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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017화 (774/2,000)

1017화. 솥 안의 보물

*

한립은 멀리 병풍과 금색 솥을 보자마자 그쪽으로 향했다. 류수아와 석곤도 서로 시선을 마주친후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병풍과 커다란 금색 솥 근처에서 멈추었다. 한립이 멈추자 나머지 둘도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추고 두 물건을 자세히 살폈다.

그들은 병풍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조금 놀랐다. 그곳에 금색과 은색 주술문자가 새겨진 괴이한 문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고풍스런 양식의 새까만 문에 두 가지 색의 주술문자가 반짝거리니 굉장히 신비로웠다.

게다가 금색과 은색 주술문자는 놀랍게도 진선계의 문자인 은과문과 금전문이었다. 한립은 눈썹을 끌어올리며 의식 한 줄기를 방출해 병풍에 그려진 거대 문을 살펴보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강대한 기운이 나타나 손쓸 틈도 없이 의식을 끌고 병풍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분출한 의식과 연결이 끊긴 한립은 표정이 달라졌다.

석곤도 갑자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한립보다 더 호되게 당한 게 확실했다. 삿갓으로 얼굴을 가린 류수아 역시 몸이 반짝인 것을 보니 병풍이 괴이하다는 것을 눈치 챈 듯했다.

그는 잠시 병풍을 놔두고 고개를 숙여 금색 고대 솥을 살펴보았다. 솥 표면의 섬세한 문양이 구름을 닮아 있었다. 복잡한 문양 중 대부분이 나선형을 이루어 보기만 해도 약간 머리가 어지러운 기분이었다.

한립은 속으로 흠칫 놀라 슬쩍 의식을 방출해 금색 솥을 몇 바퀴 훑었다. 의식은 바깥을 맴돌 뿐 안으로 전혀 침투하지 못했다. 특수한 재료나 제련법을 이용했는지 의식을 차단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나마 솥의 양쪽에 오목하게 사각형으로 홈이 패여 무언가를 꽂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한립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들어 다른 수사들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류수아와 석곤도 열기 어린 눈빛으로 금색 솥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아니, 솥이 아니라 양쪽의 네모난 홈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정확했다.

특히 석곤은 방방 뛰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금 솥에 대해 하는 바가 있으십니까?”

한립이 눈을 가늘게 뜨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요. 저도 이곳은 처음인데 어찌 이것을 알아보겠습니까.”

석곤이 희색을 감추고 고개를 저었다.

“오, 그렇습니까? 알지도 못하는 물건을 그리 뚫어져라 보고 계셨군요.”

“그건……. 저 말고 류 선자에게 물어보십시오. 저보다는 훨씬 아는 바가 많은 분 아닙니까.”

한립이 웃음을 머금고 그냥 넘어가지 않자 거한이 눈을 굴리다 류수아를 끌어들였다. 그 말에 여인은 속으로 발끈했으나 한립이 자신을 쳐다보자 억지로 미소를 머금었다.

“이 솥은 사부님과 단 선배님이 원하시는 허령단과 몇 가지 보물이 담겨있는 법기입니다. 저와 석 수사는 그분들이 챙겨주신 물건 때문에 그것을 감지한 것이고요. 석 수사, 그러지 마시고 한 형께 무엇인지 보여드리시죠.”

“허허, 선자의 말씀을 들으니 어떤 물건인지 궁금해지기는 합니다.”

“아, 그것이…….”

석곤은 머뭇거리며 속으로 류수아의 반격에 퍽 난감해했다.

“제가 곤란하게 해드린 것입니까?”

별 일 아니라는 듯 한립의 목소리는 온화하기 짝이 없었지만 석곤은 뜨끔해 잽싸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게 뭐라고 곤란해 하겠습니까. 안 그래도 꺼내려고 했습니다. 보물을 취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라 서요.”

석곤의 손바닥에서 금빛이 반짝이고 무언가 나타났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네모난 인장에 용머리가 새겨져 있었다. 한립은 인장을 살펴보다 시선을 류수아에게 돌렸다.

그녀는 한립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차분하게 손에서 금색 물체를 꺼내들었다. 석곤과 비슷했는데 용머리 대신 봉황 머리가 새겨져 있었다.

