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020화 (777/2,000)

1020화. 성공도(星空圖)와 법결

*

한립은 더 이상 갑옷 병사들은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숙여 별자리를 나타낸 지면의 거대한 성공도(星空圖)를 살펴보았다.

파앗-

처음에는 별 이상이 없던 성공도에서 돌연 별들이 흐릿하게 떠올라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변 풍경이 일순간 달라져 별이 가득한 허공에 그가 홀로 떠올라 있었다. 해와 달이 내뿜는 금은색 빛과 크고 작은 별빛들이 그를 에워싸고 규칙적으로 회전했다.

천지법칙을 품은 장관에 한립은 멍하니 빠져들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이곳에서 10년이고 백 년이고 머물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찰나의 순간이 수만 년처럼 지나갔다.

그때 한립의 단전 깊은 곳에서 맑은 기운이 용솟음쳐 경맥을 타고 머리로 향했다. 서늘한 자극에 한립은 짧은 탄성을 내지르며 깨어나 주변을 새로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가 정신을 차리자 주변 별빛들도 산산이 부서졌다. 한립은 맑아진 눈으로 발밑의 성공도를 쏘아보았다. 성공도가 아주 강력한 환진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강력한 의식을 지닌 그도 대연결이 적시에 스스로 운용하지 않았으면 백골이 될 때까지 이곳에 우두커니 서 있었을 것이다. 환진에서 경험한 세월이 너무 사실적이라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한립은 거북한 느낌을 이겨내기 위해 눈을 감고 잠시 대연결을 운용해 마음속의 혼란을 가라앉혔다. 그제야 겨우 평정을 회복하고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성공도를 내려다보지 않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까딱 잘못했으면 위험했겠지만 이런 심경 상의 고난을 이겨내면 오히려 심지를 굳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벌써 희미하게 의식이 이전보다 강대해진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 성공도는 그저 환진이 아니라 의식을 연마하기 위해 특수 제작된 금제일 수도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성공도 중심의 비취색 의자를 보았다. 나무도 아니고 금속도 아닌 의자는 은은하게 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런데 의자를 보는 한립의 눈빛이 묘했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갑자기 의자 위로 은색 빛의 문자 백여 개가 반짝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전부 은과문이었다.

탁월한 기억력을 지닌 한립은 그것을 보자마자 전부 외웠다. 눈 깜짝할 사이, 은색 빛의 문자들은 터져 은빛으로 흩날렸다.

한립의 머릿속에는 온통 방금 외운 구결뿐이었다. 무언가를 촉발하는 간단한 구결은 이렇다 할 설명이 따로 없었다. 턱을 괴고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니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바가 있기는 했다.

그는 수결을 맺어 범성진마공을 발동했고 낮은 기합 소리와 함께 등 뒤로 금신법상이 떠올랐다. 이어 한립이 한 손을 뒤통수로 가져가자 검은빛이 머리 위로 치솟아 금신 법상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제2원영이었다.

제2원영을 흡수하고 금신법상의 세 번째 얼굴이 또렷하게 변했다.

탁!

보통 사람보다 두 배는 커다란 삼두육비의 금신이 바닥에 내려섰다. 그것을 본 한립은 미소를 지으며 푸른 연기처럼 사라져 원형 단에서 한참 떨어진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병풍 속 공간에 진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공금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감지했기에 고공으로 떠올라 앞으로 벌어질 일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제2원영이 깃든 금신이 여섯 팔을 펼쳐 수결을 맺더니 오묘한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느릿하게 울려 퍼지는 주문은 비취색 의자 위에 떠올랐던 은과문 법결이었다.

간단한 시동 법결이었지만 낯선 수미동천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제2원영으로 하여금 금신을 조종해 펼치게 한 것이다. 하지만 주문이 거의 끝나가는 데도 원형 단은 고요하기만 했고 금신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흠, 그렇다면…….’

한립은 잠시 고민하다 제2원영을 시켜 주문을 반복해 외우게 했다. 일다경동안 세 번이나 주문을 외웠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한립은 비취색 안락의자를 보며 얼굴을 굳혔다.

