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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037화 (794/2,000)

1037화. 뇌진(雷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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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립은 둔광을 일으켜 복교성 방향으로 날아갔다. 복교성으로 돌아온 한립은 객잔으로 돌아가 외출을 자제하고 조용히 지냈다. 그가 머무는 동안 천기자 등 세 장로들은 사람을 보내 남은 재료들을 보냈고, 한립은 사양하지 않고 받아두었다.

한 달의 시간이 흐르고 한립은 드디어 객잔을 나서 복교성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로 향했다. 그곳은 복교성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들이 위치한 곳으로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었다.

반나절 후, 산봉우리 전체가 흔들리고 거대한 빛기둥이 산중턱에서 솟아올라 구름을 뚫고 뻗어 나갔다. 거대한 빛기둥에 복교성의 여러 종족들은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며 며칠을 떠들어댔다.

동시에 뇌명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대륙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은밀히 숨겨진 전송진에서 빛기둥이 솟아오르고 누군가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풍원대륙 만황세계는 이름 모를 흉악한 짐승들과 괴물들이 수도 없이 많아 최고의 위험지대로 꼽혔다. 고계 수사들도 무턱대고 들어갔다가는 돌아올 길이 없는 사지(死地)였다.

그럼에도 만황세계의 진귀한 재료와 그곳에서 얻을 기연을 위해 겁 없이 뛰어드는 수도자들이 줄을 이었다.

인족은 풍원대륙 구석에 위치해 있었고 대륙의 다른 강대한 종족들에 비해 훨씬 세력이 약했다. 인근의 몇몇 종족들과 비교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실력이 비슷한 요족과 연합해 삼경칠지(三境七地) 전체를 초대형 금제로 봉쇄해 버렸다. 천연성의 입구를 제외하면 어디로도 인족과 요족 영토로 침입할 수 없었기에 두 종족은 안심하고 영계에서 존속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두 종족은 천연성을 매우 중시했고, 대량의 정예병을 파견해 천연성 고유의 장로회를 만들어 방어를 전담하게 했다.

장로회 구성원은 단 10명이었지만 전부 합체기 이상이었고 그 중 누군가 목숨을 잃으면 즉각 새로 선발해 보충하게 되어 있었다. 천연성은 그야말로 철옹성(鐵甕城)같은 방어 태세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래서 인요족 수도자들이 만황세계에 가려면 천연성으로 가야했고, 대부분이 천연성에서 한 달 거리를 배회할 뿐 더 깊이는 들어가지 않았다.

강력한 상고 흉수나 다른 위험 요소를 만나면 천연성으로 달아나 비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적잖은 실력자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만황세계 깊숙한 곳을 탐험하기도 했다.

그날도 만황세계 호수 위에서 인족 수사 넷이 위험에 처해있었다. 인족 수사들은 호수의 거대한 고대 짐승에 의해 움직이지 못하고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었다.

거대한 바다거북은 등딱지에 달린 열댓 개의 촉수를 휘두르며 네 수사를 압박했다. 화신급 수행을 지닌 수사들은 비범한 보물을 조종해 싸웠지만 비도나 비검은 물론 거대 지팡이도 촉수에 맞으면 사정없이 튕겨나가고 말았다.

유생 복장의 중년인이 은색 여의로 촉수로 만든 그물을 막아주지 않았으면 그들은 벌써 죽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네 사람의 호흡은 거칠었고 땀으로 흠뻑 젖어 오래 버티지 못할 성 싶었다.

“화 형, 어서 뇌주를 방출해야 합니다.”

중년인이 크게 소리쳤다.

“안 됩니다. 뇌주가 너무 강력해 이런 협소한 공간에서 방출하면 우리도 휘말릴 거라고요.”

새빨간 갑옷을 걸친 거한이 정색했다.

“그거야 저도 알지요. 하지만 연허 초기의 석원구(石元龜)를 제 백령여의(百靈如意)가 얼마나 더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일격을 가하지 않고 시간을 끌다가는 손쓸 틈도 없이 죽임을 당할 겁니다.”

중년인의 말에 홍갑(紅甲) 거한은 표정이 수시로 달라졌지만 아직도 머뭇거렸다. 이때 고대 짐승의 촉수가 질풍처럼 움직여 거대 그물에서 희미하게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눈부신 하얀빛을 내뿜던 옥여의가 위력이 증폭된 거대 그물과 맞부딪치고 어두워졌고, 거대 그물은 네 수사와 한층 가까워졌다. 더는 기댈 곳이 없어진 홍갑 거한이 이를 악물고 손바닥에 구슬을 들어 올렸다.

남색 빛으로 반짝이는 구슬 표면을 남색 문양이 뒤덮고 있었다. 거한이 남색 구슬을 꺼내자 여 수사 두 명이 눈을 크게 뜨고는 한 명은 열댓 개의 고계 부적을 쏘아 보내 빛의 보호막을 쳤고, 다른 한 명은 검은 종을 방출했다.