“영롱월(玲瓏鈅)입니다. 이 금색 솥을 열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고 둘 중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지요. 주전 내부의 상황은 몰랐지만 영롱월들로 열 수 있는 물건에 십중팔구 허령단이 들어 있을 거라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 사부님도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류수아가 설명했고 석곤이 덧붙였다. 이미 여인이 다 말해 숨기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두 분께서 솥을 열어주시겠습니까? 안에 선배님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이 있는지 확인해봐야 하니까요. 아, 허령단의 수량이 넉넉하면 서로 언쟁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고루 나누면 될 일이니 말입니다.”

한립의 의견에 류수아와 석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솥을 열기는 해야겠지요. 석 수사, 동시에 각자 영롱월을 꽂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마 한 알 밖에 없을 것 같지만 혹시라도 허령단이 두 알 이상이면 괜히 다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문제없습니다. 그저 제 생각에는 영롱월들을 한 형께 넘겨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한 수사께서 보물을 꺼낸 다음 공평하게 분배를 하는 것입니다.”

석곤이 어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영특한 여인도 순간 무어라 답해야할지 머뭇거릴 만큼 놀랄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왜 그러십니까. 한 형이 미덥지 않으신 것입니까?”

“신통이 출중한 한 형께서 보물을 찾는 것을 도와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겠지요. 여기, 제 영롱월입니다.”

머리 회전이 빠른 여인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봉황 머리 인장을 한립에게 던져주었다. 석곤도 냉소하고 수중의 물건을 던졌다.

푸른 기운으로 영롱월 한 쌍을 거둔 한립은 오히려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이래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한 수사께서 보관해주셔야 저와 류 선자 사이의 입씨름이 줄어들 것입니다.”

“저도 한 형이 이 일을 맡아주셔야 마음이 놓이겠습니다.”

석곤과 류수아가 연달아 미소를 지었다.

“난제(難題)를 떠안아 저는 난처합니다.”

한립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영롱월들을 들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이미 손에 들어온 물건을 어찌할 수 없었기에 그는 바로 금색 솥으로 걸어갔다.

그가 이리 태연한 것은 실력으로 두 사람을 압도할 수 있다 믿기 때문이었다. 절대적인 힘의 차이는 여러 가지 귀찮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곤 했다.

한립이 나서자 류수아와 석곤이 동시에 긴장한 눈빛을 보냈지만 눈치껏 따라나서지는 않았다.

한립은 금 솥을 앞두고 오목한 자리를 눈여겨보다 영롱월 한 쌍을 날렸다. 맑은 소리를 내며 날아간 인장들이 도중에 금색 교룡과 봉황으로 변해 양측의 홈으로 파고들었다.

우웅!

절반쯤 박혀 들어간 영롱월은 홈에 딱 맞았다. 인장 아랫부분이 홈을 채우고 용머리와 봉황 머리만 남은 상태로 용울음 소리를 토해냈다.

금빛이 크게 번지고 솥 표면의 나선형 문양이 살아 움직이더니 솥 주변의 금빛도 빙글빙글 허공을 선회했다. 쳐다보기만 해도 한립은 머리가 어지러워 안으로 빨려들어 갈 것 같았다.

한립은 흠칫 놀랐지만 솥은 주인을 잃은 사물에 불과했다. 그는 재빨리 대연결을 운용하는 동시에 눈동자 깊은 곳에서 남색빛을 번뜩여 어지러운 느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기합을 넣어 수결을 맺고 솥으로 푸른 법결을 날렸다. 그러자 솥의 울음소리가 듣기 좋은 봉황의 지저귐으로 변했다. 금 솥 양쪽의 용머리와 봉황머리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도처에 퍼져있던 금빛이 솥으로 모여들었다.

콰쾅!

솥 안에서 바람과 뇌전 소리가 울리며 작은 금빛덩이가 느닷없이 날아올라 어딘가로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미리 준비하고 있던 한립이 그것들을 놔둘 리 없었다.

그의 소매 속에서 회색 기운이 넘실넘실 퍼져 금빛 덩이들을 죄다 가두려 했다.

파앗!

그러나 금빛 덩이들은 회색 기운을 헤치고 흩어졌다. 회색 기운이 보물들을 전혀 막지 못한 것이다. 한립은 흠칫 놀라 한 손으로 수결을 맺고 입에서 작은 푸른 솥을 뱉었다. 허천정이었다.

텅!

손바닥으로 작은 솥을 내려치자 솥뚜껑이 날아오르고 푸른 실 뭉치가 날아올랐다.

쉬쉬쉬쉭!

