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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033화 (790/2,000)

1033화. 운성의 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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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송진 속 수사들은 함께 떠올라 운성 어딘가로 날아갔다.

가는 동안 수시로 각치족 병사들이 앞을 막아섰지만 두 명의 합체 초기 수사와 다수의 연허 후기 수사들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적들을 죽이며 전송진에서 멀어졌는데도 운성 안은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각치족 병사들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크고 작은 각치족 전함과, 영수, 병사들이 성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립은 심지어 길가에 초대형 꼭두각시가 쓰러져 꼼짝하지 못하는 것도 발견했다. 꼭두각시의 몸은 성한 곳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울퉁불퉁하게 변해 있었다.

분명 운성을 지키는 꼭두각시 중 하나가 추락한 것이었다.

분명 운성을 지키는 꼭두각시 중 하나가 추락한 것이었다.

합체 초기 수사와 비슷한 실력을 낸다는 초대형 꼭두각시가 이곳에 떨어져 있다는 것은 각치족 대군의 전력이 그만큼 강하다는 증거였다. 이번만큼은 운성을 지킬 수 없을 듯했다.

한립은 조금 불안했지만 가는 동안 성계 수사를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다. 쌍방의 고계 존재들은 성 안에서 모조리 사라진 것 같았다. 그동안 류수아와 석곤은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완전히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월 선자도 영패를 확인하고는 아무 말이 없었고 한두 번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머금기는 했지만 따로 전음을 보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립은 그들의 태도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오직 운성의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각치족 대군의 침공으로 초대형 전송진을 빌려 쓸 수 없을까 걱정된 것이다.

그들은 쾌속으로 팔운산까지 뚫고 날아갔다. 심지어 오는 동안 적의 전함과 전차도 몇 대 부수면서 말이다. 팔운산에 이르자 각치족 병사들은 보이지 않았고 곳곳에 무리지어 있는 천운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팔운산의 8개 봉우리에서 찬란한 빛이 솟아올라 층층이 금제를 이루었고, 인근 구름 속에는 청동색 전차와 거대 꼭두각시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광한계에서 복귀한 수사들이 나서서 묻기 전에 백여 명의 병사들이 다가왔다. 그 중 새까만 얼굴의 거한이 그들을 알아보고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드디어 광한계에서 돌아왔구만. 비 선배님께서 통령전보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나를 따르시게!”

“병 선배님이셨군요. 저희를 기다려 주시다니 송구스럽습니다.”

월 선자와 막 합체기에 이른 중년인이 새까만 얼굴의 수사를 알아보고 급히 포권을 했다. 류수아 등 운성에서 오래 머문 수사들도 안색이 변해 예를 올렸다.

한립은 무의식중에 미간을 좁혔지만 다른 수사들과 마찬가지로 예를 취했다.

“아, 월 수사와 응 수사도 이제 어엿한 성계의 존재가 되었으니 앞으로는 저를 편하게 대하셔도 됩니다. 자, 모두 비 선배님을 뵈러 갑시다.”

새까만 거한이 웃음을 흘리고 월 선자와 응 수사를 향해서 손을 저었다. 그 말에 수사들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대승기 천운 태상장로가 이곳에 남아있다면 아직 전황이 최악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새까만 거한은 그들을 이끌고 산봉우리 중 하나로 날아올랐고 나머지 수사들은 그 뒤를 따랐다. 백여 명의 천운 병사들이 두 무리로 나뉘어 좌우에서 호위를 했다.

잠시 후 산봉우리를 넘어가자 작은 성이 나타났다.

성을 둘러싼 높은 성벽 위를 은백색 조각상들이 지키고 있었다. 요수의 형상을 한 것도 있고 사람의 형상을 한 것도 있었는데 크기는 제각각이었지만 흉흉한 살기는 모두 똑같았다.

성 위에는 푸른 갑옷 병사들이 무리지어 순찰을 돌고 있었다.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전부 인형(人形) 꼭두각시들이었다.

성 밖에도 열댓 마리의 금속 괴리들이 포진해 병장기를 들고 있었고, 성 위로는 5, 60개의 괴상한 빛의 진법이 떠올라 괴이한 빛을 반짝였다.

