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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994화 (751/2,000)

994화. 합격술(合擊術)

*

“이 아이가 전에 말했던 원자체를 지닌 수사 중 한 명일세.”

“당시에는 귀 종족의 객경으로 머물고 있다고 들었는데 제자셨습니까?”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아이가 마음에 들어 작년에 제자로 들였다네.”

그의 의아한 눈빛에 채류앵이 싱긋 미소 지었다.

“아, 그러셨군요.”

“내가 단지 광한계 일 때문에 이 아이를 제자로 들였다고 여기는군.”

“제가 어찌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어찌 생각하든 상관없네. 허나 결코 이 아이에게 내 제자가 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은 장담할 수 있네.”

“진심으로 사부님의 문하에 들어가고 싶어 결정한 것이 맞습니다.”

채류앵의 말에 삿갓 여인이 비로소 입을 열고 말했다. 저음의 목소리가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녀의 말에 한립이 머쓱해 하며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는 서로 안면을 익혀 광한계에서 잘 협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온 것이라네.”

“혹여 광한계 개방이 얼마 남지 않은 것입니까?”

온화한 채류앵의 설명에 한립이 무언가를 눈치채고 반문했다.

“예상대로네. 이변이 생기지 않는다면 한 달 후면 광한계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야.”

“그렇게나 빨리 말입니까?”

“따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가?”

“그건 아닙니다. 그저 수십 년만 더 수련하면 법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려 광한계에 들어가 수행을 높일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하긴 좋은 기회를 놓치는 셈이지. 허나 아직 상족 7계인 자네가 수련의 고비를 넘는 것은 어차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나. 나와 단 형이 자네에게 보상을 약속했으니 과욕을 부리는 일은 없어야 하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이제와 광한계 임무를 거부한다면 선배님이 아니라 천기자 선배님부터 저를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안다니 다행일세. 오늘 찾아온 또 다른 이유는 광한계와 금제 유적에 대해 일러줄 것이 있기 때문이네. 필요한 법기와 보물도 준비해야 하고.”

채류앵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고 화제를 돌렸다.

“귀 기울여 듣겠습니다.”

한립도 바라던 바였기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대답했다.

“광한계에서 주로 경계해야할 점들은 말하지 않겠네. 이런 것은 출발 전 따로 설명해줄 사람이 있을 것이니, 나는 당시 내가 광한계에 들어갔을 때 알게 된 소소한 위험들에 대해 말해줄 것이야.

우선 광한계에 진입하면 특별히 춥거나 뜨거운 지역으로는 걸음하지 않는 것이 좋네. 극음이나 극양의 체질을 타고난 흉수(凶獸)가 서식하거나 강력한 금제가 펼쳐져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또한 만일…….”

채류앵의 이야기는 일다경 가량 지속되었다. 한립은 물론 삿갓 여인도 정신을 집중해 듣고 있었다. 목숨이 걸린 일이니 작은 세부사항도 놓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기억할 것은 멀리서 괴이한 새빨간 구름을 보면 바로 최대한 멀리 달아나야 한다는 것일세. 머뭇거리다가는 반드시 목숨을 잃게 될 테니까. 구체적인 이유는 때가 되면 직접 알게 되겠지.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네. 잘 기억하겠는가?”

“잘 기억해두겠습니다. 선배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만 돌아가야겠군. 그럼 광한계에 진입하는 날이 돼야 얼굴을 볼 수 있겠군.”

채류앵이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삿갓 여인이 그녀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이에 한립은 배웅하려고 그들을 따라 일어섰다.

“우리가 알아서 갈 것이니 그러지 말게. 괜히 다른 수사들의 이목을 끌어 좋을 것 없네.”

“예, 그럼 이번에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채류앵의 단호한 어투에 한립도 고집하지 않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제자와 함께 걸음을 떼려던 여인이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하아, 내 정신 좀 보게. 한 가지를 깜빡했군!”

“말씀하시지요.”

“이것을 잘 챙겨두게. 일종의 합격술(合擊術)이 적혀 있는데 되도록 출발 전에 숙지하는 것이 좋을 것이야. 광한계에 들어가면 자네 셋은 서둘러 출발하지 말고 우선 원자신광을 하나로 뭉치는 비술을 연습하게.

