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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032화 (789/2,000)

1032화. 복귀

*

한립은 남은 시간을 금전문을 연구하는데 보냈다.

웅!

그날도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홀연히 저물대가 울어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그가 서둘러 세 개의 금은색 빛덩이를 꺼냈다. 바로 광한령이었다.

금은색 영패들이 그의 눈앞에서 영기의 빛으로 점점 흩어지고 있었다. 한립은 땅이 흔들리고 천지원기가 혼란스러워진 것을 감지했다.

“벌써 날짜가 다 되었구나!”

그는 푸른 빛줄기로 변해 동굴을 빠져나왔다. 그는 황폐한 산 위에 나타나 진중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광풍에 하늘에는 오색구름이 출렁였고 땅은 거세게 흔들려 산이 들썩였다. 몇몇 나무들은 진동을 이기지 못해 쓰러지기도 했다. 그가 머물던 산에서도 새들이 날아오르고 들짐승이 굴에서 빠져나와 미친 듯이 달아나고 있었다.

한립은 뒷짐을 진채 눈을 감고 주변의 폭발적인 천지원기와 감응했다. 이것은 분명 광한계 개방일이 끝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기껏해야 반나절이면 외부인들은 이곳 세계의 법칙의 힘에의해 강제로 퇴출당하게 될 것이다.

출발할 때 이용한 진법에 각자의 표식을 남겨놓았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한립은 광한계에서 얻은 풍성한 수확에 대해 생각하며 놀라운 천기현상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저건…….’

한립의 표정이 달라지며 그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출렁이는 오색구름 아래에 금색과 하얀색 둔광이 정신없이 그가 있는 곳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둘 다 힘이 없어보였고 둔광의 색도 어두웠다.

그나마 크고 밝은 뒤쪽의 하얀 둔광이 앞쪽의 금색 둔광을 쫓는 듯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금색 둔광이 퍽 눈에 익었다. 이에 남색 빛을 일렁여 안을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금색 거대 늑대가 전력으로 날고 있었는데 털이 한 움큼 빠진 커다란 괴수는 이미 두 번이나 마주친 적 있는 암수왕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바짝 뒤쫓는 하얀 둔광은 날개 달린 백호(白虎) 괴수였다. 괴수 역시 몸이 불편해 보였지만 끈질기게 금색 암수왕을 쫓았다.

괴수들은 원기를 크게 상했는지 한립이 갑자기 기운을 숨겼는데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 일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소매 속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초조함이 가득한 표린수의 울음소리였다.

‘그렇다면 그냥 보낼 수 없지.’

표린수의 반응에 한립은 영수에게 고계 암수 요단을 먹였던 것을 떠올렸다. 멀리 금빛 둔광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천둥소리가 울리고 등 뒤로 날개를 펼친 그가 청백색 실로 변해 자취를 감추었다. 다음 순간, 암수왕 위로 공간 파동이 일고 삼두육비 거대한 금빛 그림자가 떠올랐다.

금빛 그림자는 여섯 개의 팔을 휘둘러 금색 빛기둥을 분출했다. 그러자 암수왕은 합체 초기의 높은 수행을 지녔음에도 이미 법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빛기둥 세 개를 맞고 말았다.

쿠콰쾅!

눈부신 금빛이 암수왕을 뒤덮었다. 그때 고공에서 다시 공간 파동이 일고 검은 색 거산과 거대한 은색 자가 나타나 동시에 하강했다.

검은 산 아래에서 은색 주술문자들이 요동치더니 놀랍게도 거대한 빛의 진법을 형성해 무형의 힘을 발산했다. 금색 빛기둥을 세 개나 맞은 암수왕은 주변 공기가 얼어붙고 몸이 엄청난 무게에 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에 기함한 괴수는 온몸의 털을 세워 사방으로 금빛을 날렸다. 평소의 암수왕이었으면 이 일격으로 금제의 속박에서 벗어나겠지만 지금은 법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금빛은 한 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무형의 힘에 멈춰 섰다. 드디어 암수왕의 눈빛에 두려움이 어렸다. 강력한 신통을 지녔지만 지친 몸과 바닥난 법력으로 펼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 순간 은색 거대 자가 바람과 뇌전 소리를 내며 암수왕 위로 떨어졌고 처량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은색 뇌전에 둘러싸인 암수왕에게서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휙!