“성공도 안으로 걸어 들어가 의자에 앉아야 하는 걸까? 복(福)이 될지 화(禍)가 될지 모를 일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선인이 중요시하는 비밀이라면 남다를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지 않고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성공도의 환진에 당할 뻔한 일을 떠올리니 아무래도 금신법상을 의자에 앉히기가 꺼려졌다.

“휴우, 위험과 기연은 항상 공존하는 법이지! 이번이 아니면 영계에서 다시 진선계 선인이 남긴 유적을 마주칠 기회도 없을 테고.”

한립은 이해득실을 따져보다 결단을 내렸다. 평소 신중한 성격의 그였지만 선인이 남긴 보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강렬한 유혹에는 어쩔 수 없었다.

범성진마법상이 새까만 눈을 반짝이며 의자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잠시 후 의자 앞에 멈춰선 금신이 자신의 체구보다 작은 의자를 보며 난색을 표했다.

그는 수결을 맺어 몸을 줄이고서야 의자에 앉아 여섯 개의 팔 중 두 개를 팔걸이에 걸치고 다시금 주문을 외웠다.

주문 소리가 울리자마자 원형단 위에 오색 영기의 빛이 몰려들어 오색 눈송이가 흩날리고 고운 자태를 드러냈다. 한립은 눈을 부릅뜨고 뚫어져라 그것을 응시했다.

잠시 후, 원형 단의 거대한 성공도에서 금색, 은색, 하얀색의 빛이 번지더니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이 각각 세 가지 빛으로 부서져 금전문(金篆文), 은과문(銀蝌文)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하얀 주술문자로 변해 빛의 진법을 형성했다.

은색 갑옷 병사들과 의자에 앉은 금신법상이 마침 빛의 진법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제2원영이 주문의 마지막 구절을 내뱉는 순간, 꼭두각시들이 눈을 번득이고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부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와 자리를 이동했는데 겨우 한 걸음 만에 금제의 파동이 호응하듯 판이하게 달라졌다. 허공의 오색 빛의 점들이 바르르 몸을 떨고 유성우처럼 빛의 진법으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동시에 꼭두각시들이 은색 장창을 들어 올리고 몸에서 황금색 화염을 일으켰다.

웅웅웅.

금색 화염과 은색 갑옷이 서로 공명하며 웅장한 기세를 드러냈다. 강력한 영기의 압력에 원형 단 주변 천지원기가 요동쳤고 금색의 돌풍을 형성해 몰아쳤다.

펑!

한립은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금색 돌풍이 스치자 괴력에 밀린 것처럼 튕겨나갔다.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그는 꼭두각시가 발산하는 영기의 압력이 얼마나 강한지 절실히 체감했다.

성계급 수사에 육박하는 그의 강인한 몸도 버티지 못할 정도였다. 한립은 놀란 마음을 다스릴 새도 없이 정신없이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금색 화염을 두른 갑옷 병사들이 은색 장창을 높이 쳐들고 고공의 황금색 빛덩이를 향해 금색 빛기둥을 쏘아올리고 있었다.

콰르릉!

빛덩이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츠츠츳.

거대한 빛의 진법 속에 삼색 기운도 거대한 주술문자를 형성해 고공으로 쏘아 올렸다. 마른하늘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고 음산한 공간 파동이 소용돌이 속에서 방출되었다.

쿠쿵! 쿠쿠쿵!

굉음이 터지고 은색 장창에서 뻗어나가는 금색 빛기둥이 배로 불어났다.

빛의 진법은 실체화된 짙은 3색 빛의 장막을 만들어 원형 단을 둘러쌌다. 빛의 장막 속에서 수많은 금색과 은색 문자들이 요동쳤고, 의자에 앉은 범성진마법상에서 불경 소리가 퍼져 나왔다.

빛의 진법이 진동하는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바로 그때, 눈앞이 흐릿해진 한립은 경악했다.

어느 순간 아까 보았던 별이 하늘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각도가 달라서 아주 높은 곳에서 하얗게 작열하는 별빛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외에도 금신과 의자 그리고 삼색 빛의 진법, 갑옷 병사, 금색 소용들이 등이 모두 함께 있었다.