금제를 파훼하는데 꼭 필요하기도 하고 강력한 적을 만나면 큰 위력을 발휘할 걸세. 원래는 미리 연습시킬 생각이었는데 운성에 보는 눈이 많아, 따로 내용을 익히고 광한계 안에서 합을 맞춰 보는 것으로 결정했네.”

채류앵은 하얀 옥 조각을 던져 주었다.

“합격술!”

한립은 옥 조각을 받아들고 조용히 의식을 불어넣었다. 합격술은 이전에도 들어본 비술이었다. 단지 협공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힘을 합쳐 싸우는 비술을 익히는 것으로 위력이 크게 증가되는 보기 드문 공법이었다.

한식경 후 그가 옥 조각에서 의식을 회수했을 때는 대청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채류앵이 삿갓 여인을 데리고 먼저 자리를 뜬 것이다.

한립은 당황하지 않고 푸른 기운을 일으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밀실 허공에서 금빛이 번쩍이고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삼두육비 금색 괴물과 보랏빛의 한립원영이 각각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립이 나타나자 곧바로 눈을 뜨고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너희가 어느 정도 수행에 이른 다음에 광한계 들어갔으면 좋았을 것을. 어쩔 수 없지! 꼭 필요한 몇 가지만 준비하고, 원합오극산 중 원자극산(元磁極山)을 제련하는 일을 서둘러야겠구나.”

한립은 삼두육비의 금색 괴물을 향해 금빛을 뿜었다. 그러자 괴물의 몸에서 불경 소리가 들리고 조각조각 갈라지며 수많은 금색 주술문자와 검은 기운으로 변했다.

금색 주술문자는 한립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검은 기운은 요동치며 새까만 원영으로 응결했다. 한립의 두 번째 원영, 마영(魔嬰)이었다.

마영은 생글생글 웃으며 몸에서 보랏빛을 반짝였고 천외마갑을 입고 있었다.

한립은 미소를 머금고 한 손을 뻗어 마영을 소환했다. 마영의 몸에서 검은빛이 반짝이고 그대로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진귀한 재료를 모아 범성진마법상의 몸을 어느 정도 응결했을 때 한립은 놀라운 발견을 했다. 육신이 없는 마영이 손쉽게 법상의 몸에 깃들 수 있고 그 마기를 빌려 그간 정체되어 있던 현음마기를 수련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욱이 마영은 마공을 익히며 쉼 없이 마기를 내뿜어 법상을 단련했기에 서로에게 득이 되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마영을 법상에 깃들게 했다.

그저 마영의 수행이 낮은 것이 안타까웠다.

본체와 비슷한 경지를 이루었다면 법상에 깃들어 신외화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강적을 만났을 때 큰 전력이 되었을 것이다. 평범한 수사가 원영기에서 연허기에 이르는 길은 멀고 험난했다.

하지만 한립의 주 원영이 직접 수련하며 얻은 깨달음을 전수해주었고 진귀한 단약으로 보조하니 제2원영의 수련 속도는 이제 본체를 뛰어넘었다.

수련의 고비가 있기는 했지만 평범한 수사들보다는 쉽게 넘어갈 수 있었고, 이전에 고비를 넘기면서 얻었던 깨달음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인족이든 이종족이든 수행이 일정 정도 쌓여 스스로 더 정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신외화신이나 제2원영 같은 것을 제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자신을 만들어내는 일은 엄청난 대가가 필요했고 대부분은 남은 수명을 이 일로 허비하곤 했다. 그래서 신외화신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기껏해야 두어 명밖에 만들지 못했고 수행도 본체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한립의 제2원영은 법상의 마기에 흠뻑 잠겨 수많은 단약을 복용한 덕에 벌써 원영 중기의 최고봉이었다. 언제든 원영 후기에 이를 수 있는 상태였다.

이제 광한계 개방을 앞두고 있으니 급할 것 없었다. 광한계로 데려가 수련 고비를 넘기고 원영 후기로 나아가게 하면 그만이었다. 연허급 존재도 합체기로 이끄는 농염한 영기라면 겨우 원영기 고비는 손쉽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계획을 세우며 그는 또 다른 한립을 보고 눈을 빛냈다.