이때 푸른 거대 검이 허공을 가르자 은색 뇌전과 무형의 힘에 붙들려 있던 암수왕은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둘로 갈라졌다.

쾅!

갑작스레 폭음이 울리고 원래의 절반쯤 되는 금색 암수가 갈라진 시체 사이에서 튀어나와 핏빛을 두르고 달아났다.

그때 고공에 떠있던 검은 산이 순간이동을 해 달아나는 핏빛을 찍어 눌렀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핏빛이 터지는 순간 다시 주먹 크기의 금색 암수를 품은 금색 빛이 그 안에서 튀어나왔다.

매미가 허물을 벗든 연달아 껍질을 내던지고 달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은색 불새가 암수 앞에 나타나 날개를 펴고 쇄도하자 소형 암수는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서령진화에 당해 재로 사라졌다.

그제야 천둥소리를 내며 청백색 실이 은색 화염 근처에서 나타났다. 한립은 둔광을 거두고 은색 화염 속에서 금색 수정돌을 끌어당겼다. 암수왕의 요단이었다.

한립은 잠시 요단을 살펴보다 시선을 어딘가로 돌렸다.

멀리서 날개 달린 백호 괴수가 분노한 얼굴로 그가 들고 있는 요단을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서 탐심이 느껴졌지만 무작정 달려들지는 않았다.

한립은 괴수의 행동을 주시하며 원자극산과 은색 자를 불러들였다. 천기현상이 더욱 격렬해지고 있었다.

오색구름은 꿈틀거리다 못해 은색 뇌전을 떨구기 시작했고 장대비가 쏟아져 내려 천지가 흐릿하게 변했다. 그러나 백호 괴수는 비를 맞으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갈팡질팡하는 모습이었다.

파츠츠측!

참다못한 한립이 등 뒤의 날개를 펄럭여 청백색 뇌전 구슬을 빽빽하게 띄웠다. 그것을 본 백호가 분하다는 듯 낮게 으르렁거리고 하얀 빛줄기로 변해 왔던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러나 한립은 굳이 쫓지 않았고 백호 괴수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뇌전 구슬들을 흩어버리고 검은 산과 은색 자를 회수했다. 광한계 개방일이 끝나가는 데 아무리 약해졌다 해도 합체 초기의 존재를 쫓는 것은 무리였다.

만일 뜻밖의 사고라도 벌어지면 득보다 실이 컸다. 백호 괴수 역시 한립이 간단히 암수왕을 죽이자 화가 났지만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 물러난 것이다.

표린수가 영수환 속에서 격정적으로 울어댔다. 심지어 한립을 향해 암수왕 요단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기까지 했다.

‘녀석!’

한립은 미소를 머금고 금색 요단을 영수환 속에 넣어주었다. 그러자 표린수가 기뻐 날뛰며 요단을 받아먹었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뻗어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잠에 빠졌는지 새근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이후 표린수의 변화가 무척 기대되었다. 암수왕의 요단은 이전에 먹은 암수 요단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 *

쿠르르르릉!

몇 시진 후, 오색구름이 귀청이 터질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구름 속에 파묻힌 한립은 번쩍번쩍 내리치는 번개 속에서 강력한 공간의 파동을 감지했고 일다경 후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똑같은 현상이 광한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외부인들은 전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광한계 밖으로 전송되었다.

눈앞에 오색 빛이 터져 명청령안으로도 앞을 볼 수 없었다. 한립은 세상이 빙빙 도는 기분을 느꼈다. 그가 두 다리를 땅에 내려서자마자 귓가에 폭음이 들렸고 섬뜩한 느낌에 머리가 쭈뼛 섰다.

한립은 깜짝 놀라 즉시 검은 기운을 불러내 천외마갑을 몸에 걸쳤다.

탱!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그가 눈을 번쩍 떴다. 머리 위로 장검이 마갑에 튕겨나갔고 그 주인은 머리에 기다린 뿔이 쌍으로 달린 은색 갑옷을 입고 있었다. 한눈에 각치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립은 어두운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각종 보물이 난무하고 다채로운 영기의 빛이 충돌했다. 수천 명의 이족인들이 서로를 살육하고 있었다. 그중 절반은 각치족인들이었고 나머지는 전송진을 지키고 있던 천운족 수사들이었다.

