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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031화 (788/2,000)

1031화. 금전문 습득

*

일다경 후, 십자로에서 경천동지할 폭음이 터지고 법술과 병장기가 맞부딪치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동굴 안은 다시 고요해졌고 한립은 무표정한 얼굴로 은색 보호막이 있는 동굴로 돌아왔다. 그는 금신과 꼭두각시들을 데리고 나머지 세 명의 융족인들을 해결한 후 십자로로 향했다.

한립이 도착하자 구궁천건부와 강력한 금제에 네 명의 융족인들이 갇혀 있었다. 한립은 바로 뛰어들어 일전을 벌였다.

예상과 달리 세 명은 죽였지만 온몸에 새까만 털로 뒤덮인 융족인만이 생전 처음 보는 괴이한 둔술을 펼쳐 달아났다. 자신의 몸을 터트려 열댓 개의 핏빛으로 변해 달아나는데 한립이 그중 대부분을 쫓아 죽였는데도 두 줄기는 달아나고 말았다.

완전히 숨통을 끊어놓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육신을 잃은 잔혼 두 개가 광한계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이곳에서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기에 서둘러 마지막 금전문 구결을 복제하고 떠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한립은 명청령안을 발동해 천천히 동굴 속의 보호막을 살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각양각색의 주술문자를 함유하고 있었고 두꺼운 보호막은 그 자체로 귀한 수정으로 만든 보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융족인 십여 명도 눈앞의 은색 보호막을 어쩌지 못했으니 파훼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강제로 깨트릴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한립은 소매 속에서 손가락을 튕겨 푸른 검기 한 줄기를 날려 보냈다.

펑!

검기는 가볍게 튕겨나갔고 보호막에 흠집조차 남기지 못했다. 이번에는 입을 벌려 은색 불구슬을 분출했다. 그러나 서령진화는 놀랍게도 보호막을 미끄러지듯 비켜나갔다.

이어 그는 방법을 바꿔가며 여러 신통과 보물로 시도해봤지만 은색 보호막은 끄떡없었다. 나중에는 금신을 이용해 현천잔보까지 써보고는 완력으로 금제를 깨부수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은색 보호막은 현천의 보물의 힘을 막지는 못했지만 틈에 균열이 생긴 순간 석벽이 진동하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에 금전문 구결이 망가질까 한립이 소스라치게 놀라 급히 현천잔보의 공격을 멈추느라 체내의 기운이 역류해 원기를 상할 뻔했다.

한립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천히 보호막과 아래 진법의 주술문자를 살폈다. 그는 진법에 대해 조예가 깊었고 앞서 융족인들이 광한령을 언급한 것을 기억하며 살펴본 덕에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일으켜 소매 속에서 고풍스러운 은색 영패를 불러냈다.

한립은 열손가락을 튕겨 여러 색의 법결들을 은색 영패에 흡수시켰다. 잠시 후 주술문자들이 튀어나와 규칙적으로 배열되었다. 이에 한립은 그것을 주시하고는 보호막 위로 열댓 개의 진법 깃발을 날렸다.

웅!

깃발들이 진동하며 다양한 영기의 빛을 방출했고 다양한 영기의 빛이 섞여 복잡한 빛의 진법을 형성해 천천히 선회했다.

“가라.”

광한령이 부들부들 떨더니 금은색 빛으로 변해 빛의 진법 속으로 날아들었다. 다음 순간 빛의 진법이 괴이한 기운을 발산하며 울어댔고, 금은색 빛기둥이 빛의 진법 한가운데에서 발사되어 은색 보호막을 공격했다.

치치칙!

여러 공격에도 멀쩡하던 은색 보호막이 놀랍게도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보호막 속의 주술문자들이 몰려들어 금은색 빛기둥에 녹아내린 곳을 천천히 복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립은 당황하지 않고 저물탁을 건드려 두 개의 금은색 빛덩이를 불러냈다. 또 다른 광한령이었다. 하나는 처음부터 숨겨둔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원자극산에 가둬든 삿갓 융족인을 수색해 찾아낸 것이었다.

융족인 무리 중 광한령을 연화시킨 것은 힘이 센 거한이 아니라 삿갓 융족인이었다. 한립으로서는 꽤 의외의 발견이었다.

물론 원자극산에 가둬둔 융족인 두 명은 지닌 물건을 전부 빼앗고 서령진화로 재로 만들어버렸다. 한립은 두 개의 광한령에도 법결들을 흡수시키고 보호막 위의 빛의 진법으로 날려 보냈다.

쿠르릉.

빛의 진법이 심하게 흔들리고 방출되던 빛기둥도 세 배로 두꺼워졌다. 안 그래도 간신히 버티던 은색 보호막이 막대한 힘 앞에 서서히 녹아버렸다.

