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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004화 (761/2,000)
  • 1004화. 합격술을 펼치다.

    *

    사두 괴수는 제 3의 눈에서 은색 광선을 비처럼 쏟아냈고, 그 덕에 류수아는 필사적으로 은색 광선들을 피하며 아껴두었던 신통과 보물을 아낌없이 쓰고 있었다.

    그녀는 은색 베틀 북 외에도 하얀 깃발과 금색 북까지 꺼내들었다.

    하얀 깃발은 하얀 기운으로 변해 변화무쌍하게 움직였고, 작은 금색 북은 금색 음파를 연달아 방출했다. 그리고 등 뒤로 천수(千手) 법상을 불러낸 류수아는 입에서 연꽃도 뿜어냈다. 아름다운 연꽃이 위력도 대단해 보였다.

    암수가 날려 보낸 은색 광선도 빙글빙글 도는 얼음 연꽃과 함께 폭발해 버렸던 것이다. 그 대신 꽤 많은 법력이 소모되는지 연꽃을 방출할 때마다 여인의 얼굴이 창백해져 갔다. 순식간에 백송이의 연꽃을 피워냈으니 지칠 만도 했다.

    만일 한립이 오지 않았다면 네 마리 은안 암수가 융합하자마자 달아났을 것이다. 때 마침 한립과 석곤이 날아드는 것을 보고 그녀가 반색하며 소리쳤다.

    “괴수의 실력이 상당하니 어서 합격술을 펼쳐야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한립은 움찔했지만 반대하지 않고 수결을 맺어 회색 기운을 불러냈다. 석곤 역시 잠시 주저하다 낮게 기합을 넣었다. 몸이 회색으로 물들고 그의 손 끝에서 회색빛의 실들이 마구 분출되었다.

    류수아는 두 손으로 수결을 맺어 등 뒤의 법상을 흩어버린 다음 회색빛의 수레바퀴를 띄웠다.

    서서히 떠오른 회색빛의 수레바퀴는 조금 모호했지만 쾌속으로 회전하면서 주술문자들을 뿜어냈다. 수많은 주술문자들이 깨져 흩어졌다가 다시 하나의 거대한 주술문자를 이루었다.

    여인의 입에서 심오한 주술소리가 맑게 울려 퍼졌다. 사두 괴수가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는 것을 깨닫고 네 개의 제 3의 눈에서 은색 광선을 뿜었다.

    광선이 하나의 빛기둥으로 뭉쳐져 류수아를 향해 날아가자, 열댓 마리의 검은 그림자 화신들도 한립과 석곤을 노렸다. 하지만 한립은 은안 암수의 화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가 피식 웃자 그의 몸에서 은색 화염이 튀어나갔고, 화염은 스스로 폭발해 작은 은색 불똥으로 퍼져 검은 그물을 활활 불태웠다. 화신들은 제대로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푸른 연기로 사라졌다.

    그를 향해 날아들던 검은 빛기둥은 수정 방패의 위력으로 괴이하게도 옆으로 비켜나가고 말았다. 한립보다 빠르지는 않았지만 석곤도 입에서 붉은 청동 거울을 꺼내 검은 그림자 화신들을 깨끗하게 처리했다.

    류수아만이 날아드는 은색 빛기둥을 보고 표정을 굳혔다. 그녀는 특이한 모양의 수결을 맺어 은색 빛기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웅!

    등 뒤의 회색 빛의 수레가 진동하고 그대로 은색 빛기둥을 향해 뻗어 나갔다. 은색 빛기둥이 기세등등하게 수레바퀴와 맞부딪쳤다.

    괴이하게도 은색 빛기둥은 소금이 물에 녹아드는 것처럼 스르륵 수레바퀴 속으로 흡수되어버렸다. 곧 사두괴수 앞에 회색기운이 번지고 거대 주술문자가 나타나 흡수한 은색 빛기둥을 그대로 되돌려주었다.

    불가사의한 신통을 발휘해 상대의 공격을 반사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법력 소모가 큰지 안 그래도 창백하던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사두 괴수는 예기치 못한 공격에 멍하니 있다가 바로 돌변해 제 3의 눈에서 다시 네 줄기의 은색 광선을 분출했다.

    콰앙!

    은색 광선의 충돌에 주변으로 은색 파동이 번졌고 공간이 윙윙거리며 미세하게 왜곡되었다. 류수아는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열손가락을 튕겨 각양각색의 법결들을 수레 속으로 던져 넣었다.

    “가라!”

    그녀의 목소리가 울리고 수레바퀴의 주술문자에서 회색 빛기둥이 쏘아져나갔다. 그 때 한립과 석곤도 똑같은 수결을 맺고 술법을 발동하고 있었다.

    회색 빛기둥과 회색 기운 그리고 회색 실이 순간이동을 하듯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세 가지 공격이 번뜩이며 하나로 합쳐져 거대한 빛구슬로 변했다. 회색 광채 속에 주술문자들이 요동치는 휘황찬란한 빛구슬이었다.

