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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035화 (792/2,000)

1035화. 각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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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족에 이를 때 특별히 준비한 단약들이 있을 것 아닌가. 고비를 넘기며 대부분 사용했지만 우리 셋이 남겨 두었던 것을 모으니 꽤 되더군. 이 단약들을 지니면 성계 고비를 넘길 확률이 2, 3할은 높아질 걸세!”

“물론 수사가 얼마나 많은 선계 영초를 갖고 나왔는가에 따라 우리가 내놓을 단약과 보물의 양도 달라질 것이네.”

단천인이 거들먹거리며 덧붙였고 채류앵도 한마디 했다. 옆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류수아와 석곤은 장로들이 한립을 찾은 이유를 듣고는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그들도 광한계에서 돌아와 단천인과 채류앵에게 막대한 보상을 받았지만 이 거래로 한립이 얻게 될 것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였다.

한립은 심사숙고를 하고 있는지 눈빛이 흔들렸고, 다른 이들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약재 밭에서 상당한 수량의 영초를 구해오기는 했습니다. 대부분 어떤 영초인지 알지 못하니 세 분과 거래하는 것도 좋겠지요. 그저 이것들을 마음에 들어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안심하게. 우리가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어떤 영초든 대부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네. 전혀 모르겠다고 쳐도 선계 영초인데 당연히 적당한 대가를 치를 것일세.”

그가 거래에 동의하자 천기자가 기뻐하며 말했다. 단천인과 채류앵도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영초들을 꺼내 감정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목의 저물탁을 털어 푸른 기운을 불러냈다. 그러자 그 안에서 백여 개의 옥갑들이 떠올라 은은한 빛을 발산했다.

단천인이 눈을 빛내며 가장 가까이 있는 옥갑을 끌어와 열어보았다. 안에는 산호처럼 생긴 새빨간 영초가 들어 있었다.

“염호초(炎瑚草)! 그것도 이렇게나 큰 염호초라니!”

놀란 단천인은 누가 보든 말든 소리를 높였다. 이에 한립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돌아왔다. 여기에는 한 개만 내놓았지만 기억이 맞는다면 대여섯 포기는 뽑아왔다.

채류앵과 천기자가 그것을 보고 뜨거운 눈빛을 보내며 하나씩 옥갑을 끌어와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만 년 이상을 살아온 터라 한립이 알아보지 못했던 영초와 영화(靈花) 중 6할을 알아보았다.

하나하나가 굉장한 것들인지 세 성계 수사들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백여 개 옥갑을 겨우 한식경 만에 낱낱이 살폈다.

“과연 영계에서 매우 구하기 어려운 영초들일세. 허나 약재 밭의 규모를 생각하면 이것이 전부가 아닐 텐데? 한 수사, 마음 놓고 더 꺼내놓아도 되네.”

천기자가 마지막 옥갑을 살펴보다가 힐끗 한립을 쳐다보았다.

“예, 아직 남은 영초들이 더 있습니다. 하지만 선배님들께서도 제게 무언가를 보여주실 때인 듯합니다.”

그 순간 천기자의 안색이 굳었다.

“우리를 못 믿겠다는 것인가?”

“선배님들을 믿지 못했다면 광한계에서 채취해온 영초들을 내놓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남은 옥갑에는 지금 보여드린 영초와 중복되는 것들이 담겨 있을 뿐입니다. 단지 거래하기 전 말씀하신 단약을 확인하겠다는 것뿐인데 과분한 요구입니까?”

한립도 물러서지 않고 차분히 의사를 밝혔다.

“천 수사, 지니고 있는 단약을 꺼내 보여주지요. 우리가 좋은 마음으로 거래를 제안했다는 것을 믿게 해야지요.”

손에 선홍색 과실을 들고 있던 단천인이 채류앵과 몰래 전음을 나누고 이렇게 말했다.

“한 수사가 꺼내놓은 영초들 중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 꽤 많습니다. 거래할 자격은 증명한 셈이지요. 제가 먼저 준비한 단약을 보여도 될까요?”

채류앵도 웃으며 분위기를 풀려했다. 두 사람이 이렇게 말하자 천기자도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둘 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만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한 수사의 뜻대로 단약을 보여줍시다.”

“선배님들의 넓은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한립이 눈치 빠르게 세 수사를 향해 포권을 했고, 채류앵이 옥병 세 개를 꺼내 그에게 던져주었다.