일다경이 지나자 쿵! 하고 폭발이 일어났고, 은색 보호막은 무너져 빛으로 흩어졌다. 한립은 반색하며 수결을 맺고 빛의 진법을 가리켰다.

펑.

빛의 진법이 흩어지고 진법 깃발들과 세 개의 광한령이 나타났다.

푸른 기운으로 깃발들과 광한령들을 거둔 한립은 또렷이 드러난 석벽 위의 금색 문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차분하던 평소와 달리 감출 수 없는 환희가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푸른 빛줄기가 대협곡을 빠져나왔다.

쿠쿵!

푸른 빛줄기 속에서 빠져나온 검은 산봉우리가 거산으로 변해 아래쪽 대협곡을 내리쳤다.

쿵! 쿵! 쿵!

몇 번이나 천지가 흔들리고 검은 거산이 대협곡을 무너트리자 그제야 푸른 빛 속에서 한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대협곡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자 거산이 수축해 검은 빛으로 변해 그의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

* * *

호수로 둘러싸인 섬 산봉우리 위에서 노인과 여인이 가부좌를 하고 요양을 하고 있었다. 노인의 몸에서는 영기의 빛이 반짝였고, 여인 주위에는 하얀 빛줄기들이 맴돌았다.

여인이 눈을 번쩍 뜨고는 하얀 기운을 흩었다. 그와 동시에 노인도 반짝이는 영기의 빛을 거두고 눈을 떴다.

“누군가 오고 있군요. 한 수사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한 수사가 떠난 지 아직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돌아오겠습니까? 십여 명의 동급 수사들이 만만한 상대는 아니지 않습니까.”

서씨 노인도 아리송하다는 얼굴이었다.

“지켜보면 알겠지요.”

월 선자가 대답하며 하얀 손수건을 방출해 몸에 덮자 하얀 보호막이 생겨나며 여인의 모습이 사라졌다. 노인도 푸른 깃발을 꺼내 흔들어 몸을 감췄다.

잠시 후 하늘 저편에서 푸른 빛줄기가 날아들었다. 한립은 정상에 내려서서 둔광을 거두고 미소를 지었다.

“법결을 찾아왔습니다. 어서 나오십시오.”

“한 형!”

“축하드립니다, 한 수사!”

월 선자와, 서씨 노인이 동시에 탄성을 터트리며 은신술을 거두었다. 다들 희색이 만연했다.

“정말 연신술 구결을 전부 복제해 오신 것입니까?”

여인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확인했다.

“하하, 물론입니다. 믿기지 않으신다면 직접 살펴보시지요.”

한립은 미소를 머금고 푸른 옥간을 던져주었다. 월 선자는 손을 뻗어 옥간을 끌어당기면서도 의아한 기색이었다.

고생해서 구해온 법결을 이리 쉽게 넘겨주는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서씨 노인도 곁에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살펴보겠습니다.”

여인이 마음을 다잡고 의식으로 옥간을 훑어 수상한 금제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마에 가져다 댔다. 여인이 금전문을 익혔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 듯했다.

일다경도 채 지나지 않아 그녀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옥간을 떼어낸 여인은 한립과 노인을 향해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설마 비밀동굴 속 금전문 구결이 연신술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겠지요.”

서씨 노인이 불안한지 서둘러 물었다.

“연신술은 확실합니다. 그저 대충 살펴도 수련 조건이 너무 열악해 영계에서도 익힐 수 있는 자를 찾기 어려울 것 같군요. 진선계의 비술이니 비범한 것이 당연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옥간에는 공법의 전반부밖에 적혀 있지 않던데 후반부는 어떤 내용일지 궁금합니다.”

월 선자가 한립을 향해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냈다. 서씨 노인이 그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한립을 쳐다보았다.

“예, 그곳에는 공법의 절반만 적혀 있습니다. 두 분께서 약속대로 금전문을 전수해 주시면 나머지를 내어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그거야 문제없습니다. 공법을 나누어주시는 대가로 금전문을 전수해드리기로 했으니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런데 금전문이 워낙 오묘해서 익히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입니다.”

한립의 제안에 노인이 웃음을 터트리고 호쾌하게 답했다.

“한 형께서 법결을 구해오셨으니, 저도 약속은 꼭 지킬 것입니다. 허나 이곳은 비밀동굴과 가까워 안전하지 못합니다.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월 선자도 한립의 조건을 듣고 빙긋 웃음 지었다.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바로 움직이시지요.”

한립이 동의하자 다 같이 날아올라 놀라운 속도로 날아갔다. 그들이 섬을 떠나고 닷새 후, 멀리 대협곡 상공에 열댓 명의 융족인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 대협곡을 보며 안색이 어두워졌다.

