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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985화 (742/2,000)

985화. 현천여의인(玄天如意刃)

*

“이제 보고할 것이 있으면 하게.”

“그간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사소한 일들은 저희가 상의해 처리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는 성조 대인께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마수들이 시선을 교환하다 철시마가 입을 열었다.

“그래, 들어보자꾸나.”

“대인께서 부서진 현천여의인(玄天如意刃) 조각들을 저희에게 보관하라 이르시지 않았습니까. 그중 제가 보관하던 것을 성계 마원이 훔쳐 달아났습니다. 백방으로 찾아 헤맸으나 어디 있는지 지금은 모릅니다.”

철시마가 머뭇거리며 겸연쩍은 얼굴로 말했다.

“현천여의인 조각을 도둑맞았다고? 마원은 정체가 무엇이기에 산맥으로 숨어든 것이냐?”

여인의 목소리에 약간의 놀람이 묻어났다.

“대인께서 계면통로를 여실 때 얼떨결에 딸려 온 추격병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원의 은신술이 뛰어나 수년간 저희의 이목을 속이고 산맥에 숨어 살다 이런 짓을 벌였지요. 제 실수로 귀한 보물을 잃어버렸으니 벌을 내려 주십시오.”

“하하, 현천여의인은 부서져 위력을 거의 잃었네. 게다가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물건이었으니 잃어버려도 그만이네. 다른 일은 무엇인가?”

백의 여인이 침묵하다 가볍게 웃어넘겼다. 귀한 현천의 보물 조각을 잃었는데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감사합니다, 성조 대인! 다른 한 가지는 오래전 명라 대인이 부리던 흑연악이 얼마 전 성계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단속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대인의 생각을 여쭙고 싶습니다.”

철시마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 어리던 마악이 벌써 성계가 되었단 말인가? 기쁜 일일세. 안 그래도 곁에 두고 심부름할 아이가 필요했으니 이번에 같이 다녀오면 좋겠군.”

백의 여인의 웃음소리가 천상의 음악처럼 감미롭고 듣기 좋았다. 마수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 그럼 저희가 지니고 있는 현천여의인의 조각들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혈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겐 쓸모가 없으니 자네들이 쓰도록 하게.”

여인은 가볍게 손을 저으며 알아서 하라는 표시를 했다.

“감사합니다, 성조 대인!”

그 말을 들은 혈비와 다안마가 크게 기뻐하며 감사를 표했다. 아무리 작은 조각이라도 현천의 보물이었다. 철시마가 부럽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힐끔 보고 무언가를 생각했다.

“성조 대인, 산맥에 지금 지선이라는 영물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화형 마소와 동급이라는데 관심이 있으신지요?”

“화형 마소와 동급이라! 그렇다면 신외화신이나 원신을 깃들이는 수련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영물이 아닌가. 허나 정련을 하는데 꽤나 공을 들여야 하는 물건으로 알고 있네. 나는 한 동안 그럴 여력이 없으니 자네들이 거둬 쓰도록 하게.”

뜻밖의 소식이었으나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듣고 있던 다안마가 깜짝 놀라다가 희색을 드러냈다. 철시마와 혈비는 시선을 교환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다 끝났는가? 나는 한 달간 휴식을 취하고 산맥을 떠날 것이네. 산맥의 일은 앞으로도 예전처럼 자네들이 알아서 처리해주게.”

마수들이 보고를 마치자 여인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하얀 장포를 뒤로 펄럭였다. 눈앞에 분홍빛이 번진 순간 세 마수들은 어느새 석문 밖 대전 안에 서 있었다. 처음부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성조 대인의 수행이 온전히 회복된 것이 아닌데도 이성환월(移星換越)의 신통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군요. 확실히 산맥 바깥으로 나가셔도 큰 위험은 없겠어요.”

철시마가 안심했다는 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성조 대인께서 결심을 굳히셨으니 우리가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대인의 분부만 잘 수행하면 됩니다.”

생각에 잠겨 있던 혈비가 말했다. 그 때 다안마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머지 마수들을 훑었다.

“알고 보니 두 분은 화형 마소와 동급의 지선이라는 것을 쫓고 게셨군요. 성조 대인께서 우리에게 알아서 하라하셨으니, 능력껏 먼저 얻는 자가 주인입니다. 그럼 노부는 이만!”

다안마는 다른 마수들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검은 마풍으로 변해 대전을 벗어났다.

“저 늙은이가 아주 애가 타나 봅니다.”