    쿠쿵.

    커질 대로 커진 빛구슬이 결국에는 층층이 갈라지더니 주술문자들을 흘려보냈다. 한립과 석곤, 류수아가 익숙한 손길로 수결의 모양을 바꾸고 동시에 주술을 외웠다.

    허공에서 괴이한 장면이 펼쳐졌다.

    빛구슬 속에서 흘러나온 주술문자들이 사두 괴수를 향해 비처럼 퍼부은 것이다. 빼곡하게 떨어져 내리는 주술문자의 치명적인 힘이 전해졌다.

    크아앙!

    사두 괴수가 그것을 느꼈는지 길게 포효하며 검은빛 속에서 더없이 큰 거대 머리로 합쳐졌다. 머리에 뿔이 두 개나 솟은 것은 물론이고 송곳니도 턱까지 늘어져 날카로운 빛을 번득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마에 네 개의 은색 요안이 나란히 생겨난 것이다.

    괴수가 허공의 주술문자를 훑고는 이마의 요안에서 은빛 기운을 떨구었다. 은빛 기운이 셀 수 없이 많은 은색 빛구슬로 변해 하늘높이 솟구쳤다.

    괴수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입을 쩍 벌려 새까만 빛구슬을 토해냈다. 처음부터 거대했던 빛구슬은 더욱 크기를 키워 새까만 빛의 장막으로 변해 괴수를 보호했다. 실체를 갖춘 보호막처럼 선명한 빛의 장막이 괴이하게 느껴졌다.

    고공에서 이를 지켜보던 한립의 눈을 가늘게 떴다.

    콰르르릉!

    바로 그 때 은색 빛구슬과 주술문자가 중간에서 격돌하며 엄청난 규모의 폭발을 일으켰다. 주변 기운이 요동치고 돌풍이 일어나 모든 것을 삼키며 퍼져나갔다.

    류숭와 석곤은 뒤로 물러나 방어용 보물을 꺼내 앞을 막았다. 그러나 한립은 날개를 펄럭이고 청백색 뇌전속으로 사라졌다가 검은 장막 옆에서 청백색 뇌전에 둘러싸여 나타났다.

    검은 장막 속 거대 괴수는 전신에 검은 비늘이 돋아나있고 아래에 검은 수염이 있어 진령 기린(麒麟)의 모습과 비슷했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광경이었다.

    ‘이건 뭐야.’

    속으로 움찔했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등 뒤로 금빛을 뿌리며 삼두육비의 법상을 불러냈다. 법상은 금빛 칼날 조각을 들고 거침없이 검은 장막을 향해 휘둘렀다.

    * * *

    한립 일행과 아주 멀리 떨어진 암수삼림.

    금색 그림자가 열댓 마리 삼안 암수들을 이끌고 수풀을 질주하다가 우뚝 멈춰 섰다.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응시하던 금색 암수의 새까만 눈에 의문이 어렸다.

    크르릉!

    암수왕은 뒤따르는 삼안 암수 중 하나를 향해 노기를 실어 으르렁거렸다. 그 소리에 삼안 안수가 대답하듯 공손히 뒤로 물러나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 사라졌다.

    암수왕은 그제야 고개를 돌리고 다시 전방을 향해 달려갔다. 암수삼림에 침입한 외부인에 대한 적개심보다는 그가 쫓는 목표물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이제 빠르게 풀숲을 헤치고 달려가는 소리만이 스산하게 울려 퍼졌다.

    * * *

    한립의 앞에 사두 괴수가 절반으로 잘려 쓰러져 있었는데, 표면에 있던 검은 빛덩이들이 떨어져나가자 시체마저 허물어졌다.

    멍한 얼굴로 그를 응시하던 류수아와 석곤의 눈빛에서 두려움이 엿보였다.

    조금 전, 사두 괴수의 은색 기운과 원자신광 합격술이 충돌해 상상 이상의 폭발을 일으켰고 그 순간 보여준 한립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겨를도 없었다.

    금빛이 번득인다고 느낀 순간 이미 사두 괴수는 끝장나 있었는데 사두 괴수를 둘러싸고 있던 빛의 장막이 금빛을 조금도 저지하지 못했다. 사두 괴수는 거의 성족 초계에 맞먹는 기운을 지녔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죽고 말았다.

    게다가 금빛이 밝게 번진 찰나, 류수아와 석곤은 인근 천지원기가 금빛을 향해 끌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수행이면 수결을 맺고 한참동안 주술을 외워야 간신히 주변 천지원기를 끌어올 수 있었고, 때때로 실패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간단히 일으킬 수 있는 현상이 아니었다.

    ‘설마 저자의 신통이 이미 사부님들의 실력에 근접해 있단 말인가! 그렇다하더라도 이건 너무 기이하지 않은가!’

    류수아와 석곤은 복잡한 심경 때문에 그를 보는 시선이 흔들렸지만 한립은 모르는 척 외면했다. 범성진마법상을 부려 현천의 보물 족가인 칼날 조각을 휘두른 다음 즉시 법상을 거두었기에 류수아와 석곤에게 들켰을 리 없다.

