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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021화 (778/2,000)

1021화. 급진전

*

한립은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고 두 눈을 감고 금빛 속에서 수련하는 데 집중했다. 공법을 일주천(一周天) 할 때마다 1년의 고된 수련과 맞먹는 수행이 쌓여갔다.

그러나 이런 수행의 증가는 멀리서 빛기둥을 정통으로 맞고 흡수하고 있는 제2원영의 성과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제2원영도 공법을 운용해 극통을 견디려 했으나 빛기둥의 막대한 힘에는 소용이 없었다. 대신 한립의 서너 배 이상 수행이 늘어나 한식경 만에 화신 초기에서 중기로 향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한립도 연허 초기 최고봉을 넘어 연허 중기에 이르렀다. 이에 한립은 뛸 듯이 기뻤고 범성진마공을 더욱 열심히 운용했다.

한립이 연허 중기에 이르자 멀리서 금색 액체 방울들이 제2원영을 뒤덮고 다시 금신의 형상을 되찾았다.

금신법상의 머리와 팔은 모두 똑같았지만 온몸에 자금색 문양이 모호하게 기괴한 주술문자를 이루고 있었다. 이때 금신법상의 기운은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고, 전신에서 보라색 빛줄기를 품은 금색 광채를 뿜어내는것이 굉장히 신비했다.

세 번째 얼굴도 훨씬 뚜렷해져 눈, 코 입까지 분간할 수 있었다. 다시 몸을 얻은 제2원영은 정순한 영력과 오색 주술문자를 소화하는 속도도 빨라지고 고통도 훨씬 줄어들었다.

잠시 후, 제2원영은 화신 중기 고비를 뚫고 화신 후기에 다다랐다. 한립이 연허 중기 최고봉에 이르러 수행을 비축하고 있을 때 제2원영이 화신 후기 최고봉의 상태로 연허기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행의 증가가 정말 무시무시했다.

쿵!

굉음이 울리고 무언가를 감지한 갑옷 병사들이 은색 장창 끝에서 또 아홉 줄기의 빛기둥을 날렸다. 그러자 금색 소용돌이를 분출하던 빛기둥이 이전보다 배는 굵어졌다.

빛기둥 속에서 제2원영이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다. 막 형상을 갖추었던 금신도 요란하게 번득이며 다시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금색 액체 방울 속에 보라색 실 같은 것이 떠다녔다.

잠시 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정순한 영력과 오색 주술문자가 금색 액체 속으로 스며들어 신비한 힘으로 금신을 단련시켰다.

‘헉!’

한립도 빛기둥이 굵어지자 육신과 의식에 과부하가 걸리고 말았다. 끔찍한 고통이 영혼을 파고드는 것 같아 거의 기절할 뻔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려 고꾸라지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서늘한 기운이 강해지며 수행이 늘어나는 속도도 빨라졌다. 한립은 몸 안에 얼음과 불을 동시에 채워놓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전 연허 중기 최고봉에 이른 그는 신비한 힘의 도움을 받아 후기 경지에 이르기 위해 열 번이나 넘게 노력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영혼을 파고드는 고통과 육신에 쌓여가는 신비한 힘 때문에 한계에 이른 것이다. 그나마 대연결과 범성진마공 덕에 원신과 육신이 동급 수사에 비해 몇 배는 강해서 겨우 버티고 있는 것이다. 다른 이들 같았으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

신나게 수행을 쌓아가던 한립은 이제 절박한 심정이 되었다. 길흉화복은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다. 예측대로라면 세 번만 더 실패하면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한 번 더!’

한립은 안간힘을 쓰며 전신에서 태양처럼 금빛을 터트렸다. 이전의 시도가 도움이 되었는지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단전에서 뜨거운 기운이 경맥을 타고 온몸으로 흘러들어갔다. 푸른색과 금색으로 반짝이는 체내의 주원신도 조금 더 커져있었다. 한립은 법력이 부쩍 늘어나자 기쁘면서도 두려웠다.

한립이 연허 후기에 으르자 빛기둥 속의 금색 액체도 다시 금신의 형상을 갖추었고, 주술문자가 발산하는 기운도 희미한 자금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빛기둥이 또 금신을 녹였고 한립 몸 안의 청량한 기운도 이전보다 더 빨리 공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법력이 너무 광포하게 불어나 두려움에 떨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이제는 빛기둥의 힘을 빌려도 고비를 넘기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연허 후기에 이르면서도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더 이상 요행을 바랄 수는 없었다. 수행은 늘지 않고 법력만 쌓여 가면 결국 몸이 터져 죽고 말 것이다.

