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997화 (754/2,000)
  • 997화. 각자 실력을 발휘하다

    *

    류수아도 눈을 빛내고 이동할 것을 제안했다. 이번에는 석곤도 반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오히려 한립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곳도 이곳보다 좋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두 분은 저희의 이동 속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석곤이 이상하다는 듯 묻자 한립은 직접적으로 답하지 않고 이렇게 물었다.

    “그럭저럭 빠르게 이동했지요.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지만요.”

    “그런 속도로 꼬박 하루를 날며 사방으로 의식을 퍼트렸는데 겨우 섬을 하나밖에 발견하지 못한 것이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라 빙빙 돌려 말하는 것을 싫어하니 똑바로 설명해주세요.”

    석곤은 답답하다는 기색으로 재촉했다. 이에 한립이 입 꼬리를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연허 후기에 오른 상대가 머리가 좋지 않다는 말은 전혀 신뢰할 수 없었다.

    “광한계 해역 자체가 특수해 다른 섬도 찾기 어려울 것이고, 찾는다고 해도 바다 요수가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것은 아닌지요?”

    그보다 먼저 류수아가 말을 받았다.

    “바로 그 뜻이었습니다. 저 섬에 서식하는 바다 요수는 상고 흉수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저희가 약간의 시간만 들이면 해치울 수 있는 수준이고요. 다시 다른 섬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들어보니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한 형의 말씀대로 하지요. 우리 셋이 힘을 합치면 동급 요수 한 마리를 잡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일겁니다.”

    “예, 제 생각에도 수사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석곤과 류수아 모두 동의했다.

    “만일을 대비하고 주변 바다 요수들을 경계하기 위해 우선 임시 진법을 펼치겠습니다. 요수를 해치우면서 벌어지는 소란을 가려줄 것입니다.”

    한립은 진법 깃발 한 벌을 꺼내 높이 던지고 수결을 맺으며 주술을 외웠다. 그러자 열댓 개의 깃발들이 각기 다른 빛깔로 변해 반짝이며 사라졌다.

    다음 순간 작은 섬을 중심으로 열댓 개의 굵은 빛기둥이 솟아올라 주변을 하얀 보호막으로 감싸버렸다.

    “신중을 기하기 위해 저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류수아가 노란 원반 형태의 법기를 날렸다.

    노란 원반은 하얀 보호막 보다 훨씬 더 높이 날아올라 그 위로 보호막을 펼쳤다. 한립의 진법 깃발이 만들어낸 보호막 위로 또 하나의 커다란 결계를 친 것이다.

    “이 정도면 안에서 땅이 꺼져도 주변 요수들이 눈치 채지 못할 겁니다.”

    류수아가 담담히 중얼거렸다.

    “하하! 덕분에 제가 마음 놓고 싸울 수 있겠습니다.”

    석곤이 크게 웃으며 짙은 노란색 갑옷을 불러냈다. 오래되어 보이는 갑옷은 그의 큰 몸을 거의 다 가리고 있었다. 노란빛으로 변한 그는 득달같이 우윳빛 금제 속으로 뛰어들어 섬으로 떨어져 내렸다.

    쿠쿵!

    그가 떨어진 숲을 중심으로 노란 파동이 퍼져나가며 굉음이 울렸다. 바위산과 거대한 나무 모두 노란 파동에 닿자 소리 없이 으깨져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잠시 후, 섬 하나가 반듯한 평지로 변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석곤이 오만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의 엄청난 일격에 류수아가 흠칫 놀랐고 한립도 눈을 가늘게 떴다.

    석곤이 합격술이고 뭐고 익히기 싫다고 한 것은 스스로의 실력을 자신해서였다. 그리고 실력을 보아하니 터무니없는 자만심 같지도 않았다.

    “석충족이 본래 단단한 육체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상족 경지에 이런 위력을 낼 줄은 몰랐습니다. 석 수사가 익힌 공법이 꽤나 비범한 모양입니다.”

    류수아의 말에 석곤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작은 섬이 심하게 떨리며 주변 바다에 검은 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쉬쉬쉬쉬쉭!

    여덟 개의 굵직한 검은 물체가 바다 속에서 솟아올랐다. 거대한 기둥처럼 보이는 기다란 물체는 표면에 빨판이 붙어 있었고 꿈틀거리는 것이 무언가의 촉수처럼 보였다.

    짙은 녹색 무늬의 거대 촉수들은 엄청난 크기의 빨판이 붙어 있었다. 이에 석곤이 즉시 땅을 박차고 튀어나가 그 중 하나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노란 칼날이 쏘아져나가 촉수를 베었다.