철시마가 입을 비죽거리며 코웃음 쳤다.

“다안 형께서 우리보다 소식을 늦게 알았으니 서두를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아직 지선이 누구의 수중에도 들어가지 못 한 듯합니다. 아직 수하들에게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고, 철 형의 화신은 죽임을 당했으니 외지인의 손에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겠지요. 이번에 산맥 밖에서 들어온 자가 범상치 않습니다 그려.”

“정말 외지인 손에 들어갔을지는 아직 모르지요. 허나 다안 수사가 지금 나서봐야 늦었을 것이 뻔합니다. 외지인들은 산맥에서 한 달밖에 머물지 못하니 곧 떠날 것 아닙니까. 우리가 직접 나서도 이제 와서는 늦었지요. 이럴 줄 알았으면 인원을 더 파견할 걸 그랬습니다.”

혈비가 핏빛 눈을 번뜩이자 철시마가 후회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하하, 다른 이들의 이목을 끌까봐 일부러 최소한의 인원만 보내신 것 다 압니다.”

“어찌 생각하시든 혈비 형의 마음입니다만. 저는 먼저 돌아가 소식을 기다려 보겠습니다.”

철시마는 미소를 머금고는 곧바로 대전 입구로 날아갔다. 말없이 그것을 지켜보던 혈비가 피식 웃고는 촛농처럼 녹아 땅속으로 사라졌다.

* * *

한립이 변한 푸른 그림자가 평범해 보이는 먹구름 속에 숨어 있었다. 마금산맥 출구를 쳐다보는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흐음…….’

마금산맥의 출구는 기다린 텅 빈 공간으로 이곳을 통해 외부의 진법의 힘으로 마금산맥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출구와 가까운 허공에 백 마리는 될 법한 회색 그림자와 마기가 자욱한 것이 똑똑히 보였다. 고심하던 그는 보라색 부적을 꺼내들었다.

부적을 몸에 붙이니 보라색 안개가 퍼지면서 은색 주술 문자가 요동쳤다. 한립은 허상화 된 몸으로 구름을 떠나 천천히 전진했다.

그는 성계 마수가 아니면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거침이 없었고 주변 마수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파아앗.

그런데 그 때, 작은 유리 짐승이 몸을 번뜩였고 현란한 빛을 내뿜어 주변을 밝혔다. 몸이 뜨거워지며 놀랍게도 한립의 허상화가 풀리고 말았다.

뜻밖에도 태일화청부가 들킨 것이다.

갑자기 들켜버린 한립은 백여 마리의 마수들을 눈앞에 두고 안색이 달라졌다. 정체모를 빛에 허상화가 풀렸다니 그는 퍽 당황스러웠다.

‘내 위치는 어찌 알아냈단 말인가!’

그런데 그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출구의 다른 쪽에서 푸른빛이 반짝이고 익숙한 여인이 나타났다. 바로 섬섬이었다. 그녀는 무슨 은신술을 펼친 것인지 심지어 명청령안에도 걸리지 않고 마금산맥을 벗어나는 중이었다.

발각당한 그녀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한립은 재빨리 수결을 맺고 등 뒤에서 수정 날개 한 쌍을 펼쳤고, 섬섬도 당황한 기색을 지우고 입에서 은빛 찬란한 부적을 꺼냈다.

출구 양쪽에 매복하고 있던 거무튀튀한 마기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백여 명 중, 고계 마수들이 일시에 덤벼들어 기세가 대단했다. 합체기 수사라 해도 그들과 정면대결은 피할 것이다.

한립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날개를 펄럭여 청백색 수정실로 변해 허공을 꿰뚫었다. 그리고 은색 부적을 붙인 섬섬은 즉시 은빛으로 소실되었다.

마기가 몰려들고 청백색 수정실이 그 사이를 번뜩이며 사라졌다. 한립은 멀리서 유리광채를 방출하는 작은 짐승을 눈여겨보고 허공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섬섬이 그 뒤를 따라 바로 은빛 속에서 나타났다가 마수들을 향해 빙긋 웃고는 역시 몸을 날렸다. 백여 마리의 마수들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허공을 덮치고 말았다.

“이렇게 저들을 놓아주어야한단 말인가…….”

작은 짐승이 텅 빈 허공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우리가 실력이 부족해서 수사께서 만들어 주신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멧돼지처럼 생긴 마수가 중얼거렸다. 주변 다른 고계 마수들도 열을 받거나 민망한 기색이었다.

