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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019화 (776/2,000)

1019화. 갑옷 병사

*

“금 솥에서 보물을 꺼낼 때 일부러 요란하게 영기의 빛을 터트려 네가 허천정 안에 들어갈 기회를 벌어 주었다. 다시 솥을 열기 전에 손을 써두었던 것이냐?”

“헤헤, 제가 얼마나 동작이 빠른데요. 주인님, 보세요!”

곡아가 뿌듯하게 웃으며 작은 손바닥을 펼쳐 금빛 찬란한 단약을 보였다. 제 모습에 걸맞은 아이 같은 행동이었다.

“허령단!”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단약을 보니 절로 신이 났다. 그는 금색 단약을 끌어와 가까이에서 살펴보고는 그것이 허령단이라고 확신했다. 이전 두 개와 동일한 단약이었다.

채류앵과 단천인이 학수고대하고 있는 물건이라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물을 것도 없었다.

“주인님의 분부대로 법기 형태의 보물은 놔두고 오직 약병이나 옥갑 류의 물건만 노렸습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단약을 챙길 수 있었지요. 단약이 두 알 이상인 경우에만 나머지를 챙기라 하셔서 시키신 대로 했습니다. 안 그랬으면 나머지 두 알도 전부 가지고 있었을 텐데요.”

곡아는 조금 아쉽다는 얼굴로 쫑알거렸다. 그것을 보고 한립이 오랜만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조그만 녀석이 욕심도 많구나. 동급 수사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데 허령단 한 알을 챙긴 것도 운이 좋았다. 혹여 한두 알 밖에 없었다면 건드리기 쉽지 않았겠지. 나도 이종족의 터전에서 합체급 수사들에게 추살당할 생각은 없으니 말이다.”

그는 저물대에서 자금색 작은 병을 꺼내 허령단을 담고 여러 금제 부적을 붙였다.

“주인님의 말씀이 맞지만 가만히 앉아서 귀한 단약이 그들 손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려니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곡아는 여전히 아깝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한립은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저으며 소매 속에서 손가락 크기의 비도들을 연달아 불러냈다. 종이처럼 얇은 비도들은 예리한 빛을 번득였는데 어림잡아도 3, 4백 개는 될 법했다.

“이건…….”

“총 360자루가 한 벌로 된 비도 보물이다. 저번에 바다에서 마주친 괴물 나방의 날개로 제련한 것이지. 통천령보에는 비할 수 없겠지만 완전히 연화해 사용하면 웬만한 적을 상대하는 데는 충분할 것이다. 이번 일을 잘 해낸 상이다.”

비도들이 모여들어 두툼하게 그의 손에 들렸다. 한립은 그것을 곡아에게 직접 건넸다.

“아, 감사합니다.”

곡아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지 놀란 얼굴로 비도들을 건네받았다.

“한동안 이것들을 연화하는데 힘쓰고 내가 부르기 전까지는 다른 이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예, 공자! 열심히 수련하고 있겠습니다.”

곡아가 고분고분 답하고 하얀빛으로 변해 그의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한립은 고개를 돌려 거대한 문을 바라보았다.

* * *

주전의 대청 안, 석곤과 류수아가 병풍을 앞에 두고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병풍의 장막은 이미 흩어지고 우윳빛 안개가 덮여 있어 더 이상 거대한 문이 그려진 그림은 보이지 않았다. 그 주위로 열댓 개의 노란 진법 깃발이 나부끼며 퍽 복잡한 진법을 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류수아와 석곤 앞에는 반짝이는 보물들 세 개가 떠서 천천히 회전하는 중이었다.

“이제 어찌해야 할까요? 진법과 강력한 보물의 힘을 빌렸는데도 병풍의 금제를 열고 내부로 진입하지 못했습니다. 단시간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리일 듯합니다. 한 수사는 어찌 이리 쉽게 안으로 들어간 것인지…….”

석곤이 한숨을 쉬며 투덜거렸다.

“모르시겠습니까?”

“뭘 말입니까?”

침묵하던 류수아의 물음에 석곤이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조금 전 한 수사가 드러낸 제3의 눈이 소문 속의 요목과 무척 닮지 않았습니까?”

“파멸법목을 이야기 하시는 겁니까?”

석곤도 자질이 뛰어난 자라 삿갓여인의 언질을 바로 알아들었다.

“저는 그것 말고는 이렇게 간단히 공간금제를 찢어내는 신통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파멸법목으로 금제를 찢고 들어갔다면, 입구를 훼손하지 않고는 따라 들어갈 방법이 없겠습니다.”

