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3화. 새로운 원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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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립은 풍뢰시를 펄럭이며 청백색 실로 변해 쏘아져 나갔다. 그가 반짝이며 나타날 때마다 순간이동을 하듯 하늘을 갈랐다. 웬만한 성족 수사를 뛰어넘는 엄청난 속도였다.
한립은 드디어 일행과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지만 암수 한 마리도 마주치지 않았다. 인근의 대부분 암수들이 암수왕의 부름을 받고 달려갔기 때문이다.
한 시진 넘게 날아가자 드디어 멀리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류수아와 석곤이 허공에서 멈춰 서서 은안 암수들과 결투를 벌이고 있었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서 상황을 지켜 보았다.
석곤은 노란 기운으로 둘러싸인 갑옷을 입고 양손에는 거대한 빨간 망치를 들고 있었다. 망치를 휘두를 때 마다 수많은 화염들이 날아올라 붉은 화교(火蛟)의 형상을 하고 그의 주위를 휩쓸었다.
그리고 석곤의 머리 위에는 붉은 옥병이 빙글빙글 회전하며 불기둥이 뻗어 나와 미친 듯이 사방을 공격했다.
이제 보니 그의 주공법은 흙 속성 공법이 아니라 공격성이 가장 강하다는 불속성 공법이었다.
그의 공격에 세 마리의 은안 암수들은 검은 그림자 분신을 방출해 석곤에게 달려들었다. 검은빛과 붉은빛이 충돌하며 폭음이 끊이지 않았다.
석곤의 쌍망치는 강력했지만 은색 그림자로 변한 은안 암수들의 신법이 더욱 기이해 전혀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게다가 세 은안 암수들이 제 3의 요목에서 발산하는 은색 광선은 더욱 위험했다!
석곤은 광선이 몸에 닿지 않도록 두 망치를 열심히 휘둘러 그것들을 막아냈고, 은색 광선에 닿은 망치는 어두운 푸른색으로 변했다가 주변의 붉은 기운을 머금고 다시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세 마리 은안 암수들도 은색 광선을 연달아 방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일시적으로 석곤과 호각을 이루고 있었다.
그와 반대편에서 네 마리 암수들에 둘러싸인 류수아의 상황은 또 달랐다. 그녀가 방출한 눈부신 은색 베틀북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며 엄청난 기세를 방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뒤에 은색 법상이 보였는데 은색 갑옷을 입은 여인 법상이 팔을 휘두를 때마다 무수히 많은 흐릿한 팔들이 나타났다. 수백 개의 팔을 동시에 휘두르는 듯했다.
법상의 팔들에서 모호한 은색 검기가 날아가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네 마리 은안 암수들이 번개처럼 움직이고 화신들이 몸을 내던져 공세를 뚫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은색 베틀 북과 수많은 은색 검기 덕분에 여인은 승기를 잡고 있었다.
‘흠…….’
석곤과 류수아는 오는 내내 평범한 암수라도 세 마리 이상이면 질 것 같다는 둥 허튼 소리를 하더니 고계 삼안 암수 서너 마리를 상대하면서도 멀쩡했다. 역시 이전의 말들은 다 거짓이었다.
탓할 일은 아니었다. 낯선 자에게 자신의 진짜 실력을 드러낼 수사는 아무도 없었다. 금색 암수도 석곤과 류수아의 수행을 알아보았지만 그들이 평범한 연허 후기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랬으니 겨우 은안 암수 일곱 마리를 보냈겠지.’
평범한 연허 후기 수사였다면 은안 암수들의 협공을 막기 어려웠지만 류수아와 석곤은 잘 싸우고 있었다. 물론 이것만 보고 류수아가 석곤보다 강하거나 혹은 은안 암수 떼가 확실히 질 것이라 단언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에서야 다들 제 실력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석곤과 류수아의 얼굴이 편해보이지는 않았다.
지금 암수왕이 암수들을 불러 모아 어디로 가버렸다지만 암수삼림 한복판에서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는 언제 황천길로 갈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전력을 다해 속전속결을 하면 상당한 법력을 소모하거나 부상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럼 나중에 암수삼림을 벗어나도 광한계의 다른 위험한 고비를 넘기기 어려워진다.
류수아와 석곤은 초조한 마음으로 한립이 어서 합류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립도 그걸 모를 리 없었다.
‘빠르게 암수들을 처리하고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한립은 한 손에 차고 있던 검은 고리를 날려 다른 손을 새까맣게 물들였다. 그리고 범성진마공을 극성으로 발휘해 온몸을 금색 비늘 갑옷으로 가렸다. 그리고 다시 검은 손수건을 꺼내 허공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잠시 후, 석곤을 둘러싸고 공격을 퍼붓고 있던 암수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 은안 암수 뒤로 파동이 일고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날아든 것이다. 은안 암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뒤쪽으로 앞발을 휘둘렀다.
