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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016화 (773/2,000)

1016화. 문을 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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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뇌전은 빛기둥의 힘을 밀어내며 방향을 틀어 류수아 쪽으로 날아들었다. 여인은 흠칫 놀라며 허공의 거울을 뇌전 쪽으로 보내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여인의 호리호리한 몸이 아주 멀리서 나타났다.

쨍!

폭음이 울리고 보라색 뇌전 몇 줄기가 은색 거울에 꽂혔다. 그러자 은색 거울이 은빛을 내며 폭발해 버렸고 목표를 잃은 보라색 뇌전은 번득이다 저절로 흩어졌다.

거울을 잃을 것을 감안했지만 삿갓 아래 그녀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보통 금제가 아니라서 파훼하려면 힘을 합쳐야 할 것입니다.”

한립이 천천히 다가가며 또랑또랑하게 외쳤다. 석곤이 그가 다가오는 것을 알고 부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입을 열었다.

“영민하십니다. 강력한 주전 금제를 놔두고 다른 곳을 먼저 다녀오셨군요! 우리보다 훨씬 먼저 도착하셨으니 수확이 적지 않았겠습니다.”

“주전의 보물과 비할 바는 아니지요. 두 분 선배님이 찾으시는 물건이나 다른 귀한 보물도 아마 이곳에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한립은 개의치 않고 미소를 보였다.

“선인이 머물던 곳이니 자연히 귀한 물건들이 많을 것입니다. 한 형께서 실력이 출중해 먼저 이곳에 당도한 것이니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미리 각자 능력껏 보물을 챙기기로 하였고, 저와 석 수사가 없는 동안 기껏해야 한 두 곳을 돌아보셨겠지요.”

류수아가 미소 지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럼요. 한 형께서 우리 중에서 가장 신통이 뛰어나니 주전 금제를 깰 때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인의 말에 석곤이 눈을 빛냈다.

“신통이 가장 뛰어나다니 과분한 찬사입니다. 다만 금제를 깨는 데는 최선을 다할 것이니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한립은 표정 변화 없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류수아와 석곤의 안색이 훨씬 편안해졌다.

둘 다 실력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고된 등산과 광장의 환술을 부수느라 이미 법력의 절반을 허비했다. 그런 상황에서 한립이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주전의 금제는 깰 수 없을 것이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한립이 보여준 다양한 능력에 그들은 진작 그에 대해 경계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질투가 아니라 생존본능에 가까웠다.

원래 채류앵과 단천인이 원하는 보물을 찾은 후 나머지 보물을 분배할 때 류수아와 석곤이 편을 먹고 한립을 배신할 수도 있으나, 둘이 협공해도 한립을 상대할 수 있을지 불확실해진 지금은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반대로 한립은 마음만 먹으면 그들을 죽일 자신이 있었지만 평소 약속을 깨거나 악업(惡業)을 쌓는 일을 지양하는 편이었다. 이런 사소한 악행이 더 높은 경지에 이를 때 심마로 작용할 여지가 있었다.

또한 채류앵과 단천인의 존재도 당연히 부담이었다. 이런 제약 덕에 세 사람은 안정적으로 균형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을 맴도는 각치족 무리를 떠올리면 하루 빨리 보물을 확보하는 것이 나았다. 류슈아와 석곤이 환술을 깨고 무리하면서 주전의 금제를 시험해 본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금제의 위력은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석곤의 쌍망치와 류수아의 거울만 망가졌지만!

쌍망치와 거울이 그들이 갖고 있는 가장 강력한 보물은 아니지만 손에 익은 보물들이었기에 다들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한립을 보자마자 그를 주축으로 금제를 깨자고 제안한 것이다.

“저도 힘닿는 데까지 협조하겠지만, 괜히 법력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모두 전력을 다해 일격으로 금제를 깨는 것이 나을 겁니다. 채 선배님과 단 선배님께서 이곳의 강력한 금제에 대비해 분명 무언가를 준비해 두셨을 텐데 꺼내들 보시지요.”

한립이 서슴지 않고 꺼낸 말에 석곤이 움찔했고 류수아도 눈을 번득였다.

“이제 와서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제게 마침 금제를 깨는데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는 법기가 있으니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류수아가 빙긋 웃으며 이실직고했다.