“우리가 약간의 원기 손상을 감수하고 힘을 합치면 입구를 망가트릴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러다 괜히 한 수사의 퇴로를 막는 꼴이 되면 뒷감당을 어찌 하시렵니까? 우리의 의도를 오해해 상대가 강제로 공간을 찢고 나와 앙갚음을 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제가 쓸데없이 그런 일을 벌일 위인입니까. 공간금제를 깨고 들어가는 것은 요원한 것 같으니 그러지 말고 우리끼리 편전이나 둘러보고 있는 것은 어떨까요?”

석곤이 안색이 달라지며 병풍을 훑다 헛웃음을 지었다.

“제 말이 바로 그 뜻이었습니다.”

여인이 빙긋 웃으며 찬성했다.

석곤은 더 이상 병풍에 미련을 두지 않고 대청 벽의 창과 도끼 등 병장기 등을 향해 소매 속에서 노란 바람을 방출했다.

석곤의 행동에 류수아도 대청의 다른 쪽 벽으로 비취색 팔찌를 방출해 병장기와 잿빛 갑옷을 챙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청 안은 덩그러니 병풍만 남았다.

두 사람은 의식으로 숨겨진 물건이나 통로가 없는지 확인하고 바삐 그곳을 나섰다.

그들 입장에서 한립이 낯선 공간에 들어간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안에 보물이 있을지 강력한 금제가 있을지 모를 일이었고, 편전의 보물들을 마음껏 취할 기회기도 했다.

석곤은 편안한 마음으로 류수아와 경로를 상의하고 편전 중 한 곳으로 달려갔다.

* * *

병풍 속 공간.

한립이 두 손을 들어 올려 오색 한염과 회색 기운으로 거대한 검은 문을 공격했다. 그런데 검은 문 표면의 금은색 주술문자가 금은색 기운을 내뿜어 두 종류의 공격을 안정적으로 막아냈다.

회색빛과 오색 한염이 열심히 기운을 녹여댔지만 주술문자가 계속 기운을 뿜어냈기에 소용없었다. 한립이 인상을 찌푸리며 공격을 거두고 두 손을 교차했다.

콰쾅!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두 줄기의 금빛 뇌전이 튀어나갔다. 폭음이 공간을 쩌렁쩌렁 울렸다.

‘흠…….’

거대한 문에 잠식하던 금빛이 가시고 금은색 기운에 둘러싸인 검은 문이 나타났다. 매서운 일격에도 온전한 모습이었다.

한립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곳에 진입하기 전 체내의 파멸법목이 병풍을 앞에 두고 요동쳤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도 병풍에 공간금제 입구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는 무심코 통제를 벗어나려는 파멸법목으로 병풍을 공격했는데 갑자기 금제가 열리고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곳이 어디인지 저 문 뒤에 어떤 보물이 있을지는 몰라도 수미동천 자체만으로도 영계에서 보기 드문 보물이었다. 선인이 이것을 이용해 숨겨 두었을 물건이나 비밀이 사소한 것일 리 없었다.

그래서 한립은 바깥의 류수아와 석곤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대충 짐작했지만 이곳에 남는 것을 택했다.

그러나 원자신광, 오색 한염, 벽사신뢰까지 차례로 써 봐도 통하지 않아 조금 골치가 아파왔다. 그는 골똘히 생각한 끝에 입을 벌려 은색 화염을 뿜었고 화염이 허공을 빙글 돌아 서령불새로 변했다.

불새는 연달아 법결 열댓 개를 흡수했고 맑게 지저귀었다.

화륵!

은색 불새는 몸집을 키워 날개를 펼치고 거대 문을 향해 기세등등하게 날아갔다. 충돌하기 전 보석처럼 빛나는 불새의 은빛 깃털들이 허공을 뒤덮고 뻗어나가 거대 문 위의 금은색 기운을 뒤흔들었다.

쾅!

서령불새가 금은색 기운을 들이받고 활활 타올랐다. 서령천화의 불길에 거대 문의 기운이 출렁였다. 불길이 기운을 흩을 때마다 주술문자들이 새로운 기운을 불러냈지만 점점 기운이 부족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한립이 눈을 반짝이고 기합을 넣었다. 그러자 전신에 검은 빛이 흐르고 몸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동시에 황금색 털들이 자라났다. 송곳니가 길게 자라 금색 거대 원숭이로 변한 것이다.

얼마 전에도 펼쳤던 산악거원 변신술이었다.

거대 원숭이로 변한 그는 검은 산봉우리를 들어 거대 문을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원자극산의 중량에 거대 원숭이의 힘이 더해져 검은 산봉우리는 금은색 기운을 찢고 거대 문을 강타했다.

땅이 흔들리고 거대 문에서 검은 광채가 폭발했다. 한립은 서둘러 뒤로 물러서며 거대 원숭이의 몸 위로 천외마갑을 걸쳤다. 검은 광채가 점차 흩어지자 그는 원자신광을 불러들여 전방을 주시했다.