“고비를 넘기는 데 도움이 되는 단약들이네. 각각 은면단(銀綿丹), 만묘단(万妙丹), 고청산(苦靑散)이라 하지. 아마 한 수사도 들어본 것들일 게야. 나도 고생해서 얻은 단약들이라 절반은 써버렸지만 남은 것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될 걸세. 특히 만묘단 세 알은 다른 것들보다 효과가 남다르지.”

한립이 약병을 받아 차례로 확인하는데 채류앵이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단약에 조예가 깊은 한립은 금방 진짜인지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단천인은 두 개의 약병과 두 개의 옥갑을, 천기자는 붉은 호리병박과 남색 호리병박을 꺼내들었다.

일다경 후 한립은 모든 물건의 감정을 마쳤다. 단천인이 내놓은 단약과 영초들은 채류앵의 것과 비교해도 빠지지 않았고, 천기자의 호리병박에 담긴 것은 뇌명대륙 특유의 진귀한 영액(靈液)이었다. 영액을 그대로 복용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여러 귀한 단약을 제련하는 주재료라 값을 따질 수 없었다.

한립이 만족한 얼굴로 저물탁을 털어 대량의 옥갑들을 내놓았다.

“선배님들이 보여주신 단약과 재료들은 분명 하나하나 무가지보(無價之寶)였습니다. 이 중 어떤 것이라도 세상에 나오면 일대가 한바탕 떠들썩해 지겠지요. 하지만 제가 가져온 영초 전부를 교한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한립은 눈앞에 가득 떠오른 옥갑을 훑었다.

“하하, 우리가 자네를 만족시키지 못할 성 싶은가? 어디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보게!”

처음보다 몇 배나 많은 영초들이 나타나자 단천인은 기분이 좋아졌다.

“영초 전부를 교환할 것이니 마음껏 조건을 말해도 되네!”

천기자도 상대가 이렇게 선뜻 대량의 영초를 내놓자 절로 입 꼬리가 올라갔다.

“법기와 보물 말고 진귀한 재료를 받았으면 합니다. 세 분께서 이 목록에 적힌 것을 내어주실 수 있을 지요? 그밖에는 채 선배님께 연체사의 성약이라는 정족의 정월액(晶月液)을 따로 한 병 받고 싶고, 만묘단 약방과 통령괴뢰 제련술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습니다. 부디 제 소망을 이뤄주시기를 청하는 바입니다.”

한립은 뜸들이지 않고 단번에 원하는 바를 줄줄 읊었다.

“너무 과욕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진귀한 재료들은 그렇다 치고 만묘단 약방은 우리 정족 연단종사만이 알고 있네. 정월액은 더더욱 성계 존재들도 오매불망하는 보물이고.”

채류앵은 드물게 미간을 좁히고 불쾌함을 드러냈다.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광한계에서 가져온 이 영초들은 선계 영초 전부에 가깝습니다. 이것들 중 무엇이라도 경매에 내놓으면 무수히 많은 성계 수사들이 낙찰 받으려 경쟁할 테고요.

게다가 수백 개의 영초 중 적잖은 것들은 이미 영계에서 멸종되어 더는 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게다가 만년영초를 월등히 초월할 만큼 오래된 영초들이라 약성도 뛰어날 것입니다. 어떻게 봐도 제가 손해를 보는 거래입니다.”

“만묘단 약방은 절대 안 될 말일세. 우리 천운13족의 저력이 될 약방을 외부인에게 넘길 수는 없네. 통령괴뢰 제련술 또한 마찬가지이니 꿈도 꾸지 말게.”

한립이 꿋꿋하게 버티자 이번에는 천기자가 가차 없이 거절했다.

“정월액은 구하기 어려워도 내가 한 병은 내줄 수 있을 것 같으니, 나머지는 수사가 조건을 바꾸는 것이 어떻겠는가?”

보다 못한 채류앵이 조금 속이 쓰리다는 얼굴로 조건의 일부를 받아들였다. 정월액 자체는 통령괴뢰와 만묘단보다 가치가 있었지만 어쨌든 소모품이었다.

단천인의 얼굴도 퍽 어두웠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을 살피던 한립은 크게 안심했다. 조금 전 무리한 조건을 제시한 것은 상대를 떠보려는 의도가 강했다.

그 중 정월액이라도 건진 것은 큰 수확이었다.

