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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007화 (764/2,000)
  • 1007화. 뇌붕괴뢰(雷鵬傀儡)

    *

    한립은 류수아와 석곤이 아주 멀리까지 달아났고 그 뒤를 소량의 은색 물결과 녹색 구름이 쫓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곧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은색 물결 한 줄기가 다른 짐승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수가 족히 천 마리는 되었다.

    한립은 급히 숨을 들이마시고는 날개를 펄럭여 청백색 실로 변해 자리를 떴다. 이번에는 반 시진 가량을 쉼 없이 날아가고서야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뒤쪽이 텅텅 비어있었다.

    ‘아니지…….’

    미소를 머금으려던 그의 얼굴이 일순 굳었다.

    요 며칠 수사들과 이동할 때도 속도를 높여 요충들을 따돌린 일이 몇 번 있었었는데 요충들은 조금 속도가 떨어지는 대신 무슨 비술을 이용하는지 귀신처럼 그들을 찾아내 추격을 이어갔다.

    한립은 어두운 얼굴로 고민하다 검은 손수건을 꺼내 몸에 두르고 흔적도 없이 허공에서 사라졌다. 반 시진이 채 지나지 않아 천천히 이동하던 한립은 무언가를 감지하고 고개를 돌렸다.

    윙윙!

    하늘 저 끝에서 곤충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거대한 은색 괴충이었다. 재빨리 명청령안을 발동해 자세히 살펴보니 거대 괴충은 천여 마리 날벌레들이 한데 뭉쳐진 것이었다.

    어째서 검은 손수건처럼 신묘한 은신 신통이 통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저것들을 죽이지 않고는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는 없을 듯했다.

    엄청난 수의 은조충은 상대하기가 무척 까다로웠다. 몸이 매우 단단해서 웬만한 보물로는 죽일 수 없었고 물어뜯는 힘이 어찌나 강한지 방어용 보물도 손쉽게 뚫고 들어왔다. 그렇기에 무서운 상고흉충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이다.

    거대 괴충이 코앞까지 왔을 때 한립이 차갑게 눈을 빛냈다.

    웽웽웽!

    그의 소매 속에서 백여 개가 넘는 금빛 꽃잎들이 흩날렸고 금빛을 반짝이며 팔뚝 반절 크기의 거대한 딱정벌레들로 변했다. 금빛 찬란한 딱정벌레들은 서금충 성체였다.

    “가라.”

    한립의 명령을 듣고 백여 마리의 서금충들이 웽! 하고 방향을 틀어 은색 괴충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세등등하던 은색 괴충은 성체 서금충을 발견하자마자 몸을 떨었고 기이한 비명을 지르며 부산스럽게 달아나려 했다. 허나 한립이 이렇게 많은 서금충을 방출했을 때는 속전속결을 원한 것이었다.

    꽈광.

    그는 날개를 펄럭여 청백색 실로 변해 은색 괴충 위에 나타났다. 한립은 곧바로 새까만 손을 뻗어 검은 동산을 분출했다.

    순식간에 몸집을 불린 검은 산은 빙글빙글 돌며 회색 기운을 방출해 은색 괴충을 뒤덮었다. 그러자 거대 괴충을 이루는 천여 마리 은색 곤충들은 원자신광의 힘에 꼼짝 없이 갇히고 말았다.

    콰직!

    그때 날카로운 폭음이 들리고 거대 괴충의 몸이 붕괴되며 은색 곤충들이 몰려나왔다. 은색 곤충들은 주변의 회색 기운을 마구 갉아대며 살 길을 찾으려 했다.

    원자신광이 빠르게 희박해졌지만 한립은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서금충 떼가 도달했기 때문이다.

    서금충들은 회색 기운을 그대로 통과해 천여 마리 은색 날벌레들을 사납게 뜯어먹었다. 서금충의 수는 은조충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았지만 몸집이 몇 배로 크고 물어뜯는 힘이 월등해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은색 날벌레는 서금충의 금색 껍질을 계속해서 물었지만 상처 하나 남기지 못했다.

    삽시간에 대다수의 은색 날벌레가 당하자 남은 것들이 달아나려 했으나 원자신광이 붙드는 통에 멀리가지 못하고 서금충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이제 딱 한 마리가 남았는데 은색 날벌레가 갑자기 스스로 폭발해 은빛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나 한립은 명청령안을 일으켜 희미하게 달아나는 허상을 발견해 오색 한염을 쏘아 보냈다. 그러자 허상이 한염 속에 붙들려 원형을 드러냈다. 괴이하게도 사람의 얼굴에 곤충의 몸을 한 은색 그림자가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

    그 모습에 한립은 어두운 얼굴로 옥색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오색 한염에서 수많은 오색실들이 나타나 인면(人面) 요충의 허상을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잘라버렸다.