쾅!
검은 발톱의 빛과 하얀 물체가 충돌하며 폭발했다. 그 틈에 몸을 돌린 암수는 희끄무레한 습격자의 정체를 바로 알아냈다.
바늘이 투명한 수정처럼 반짝이는 하얀 구렁이가 엄청난 한기(寒氣)를 발산하며 노려보고 있었다.
이에 은안 암수가 분노하며 반격하려 하자 머리 위로 검은 산이 나타나 떨어져 내렸다. 산 표면에 새겨진 은과문 주술문자들이 반짝였다.
거대하게 변한 산이 소리 없이 떨어지는 통에 은안 암수는 뒤늦게 공격을 알아차렸는데, 설상가상으로 맞은 편 하얀 구렁이도 입에서 남색 옥 부채를 분출해 펄럭이고 있었다.
한기가 어린 남색 기운이 밀려들었다. 이에 은안 암수는 대경실색했고 나머지 두 암수는 울부짖으며 석곤을 포기하고 도와주러 뛰어들었다.
그 모습에 석곤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빨간 망치를 더욱 거대하게 만들어 두 은안 암수를 내리쳤다. 그러자 망치의 풍압에 암수들은 신형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두 은안 암수가 멀리가지 못하고 입에서 검은빛을 뿜어냈다.
쉬쉬쉬쉭.
검은 산 밑에 있던 은안 암수는 어쩔 수 없이 털을 바짝 세워 남색 기운을 날리고, 입에서 굵은 빛기둥을 뿜어냈다. 급하게 펼친 공격이었지만 잠깐만 시간을 끌면 충분히 달아날 자신이 있었다.
은안 암수의 몸에서 검은 빛이 터져 나오고 육신이 백여 마리의 검은 나비로 변해 사방팔방으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검은 빛기둥은 정말 거산이 떨어지는 속도를 미미하게 늦추었고 그사이에 검은 나비 떼가 도망가려 했다.
그때 어딘가에서 냉랭한 코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평범한 소리였지만 검은 나비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피피피피픽!
그와 동시에 검은 산의 은색 주술문자들이 은빛을 머금었고, 회색 기운이 실 뭉치처럼 쏟아져 나와 백여 마리의 검은 나비들을 꿰뚫었다.
검은 나비들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가루처럼 흩어져 버렸다. 이 때 산봉우리가 빙글빙글 회전하며 검은 가루들을 빨아들였다. 이렇게 암수 한 마리가 원신이 달아날 틈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 은안 암수가 만들어낸 검은 그림자 화신들도 본체가 법력을 잃자 모두 사라졌다. 그 모습에 석곤의 쌍망치를 막고 있던 두 은안 암수가 경악했다.
크앙!
두 마리의 은안 암수는 시선을 마주치고 검은빛 속에서 몸을 키웠고, 검은 털도 희미한 은색으로 변했다. 당연히 그들이 만들어낸 분신들의 위력도 훨씬 강해졌다.
석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지만 두려워하는 기색없이 갑옷에서 노랏빛을 뿜으며 허공의 쌍망치를 가리켰다.
우웅.
그의 주변을 맴돌던 붉은 화교가 길게 포효하고 망치속으로 흡수되었다. 붉은 기운이 강해진 쌍망치는 다시 두 은안 암수들을 노리고 떨어져 내렸다.
쉐액!
수행이 크게 늘어난 두 짐승은 길게 울부짖으며 앞방을 휘둘렀다. 그러자 네 개의 검은빛이 검은 초승달처럼 튀어나가 화염을 뚫고 빨간 망치를 갈랐다.
콰콰쾅!
하늘이 쩌렁쩌렁 울리고 검은빛과 붉은빛이 한데 얽혀들었다. 두 암수들은 멈추지 않고 곧바로 입을 벌려 굵은 빛기둥을 쏘았고 검은 그림자 화신들이 석곤을 향해 달려들게 했다.
석곤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검은 빛기둥과 그림자 화신들을 향해 무수히 많은 주먹 허상을 날렸다. 두 은안 암수가 석곤과 맞붙었을 때, 하얀 거대 구렁이는 아름다운 백의 여인으로 변해 남색 옥 부채를 쥐고 두 요수를 향해 가볍게 흔들었다.
휘잉!