“만묘단 약방과 통령괴뢰 제련술을 내주시기 어렵다면 저도 고집을 피우지는 않겠습니다. 그 대신 이번에 전송진을 이용하며 지불해야할 영석 절반을 대신 채워주시는 것은 가능하시겠습니까?”

“영석이라면 문제없네.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지!”

채류앵이 가볍게 웃으며 수락했고 천기자와 단천인도 표정을 풀고 동의했다. 이에 한립은 푸른 옥간을 꺼내 채류앵 쪽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자 여인은 섬섬옥수로 그것을 끌어와 빼곡하게 적힌 이름들을 살폈다. 대부분 명성이 자자해 그녀도 지겹게 들어온 진귀한 것들이었다.

그녀는 담담히 미소를 지으며 옥간을 단천인에게 넘겨주고 한립이 새로 꺼내놓은 옥갑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허공의 옥갑을 전부 확인한 세 사람은 저물탁에서 크고 작은 목함, 옥병 등의 용기들을 꺼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립은 목록에 기재된 재료 중 7할을 모을 수 있었다.

그들에게 내준 목록은 청원자가 요구한 재료 중 아직 찾지 못한 것들이었다. 전부 희귀하기 짝이 없었는데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재료를 내놓았다.

이건 저들이 이번 거래를 위해 충분한 대비를 해왔다는 이야기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진귀한 재료를 전부 몸에 지니고 다닐 리 없었다.

한립은 그들이 꺼내 놓은 재료들을 꼼꼼히 살피고 저물탁 안에 넣어두었다. 그때 단천인이 입을 열었다.

“찾을 방법이 없는 몇 가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수사들을 파견해 열흘 내로 구해다 주겠네. 괜찮겠지?”

“물론입니다.”

한립이 웃으며 답했다.

“이건 원하던 정월액이니 잘 챙기게. 이번 거래로 한 수사가 우리 셋을 아주 탈탈 털어 가는 구만.”

채류앵이 농을 하며 빙긋 웃고는 새까만 보따리와 남색으로 빛나는 작은 병을 오색 기운에 싸 천천히 날려 보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한립은 눈을 반짝이며 보따리와 병을 가져왔다. 보따리 안의 영석은 의식으로 대충 훑고 넣어두었지만 남색 작은 병은 아주 자세하게 살폈다.

뚜껑을 열고 의식으로 여러 번 훑는 것은 물론이고 코를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아 보았는데도 틀림없는 진품이었다. 그는 정월액을 조심스럽게 챙기고는 오래 머물지 않고 물러가겠다는 인사를 했다. 합체기 노괴들도 더 이상 그와 노닥거릴 여유가 없는지 바로 보내주었다.

파앗!

전송진이 반짝이고 한립이 대청 안에서 사라졌다.

“너희 둘은 먼저 물러가 있거라.”

채류앵이 류수아와 석곤을 향해 눈짓했다.

“예!”

“존명!”

그들은 공손히 대답하고 대청을 떠났다. 그들이 전송진으로 연결된 누각 1층 대청에 이렀을 때는 한립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쓴웃음을 지었다.

“약조한대로 영초들을 똑같이 나눕시다.”

단천인이 허공에 빼곡하게 떠있는 옥갑을 보며 숨길 수 없는 흥분을 드러냈다.

“잠시 만요. 처음에 똑같이 나누기로 한 것은 기억합니다만, 영석과 정월액 모두 제가 지불하지 않았나요? 제 몫이 1할은 더 많아야 합당합니다.”

채류앵도 들뜬 얼굴이었으나 고개를 저으며 나섰다.

“1할을 더 가져가겠다니, 이렇게 말을 바꾸실 겁니까? 영석은 저와 단 수사가 잠시 후 보상하겠습니다. 그리고 정월액이야 아무리 육신을 단련하는 성약이라도 선계 영초 1할과 맞먹을 만큼 귀한 것은 아니지요. 옥갑 다섯 개를 더 고르는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천기자도 얼굴을 굳히고 냉랭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다섯 개를 더 고르라 이 말씀이시죠?”

채류앵이 이때다 싶어 바로 동의했고 얼굴 한 가득 미소를 지었다. 이에 천기자는 움찔했지만 자신이 내뱉은 말이라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단천인은 그저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들으며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셋은 영초가 든 수백 개의 옥갑을 유쾌하게 나누어 가졌다. 이제 허공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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