종이 그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미친 듯이 커져 댕! 하는 맑은소리를 울리고 검은 보호막으로 네 사람을 뒤덮었다.

중년인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혈을 몇 모금 토해냈다. 창백해진 얼굴로 그가 정혈을 흡수시키자 어둑해졌던 보물의 광채가 되살아나고 하얀 기운이 순식간에 두껍게 변했다.

나머지 수사들이 대비를 마치자 홍갑 거한이 남색 구슬을 발동했다. 구슬은 요란한 빛을 터트리고 수레바퀴 만하게 커져 달려드는 촉수들을 마구 쳐냈다.

쿠쿵!

경천동지할 굉음이 들리고 남색 기운의 물결이 도처로 퍼져나갔다. 열댓 개의 촉수들로 형성된 거대 그물이 남색 물결에 휩싸였고 그 안에서 폭음이 잇달아 들려왔다.

휘휙!

그 안에서 몇 개의 둔광이 날아올라 서로 기운을 연결하고 빠르게 하늘을 갈랐다. 둔광 속 네 남녀는 몰골이 처참했다.

중년인은 옷에 핏자국이 가득했는데 팔 하나가 보이지 않았고, 나머지 셋 역시 의복이 찢기고 안색이 하얗게 질려 중상을 입은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히  날아갈 기력은 남아있어 놀라운 속도로 달아난 것이다.

잠시 후, 남색 물결이 걷히고 거대 바다거북이 나타났다. 열댓 개의 촉수들  절반이 없어지고 남은 것들도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크아아아악!

격노한 고대 짐승은 초록빛을 반짝이며 잘려나간 촉수를 재생하고 호수를 박차고 올라 거대한 물구름으로 변해 네 명을 쫓았다.

앞서 날아가던 네 수사가 화들짝 놀라 죽어라 속도를 높였다. 물구름의 크기는 엄청났지만 속도는 느려 그들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수사들과 물구름의 간격이 점점 좁아졌다. 물구름의 속도는 여전했는데 심각한 부상을 당한 네 수사의 법력이 고갈되어 갔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큰일이 나겠지만 멈춰서 고대 짐승과 싸울 수도 없어 진퇴양난이었다.

펑!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 바다거북 괴수가 물구름을 터뜨렸다. 하얀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가라앉았는데 고대 짐승이 보이지 않았다. 괴이한 현상에 팔이 잘린 유생의 안색이 급변해 조심하라며 소리쳤다.

후웅!

둔광 위에서 공간 파동이 일고 새까만 촉수들이 나타나 그들을 후려쳤다. 아직 닿기 전인데도 둔광이 불안하게 깜빡거렸다.

‘이런!’

그들은 다급히 흩어져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어 나갔다. 그 덕에 기습은 피했지만 다들 표정이 좋지 못했다.

둔광을 연결해 부족한 법력으로 간신히 고대 짐승의 추격에서 달아나는 중이었는데 따로 흩어졌으니 이제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버려야 했다.

하늘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바다거북이 방대한 몸을 드러냈다. 네 수사들은 이번에야말로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사들의 의지는 상상을 초월했고 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수사들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생사를 건 전투를 준비하며 보물들을 방출했다.

바다거북이 그것을 보고 멸시하는 눈빛을 보내더니 등딱지에 자라난 열댓 개의 촉수를 마구 휘둘러 검은 그림자로 하늘을 뒤덮었다.

“저건……!”

쌍방이 격전하기 직전, 네 사람과 고대 짐승이 의아한 얼굴로 동시에 고개를 들고 위를 쳐다보았다.

언제부터인가 그들 위로 거대한 뇌전 구슬 하나가 떠있다. 뇌전 구슬은 은빛으로 찬란하게 빛났고 가느다란 뇌전들이 번득였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천둥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곧 뇌전 구슬은 몇 배로 커졌고 놀랍게도 그 안에서 터져 나온 뇌전들은 직경이 몇 장에 이르는 원형 진법을 형성했다. 은색 뇌전으로 만들어진 진법 속을 수많은 은색 주술문자들이 배회했다.

콰르르릉!

굉음이 울리고 굵은 뇌전이 번뜩였다. 빛이 가시자 누군가 뇌진(雷陣) 중앙에서 나타났는데 몸을 가눈 그는 체면을 차리지 않고 성깔을 부렸다.

“뇌운자! 다음번에 만나면 정말 가만 두지 않을 거요!”

평범한 인상의 청년은 노기가 충천한 얼굴로 씩씩댔다. 푸른 장포를 입고 등 뒤로 수정 날개를 펼친 젊은 사내였다. 팔이 잘린 중년인이 의식으로 그를 훑고 희색이 만연해 서둘러 소리쳤다.

“선배님,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래쪽의 석원구는 지능이 높아 가볍게 볼 상대가 아닙니다.”

‘석원구?’