“지선의 몸이 신외화신과 체신(替身)을 만들기에 최상의 재료였을 줄이야! 게다가 신비한 병의 액체를 지선이 직접 흡수해 정순한 영력으로 받아들이다니. 그 덕에 법력이 하루가 다르게 불어 겨우 몇 년 사이에 제대로 된 고비도 거치지 않고 연허 중기에 이르지 않았던가!

천지영물이란 본래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버텨 영성을 얻고, 거기다 화형을 하려면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똑같은 천지영물인데 구곡영삼은 원기를 회복하는 데만 효과가 있을 뿐 법력은 늘지 않는 것일까? 지선의 특수한 능력 탓인가 아니면 인형 영약의 신통 때문인가?”

한립은 미간을 좁히고 한참을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흠, 어찌 되었든 크나큰 기연을 만난 것이 분명해! 본체의 수련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또다시 원신(元神)을 분리해 신외화신을 만드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몸을 대신할 ‘체신’을 제련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 이후 원영으로 육체를 조종해 강적을 상대할 수 있을 테고 말이야.”

신비한 병의 액체가 지선의 법력을 높여준다는 것을 알고 한립이 내린 결정은 간단했다. 합체기 수준까지 법력을 높일 수 있을지 지속적으로 배양해보는 것이었다.

깨달음 없이 법력만 불어난 것이라 ‘반(半) 성계’의 경지에 불과하겠지만 그의 원영이 직접 육체를 부린다면 엄청난 신통을 바탕으로 합체기 수사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체신의 법력이 계속 늘어나 대승기 존재와 필적하게 된다면 한립은 영계에서 두려울 것이 없어진다. 물론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가설에 불과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런 역천의 경지까지는 불가능할 듯했고 합체기 혹은 연허기 최정상이 한계일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금뢰죽을 키울 때도 만 년까지 효과를 보이다 이후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지.’

또한 정순한 법력을 지선의 몸뚱이에 쌓는다고 다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차오르면 단전과 경맥을 돌게 연화시켜줘야 했다. 혼백이 없는 지선의 텅 빈 육체는 스스로 이런 일을 할 수 없었다.

한립은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보랏빛 ‘한립’을 향해 명했다.

“곡아, 그간 고생 많았다. 한동안은 법력을 연화할 필요가 없으니 나오거라. 앞으로 한 달 간은 영약을 배양하던 것을 멈추고 신비한 영액을 모두 지선의 몸에 쏟아부어 천천히 연화시켜야 할 것이야.”

“알겠습니다, 공자.”

앳되고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고 예닐곱 살짜리 여자 아이가 보랏빛 ‘한립’의 머리 위로 빠져나왔다. 하얀 치마를 입고 머리를 곱게 묶은 아이는 굉장히 귀여웠다.

“광한계에 너도 데리고 갈 것이다. 그러니 약재 밭으로 돌아가 푹 쉬고 있으면 된다.”

“정말 저도 같이 가도 됩니까?”

여자 아이가 순박한 얼굴로 좋아했다.

“광한계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네 원신이 이미 사람의 모습을 갖추었으니 어찌 두고 갈 수 있겠느냐. 누군가 내가 없는 사이 동부를 침입하면 들키고 말 것인데.”

“너무 좋습니다! 이렇게 변하고 나니 바깥 구경이 너무 하고 싶어집니다.”

“하하, 그럴 만도 하지! 허나 나와 같이 나서기 전까지는 약재 밭에 머물며 다른 이들의 이목을 피해야 한다. 한동안 거처를 드나드는 이들이 있을 것이야.”

“알겠습니다. 당장 약재 밭으로 가 휴식을 취하겠습니다!”

곡아가 한립의 말에 화들짝 놀라 겁먹은 얼굴로 답했다. 여자아이는 신형이 모모해지며 하얀빛으로 변해 자취를 감추었다. 곡아는 구곡영삼의 원신이 변신한 것이었다.

구곡영삼이 일찍 지능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선이 돕겠다고 약조하기는 했지만 지선의 혼백이 윤회에 들고 겨우 1년 만에 흰 토끼가 여자아이의 모양을 갖추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짐작컨대 지선은 미리 말한 것 외에도 막대한 도움을 주고 간 것이 분명했다. 이에 한립은 구곡영삼에게 곡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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