딱 한 번 와본 적 있는 만고족 성이었다. 이곳은 각양각색의 종족들이 드나들고 있었는데 임시로 운성을 총괄하는 중심처가 된 듯했다.

새까만 거한의 안내로 일행은 통령전 앞에 내려섰고 문밖의 백포(白袍) 수사 두 명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대전 안에는 단 세 명뿐이었는데 태연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는 이가 바로 천운족 대승기 수사인 비 씨 청년이었다.

그 옆으로는 연허기 수사들이 공손히 서서 청년의 분부를 듣고 있었다.

“태상 잘로님을 뵙습니다.”

대전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월 선자와 중년인은 일행을 이끌고 대례를 올렸다.

“오, 왔구만. 두 명이나 성족으로 진입하다니 잘 되었어. 모두 일어나게.”

청년이 월 선자와 응 씨 중년인을 보고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이에 수사들은 명을 듣고 몸을 일으켰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한립이 느끼기엔 그를 보고 비 씨 청년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진 것 같았다.

그가 출발 전 뜬금없이 ‘천강인’을 내주었던 것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해졌다. 다행히 청년은 한립에게 오래 시선을 주지 않고 곁의 두 사사를 향해 손을 저어 물러나게 했다.

“간단히 설명하겠네. 운성이 이렇게 된 것은 본 족이 각치인들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일세. 전방의 주력 부대가 딴 곳으로 유인당한 사이 그 틈을 노리고 각치족 대군이 운성을 침공했지. 성의 금제 진법도 역시 도둑질을 당해 금제대진으로도 대군을 막지 못했네. 운성에서 머지않아 퇴각할 계획이니 자네들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복교성(伏蛟城)으로 이동하게.”

“그렇게 상황이 안 좋단 말씀입니까? 선배님께서 계시는데 운성을 버리고 퇴각하다니요.”

월 선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다른 수사들도 놀란 눈치였다.

“각치족에는 대승기 존재가 없을 것 같은가? 이번에 몰려온 각치족 대군 중에 각치족 태상장로가 둘이나 있었네. 그들이 미리 소식을 보내와 이번 전투에 나서지 말라더군. 그러면 그들도 관여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만일 이 조건에 따르지 않는다면 어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잉ㄹ세. 나로서는 동급 수사 둘과 맞설 수 없고, 그들은 협공해도 나를 죽인다는 보장이 없으니 서로 전면전을 펼치기를 꺼려하는 것이지.”

“하지만 본 성에 머무는 성계 수사만 해도 수십 명은 될 것입니다. 그들이 나서면 전세를 역전할 수 있을 텐데, 오는 내내 한 명도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설마 그 분들이 전부…….”

응 씨 중년인도 놀랐는지 불쑥 물었다.

“그들은 무사하니 걱정 말게. 다른 일이 있어 성에 없을 뿐이지. 자네들도 보았다시피 성 안에 각치족 성계 수사가 없는 것은 그들 덕이라네. 아마 각치족 쪽에서도 곧 알아차리고 성계 수사를 더 파견할 게야. 운성이 뚫리는 것은 시간문제지. 그러니 자네들은 병 수사를 따라 당장 이곳을 떠나게.”

청년의 말에 월 선자와 응 씨 중년인이 서둘러 고개 숙이고 명을 받들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는데 한립만 머뭇거리는 기색이었다.

“그렇지. 한 수사는 잠시 남게. 따로 해야 할 말이 있으니 말이야.”

비 씨 청년이 흘낏 한립을 보고 말했다. 한립은 흠칫 놀랐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수사들이 새까만 거한을 따라 대전을 나가자 비 씨 청년이 묘한 얼굴로 한립을 응시했다.

“선배님. 무엇이든 분부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한립은 대승기 수사와 홀로 남게 되자 모골이 송연해져 공손히 입을 열었다.

“노부가 자네를 남으라 한 것은 부탁할 일이 있어서라네. 한 수사는 풍원대륙 출신의 인족이겠지?”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혹시 선배님께서도 풍원대륙에 가본 일이 있으십니까?”

한립이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깜짝 놀라 물었다.

“허허, 어찌 가보기만 했겠는가! 인족의 몇몇 수사들과 인연이 닿아 친분을 나누기도 하였다네. 인족이 세력은 크지 않아도 대대로 전수되는 몇 가지 신통은 가볍게 볼 만한 것이 아니었지. 다만 워낙 수련이 어려워 웬만한 수사들은 익히지 못하겠지만.”