    서걱!

    노란 칼날이 촉수를 깔끔하게 베어내자 녹색 피가 용솟음쳤다. 그 모습에 석곤이 흐뭇하게 웃으며 다른 촉수로 신형을 날리려는데 섬 아래에서 괴성이 울려퍼졌다.

    석곤이 주춤하며 행동을 멈추었다. 촉수의 절단면에서 피가 멎고 녹색 기운이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전투 경험이 풍부한 그는 곧바로 멀리 물러났다. 녹색 기운이 괴이한 독을 품고 있을까 경계한 것이다.

    그러나 녹색 기운은 잘려나간 촉수 부위를 그대로 재생시키고 사라졌다.

    석곤은 얼굴을 찡그리며 다시 팔을 휘둘러 노란빛의 칼날을 날렸는데 이번에는 촉수 표면의 빨판들이 오므라들었다 펴지며 검은 기운을 방출했다.

    노란 칼날과 검은 기운이 충돌해 금속성의 날카로운 마찰음을 냈다. 노란 칼날은 검은 기운을 힘겹게 뚫고 들어가기는 했지만 촉수에 닿기 전에 흩어졌다.

    섬 밑에서 괴성이 점점 커지며 재생된 촉수가 석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아직 닿기 전인데 먼저 풍압이 밀려들었다. 이에 석곤이 기합을 넣으며 촉수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이번에는 한립과 류수아 모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똑똑히 보았다.

    석곤의 주먹은 순간적으로 대여섯 배로 부풀어 올랐고 노란 주술문자가 피부를 타고 흐르며 폭발했다. 그 기운이 파동으로 변해 퍼져나갔다.

    노란 파동에 닿은 거대 촉수는 무형의 기운에 휩싸여 붕괴되었다. 조각조각 갈라진 피부 틈으로 녹색 피가 터져 나왔는데 그마저도 노란 파동 속에서 가루로 변해 흩어졌다.

    이번 일격은 작은 섬을 내려쳤을 때보다 더 위력적이었다.

    바다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바다요수가 크게 노했는지 석곤을 향해 나머지 촉수들을 전부 휘둘렀다. 순간 검은 돌풍 속에 석곤의 모습이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저희가 나서지 않아도 석 수사 혼자 충분히 요수를 제압할 수 있겠습니다.”

    상황을 주시하던 류수아가 담담히 말했다.

    “확실히 석 형의 능력이라면 저 바다요수에게 당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수가 불멸체 신통을 지닌 것 같으니 우리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 직접 본체를 제거하지요. 시간을 끌어 좋은 일은 아니니까요.”

    “제가 물 속성 공법을 익혔으니 본체를 처리하는 것을 맡겨주십시오.”

    “선자께서 그러길 원하신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남색 빛줄기로 변해 해수면 아래로 종적을 감추었다. 그와 동시에 풍압과 검은 촉수가 작은 섬을 뒤덮으며 폭음이 연달아 울렸다. 눈을 찌를 듯한 노란빛이 검은 돌풍을 헤집고 다니며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고, 그 덕에 금제 표면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굉음 속에서 석곤의 흥겨운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말로만 듣던 전투광(戰鬪狂)이란 말인가.”

    한립은 쓴웃음을 지으며 기운을 날려 우윳빛 보호막에 흡수시켰다. 그러자 미세하게 떨리던 금제가 안정을 되찾았다.

    석곤이 신이 나서 날뛴 덕에 섬 위쪽의 촉수들은 전부 가루가 되었지만 녹색 기운이 피어올라 끊임없이 촉수를 재생했다. 한동안 대치가 계속 될 듯했다.

    그때 섬 아래에서 참혹한 요수의 비명 소리가 울리고 해수면이 요동쳤다. 그 여파로 파도가 거세게 일어나 섬 쪽으로 밀어닥쳤다. 이런 강력한 파랑(波浪)이 작은 섬을 덮치면 일부가 바다에 잠겨 버릴 수도 있었다.

    이에 한립은 손을 펼쳐 오색 한염 다섯 줄기를 뿜어냈다. 오색 한염이 흘러들어가자 섬을 둘러싼 우윳빛 보호막이 오색으로 변했다.

    그때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 섬 주위에 거대한 남색 얼음벽이 나타났고 세찬 파도가 얼음벽을 강타했지만 맥없이 튕겨나간 것이다. 섬이 무사하자 한립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거두었다.