“하긴 하루빨리 일을 마쳐야 우리도 흩어져서 할 일을 할 수 있겠지요. 안 그래도 폐관 수련할 곳을 찾아 고비를 넘기고 싶어 죽겠으니까요. 제게도 사부님이 주신 금제를 깨는데 유용한 부적이 있습니다.”

석곤도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이에 한립은 만족스럽게 웃고는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갔고, 류수아와 석곤도 눈치 빠르게 좌우로 나뉘어 그의 뒤를 따라갔다.

세 사람은 주전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추었다.

“…….”

한립은 주전 대문을 살펴보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약재밭에 들어가기 위해 금제를 깨부순 후, 보라색 뇌전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해 두고 있었다.

‘강력한 보라색 뇌전은 처음으로 금제를 공격한 사람을 노릴 것이고, 그것을 막아내면 금제를 파훼할 기회가 생긴다.’

한립이 마음을 정하자 몸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천외마갑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검은 주술문자들이 층층이 쌓여 그를 둘러쌌다. 그 후에는 금빛을 방출해 삼두육비의 금색 허상을 등 뒤에서 불러냈다.

한립이 한 손으로 수결을 맺자 삼두육비 허상의 표면에 금빛이 흐르고 금칠을 한 것처럼 실체화가 되었다.

“금신법상(金身法相)!”

류수아가 범성진마법상의 놀라운 자태를 보고 소리를 높였다. 석곤도 얼굴색이 달라지며 놀란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법상을 불러내는 신통은 고계수사라면 어렵지 않게 익혀낸다. 하지만 허상에 불과한 법상이 금신(金身)을 갖추게 하는 일은 어려웠다.

관련 공법을 구하기도 어렵고 법결을 알아내도 금신을 제련할 재료가 귀해 모으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립도 운이 좋아 몇 가지 주재료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다.

류수아와 석곤은 크게 놀라기는 했지만 금신법상의 능력도 제각각이었기에 숨을 죽이고 한립의 다음 행보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는 지체 없이 손에서 새까만 산을 불러내 냅다 집어 던졌다.

회색빛을 반짝인 산봉우리가 커다랗게 변해 주전 대문을 내리쳤다.

콰르릉! 콰쾅!

산봉우리가 닿는 순간 대문에서 보라색 뇌전들이 일어 그물을 형성해 원자극산이 더 이상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리고 곧바로 천둥소리가 귀청을 때리고 보라색 뇌전 뱀들이 한립을 향해 날아들었다.

한립은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눈을 가늘게 떴다.

찰나의 순간 금빛이 반짝이고 범성진마법상의 금신이 괴이하게 앞으로 나서 여섯 개의 팔을 휘둘렀다. 금빛과 보라색 뇌전이 번뜩였지만 금신법상은 끄떡없었다.

여섯 개의 팔이 턱하고 보라색 뇌전 뱀의 목을 붙들었다.

콰쾅!

한립의 기합 소리와 함께 금신법상이 힘을 주어 뇌전 뱀들을 터트려버렸다. 대문에서 보라색 뇌전이 연달아 튀어나왔지만 금신법상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잡아챘다.

그때 양 옆의 류수아와 석곤이 희색을 드러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석곤은 입에서 은색 부적을 뿜었고, 류수아는 소매 속에서 금빛 단창(短槍) 세 자루를 동시에 날렸다. 연달아 날아간 은빛과 금빛이 주전 대문의 보라색 뇌전을 공격했다.

은색 부적은 뜻밖에도 소리 없이 뇌전 속으로 스며들어 자취를 감추었고 금빛 세 줄기는 폭음을 내며 금색 못으로 변해 보라색 뇌전 그물에 박혔다. 기세등등하던 뇌전의 위력이 금색 못에 흡수되어 위력이 크게 줄었다.

이때 석곤이 주술을 외고 대전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파앗.

대문 위로 새하얀 연꽃이 피어났다. 처음에는 주먹만 하다가 삽시간에 몇 십 배로 커졌다. 이에 보라색 뇌전도 그것을 막지 못했고 나중에는 대문 절반이 하얀 연꽃으로 뒤덮였다.

“터져라.”

석곤이 사납게 눈을 번득이며 외치자 연꽃 환영이 폭발했다. 굉음 속에서 거대한 빛구슬이 떠올라 대문과 보라색 뇌전 그물이 그 안에 파묻혔다.