고공에는 각치족 전함이 떠있었고 수많은 각치인들과 천운인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거대 전송진 주위의 금제는 대부분 망가진 지 오래였고 아주 멀리 천운성 각지에서는 화염이 치솟고 폭음이 들려왔다. 천운성 전체가 전란에 휩싸인 듯했다.

이상한 일은 전투 중인 수사들 중에 성족 이상이 한 명도 없다는 점이었다. 수행이 높은 이들은 기껏해야 연허기 최고봉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운성의 상황은 너무 혼란스러웠다. 바닥의 거대 전송진은 아직도 윙윙거리고 있었고 전송된 사람은 그뿐인 듯싶었다.

‘이러니 전송이 되자마자 공격을 받았던 게지.’

한립은 자신을 공격한 각치족 거한을 올려다보며 소매 속에서 푸른 비검을 방출했다.

푸른빛이 번뜩이고 날아가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각치족 병사는 상대의 비검이 사라진 것을 보고는 방향을 틀어 달아나려고 했다. 하지만 한 발 늦었다.

푸른 검기가 각치족 코앞에서 나타나 그의 목을 빙글 돌았고, 거한의 머리가 데구루루 굴러떨어졌다. 머리 잃은 시체 속에서 원영이 날아오르자 날카로운 검기가 그대로 잘라냈다.

한립은 무표정한 얼굴로 비검을 회수했고 그 순간 공간파동이 일며 영기의 빛 속에서 네 사람이 나타났다. 그중 두 명은 바로 류수아와 석곤이었고, 나머지 두 사람은 그와 광한계에 같이 진입했던 중년인과 청년 수사들이었다.

한립이 중년인을 훑고 동공을 수축했다. 희미하게 합체 초기의 압력이 느껴졌다. 평범한 외모의 중년인은 광한계에서 고비를 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류수아와 나머지 수사들은 영기와 압력이 처음과 같아 고비를 넘는데 실패한 듯했다.

곧 옆의 전송진에서도 빛이 반짝이고 네 명이 전송되었다. 그중에 월 선자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같이 다니던 서씨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여인은 담담한 미소를 짓고 이전과 달라진 기운을 방출했다. 성공적으로 합체 초기에 이른 모양이었다.

한립은 그것을 보고 꽤 놀랐다.

광한계가 수련의 고비를 넘겨준다지만 두 명이나 합체기에 올랐다. 광한계 개방이 만 년에 한 번이 아니라 더 자주 열렸다면 외명 대륙의 합체기 수사의 수는 다른 두 대륙을 압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립은 그가 다른 이들보다 먼저 전송되어 온 것에 의문을 품었다.

‘순전히 우연일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모든 일이 팔뚝의 현천과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천의 보물을 봉인하고 있었기에 광한계 법칙의 힘에 더 강한 배척을 받은 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제일 먼저 홀로 광한계에서 되돌아온 것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광한계에서 막 돌아온 천운인들은 눈앞의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겨우 1년 정도 떠나 있었는데 어찌 후방에 위치한 운성까지 전란에 휩싸였단 말인가!

그러나 광한계에서 살아 돌아온 무리는 하나 같이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수사들은 정신을 차리고 분분히 보물을 방출해 전투 속으로 뛰어들었다.

바로 그때 두 전송진 중간의 허공에서 붉은빛이 떨어져 내렸다. 빛이 가시고 나타난 것은 인상 좋은 노인이었다.

“드디어 돌아오셨습니다. 장로분들은 각치족의 고계 수사들을 대항하느라 자리를 비우셨고, 비 선배님의 전언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전송되어 돌아오는 대로 만고족 통령전보(通靈戰堡)로 오시랍니다.”

어느 일족인지는 모르겠지만 노인은 급히 한립과 나머지 수사들을 향해 외치고는 영패를 던지고 다시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노인은 두 팔을 펼쳐 적들을 향해 새빨간 불 구름을 날렸고 그 틈을 노리고 달려드는 각치족 병사와 충돌해 싸우기 시작했다. 아래쪽 수사들이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막 합체기에 이른 중년인이 노인이 건네준 영패를 끌어들여 살펴보더니 월 선자에게 던져주었다.

“영패는 진짜입니다. 명령을 전달한 수사도 제가 알고요. 청족의 우 수사는 장로회의 집법 시위입니다.”

월 선자가 확인을 마치고 다른 수사들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명에 따라야겠습니다. 비 선배님이 이런 명령을 남기신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중년인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약간 명령하는 말투였지만 이미 성족에 진입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수사들은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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