파공음이 대청을 채우고 무수히 많은 푸른 실들이 천라지망(天羅地網)처럼 금빛 덩이들을 빠짐없이 포박했다.

한립의 손짓에 푸른 그물이 눈부신 빛을 뿜어내는 통에 뒤에서 지켜보던 석곤과 류수아는 무의식중에 눈을 감았다.

그 사이 푸른 실이 금빛 덩이들을 감아 푸른 안개로 변한 다음 작은 솥 안으로 자취를 감추었고, 푸른 솥뚜껑이 떨어져 입구를 틀어막았다.

한립은 푸른 솥을 불러들이고 몸을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보물은 확보했으니 두 분 선배님들이 원하는 물건이 있는지 직접 확인해 주셔야겠습니다.”

그는 허천정을 낮게 띄우고 팔짱을 낀 채 기다렸다. 이에 류수아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사뿐사뿐 다가왔고, 석곤도 헛기침을 하며 걸어왔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푸른 솥이 빙글 돌아 솥뚜껑을 날렸다. 안에서 희미하게 푸른빛이 반짝였다.

“영보로 보이는데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돌연 석곤이 질문을 했다.

“왜 그러시는지요?”

“다름이 아니라 예전에 우연히 본 족에 보관된 혼돈만령방 부본(副本)을 본 일이 있는데 한 수사의 보물과 굉장히 비슷한 것을 본 것 같아서 말입니다.”

“혼돈만령방에서요?”

한립은 슬며시 미간을 좁혔다.

“혼돈만령방에 대해 처음 들어보시는 것입니까?”

“떠도는 소문으로 들은 것이라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합니다. 설명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영계에서 어느 정도 세력이 있는 종족은 모두 하늘에서 떨어진 천외기석(天外奇石)을 지니고 있는데, 그 위에 적힌 것이 혼돈만령방입니다. 영계에 나타난 각종 천지영물과 후천적 보물이 새겨져 있고 수시로 갱신되지요. 제가 말한 통천령보는 그 말미에 있는 후천적 보물입니다. 운이 좋아 잠깐 보았기에 잘못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요.”

석곤이 솔직히 알려주었다.

“이 솥이 석 형이 말씀하신 보물인지 아닌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이 보물 중에 선배님들이 원하는 것이 있는지가 아닐까요?”

한립이 미소 지으며 솥에 대해 이야기하기 꺼려하자 석곤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 둘의 대화가 끝나자 시종일관 허천정에서 시선을 떼지 않던 류수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한 형, 이제 보물을 꺼내 보여주셔도 됩니다. 허령단은 알아보기 쉬우니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인은 푸른 솥의 정체보다는 허령단에 더 관심이 커보였다.

파앗.

한립이 소매 속에서 색색의 진법 깃발들을 날리자 솥 주변에서 소실된 깃발들이 하얀 보호막을 펼쳤다. 간단한 금제 진법이었다. 만약을 대비해 감정하는 동안 탈이 생기지 않게 쳐둔 것이다.

류수아와 석곤이 보호막을 시큰둥하게 쳐다보았다. 언제든 부술 수 있는 간단한 금제였다. 한립이 작은 솥을 향해 입에서 푸른 기운을 뿜자 솥 안에서 쿠르릉 하는 소리가 들리고 푸른빛이 요란하게 반짝였다.

류수아와 석곤도 이를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작은 솥이 빙글 돌아 커지며 안에서 푸른 실로 칭칭 감긴 빛구슬이 튀어나왔다.

“열려라.”

한립의 손에서 법결이 뻗어나가자 빛구슬 표면의 푸른 실들이 갈라져 빛의 점으로 흩어졌다. 푸른 실이 없어진 순간 안에서 금빛이 반짝이고 무언가가 빠져나왔다.

한립이 재빨리 손을 뻗어 무형의 힘으로 그것을 허공에 붙들어 두었다. 호리병박이 복잡한 문양을 띄고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그것을 본 류수아와 석곤은 표정이 조금 달라졌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한립은 그것을 휙 하고 끌어와 손에 들었다. 호리병박은 약간의 영성을 지녔는지 손에서 벗어나려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팟!

이에 한립이 하얀 부적을 꺼내 붙이고 나자 호리병박이 얌전해졌다. 그는 그것을 눈앞으로 가져와 의식과 영목 신통으로 자세히 관찰하고는 영기를 거두고 허공으로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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