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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028화 (785/2,000)

1028화. 연신술(煉神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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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립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멀찍이 떨어져 있는 여인과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다 머뭇거리는 기색으로 다가왔다. 무척 느린 속도였다.

“융족인에게 추격당해 큰일을 당할 뻔했는데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 형의 뛰어난 신통에 놀랐습니다.”

“한 형과 마주치지 않았다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감사드립니다.”

노인이 먼저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포권을 했고, 월 선자도 평정을 되찾고 탄식했다.

“아닙니다. 보아하니 두 분도 법력을 크게 소모한 뒤라 융족인들의 추격을 미처 떨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든 저도 두 분과 운성에서 함께 광한계로 진입했으니 위험에 처한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야 없지요.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한립이 미소를 머금고 겸손히 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와 월 선자는 융족인들에게 당해 달아날 때부터 원기가 크게 상해 있었습니다. 한 수사의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한립이 호의적으로 나오자 노인의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그 때 월 선자가 돌연 옥갑을 꺼내 입을 열었다.

“영계에서 멸종된 구염초입니다. 몇몇 영단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재료라 융족인들도 이것 때문에 줄곧 우리를 쫓은 것입니다. 목숨을 구해주신 보답으로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옥갑을 던졌다. 옆에 서 있던 노인이 순간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했으나 곧 미소를 띠었다. 한립은 의외라고 생각하면서도 옥갑을 끌어왔다. 옥갑 겉면에 남색 부족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그가 눈을 반짝이며 입에서 푸른 기운을 불어내 부적을 떨구고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서 빛덩이가 빠져나와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던 한립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그는 손을 뻗어 무형의 힘으로 빛덩이를 끌어당겼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것을 본 월 선자가 서둘러 경고했다.

“괜찮습니다.”

한립은 손바닥을 금빛으로 물들였고, 빛덩이는 빙글 돌아 무사히 그의 손에 떨어졌다. 영초는 불꽃의 모습을 하고 아홉 개의 영기의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손가락만한 영초 주변이 열기로 가득했다. 그러나 한립은 영초를 들고서도 뜨거워하지 않았다. 이에 서씨 노인이 이상하다는 눈빛을 하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월 선자께서 괜한 걱정을 하셨습니다. 한 형의 실력에 한낱 열기가 무슨 문제겠습니까!”

“그렇군요. 구염초가 발산하는 영기의 빛은 돌도 녹인다고 들었는데,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다니 한 수사의 신통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월 선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열기를 피하는 특수한 신통을 익히고 있을 뿐 그리 대단한 실력은 아닙니다. 구염초는 저도 필요로 하던 것이라 염치 불구하고 받도록 하지요.”

한립은 영초를 자세히 살피며 말했다. 그는 영초를 옥함에 넣고는 여러 장의 부적을 새로 붙여 소매속에 넣었다.

월 선자가 그것을 보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고, 서씨 노인은 내심 속이 쓰렸으나 조금 전 한립이 보여준 실력에 그저 허허 웃어넘겼다. 그런데 한립이 갑자기 푸른 약병 두 개를 꺼내 여인과 노인에게 던져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노인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구염초 같은 진귀한 영초를 받고 가만있을 수는 없지요. 상족9계 수사까지 쓸 수 있는 법력을 증진해 주는 단약입니다. 두 분의 수련에 도움이 될까 싶어 영초에 대한 보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상족9계요!”

연 노인이 약병을 열어 의식으로 안을 훑고는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윽한 약 향에 월 선자도 눈을 반짝였다.

“맞습니다. 확실히 수련에 도움이 되겠어요! 허나 한 수사께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또 이런 것을 받자니 민망하기 그지없습니다.”

냉정을 되찾은 노인이 옥병을 보며 머뭇거렸다.

“구염초를 불 속성 공법을 수련하는 성계 수사가 보았다면 이보다 더한 것을 내주었을 지도 모르지요. 작은 성의이니 마음 놓고 받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면야 감사히 받겠습니다.”