    이번에 법상의 힘을 소모하면서까지 칼날 조각을 쓴 것은 새로 제련한 범성진마법상의 위력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법상이 칼날 조각을 발동하는 속도가 이전보다 몇 배는 빨라졌고 소모하는 힘도 3분의 1로 줄어있었다.

    물론 다른 이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고의로 칼날 조각의 위력을 줄여서 그렇기도 했지만 무척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이전에 마금산맥에서 현천과실을 발동하느라 기력이 크게 쇠했던 법상을 운성에서 고된 수련으로 많이 회복시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립은 새까만 손바닥에서 회색 기운을 날려 검은빛의 점으로 흩어지고 있는 시체를 훑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은빛 찬란한 구슬 네 알만이 남아 있었다.

    삼안 암수들의 내단이었다. 그가 막 내단을 거두려는 데 소매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흠…….’

    한립은 생각 끝에 소매를 털어 금빛 잔영들을 내뿜었다. 잔영들이 합쳐져 금빛문양을 지닌 표린수가 나타났다.

    표린수는 진화를 한 후 영수환 속에서 여태껏 수련을 해 지금은 벌써 화신 중기에 이르러 있었다. 얼마 후면 화신 후기도 노려볼 만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한립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 전력은 아니었기에 줄곧 표린수를 소환할 일이 없었다.

    모습을 드러낸 표린수는 풀쩍 뛰어올라 암수 내단을 모조리 삼키고 한립의 어깨로 돌아왔다. 털이 복슬복슬한 머리를 한립의 목에 부비는 모습이 아주 귀여웠다.

    그것을 본 한립은 똑같이 생긴 구슬 세 개를 더 꺼내들었다. 그러자 표린수가 눈을 반짝이며 득달같이 달려들어 내단을 삼키고 한립의 손바닥 위에서 즐겁게 갸르릉 거렸다.

    그 모습에 한립은 미소를 머금었다.

    일반 암수의 내단에는 별 관심도 없던 녀석이 은안 암수의 내단을 원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고계 요수의 내단을 먹여 나쁠 것은 없었다. 그는 말없이 푸른 기운을 날려 작은 짐승을 영수환 속에 돌려놓았다.

    은안 암수의 내단이 어떤 효과를 보일지는 시간이 지나면 차차 알게 될 것이다. 그 때 류수아와 석곤이 한립을 향해 날아들어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삿갓 아래로 여인이 미소 지었다.

    “한 형 덕분에 살았습니다. 삼안 암수들이 합체까지 할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그렇습니다. 한 형의 신통이 워낙 대단해 지켜보는 제가 다 식은땀을 쏟았지 뭡니까. 이곳에 성계 이상의 존재가 진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수사가 수행을 숨기고 있다 오해할 뻔했어요!”

    석곤도 고래를 저으며 한마디 했다.

    “과찬이십니다. 두 분이 암수들의 시선을 분산시켜주셨기에 제가 쉽게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보다 아직 암수 떼들이 남아 있으니 어서 움직이시지요.”

    “지당한 말씀입니다, 한 형!”

    한립의 말에 류수아가 안색이 달라져 찬성했고, 석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방향을 정해 즉시 빛줄기로 변해 허공을 갈랐다.

    * * *

    닷새 후, 한립은 밀림 속에서 한 손으로 수결을 맺고 고공에 떠 있었다. 그의 곁에는 푸른 비검 수십 자루가 푸른 연꽃으로 변해 삼안 암수 한 마리를 덮치고 있었다.

    푸른 연꽃이 빛을 번뜩이자 암수는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변해 흩날렸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는 와와가 또 다른 삼안 암수를 향해 남색 옥 부채를 펄럭였다.

    휘잉.

    옥 부채에서 발산된 남색 기운이 암수와 그 그림자 분신까지 휘감아 거대한 남색 얼음덩이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류수아와 석곤도 영기의 빛과 폭음을 쏟아내며 암수들과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암수삼림 중심부를 벗어난 이래 벌써 일곱 번째 습격이었다.

    매번 열 마리가 넘지 않았고, 이전의 은안 암수들이 아닌 삼안 암수가 이끄는 무리라 합체를 하지 못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립 일행은 습격해오는 암수 무리를 깨끗이 죽여 나갔지만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지체했다.

    그런데 갑자기 암수 열댓 마리가 몰려들어 더 이상 빠져나가지 못하고 붙들려 있었다.

    한립의 손짓에 푸른 연꽃들이 수십 가닥의 푸른 실로 변해 얼음 덩어리로 변한 암수를 구멍투성이로 만들었다.

    휘휘휙!

    * * *

    열흘 후 한립 일행은 암수삼림 외곽에 떠서 꼼짝하지 않았다. 그들 앞을 삼안 암수로 이뤄진 서른 마리의 암수 무리가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류수아와 석곤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한립도 슬쩍 미간을 좁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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