* * *

한립 일행은 아주 멀리 떨어진 외딴 동굴 안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그들은 이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는 여인과 노인이 교대로 금전문을 전수해주면 한립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익혔다.

그리고 보름 만에 금전문을 다 익힌 그는 깔끔하게 나머지 절반의 구결을 복제해 옥간을 건네주고 동굴을 떠났다.

광한계 개방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들은 따로 은밀한 곳을 찾아 수련의 고비를 뚫는데 집중해야 할 때였다.

한립은 남은 시간 동안 황폐한 산을 찾아 그 안에 동굴을 파고 들어가 연신술 구결을 익혔다.

유적 속 수미공간 안에서 신비한 힘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합체기에 이르지 못했으니 평범한 방법으로 고비를 뚫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였다. 단번에 2단계를 건너뛰어 수행을 안정시키는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광한계로 들어온 이족인들은 대부분 연허기 최정상을 수백 년 내지 천년 이상 맴돌다 이곳에 들어온 자들이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광한계 개방기간중  마지막 두 달 가량이 영기가 가장 농염해져서 고비를 뚫을 확률도 높아진다고 했다.

그래서 광한계에 들어온 이족인들은 보통 고된 수련을 하는 이들과 보물을 찾아다니는 이들로 나뉜다.

물론 월 선자처럼 완전히 다른 목적을 지니고 광한계에 들어온 자들도 있지만 어쨌든 누구라도 마지막 두 달은 합체기 경지에 이르기 위해 노력한다.

한립처럼 연허 후기도 아니면서 광한계에 들어와 이곳에서 연허 후기에 이른 경우는 전무후무했다.

그는 금전문이 너무 어려워 한 달 가량을 연구하고도 겨우 절반 정도만 무슨 내용인지 파악했다. 그것도 연신술에서 가장 쉽고 간단한 부분이었다. 월 선자가 쓴웃음을 지으며 익히기 어렵다고 한 말뜻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연신술은 진선계에서도 대단한 신통으로 법결에 천지법칙이 녹아 있어 일단 수련을 마치면 의식이 엄청나게 강해졌다. 공법은 총3성으로 나뉘었고 1성을 익히면 의식이 2배로, 2성을 익히면 4배로, 3성을 익히면 8배로 늘어났다.

무시무시한 의식의 증가에 어째서 연신술이 진선계에서도 대단한 신통에 속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효과가 대단한 만큼 수련의 어려움도 많았다.

화신기 이상의 수사가 익힐 수 있는 공법으로 유일한 전제 조건은 패도적인 공법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의식과 육신이 충분이 강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의식이 단번에 배로 늘어나면 수도자의 육신과 의식이 견디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었다.

법결에 따르면 1성을 수련하려면 의식이 일반 동급 수사보다 배 이상 강해야 했고, 육체 조건도 까다로워서 육신을 위주로 갈고 닦은 수사라도 간신히 합격 기준에 들까 말까였다.

둘 중 하나를 해내기도 어려운데 동시에 의식과 육체를 동시에 강화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평범한 수도자는 의식에 비해 육체가 약하기 마련이었고, 전문적으로 연체술을 익힌 최상급 연체사들은 의식에서 부족함이 있었다.

2성과 3성을 익히는 전제 조건은 훨씬 더 엄격했다. 법력을 위주로 수련한 월 선자가 이것을 보고 크게 실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법결의 마지막 부분에 전제조건을 해결할 방법이 적혀 있었다. 한 번도 들어 본적 없는 단약을 먹는 것이 그것이었는데 두 가지 약방문이 함께 들어 있었다.

단약의 이름은 미강단(彌剛丹)과 응혼환(凝魂丸)으로 각각 몸을 개선해주고 의식의 힘을 늘려주어 장기간 같이 복용하면 서서히 연신술을 익힐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불가사의한 효과를 내는 단약이 영계의 것일 리 없었다. 약방에는 제련법은 물론이고 재료들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는데 주재료 중 한 가지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영계에서 두 단약을 제련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립은 연신술 수련 조건을 보고 한시름 놓았다. 법체쌍수의 길을 걷는 그의 의식은 대연결로 동급 수사를 월등히 초월했고 범성진마공과 몸을 단련하는 영약의 보조로 육체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강도를 지녔다.

그러므로 1성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바로 수련할 수 있었다. 2성의 경우 1성을 수련하면 의식은 간신히 조건에 부합했는데 범성진마공을 극성까지 익히거나 다른 기연이 닿지 않는 이상 육체가 조건에 부족했다.

3성의 수련 조건은 보기만 해도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찌 되었든 의식을 배로 늘려주는 연신술의 효용은 따져볼 것도 없었다. 1성만 수련해도 합체기에 이를 확률이 2할은 높아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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