    한립은 비로소 얼굴을 풀고 오색실을 흩어버리고 서금충을 향해 손짓했다.

    웽!

    다시 금빛 꽃잎으로 변한 영충들은 쏜살 같이 그의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 이어 한립은 검은 산봉우리까지 거둬들이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서금충의 수가 상당했지만 부린 시간이 짧았기에 의식 소모가 별로 크지 않았다.

    서금충으로도 은조충들을 단시간에 처리할 수 없었다면 의식 소모가 커지기 전에 망설임 없이 영충을 회수했을 것이다. 위험한 광한계 한복판에서 의식을 크게 소모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컸다.

    다행히 예상대로 서금충은 상고흉충이라는 은조충들을 상대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한립은 고개를 들고 두 요충들이 대규모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을 잠시 바라보다가 푸른 빛줄기로 변해 허공을 갈랐다.

    그 순간, 아주 멀리 은색 물결의 중심에서 몸집이 거대한 은색 괴충 하나가 고개를 돌려 한립이 달아난 방향을 쳐다보았다.

    은빛이 반짝이고 은색 괴충의 머리 부위에 연로한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인면 괴충이 인상을 찌푸리고 고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크하하!

    그는 한립이 사라진 방향과 전방의 광경을 번갈아 보다 마침내 길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인근의 은색 비충들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거대 인면 괴충을 중심으로 몰려들었다.

    곧 하늘을 뒤덮는 크기의 거대 은색 괴충이 생겨나 두 날개를 퍼덕이며 전방의 녹색 구름을 노려보았다.

    * * *

    한립은 방금 죽인 괴이한 원신의 정체는 몰랐지만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는 수없이 방향을 바꾸어 목적지를 노출하지 않았고 태일화청부를 사용해 한동안 기운을 숨긴 다음에야 방향을 잡고 날아갔다.

    그는 이제 홀로 이동해야 했지만 합체 초기 존재를 마주쳐도 상대할 실력이 되었으니 주춤거리고 있을 까닭이 없었다.

    * * *

    두 달 후, 노란 모래 바람이 몰아치는 사막 위. 기괴한 양식의 푸른 전차(戰車) 세 대가 푸른 뇌전을 몰고 나타났다. 고공에 멈춘 전차에는 푸른빛의 주술문자들이 빼곡하게 새겨져있었다.

    푸른 갑옷을 걸친 괴수가 두 마리씩 각각의 전차를 끌고 있었는데, 새빨간 눈을 끔뻑이며 코에서는 수시로 푸른 연기를 뿜어냈다. 푸른 연기가 허공에 퍼질 때마다 주변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 극히 뜨거운 기운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차 위로는 각각 왜소한 인영들과 푸른 갑옷으로 온몸을 가린 커다란 꼭두각시가 서 있었다.

    허리에 커다란 도를 차고 등에는 짧은 창을 교차해 멘 커다란 꼭두각시는 물소 괴수의 고삐를 잡고 있었는데, 얼굴을 뒤덮은 푸른 가면 사이로 두 눈이 붉은빛으로 빛났다.

    전차에 있던 왜소한 인영도 푸른 갑옷으로 온몸을 가리고 있었지만 얼굴에 회색 반점이 가득하고 송곳니가 길게 삐져나와 용모가 굉장히 추했다. 여섯 명의 인영은 모래 바람을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상의하고 있었다.

    잠시 후 상의를 마쳤는지 그들 중 한 명이 청동거울을 꺼내 모래 바람 속으로 내던졌다.

    파앗.

    거센 바람 속으로 떨어져 내리던 청동거울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와 주위를 잠식했다.

    푸른빛이 지난 자리에는 모래 바람이 뚝 그쳤고 그 대신 어떤 풍경이 떠올랐다. 전당의 잔해 같은 것이 펼쳐져 있었는데 규모가 엄청나서 한 눈에 그 끝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것을 본 왜소한 인영들이 희색을 드러내며 거울을 거두고 전차를 출발시키려 했다.

    콰르릉!

    바로 그때 하늘 저편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고 느닷없이 푸른 뇌전 덩이가 나타나 순식간에 전차들과 거리를 좁혀왔다.

    인영들은 흠칫 놀라 뇌전 덩이를 주시했는데 그 속에 은색 머리에 푸른 날개를 지닌 거대한 조류형 꼭두각시가 날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놀랍게도 뇌붕(雷鵬)과 꼭 닮아있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뇌붕괴뢰가 온 몸에 상처가 가득하고 이곳저곳 털도 뽑혀나간 데다 두 다리 중 하나는 잘려나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붕괴뢰는 요란한 푸른 뇌전을 번뜩이며 무서운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왜소한 인영들이 가슴 철렁할 만한 일이었다.