청년은 그제야 아래의 네 수사와 짐승의 존재를 알아챘다는 듯 시선을 주었다.

“하하, 자네들은 인족이로구만! 천연성이 머지않았다는 뜻일 테지!”

청년은 바다거북은 신경 쓰지 않고 인족 수사들을 만나자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지능이 높은 바다거북도 사내가 함부로 건드릴 존재가 아니란 것을 감지했는지 먼저 공격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천연성까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안내해드려도 되겠습니까?”

홍갑 거한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크게 물었다. 중년인과 여인 둘도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간절하게 청년의 대답을 기다렸다.

“길안내라, 그것도 좋겠군. 그럼 잠시만 기다리게. 저 석원구가 기운이 좋아 보이니 내단을 챙겨 출발하세나!”

청년은 미소를 머금고 드디어 아래의 짐승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의 시선에 석원구는 본능적으로 길게 울부짖으며 입에서 남색 빛기둥을 분출하고 열댓 개의 촉수를 휘둘렀다.

그의 시선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 미친 듯이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거대 바다거북의 맹공에 네 수사는 황급히 보호막을 펼쳐 몸을 보호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위쪽의 날개 달린 청년은 그저 싱긋 웃고는 소매 속에서 회색 기운을 불러내 보호막을 펼쳤다. 남색 빛기둥은 회색 보호막에 닿자마자 소리 없이 사라졌다.

청년은 하늘을 뒤덮은 검은 그림자 그물이 들이닥치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등 뒤의 날개가 펄럭이고 청백색 뇌전들이 떠올라 주변을 쩌렁쩌렁 울렸다. 청년이 소매 속에서 손을 뻗자 마른하늘에 벼락이 치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청백색 뇌전이 응집해 거대 손을 이루더니 곧장 검은 그물을 뚫고 바다거북 위로 떨어졌다. 그러자 바다거북을 보호하던 푸른 영기의 빛이 맥없이 뚫렸고 청백색 거대 손은 짐승의 몸을 세게 움켜쥐었다.

콰르릉!

벼락 소리와 함께 청백색 뇌전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번뜩였고, 석원구는 뇌전 속에서 비명도 못 지르고 재로 변하고 말았다. 뇌전이 가시고 허공에는 석원구의 요단만이 남아 있었다.

청년은 요단을 끌어와 만지작거리다 저물탁에 넣고는 화신기 수사들을 향해 말했다.

“이제 가세!”

화신기 수사들은 너무 놀라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연허기 수행의 석원구가 얼마나 강력한지는 그들이 겪어 보아 잘 알았다. 순식간에 해치울 정도로 약한 괴수가 절대 아니었다.

그들은 청년이 생각보다 더 놓은 경지의 수사라고 판단했다.

“감히 선배님의 성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혹시 합체기 경지에 이르신 성계 수사가 아니신지요.”

중년인이 심호흡을 하고는 먼저 나서서 예를 취하고 공손히 물었다.

“한 씨 성을 쓰고 있고, 아직 그런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네.”

청년은 중년인을 보고 평온히 답해주었다. 푸른 장포의 청년은 당연히 한립이었고, 전송진을 이용해 풍원대륙으로 돌아온 지 벌써 백여 년이 지났다.

뇌명대륙에서 전송된 곳은 풍원대륙에서도 극히 외진 곳이라 그곳을 지키기 위해 파견된 천운 수사들을 제외하면 다른 이종족은 만날 수 없었다.

한립은 신분을 증명할 옥간을 보이고 그곳을 떠나왔다. 출발할 때는 인족으로 돌아오는 길이 이렇게 멀고 험난할 줄 꿈에도 몰랐다.

실력으로는 합체기 수사도 두렵지 않았지만 풍원대륙이 워낙 크고 도중에 어쩔 수 없이 몇몇 이종족 영토를 지나느라 몇 번이나 위험에 처하고 말았다.

한 번은 합체기 경지의 고대 짐승 일곱 마리가 쫓아와 몇 달을 영액과 단약으로 근근이 버티며 달아났었다.

또 언젠가는 실수로 기이한 기후를 지닌 곳에 들어가 엄청난 추위에 벌벌 떨어야 했다. 체내에 오색 한염이 있어 차가운 기운을 흡수하지 않았으면 그곳에서 얼어 죽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고도 기이한 기후를 빠져나오는데 일 년이 걸렸다.

심지어 이족 고계 수사들이 그를 죽이고 보물을 빼앗으려 달려든 적도 있었는데, 서금충과 현천잔보를 써서 연허급 수사 7명을 죽이고 합체급 수사 2명에게 중상을 입힌 다음 멀리 달아나야 했다. 그 전투로 인해 한립도 원기를 크게 상하고 기이한 독에 중독되었었다.

은밀한 곳에 숨어들어 부상을 치료하는 데만 장장 10년이 지나갔다. 그 후로는 더욱 신중하게 움직였는데도 위험한 상황은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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