하얀빛이 가시고 드러난 대문은 울퉁불퉁 찌그러지고 엉망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부서진 것은 아니어서 표면의 보라색 뇌전이 반짝거릴 때마다 눈에 보이는 속도로 회복 중이었다.

찰나의 순간, 자유를 되찾은 원자극산이 한립의 조종을 받아 움직였다. 뒤로 물러난 원자극산이 회백색 빛을 터트리며 몇 배로 커져 재차 대문을 공격했다.

이번에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묵직한 검은 산봉우리가 거침없이 대문을 향해 날아들었다.

쿠콰쾅!

엄청난 굉음에 귀청이 떨어져나갈 것 같았다. 그리고 위태위태하던 금제는 원자극산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갈라졌다. 검은 산봉우리는 대문을 뚫고 휭! 하고 주전 안으로 돌진했다.

한립이 소매를 털어 금신법상을 거둘 때, 류수아와 석곤이 재빨리 앞으로 튀어나갔다. 문밖에서 걸음을 멈춘 두 사람은 묘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석 형, 사부님께서 주전 내의 허령단(虛靈丹)만은 반드시 확보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대신 다른 물건은 우선권을 드리지요.”

류수아가 단호히 외쳤다.

“채 선배님도 그러셨습니까? 저도 사부님의 명령이 있어 허령단은 양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지 말고 다른 몇 가지 보물의 우선권을 약조할 터이니 선자께서 포기하시지요. 이후에 사부님께서 채 선배님께 보상을 할 것입니다.”

여인의 말에 석곤이 피식 웃었다.

“그건 그냥 제가 한 제안을 거꾸로 돌려주는 것 아닙니까? 허령단은 반드시 가져가야하니 수사께서 물러나시지요. 사부님을 대신해 정족의 보물인 정월액(晶月液) 한 병을 드리겠습니다. 석충족에게 이 영액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아시겠지요? 정월액은 석충족의 성계 수사도 오매불망하는 물건입니다.”

“정월액!”

석곤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그러나 문득 명을 내리던 단천인의 얼굴이 떠올라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안 됩니다. 정월액은 너무 갖고 싶지만 허령단 없이 돌아가면 사부님께는 무어라 아뢴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절대 물러날 수 없다 이 말이시군요.”

류수아의 어조가 날카로워졌다. 석곤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지만 냉담한 얼굴이 이미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둘 사이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벌써 그러실 것 없습니다. 저는 어째서 두 분 선배님이 허령단을 원하시는지 모르지만 단약을 얻기도 전에 싸우는 것이 현명하지 못한 일임은 알겠습니다.”

한립이 지켜보다 담담하게 중재했다.

“그 말은…….”

“선배님들도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정보를 얻은 것 아닙니까. 그리고 안에 정말 허령단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보물을 확보하고 결정을 내리심이 어떨지요?”

한립의 말에 석곤과 류수아가 침음했다. 솔직히 그들도 같은 생각을 했지만 워낙 중요한 일이라 상대가 먼저 선점할까 경고한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석 수사, 안으로 들어가 허령단이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귀속을 결정하시죠.”

“선자의 말대로 하겠습니다.”

한립의 존재를 의식한 류수아와 석곤이 미소를 떠올리며 동의했다. 앞으로 찾게 될 보물의 소유권에 그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럼 선후를 따지지 말고 셋이 함께 안으로 들어갑시다.”

한립이 두 사람에게 다가갔고, 셋은 나란히 문을 통과해 안을 둘러보았다. 역시 주전의 대청 안은 남달랐다. 수천 명이 활동해도 될 만큼 넓은 공간에, 굵직한 자금색 기둥들이 백 개가 넘었다.

또 대청 벽에 다채로운 고대 병기가 걸려 있어 날카로운 예기를 뿜었다. 대충 둘러봐도 천 개는 넘어 보였다. 벽 아래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가지각색의 전신갑옷이 놓여있었는데,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갑옷 안은 텅 비어있었다.

그리고 대청 문 반대쪽에는 거대한 병풍이 펼쳐져 있었다. 푸른빛이 어른거리는 병풍에 무언가 그려져 있었지만 너무 멀어 잘 보이지 않았다. 병풍 앞에는 낮은 탁자와 금색의 세 발 달린 고대 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외에는 거의 텅 비어 장식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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