그러니 이 상황에 누가 두려움에 떨지 않겠는가.

이런 괴이한 현상을 멈추려면 일단 제2원영이 빛기둥 속에서 벗어나야하는데 압도적인 힘에 우윳빛 빛기둥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반 시진 후, 제2원영은 거듭해서 두 경지를 뛰어넘고 연허 후기에 이르렀다. 본체와 똑같은 경지에 오른 것이다. 게다가 벌써 연허 후기를 넘어 합체기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합체기 고비를 넘기 위해서 필요한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강력한 기운이 제2원영 속으로 쉼 없이 주입되어 검은색의 원영이 점차 오색 빛깔을 띠고 부풀어 올랐다.

빛기둥 속 금색 액체는 위기를 감지했는지 금신을 형성해 제2원영을 감쌌다. 거대한 힘이 제2원영에서 용솟음쳐 금신도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렸고, 제2원영은 고비를 넘기 위해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단번에 연허기에서 합체기로 넘어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어쩔 수 없이 금신을 빠져나온 제2원영은 신비한 힘을 더 받아들였고, 원영이 빠져나간 금신은 자금색 액체 방울이 돼버렸다.

이런 일이 연달아 7번이나 반복되었다. 제2원영이 신비한 힘을 모아 고비를 뛰어넘는데 실패할 때마다 금신은 녹았다가 다시 응결되곤 했다.

한립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본체조차 법력이 연허 후기 최고봉까지 올라 청량한 기운으로 온몸의 경맥이 꽉 막힐 지경이었다. 엄청난 고통에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다른 법결이나 보물을 발동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금색 소용돌이에서 분출되는 우윳빛 빛기둥은 전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에 한립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범성진마법상보다 약한 몸은 합체기 고비를 넘는데 실패하는 순간 와해될 것이다. 빛기둥의 강력한 힘은 일반적인 영력에 비해 너무 난폭했다.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린 것은 수도의 길을 걸어온 이래 몇 번 되지 않았다. 심지가 굳건한 그였지만 점점 겁에 질려갔다.

잠시 후 한립의 몸은 금을 칠해놓은 것처럼 번쩍였고 금색 비늘이 하나로 융합해 얇은 금색 갑옷을 형성했다. 범성진마공을 극성으로 수련해 스스로 형태를 갖추게 된 본명 갑옷 ‘범성갑의(梵聖甲衣)’였다.

방어력은 천외마갑에 훨씬 못 미쳤지만 본명 갑옷인 만큼 잠재력이 컸고, 다채로운 응용도 가능했다. 범성갑의는 원래 합체기에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신통이었지만 신비한 힘의 도움으로 운 좋게 발휘할 수 있었다.

지금의 범성갑의는 그다지 강력하지 않지만 일찍 발동할수록 오랫동안 단련해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평소라면 무척 기뻐했을 테지만 지금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궁리하느라 기뻐할 정신이 없었다.

제2원영이 합체기 진입에 실패하자 궁여지책(窮餘之策)이 하나 떠올랐다. 몸이 외부의 힘에 의해 터져버리기 전에, 스스로 자폭해 그 힘으로 원영이 달아날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보물이나 법결을 발동할 여력은 없어도 스스로 몸을 터트리는 정도는 해볼 만했다. 그러나 최후에나 사용할 법한 최악의 방법이었다. 한립도 목숨이 경각에 이르기 전에는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는 지금 후회막심이었다. 무턱대고 시동 법결을 발동하지 않았으면 주 원영과 제2원영을 동시에 잃을까 걱정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얼마 후 온몸의 경맥에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전해졌다. 내부의 폭발적인 압력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가기 직전이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시시각각 안색이 달라지던 한립은 심호흡을 하고 아껴두었던 의식의 힘을 움직였다.

그러자 경맥을 가득 채운 신비한 힘과 정순한 힘이 요동쳤다. 가부좌를 튼 그의 몸에서 금빛이 요동치고 막 형상화된 범성갑의가 왜곡되어 하얀 균열로 뒤덮였다.

한립은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으로 멀리 빛기둥 속의 제2원영을 보았다. 이대로 자폭하면 주 원영은 탈출하겠지만 제2원영은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 자신의 몸에 불씨를 던지려는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한쪽 팔이 불길에 휩싸인 것처럼 뜨거워지더니 팔뚝에 새겨진 노란 흔적에서 눈부신 노란빛이 방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 이건!’