비 씨 청년이 뜻밖에도 낮게 웃음을 흘렸다.

“그렇다면 저도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확실히 풍원대륙의 인족 출신이 맞습니다.”

“그럴 줄 알았네! 자네는 빙백 선자와 어떤 관계이기에 체내에 허령정(虛靈鼎)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

한립이 순순히 인족이라는 것을 인정하자 청년은 깜짝 놀랄 만한 말을 내뱉었다.

“허령정(虛靈鼎)을 아십니까?”

한립이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벌려 작은 솥을 분출했다. 허천정이었다.

“과연 이것이었군. 오랜만에 보는데도 기운은 그대로야.”

비 씨 청년이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렸다.

“빙백 선자에 대해서는 저도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허령정이 아니라 '허천정'이라는 보물입니다.”

“허천정?”

한립의 말에 청년이 멍해졌다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작은 솥이 순식간에 의식 연계가 끊기고 쉭 하고 청년에게 날아갔다. 이에 한립의 안색이 미미하게 달라졌으나 입을 다물었다.

“자세히 살피니 허령정과 조금 다르기는 하구만. 제련 수법이 투박하기는 한데 또 모조품은 아니고……. 허령정을 제련하기 전에 시험 삼아 만든 것이군.”

그 말에 한립으 문득 생각에 잠겼다.

“어찌 되었든 이것도 빙백 수사의 것이었으니 자네가 그녀와 인연이 있다고 봐야겠지. 난 자네가 인족으로 돌아간 후 나를 대신해 그녀를 찾아 물건과 서신을 전해주었으면 한다네.”

비 씨 청년이 작은 솥을 놓아주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저도 우연히 허천정을 얻게 되었을 뿐 빙백 선자를 뵌 적은 없습니다.”

한립은 서둘러 허천정을 체내로 회수하고 사실대로 고했다. 그녀가 영계에 올라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비 씨 청년과 동급인 노괴라는 이야기인데 괜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아는 사이가 아니라도 상관없네. 인족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명성이 자자한 빙백 선자의 소식을 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니까. 혹여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면 그 후인에게 물건을 전해주어도 되네.”

비 씨 청년은 옥함과 연한 남색 옥간을 던져주었다. 한립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이 물건을 끌어왔다. 금색 부적이 하나씩 붙어 두 물건을 봉인하고 있었다.

“부적들은 특수 제련한 것이라 빙백 선자 혹은 그녀와 혈연관계인 후인만이 떼어낼 수 있네. 다른 사람이 뜯어내려하면 즉각 폭발해 버리게 되어있지.”

비 씨 청년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물론 나도 아무런 대가없이 부탁하려는 것은 아닐세. 뇌명대륙에서만 나는 진귀한 재료들을 따로 보수로 챙겨 주고, 그 밖에 초대형 전송진에 관한 일을 해결해 주겠네. 천기자 등이 이미 초대형 전송진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조했지만 전세가 급박해 인근 성의 모든 전송진들은 봉쇄되었다네.

내 직접 분부를 내려 특별히 복교성에 있는 초대형 전송진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지. 당연히 그 전에 자네가 먼저 심마를 걸고 반드시 약조를 지키겠다는 맹세를 해주어야겠지만 말이야.”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후배 된 도리로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고민하던 한립은 조건을 수락했다. 그는 수결을 맺어 심마를 걸고 맹세를 하고는 수중의 물건을 저물탁에 넣어두었다.

맹세가 인계에서는 별 것 아니었지만, 영계로 올라와 연허기에 이른 후에는 치명적인 효과를 냈다. 수련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가장 무서운 장애물이 심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계 수사에게 심마를 건 맹세는 꽤 강한 구속력을 지녔다. 비 씨 청년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품에서 재료가 가득 들어있는 옥갑 세 개를 꺼내 던져주었다.

한립은 푸른 기운을 날려 내용물을 쳐다보지도 않고 거두어들였다.

“됐으니 이제 가보게!”

할 말을 끝낸 비 씨 청년은 웃음기를 거두고 명했다 이에 한립은 공손히 예를 올리고 대전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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