한립은 주저하지 않고 소매 속에서 푸른 비검을 날려 별빛 몇 개를 갈랐다. 별빛들이 푸른빛으로 흩어졌다가 반짝이며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 모습에 그가 도리어 마음을 놓았다.

별이 총총한 하늘은 환각이 아니었고 지난번과 달리 정신도 또렷했다. 그러나 문제는 금색 소용돌이가 지닌 공간 파동이 몇 배는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파동은 눈에 보일 정도로 명확한 형태를 갖추고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파동이 지나는 곳마다 별빛이 주체할 수 없이 떨며 비틀거렸다.

콰르릉!

별안간 하늘을 찢을 듯한 굉음이 터지고 금색 소용돌이 안에서 엄청난 굵기의 빛기둥이 떨어져 내렸다.

빛기둥 안에는 희미하게 바람소리와 천둥소리가 들려왔고 오색 주술문자가 빈틈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립은 빛기둥의 정순한 영력에 기함했다.

‘영기뿐만 아니라 무언가 충만한 기운이 느껴진다.

의자에 앉아있던 금신은 빛기둥이 나타난 순간 거대한 압력에 짓눌려 꼼짝하지 못했다. 이에 빛기둥의 정순한 영력과 오색 주술문자가 금신 속으로 거칠게 밀려드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이건 말도 안 돼!’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한립의 표정이 급변했다. 제2원영과 주원영이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어 금신법상의 상황을 똑같이 느꼈기 때문이다.

정순한 영력과 오색 주술문자가 주입되자 원영 중기 최고봉에 불과하던 제2원영의 현음마기가 원영 후기 최고봉의 경지에 올랐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빛기둥의 불가사의한 신비한 힘에 의해 제2원영의 마공은 그대로 원영 후기를 넘어 화신기 진입을 앞두고 있었다. 한립도 고생 끝에 겨우 넘었던 관문이었다.

제2원영은 빛기둥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가뿐히 화신 초기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수행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한립은 제2원영이 전해오는 소식을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두 눈으로 본 것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기치 못한 순간, 삼두육비의 금신이 빛기둥 속에서 차츰차츰 녹아 황금색 액체로 떠올랐다. 새까만 기운에 둘러싸인 제2원영이 온전히 노출되고 만 것이다.

이에 한립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오색 주술 문자 중 일부가 아주 작게 변해 금색 액체 속으로 스며들었다.

“윽!”

한립과 제2원영이 동시에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한립은 경련을 일으키며 금빛에 휩싸여 추락했고, 제2원영은 검은 기운이 요동쳤다.

* * *

한립과 제2원영은 육신과 의식이 수만 개의 칼날에 잘리고 또 잘려나가는 고통에 시달렸다. 법력이나 신통으로도 통증을 경감할 수 없었기에 그대로 고통을 감내해야했다.

인내심이 강한 한립도 순간 법력을 통제하지 못하고 추락했다.

콰직!

그러나 범성진마공을 펼치던 그가 겨우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져 다칠 리 없었다. 반대로 지면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움푹 파이고 말았다.

한립은 이를 악물고 비명을 삼켰지만 새파랗게 질린 얼굴에 모든 고통이 그대로 드러났다. 상상을 초월하는 극통이지만 정신력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원신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알 수 없는 열기가 원신을 둘러싸고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평정심을 유지하려 해도 당황스러웠다.

한립은 간신히 고꾸라진 몸을 일으켜 가부좌를 틀고 수결을 맺었다. 극통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범성진마공을 극성으로 일으켜 이상 현상을 일으키는 기운을 밀어내려는 한 것이다.

그런데 어안이 벙벙해질 일이 벌어졌다.

‘이건 또 뭐야?’

체내의 영력을 움직이려는데 갑자기 통증이 청량의 기운으로 변해 경맥을 타고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힘이 범성진마공을 촉진해 놀라운 속도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수행이 조금 늘어났다. 수행이 갑자기 늘어나다니 엄청난 일이었다. 게다가 알 수 없는 힘이 범성진마공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