그것은 바로 한립의 팔에 봉인된 현천과실(玄天果實)이었다.

체내의 신비한 힘과 정순한 영력이 갑자기 팔뚝의 노란 흔적으로 쇄도했다. 노란 흔적은 끝없이 신비한 힘과 영력을 집어삼켰고 순식간에 한립 체내의 과부하를 없애주었다.

위기의 순간에 간신히 목숨을 구한 한립은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그런데 더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노란 흔적이 저절로 현천과실 본체인 나무 몽둥이로 변해 팔뚝에서 떠올랐다. 현천과실은 마치 크게 흥분한 것처럼 요란하게 빛을 번쩍였다.

검으로 변한 보물은 스스로 위기를 감지하고는 날카로운 칼끝이 금색 소용돌이를 향해 날아갔다. 칼의 맑은 울음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칼날 표면에 어두운 녹색 주술문자가 떠오르고 주변의 천지원기들이 세차게 일어나 오색기운이 현천의 칼로 몰아쳤다.

현천의 검이 기세등등하게 금색 소용돌이를 베자 비취색 검기가 눈부신 빛을 품고 날아갔다.

쾅!

먼저 우윳빛 빛기둥이 반 토막 났고 천지의 힘이 소용돌이를 뒤덮었다.

우웅!

금색 소용돌이는 애처롭게 울며 뜻밖에도 거대한 금색 원반으로 변했다. 거대한 금색 원반에는 성공도와 똑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둘레에는 촘촘하게 오색 주술문자가 나타났다.

원반은 정 가운데에서 우윳빛 빛기둥을 분사해 검기의 천지법칙의 힘을 막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선계에서 유명한 공간보물이라도 현천의 검을 버틸 수는 없었다. 결국 우윳빛 빛기둥은 모조리 사라졌고 푸른 검기는 금색 원반을 베었다.

쨍!

금색 원반은 강대한 힘에 의해 깨져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그리고 허공에는 희미한 공간파동만이 남아 있었다.

기이한 보물이 훼손되던 그때, 영계 심해에서 누군가가 불쑥 고개를 쳐들었다. 눈알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녹색 불길이 번득였고 얼굴에는 하얀 백골만이 남아 있었다.

해골은 몸을 일으켜 청동 등잔(燈盞) 12개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크기가 다른 녹색 등불이 반짝이고 있었다.

해골은 고개를 갸웃하며 무언가를 떠올리고 입에서 은색 원반을 뱉어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원반은 색깔과 크기가 다른 것을 제외하면 광한계에서 깨져버린 금색 원반과 생김새가 일치했다.

그러나 이미 균열이 가있던 은색 원반은 몸 밖으로 나온 순간 처량하게 흔들리더니 사라져버렸다. 해골이 활활 타오르는 눈길로 분노에 찬 괴성을 내질렀다.

콰릉!

그가 뼈만 남은 손으로 허공을 가르자 새까만 거대 손톱이 나타나 밀실 벽을 갈랐다. 두꺼운 벽이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그럼에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다른 벽을 향해 검은빛을 쏘려다가 12개의 등잔에서 반짝이는 녹색 화염을 발견하고는 멈추었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금방 냉정을 되찾았다. 해골은 콧방귀를 뀌고 다시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밀실 안이 다시 고요해졌다.

* * *

현천의 검은 검기가 흩어지자 곧바로 몽둥이로 돌아갔다. 그리고 노란빛으로 변해 한립의 팔에 봉인되었다.

한립은 희색이 만연해 구덩이 안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두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한립은 재빨리 의식으로 온몸을 훑었다.

‘이것 참.’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수행은 연허 후기 최정상이었지만 육체에 법력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현천의 검이 모조리 흡수해간 탓이었다. 신비한 힘을 먼저 빨아들였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지난번처럼 낭패를 당할 뻔했다.

정혈과 원기가 손상되지 않은 것만도 운이 좋았다. 신비한 힘과 정순한 영력으로 꽉 찼던 몸이 한순간에 바람 빠진 공처럼 영력을 잃었으니 이 정도 후유증은 당연했다.

그러나 한립은 크게 근심하지 않았다. 강인한 육신을 가졌으니 후유증이 사라지는 데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법력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어찌 되었든 그는 굉장히 신이 났다.

등룡단을 비롯한 다양한 영약의 도움을 받아 연허 후기에 오를 거라고 예상했는데 하루아침에 두 경지를 뛰어넘어 5백 년에서 천년에 달하는 세월을 아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렇게 유쾌한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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