‘저건!’

그는 검은색 거대 문에 움푹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원자극산의 봉우리와 똑같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거대 문은 이런 엄청난 공격에도 부서지지 않고 금은색 주술문자가 반짝이며 점차 원형을 되찾고 있었다.

“질기기도 하구나! 이제 그 방법밖에 없겠어.”

한립은 변신술을 풀고 사람으로 돌아와 수결을 맺고 금빛을 발산했다. 피부에 황금색 비늘이 떠오르고 얼굴에 금빛이 드리웠다. 동시에 등 뒤로 삼두육비의 금색 법상이 나타나 여섯 개의 팔로 수결을 맺고 금신법상을 실체화했다.

다음 순간 금신법상의 한 팔이 허공을 휘저으며 금색 칼날 조각을 집어 들었다. 바로 현천잔보인 칼날 조각이었다.

주술 외는 소리가 울리자 금신법상 표면에 기이한 빛이 흐르고 주술문자들이 빽빽하게 떠올라 칼날 조각으로 미친 듯이 흘러들어갔다. 칼날 조각의 잘려나간 부분이 흐릿하게 채워지며 언뜻 보기에도 온전한 칼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금신법상이 칼날을 미세하게 흔들자 금색 빛의 물결이 출렁였다. 인근의 천지원기가 밀물처럼 들이치고 무수히 많은 오색빛의 점들이 조밀하게 떠올라 불나방처럼 금색 칼날로 뛰어들어 종적을 감추었다.

금색 칼날이 맑게 울음을 토해냈다.

“베어라.”

한립이 주술을 멈추고 사납게 소리쳤다. 이에 금신법상은 금색 칼날을 휘둘러 거대 문을 횡으로 베어냈다. 눈부신 칼날의 빛이 뿜어져나가 도중에 점점 커다랗게 변하더니 소리 없어 거대 문을 갈랐다.

결국 끈질기게 버티던 문은 둘로 갈라져 떨어졌다.

쉭!

한립은 곧바로 금신법상을 회수하고 몸을 날려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대량의 의식을 방출한 그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문 뒤의 세계는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허공과 회색 장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광장이 전부였다. 그가 들어온 검은 문을 제외하면 다른 통로는 보이지 않았다.

광장 중심에 원형의 단이 쌓여 있었고 그 위에 무언가 놓여 있었다. 그는 의식을 회수하고 성큼성큼 걸어가 원형 단 위로 뛰어올랐다.

꽤 넓은 단 위쪽에는 해와 달, 별을 표현한 아름다운 그림이 새겨져 있었고 크고 작은 별들이 원형 단을 빼곡하게 수놓았다.

그리고 중심에는 근사한 비취색 의자가 놓여 있었고 가장자리에 사람 키만 한 은색 물체가 9개나 있었다.

장창을 들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투구와 갑옷을 입은 은색 갑옷 병사들이었다. 새까만 두 눈을 제외하면 피부를 전혀 노출하지 않은 갑옷 병사들은 꼭두각시가 아니라 조각상 같아 보였다.

그런데 병사들의 자세가 퍽 특이했다. 한 손으로 수결을 맺고 다른 손으로 장창의 중간을 잡고 마치 붓을 든 것처럼 고공을 가리키고 있었다. 게다가 아홉 개의 은색 갑옷 병사들이 전부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건…….”

한립의 시선이 지면의 그림과 갑옷 병사를 거쳐 창이 가리키는 고공으로 향했다.

그러자 아주 높은 곳에 황금색 빛덩이가 떠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빛덩이 내부의 기운이 천천히 회전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공간접점이 떠오르는 광경이었다.

‘이곳은 다른 곳으로 통하는 통로에 불과하단 말인가?’

그가 한참을 살피다 다시 9개의 갑옷 병사들로 시선을 돌렸다. 병사들의 은색 갑옷과 장창은 상고시대 법기 특유의 투박한 양식을 하고 있었다.

빽빽하게 주술문자를 새기는 대신 몇몇 중요 부위에 보일 듯 말 듯 금색 주술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글자 하나하나가 현묘하기 그지없는 금전문이었다.

한립은 그 중 하나를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검기가 갑옷 병사의 어깨를 향해 날아갔다.

펑!

놀랍게도 조각상 같던 갑옷 병사가 장창을 움직여 푸른 검기를 갈랐다. 한립은 안색이 변하며 뒤로 물러나 회색 기운으로 몸을 보호했다. 하지만 병사는 즉시 은색 장창을 거두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꼼짝하지 않았다.

“꼭두각시였구나!”

한립은 병사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주인 없이 행동할 수 있는 점이 놀라웠지만 독자적인 영성을 지닌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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