한립의 말에 노인이 약병을 거두었고 월 선자도 인사를 하고 소매 속에 넣었다.

“그런데 이곳에 혼자 계신 것입니까?”

노인이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고 물었다.

“일행이 두 명 있었는데 얼마 전 위험한 상황에 처해 흩어져 달아났습니다.”

한립은 굳이 속이지 않고 솔직히 답했다.

“아, 아쉽게 되었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고, 월 선자도 애석해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요? 혹시 수사들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한립의 물음에 서씨 노인이 자기도 모르게 여인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허락을 구하는 눈짓 같았다. 월 선자가 침음하다 입을 열었다.

“그곳은 이미 융족인들이 점령했습니다. 우리 둘로는 절대 무리입니다. 한 형이라면 방법이 있을지 모르니 이야기라도 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만에 하나 성공한다면 다른 것은 필요 없고 금전문 공법만 한 부 복제해 달라 청해보지요.”

‘금전문(金篆文)!’

한립의 표정이 미미하게 달라졌다.

“저희 일행은 융족인들과 함께 금전문이 적혀 있는 비밀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노인이 어두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금제를 깨고 공법을 복제하기 전, 융족인들의 함정에 걸려 들어 나머지 수사들은 전부 죽고 말았습니다. 저와 월 선자는 비술을 사용해 겨우 탈출했지만 원기를 크게 상했지요. 수사께서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가보시지요. 신비동굴 안에는 금전문 공법 외에도 다른 보물이 숨겨져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허나 이제와 동굴로 간다 해도 이미 늦지 않았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동굴 속 금제가 워낙 강력하고 금전문이 몇 부분으로 나뉘어 있어 전부 손에 넣으려면 꽤나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출발하면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한립의 물음에 월 선자가 차분히 답했다.

“그곳에 융족인들이 몇이나 됩니까?”

“10명 쯤 될 겁니다. 교활한 녀석들이 처음에 우리에게 동굴을 살펴보자고 청할 때는 얼굴을 들이밀지 않다가 금전문을 발견하고서야 나머지를 불러들였습니다. 수가 많으니 한 수사도 은밀히 행동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노인이 아직도 뒤통수를 얻어 맞은 일로 이를 갈며 당부했다.

“그렇게 많다면 정면대결은 무리겠습니다. 그런데 두 분은 어찌 비밀동굴과 그곳에 적힌 금전문이 공법 비술이라는 것을 알아보신 것입니까? 천운을 통틀어 금전문을 익힌 이들은 극히 소수라고 알고 있는데요.”

“그건…….”

“영민하십니다. 저희 둘은 족 내의 어른을 통해 금전문이 있는 비밀동굴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와 서 수사 모두 금전문을 약간 익혀 그곳에 적힌 공법이 '연신술(煉神術)'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노인이 머뭇거리자 여인이 대신 답했다.

“연신술.”

한립이 놀라 눈을 깜빡였다.

“듣기론 의식의 힘을 몇 배로 끌어올려주는 신묘한 공법으로, 이것을 수련하면 합체기 고비를 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노인도 더는 숨기지 않고 덧붙였다.

“의식의 힘을 끌어올리는 역천의 공법이 있단 말입니까?”

“서 수사의 말대로입니다. 저희 두 종족은 이전에 광한계가 개방되었을 때 비밀동굴과 금전문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비밀동굴의 위치를 파악하고 나서는 입구의 금제가 너무 현묘해 금전문을 어느 정도 익혀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뇌명대륙을 샅샅이 뒤져 금전문에 관한 자료를 찾아 저와 서 수사가 익히게 된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이번에 융족인들이 때마침 나타난 것도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 예전부터 저희 두 종족을 주시하고 있었을 테지요.”

여인이 상세하게 정황을 설명해주었다.