    그들 중 한명이 날카롭게 외치자 전차 세 대가 푸른 빛줄기로 변해 거대 뇌붕괴뢰를 맞이하러 날아갔다.

    푸른 갑옷 꼭두각시들이 고삐로 물소 괴수들을 내리치자 괴수들의 커다란 입에서 푸른 화염이 불바다를 이루며 분출되었다. 왜소한 인영들도 잇달아 등에 메고 있던 은색 원반을 쏘아 보냈다.

    원반들은 법결을 흡수해 신속히 커져 멀리서 보면 달 여섯 개가 떠오른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눈을 번뜩인 뇌붕괴뢰는 전신의 푸른 뇌전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하나 남은 발로 허공을 휘둘렀다.

    푸른 거대 발톱 허상이 세 대의 전차를 동시에 덮쳤다.

    뇌붕괴뢰가 은색 달덩이들과 활활 타오르는 푸른 불바다를 무시하고 직접 전차를 공격한 것이다. 이족인들은 화들짝 놀라며 언뜻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그 중 한 명이 정신을 차리고 소리치자 여섯 명이 다급히 똑같은 수결을 맺으며 손을 뻗었다.

    우웅.

    여섯 달덩이가 진동하며 푸른 발톱 허상 가까이로 모여들어 거대한 원반을 만들었다.

    쾅!

    거대 발톱 허상과 원반이 충돌하자 푸른색과 은색이 강력한 빛을 내며 퍼져나갔다. 이때 푸른 화염이 뇌붕괴뢰를 뒤덮었고 뇌전과 충돌해 천둥소리가 울렸다.

    뇌붕괴뢰를 둘러싼 뇌전은 위력이 대단해서 푸른 화염이 아무리 활활 타올라도 별 반응이 없었지만, 허공의 거대 발톱 허상은 잠시 버티다 결국에는 산산이 흩어졌다.

    웅!

    걸림돌이 사라지자 거대 원반이 몸을 떨며 뇌붕괴뢰의 머리로 떨어져 내렸다. 거대 원반이 달려들며 주변 공간을 왜곡하자 허공에 괴이한 파문이 퍼져 마치 공간을 가르는 것처럼 보였다.

    뇌붕괴뢰가 그것을 보고 굵은 푸른 뇌전을 뿜었고, 뇌전은 푸른 교룡으로 변하더니 거대 원반을 공격했다.

    쿠쿵!

    은빛과 푸른 뇌전이 얽혀 들자, 은색 원반이 바르르 몸을 떨며 표면에 균열이 생겨났다. 은빛 속에서 여섯 개의 보물로 분리된 원반들은 다시 여섯 이족인에게로 돌아갔다.

    이어 뇌붕괴뢰가 전신의 뇌전을 다시 한 번 크게 키워 쿵!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후웅!

    다음 순간 세 전차 위에 뇌전이 번득이며 거대 조류 꼭두각시의 모습이 나타났고, 뇌붕괴뢰의 날갯짓에 흉흉한 바람이 몰아쳤다.

    “……!”

    왜소한 이족인들은 놀랐지만 빠르게 반응했다. 각자 전차를 이끄는 청갑괴뢰(靑甲傀儡)의 어깨에 손을 얹은 것이다. 이에 청갑괴뢰의 체구가 커지며 가면을 떨구고 악랄한 요귀의 얼굴을 드러냈다.

    요괴들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뇌붕괴뢰를 향해 할퀴자 여섯 개의 검푸른 손톱 빛이 날아갔다. 이어서 요귀들이 등 뒤의 은색 단창을 쥐고 내던지자 그것들 역시 여섯 개의 은색 빛기둥으로 변해 허공에서 사라졌다.

    거센 바람과 사나운 천둥소리로 하늘이 쩌렁쩌렁 울렸다.

    뇌붕은 무표정한 얼굴로 또 다시 푸른 뇌전을 방출하고는 아래쪽에 하나 남은 발을 휘둘러 무형의 압력을 가했다.

    이족인들도 가만있지 않고 청갑괴뢰에서 손을 거두고 주술을 외워 체구를 몇 배로 키웠다. 그리고 열댓 개의 다양한 보물들을 꺼내 공격에 합류시켰다.

    폭음이 연달아 울리고 다양한 영기의 빛이 난무해 눈을 뜨기 어려웠다. 싸움은 장장 한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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