“어찌 수사들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저들의 은신술이 너무 신묘해 그 중 한 명만 발견하고 손을 쓴 것입니다. 다른 한 명은 전혀 감지할 수도 없더군요.”

“계속 매복하고 있어야 할까요?”

작은 짐승의 말에 다른 고계 마수가 걱정스레 물었다.

“그래야겠지요. 저들은 막지 못했어도 다른 외지인들이라도 잡아 돌아가야 할 말이 있지 않겠습니까.”

작은 짐승이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마수들도 일리가 있다고 여겼는지 즉시 흩어져 다시 몸을 숨겼다.

* * *

한립은 은색 빛에 휩싸여 날아가고 있었다. 은빛 보호막에 무수히 많은 푸른 뇌전들이 떨어져 내리며 빛이 요란하게 흩어졌다.

그 뒤로 은빛에 휩싸인 섬섬이 천둥소리를 내며 따라오고 있었다.

몇 시진 후, 옅은 안개 속에서 은빛 두 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커다란 은색 우산을 쓴 한립과 섬섬이었다.

“겨우 탈출했습니다. 진린본원도 얻지 못하고 괜히 법력과 보물만 잃었네요. 게다가 한 선배님께 크게 신세를 지고 말입니다.”

섬섬이 한립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섬 선자, 그리 상심할 것 없네. 많은 변수가 있었음에도 이렇게 살아나왔으니 운이 좋았네.”

그는 전혀 아쉬움이 없는 얼굴로 살짝 미소 지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 많은 고계 요수들을 뚫고 마금산맥을 벗어난 이들은 얼마 없을 겁니다. 어찌 되었든 이제 이곳을 어서 떠나시지요.”

섬섬은 고개를 끄덕이며 금제를 돌아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들은 곧바로 안개 깊은 곳을 향해 다시 날아갔다.

그들이 떠나고 약 한 시진 후, 뜬금없이 다른 방향에서 하얀 빛줄기가 날아들었다. 빛이 가시고 나타난 이는 투실한 노인이었다.

“겨우 반나절 자리를 비웠다고 그 사이에 산맥을 빠져 나간 자가 있진 않겠지? 그렇다면 내 류가 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그 늙은 미치광이는 중요한 일이 있다는데도 무슨 새로운 신통을 겨뤄보자고 난리를 치는지! 재수 없게 그 놈을 마주쳐서는!”

투실한 노인이 씩씩거리며 혼잣말을 해댔다.

그는 법력이 심후한 합체기 존재였지만 몇날며칠을 지키고 서서 기다리고 있던 목표를 놓쳤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한립이 운이 좋은 것인지 노인이 운이 없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곡 노인은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신형을 흐릿하게 바꾼 다음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한립은 섬섬과 함께 뇌운전을 지나 운해(雲海) 속으로 들어갔다. 반나절 후 그들은 운해를 벗어났고, 한 달 남짓이 지나자 웅장한 운성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들은 잠시 둔광을 멈추었다.

“섬 선자, 다른 이들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 성에는 따로 들어가는 것이 나을 것 같군.”

“확실히 저희가 함께 성 안으로 들어가면 너무 눈에 띄겠네요. 선배님께서 먼저 들어가시죠. 일각 후에 저도 따라 들어가겠습니다.”

“그러세.”

“아, 가시기 전에 성계 마핵을 주시겠습니까? 천외마갑을 수리하기 위해 비술로 마핵을 제련해 놓아야 해서요. 그래야 하루빨리 갑옷을 수리할 수 있을 겁니다.”

한립은 그녀의 말에 두말하지 않고 옥갑을 꺼내 던져 주었다. 섬섬의 얼굴에 순간 의아한 기색이 스쳤으나 바로 옥갑을 끌어왔다.

“한 선배님께서 이리 저를 믿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고생 끝에 얻은 것을 의심 없이 내어주시다니요.”

“그런 것보다는 섬 수사가 겨우 성계 마핵 때문에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것뿐이네.”

“어찌 되었든 믿고 맡겨 주셨으니 기대를 저버리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보름 후면 천외마갑을 수리할 준비가 끝날 것이니 점포에 한 번 들려주세요.”

“수고해주게.”

그들은 몇 마디 한담을 나누다 한립이 먼저 자리를 떴다. 푸른 빛줄기가 고공의 거대한 성으로 날아갔다. 그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단 섬섬은 한립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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