    그 순간 섬에서 굉음이 울리고 누군가 날아올랐다.

    “바다요수가 어째서 공격을 멈춘 것입니까? 설마 류 수사가 나선 것입니까?”

    두 말할 것도 없이 석곤이었다.

    한립이 대답을 해주려는데 해수면 위로 보글보글 검은 거품이 올라오고 새까만 요수의 시체 떠올랐다. 검은 피부를 지닌 거대 문어였다.

    거대한 문어의 머리 부위는 뜻밖에도 사내의 상반신으로 되어 있었고, 두꺼운 손은 기다란 창을 쥐고 있었다.

    휙!

    남색 빛줄기가 그 옆에서 날아올라 한립과 석곤에게 다가왔다.

    “역시 류 선자께서 나선 것이었군요. 이렇게 빨리 요수를 처리하다니 솜씨가 좋으십니다.”

    석곤이 눈을 번득였다.

    “뭘요. 석 형께서 요수를 자극해주셨기에 쉽게 빈틈을 노릴 수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한 수사의 신통에 놀랐습니다! 바닷물을 응결한 얼음벽이 거의 성을 이루었던데요.”

    여인은 작은 섬 둘레의 거대한 얼음벽을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하하, 요수를 멸했으니 서둘러 금제를 거두고 섬에 자리를 마련하시지요.”

    한립이 웃음을 터트리며 상황을 정리하자 다른 이들도 행동에 들어갔다. 석곤은 섬으로 내려갔고 한립과 류수아도 펼쳐 놓은 금제를 거둬들였다.

    “한 형, 얼음벽이 너무 눈에 띄는데 그대로 둘 수는 없을 듯합니다.”

    여인이 아래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럴 수야 없지요.”

    한립은 입에서 은색 화염을 뿜었다. 은색 화염이 데구루루 굴러 작은 불새로 변해 얼음벽으로 쇄도했다. 불새에 닿자 놀랍게도 꽁꽁 얼어있던 거대한 얼음벽이 눈 녹듯이 녹아 출렁이는 바닷물로 돌아갔다.

    일다경 만에 섬을 둘러싼 얼음벽은 깨끗하게 제거되었다.

    “얼음과 화염의 신통을 모두 지니고 계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은색 불새가 한립의 소매 속으로 들어가자 이를 지켜보던 류수아가 놀라워했다.

    “대단한 재주도 아닌걸요.”

    한립이 대충 답하며 섬으로 하강하자 류수아는 미간을 좁히며 남색 빛줄기로 변해 따라갔다. 벌써 섬에 내려가 있던 석곤도 얼음벽이 녹아내리는 것을 보았지만 지극히 평온한 표정이었다.

    전투를 벌이며 흥분해 날뛰던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 바로 합격술을 연습하도록 합시다.”

    석곤은 그들이 내려서자마자 재촉했다.

    “좋습니다! 그러나 합격술은 위력을 보조할 뿐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의 원자신광입니다. 원자신광이 가장 강한 사람이 비술을 주관해야 합격술을 극성으로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선 서로의 원자신광을 보고 누가 비술을 주관할지 결정을 내리지요.”

    “바라던 바입니다. 류 선자께서는 선천적 원자체를 지녔다던데 제가 후천적으로 이룬 성취와 비교해보고 싶군요.”

    “장단점이 있겠지요. 선천적 원자체는 세밀한 조종이 가능한 대신 위력을 높이기가 어렵지만 후천적 원자체는 외부의 도움을 받아 강력한 위력을 내는 경우가 많지요.”

    류수아가 차분히 말했다.

    “하지만 선천적 원자체는 수련을 통해 수행을 높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제가 원자체가 되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다고요. 그러고 보니 한 수사의 경우는 또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원자의 보물을 이용해 원자신광을 펼칠 수 있다는데 사실입니까?”

    석곤이 한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맞습니다. 제 원자신광은 두 분에 비할 바가 아니니 굳이 겨루어 볼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시다면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류 선자, 우리끼리 실력을 겨뤄 봅시다!”

    한립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석곤이 대결을 서둘렀고, 류수아 역시 말없이 먼저 허공에 몸을 띄웠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도 후천적 원자체라는 것이 궁금하기는 했다.

    석곤도 노란빛을 내며 여인과 멀리 떨어진 허공으로 솟구쳤다.

    대결에 끼지 않기로 한 한립만이 잔영을 남기며 뒤쪽으로 멀리 물러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합격술을 누가 주관할 지는 관심 밖이었으나 그들의 원자신광이 얼마나 강한지는 알아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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