 손가락에 힘을 주어 옥간을 이마에 가져다댔다. 한참 후 그가 옥간을 떼어놓았다.
옥간에 기재된 것은 금전문(金篆文)으로 이루어진 연신술(煉神術)이었다. 총 3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1성만 수련해도 의식이 배 이상 증폭되는 비술이었다.
안 그래도 동급을 훨씬 초월하는 의식을 지닌 한립이 연신술을 익힌다면 합체기 고비를 뚫는 부담이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다른 신묘한 단약과 비교해도 몇 배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래서 한립은 연신술 구결을 얻자마자 수련하기로 마음을 굳혔고 뇌명대륙에서 풍원대륙으로 전송된 이후 수련을 시작했다.
백 년이 넘는 동안 다른 몇 가지 비술을 연구하는 것 외에는 이것에만 몰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신술 제1성은 쉽다고 보면 쉬웠고 어렵다고 보면 어려웠다.
영계에 조건에 부합하는 이가 극소수였기 때문이다. 억지로 수련을 강행하면 강력한 의식의 폭주로 몸이 터져 죽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한립의 의식과 육신은 제1성을 수련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백 년 넘게 연신술을 수련해오며 연신술 제1성을 완전히 깨우치기 직전이었다.
문제는 금전문으로 기술된 선계의 비술이라 1성을 대성해도 놀라운 천기현상을 불러온다고 적혀 있다는 점이었다. 몇 년 전에는 만황세계에 있던 터라 강력한 고대 짐승이나 이종족의 주의를 끌까봐 미처 시도하지 못했다.
이제 인족 구역으로 돌아왔고 일부러 외진 곳을 찾아왔으니 드디어 연신술 제1성의 수련을 마칠 때였다.
그러나 그가 조금 전 탄식한 이유는 연신술 제2성이 너무 현묘해서 깨우치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수백 년 정도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으면 대성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제3성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한립은 옥간을 회수하고는 옥병 여러 개를 꺼내 다양한 단약들을 복용하고 은색 원반 9개를 방출해 주위에 띄웠다. 엄숙한 얼굴로 그가 기괴한 수결을 맺자 몸에서 금빛이 터져 나왔다.
등 뒤로 삼두육비의 금색 허상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금신법상은 여섯 개의 팔로 수결을 맺고 두 개의 입으로 묵묵히 주문을 외웠다. 곧 밀실 가득 불경 읊는 소리로 가득 찼고 한립의 피부는 금빛 비늘로 뒤덮였다.
범성진마공을 극성으로 운공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우웅!
사방에 떠있던 아홉 개의 은색 원반이 부르르 몸을 떨고 눈부신 광채를 뿜어냈다. 밀실 속의 불경 소리와 원반의 맑은 울음소리가 하나로 합쳐져 조화롭게 귓가를 울렸다.
훅! 훅!
한립과 금신법상 등 뒤로 각각 둥그런 금색 광채가 떠올랐다. 금신법상의 광채가 더 컸지만 농도로 보면 한립의 것이 우세했다. 한립은 기합을 넣고 수결 모양을 바꾸었다.
두 개의 금색 광채가 회전하며 중심부에서 수많은 금색 주술문자를 뿜어냈다. 하나하나가 금빛이 찬란하고 눈부시기 그지없었다.
금전문의 소환을 받은 것처럼 은색 원반 아홉 개도 변화를 일으켰다. 은색 주술문자를 쏟아내 금색 광채 속으로 날려 보낸 것이다. 이 은색 문자들은 은과문이었다.
별안간 금색과 은색의 선계 문자들이 광채 속에서 나타나 빼곡하게 차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대량의 주술문자들이 밀려드는 중이었다.
한립은 광채 속 주술문자들이 늘어나자 벅찬 기색을 드러냈다.
퍼퍼퍼펑!
그가 눈을 부릅뜨고 고함을 내지른 순간, 아홉 개의 은색 원반들이 폭발해 은빛으로 흩어졌다. 한립 등 뒤의 금색 광채도 미친 듯이 돌다 차차 모호하게 변해 수축되었다.
순식간에 광채 속 주술문자들이 줄어들었고 금색 광채는 주먹 크기로 뭉쳐져 괴이한 빛구슬을 형성했다. 금신법상의 금색 광채도 똑같이 금색 빛구슬로 변해 천천히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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