“연신술이 그렇게 신묘하다면 비밀동굴에 다녀올 수는 있습니다. 허나 금전문을 모르는 저로서는 연신술을 얻어도 득이 될게 없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한립이 골똘이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

“허허, 한 형이 공법을 찾아와 저희에게 한 부씩 복제만 해주신다면 금전문을 전수해드리겠습니다. 저희 대신 나서주시는 보상으로 말이지요.”

그가 흥미를 보이자 노인이 서둘러 대답했다. 월 선자도 이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말씀해주시니 가봐야겠군요. 괜찮다면 지도를 한 부 복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당장 복제해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지요.”

결심이 선 한립을 보고 서씨 노인이 반색해 옥간을 꺼내들었다. 그는 이마에 옥간을 대고 눈을 감고는 잠시 후 의식을 거두었다.

“저희는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노인은 옥간을 넘겨주고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머지않은 곳에 섬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쉬고 계시면 금전문을 찾는 대로 합류하겠습니다.”

한립은 이 말을 끝으로 푸른 빛줄기로 변해 날아갔다. 몇 번 번득였을 뿐인데 벌써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 수사가 성공할 거라 보십니까?”

“글쎄요. 평범한 상족 수사라면 불가능하겠지만, 저 자가 보여준 실력은 성족 초계와 맞먹지 않았습니까. 성공할 확률은 5할 정도라 봅니다. 융족인들 중에도 강력한 자가 있으니까요.”

“성공해야 할 텐데요. 두 종족이 오랜 세월을 들여 계획한 일이 틀어졌는데 연신술 마저 얻지 못한다면 돌아가 무슨 벌을 받을지 모릅니다.”

여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었습니까!”

“융족인들이 이런 꿍꿍이를 품고 있는 줄 알았으면 절대 힘을 합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괜히 그들을 위해 금제를 파훼해준 꼴이 아닙니까.”

“후회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우리가 동행을 거절했으면 바로 나머지 일행을 불러 공격했겠지요. 게다가 비밀동굴 밖에서 암습을 당했으면 지형과 금제의 힘을 빌려 달아나지도 못했을 겁니다.”

얼음장 같은 여인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하긴 그렇군요. 한 수사가 꼭 성공해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려 봐야겠습니다.”

월 선자가 한립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고 서씨 노인도 말없이 수염만 쓰다듬었다.

한편, 한립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반쯤 눈을 감은 채 머리에 옥간을 대고 있었다.

서씨 노인이 복제해준 비밀동굴 지도와 이미 탐색했던 경로가 꽤 복잡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연신술…….”

한립이 낮게 읊조렸다. 의식이 강대해지면 얼마나 도움이 되는 지는 대연결을 수련한 이후 충분히 체감하고 있었다.

비술로 의식을 강화할 수 있다면 앞으로 수련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도움도 되고, 한 번에 방출할 수 있는 서금충의 양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강력한 의식을 지니면 이밖에도 단약을 제련하거나 진법을 펼치는 등 다양한 방법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진선계를 제외하고 이런 역천의 공법이 존재한다면 영계에서는 광한계 뿐일 것이다.

눈앞에 이런 커다란 기연을 두고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고요하던 한립의 마음이 출렁이며 격동했다.

비밀동굴은 출발한 곳에서부터 하루가 걸렸다. 그는 비밀동굴을 지키고 있다는 융족인들은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합체기 수사만 없다면 다수라 해도 위험하면 달아날 방법은 많았다.

한립은 생각을 정리하고 천둥소리를 내며 풍뢰시를 불러냈다. 그는 파공음을 남기고 사라져 다음 순간 백여 장 밖에서 나타났다.

청백색 빛이 깜빡깜빡 거리며 하늘을 가로질러 사라졌다. 융족인들이 먼저 금제를 깨고 금전문을 차지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한립은 법력을 아낌없이 사용해 전속력으로 날아갔기에 하루거리를 반나절 만에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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