남색 기운이 연달아 퍼져나가다 거대한 남색 물결로 합쳐져서 두 짐승을 덮쳤다. 그리고 허공의 산봉우리도 번뜩 자취를 감추었다가 두 암수의 머리 위에서 괴이하게 나타났다.
빙글빙글 회전하는 산봉우리 아래로 회색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은안 암수들이 같은 수법에 당할 리 만무했다. 그들은 크게 포효하고 동시에 풀쩍 뛰어올라 괴이하게도 중간에서 머리가 둘 달린 은색 괴수로 융합해버렸다.
융합된 은색 괴수는 두 머리 모두 눈이 3개였고, 몸집은 또 몇 배로 불어나 동산만 해졌다. 은색 괴수의 두 머리에서 제 3의 눈이 활짝 떠지고 손가락 굵기의 은색 광선이 쏘아져나갔다.
하나는 남색 물결로, 다른 하나는 허공의 검은 산봉우리로 뻗어나갔다. 은색 광선은 불가사의하게도 거대한 남색 물결과 검은 산봉우리의 매서운 공격을 잠시 막아냈다.
“헛!”
그때 누군가 놀라 헛바람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공격이 먹혀 기뻐하던 쌍두(雙頭) 괴수가 지척에서 들려온 소리에 번개처럼 앞발을 휘두르더니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은색 빛을 내뿜었다.
콰릉!
허공에서 폭음이 터지고 금빛 찬란한 인영이 나타나 거대한 인장을 던져 쌍두 괴수의 앞발을 가볍게 막았다. 그리고 은색 방패가 그의 앞을 막고 커다랗게 변해 은색 광선을 옆으로 흘려보냈다.
이에 쌍두 괴수가 흠칫 놀라 눈을 부릅떴다. 금빛 인영은 한립이었고, 하얀 구렁이가 변한 백의 여인은 통령괴뢰 와와였다.
그는 광한계에 들어오기 전 받은 천강인의 위력을 시험해 본 것이다. 은빛이 가볍게 거대한 짐승의 앞발을 막자 희색을 드러냈다. 그는 곧바로 날개를 펄럭여 청백색 뇌전 속으로 사라졌다.
“……!”
놀란 쌍두 괴수가 여섯 개의 눈을 크게 뜨고 사방팔방을 주시했다. 그러나 한립은 다른 곳이 아니라 검은 산봉우리 위에 나타나 두 발로 보물을 지그시 밟고 서있었다.
고요하던 산봉우리의 은색 주술문자들이 요란하게 반짝였고 급작스럽게 투명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주변 공간이 왜곡되고 무언가 뜯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산봉우리가 쑥 꺼지며 한립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다음 순간, 쌍두 괴수의 몸 위로 회색빛이 반짝이고 검은 산봉우리가 괴이하게 나타나 거대 짐승을 짓눌렀다. 기함한 쌍두 괴수는 찍소리도 못하고 산봉우리에 깔려 지면으로 내리꽂혔다.
쿠앙!
천지가 진동하고 검은 산봉우리 밑으로 어마어마한 깊이의 구덩이가 파였다. 그리고 쌍두 괴수는 구덩이 중간에서 온몸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한립이 차갑게 눈을 빛내며 소매 속에서 비검 두 자루를 날려 지면의 쌍두 괴수의 목을 베었다. 괴이하게도 목이 잘려나갔는데도 새까만 살점이 드러날 뿐 피가 한 방울도 튀지 않았다.
한립이 감정 없는 얼굴로 또 한 번 산봉우리를 지그시 밟았다.
콰앙!
그러자 구덩이가 더욱 깊고 넓어졌다. 이에 쌍두 괴수의 시체는 사분오열이 되었고 깨알 같이 작은 검은빛으로 변해 흩어졌다. 그러나 이 검은빛들마저 멀리 가지 못하고 산봉우리가 방출한 회색 기운에 휩싸여 빨려 들어갔다.
한립은 미소를 머금고 검은 손을 휘저었다. 산봉우리가 신속하게 줄어들어 손바닥만 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한립을 보는 석곤의 시선이 달라졌고 슬쩍 와와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한립은 대수롭지 않게 웃어 보이고 와와를 향해 손짓했다. 백의 여인은 하얀 뱀으로 변해 다시 한립의 소매 속으로 숨어 들었다.
한립은 다시 날개를 펄럭여 이번에는 류수아에게로 이동했고, 석곤도 그제야 서둘러 노란빛을 번뜩이고 그쪽으로 향했다.
승기를 잡고 있던 류수아의 상황이 그 사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은안 암수 네 마리가 머리가 넷 달린 사두(四頭) 괴수로 변해 거의 성계급에 가까운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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