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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984화 (741/2,000)

984화. 꽃나무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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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끼리 추측을 해봐야 무엇 하겠습니까. 화신을 없앤 자를 잡아다 심문을 하면 자연히 알게 될 일인데요. 마지막으로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혈비 형의 따님도 근처에 있었다고 합니다.”

푸른 장포 사내가 담담히 말했다.

“허허, 설마 제 딸아이가 한 짓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니겠지요.”

혈포 거한이 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귀하의 따님뿐이라면 몰라도 막 성계로 진급한 마악이 힘을 보탠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겁니다.”

푸른 장포 사내는 거한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내뱉었다.

“뭐라고요?”

“정말 그 마악이 말입니까?”

이번에는 혈포 거한과 은색 장포 노인이 동시에 소리를 높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분도 수하의 보고를 받을 겁니다. 그리고 마금산맥에 다른 악어 마수가 있답니까? 당연히 그 흑연악(黑淵鰐)이죠.”

푸른 장포 사내가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설명했다.

“허어, 이런…….”

마악의 성계 마수가 되었다는 소리에 은색 장포 노인의 표정이 굳었다.

“앞으로 성가시겠습니다. 명라 성조의 탈 것이었던 내력이 있는 자가 아닙니까. 우리 성조께서 명라 성조와 교분이 깊으셨으니 우리가 함부로 손을 쓰기도 어려운데. 앞으로 얼마나 더 기고만장하게 나올지!”

혈포 거한도 눈썹을 찡그리며 탐탁지 않아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마악이 우리와 동급이 되었으니 성조 대인께서도 제멋대로 행동하게 놔두시지 않을 것 입니다. 이따가 슬쩍 성조 대인께 언급이나 해두십시다.”

푸른 장포 사내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성조 대인께서 깨어나시면 전부 그 분의 분부를 따르면 될 일이지요.”

은색 장포 노인도 수염을 쓸어내리며 동의했다.

“흠, 두 분 뜻에 저도 따르겠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혈포 거한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성조 대인께서 깨어나시려는 이 때에 한 분은 화신을 파견하고 다른 한 분은 딸아이를 다 내보내셨습니다. 바깥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라도 하시나 봅니다.”

은색 장포 노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느닷없이 이렇게 물었다. 그 말에 푸른 장포 사내와 혈포 거한이 움찔하며 시선을 교환했다.

“다안 수사, 서로 다 알면서 그렇게 묻지 좀 맙시다. 수사의 수하들도 마금산맥을 활개치고 다니고 있지 않습니까. 지선 때문이라는 것을 모를 줄 아십니까?”

혈포 거한이 눈을 굴리다 웃으며 반문했다.

“지선이요? 지선은 또 뭡니까? 노부는 아들을 죽인 흉수를 잡아 통한의 복수를 하기 위해 수하들을 파견한 것입니다!”

은색 장포 노인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매섭게 쏘아붙였다.

은색 장포 노인은 합체급인 성계 다안마였다. 노인은 한립에게 죽임을 당한 아들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왼팔과 오른팔인 구야와 오읍을 파견해 흉수를 추적하게 했다.

그 결과 구야는 홀로 추적하다 천외마군이 깃든 혈령에게 죽었고 오읍은 중, 고계 마수 떼를 이끌고 한립을 쫓다 갑원부가 변한 그림자 꼭두각시들에 속아 참살당했다.

나머지 마수들은 작은 짐승의 명령을 받아 서둘러 마금산맥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매복을 하고 한립 일행을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보니 다안마의 수라들은 다른 세력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살필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은색 장포 노인 홀로 지선에 대해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두 사내는 철시마와 혈비라 불리는 또 다른 성계 마수였다. 다안마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자 혈비와 철시마가 오히려 깜짝 놀랐다. 침묵이 흐르다 혈비가 신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안 형의 공자가 목숨을 잃었단 말입니까. 어찌 저희에게 알리시지 않고요.”

“그게 무슨 영예로운 일이라고 이곳저곳 알리고 다닌단 말입니까! 게다가 각자 며칠간 아주 분주하셨으니 제 소식을 모를 만도 하지요.”

다안마가 불쾌한 얼굴로 비꼬았다.

“크흠……. 이번에는 노부가 착각하여 괜히 수사를 탓 한 것 같습니다.”

혈포 거한이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꽤나 민망한 얼굴이었다.

“다른 것은 되었고 방금 말한 지선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는군요. 누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하하, 사실 별 일도 아닙니다. 천지영물 하나가 산맥으로 숨어들어 벌어진 일입니다. 굳이 설명 드리지 않아도 곧 아시게 될 겁니다.”

다안마가 덤덤하게 묻자 철시마가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려 했다.

“아아, 겨우 천지영물 하나 때문에 철 형과 혈비 수사께서 나서셨는데 별일이 아니라고요? 말해주지 않는다고 제가 모를 것 같습니까? 여봐라!”

짝짝!

다안마가 얼굴을 굳히고 손뼉을 두 번 쳐 수하를 불러들였다.

대전 바깥에서 검은빛이 반짝이고 녹색 갑옷을 입은 마른 사내가 걸어 들어왔다. 그는 은색 장포 노인에게 공손히 포권을 했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즉시 지선이라는 영물이 무엇인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 오거라.”

“예!”

다안마의 명령에 녹색 갑옷 사내가 푸른빛으로 변해 대전 문을 빠져나갔다. 그의 행동에 철시마와 혈비는 어색한 미소를 머금었다.

다안마는 그들의 표정을 힐끗 보고는 헛기침을 해 주위를 환기시켰다.

“지선의 일은 그만 되었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며칠 전 우리가 막아놓은 계면통로(界面通路)에 변화가 생겼다는 소식입니다. 성계에서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무슨 짓을 벌이나 봅니다.”

“계면통로가요? 성조 대인께서 일검에 허물어트리셨는데 그들이 어찌할 수 있단 말입니까?”

혈비는 조금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제 말을 못 믿으시는 것입니까?”

“계면통로와 관련된 중요한 소식인데 그저 확실히 하려고 물은 것입니다.”

다안마가 차갑게 반문하자 혈비는 그저 허허 웃음을 흘렸다.

“성계의 다른 성조가 현천의 보물을 지니고 있다면 다시 통로를 뚫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우리 성조 대인께서는 포위를 당해 물러날 곳이 없어 현천의 보물이 망가지고 수행이 크게 떨어지는 대가를 치르면서 강제로 계면을 열었던 것입니다. 다른 성조가 현천의 보물이 있다고 그런 희생을 하겠습니까?”

철시마의 말에 혈비가 단호하게 반박했다.

“장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쪽에 성조가 둘 이상이고 그들이 현천의 보물로 연달아 통로를 공격한다면 그런 희생을 치르지 않고도 계면통로가 뚫릴지 모르니까요.”

다안마가 진지한 얼굴로 의견을 밝혔다. 그 말에 혈비와 철시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만합시다. 아직 통로의 변화가 미미하고 계면통로가 뚫리려면 몇 년이 걸리지 모를 일 아닙니까. 맞서 싸우든 달아나든 성조 대인께서 직접 결정하실 일입니다. 그나저나 대인께서는 언제 깨어나실지…….”

철시마가 한숨을 내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기는 합니다. 어차피 우리야 계면통로의 변화를 막을 방법도 없으니까요. 성조 대인께서 무슨 방법이 있으실지 기다려 봐야겠지요.”

혈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파앗.

다안마가 수염을 쓸어내리며 막 무어라 말하려는데 앞쪽의 새까만 석문이 별안간 빛을 쏟아내었다.

“성조 대인께서 깨어나시려나 봅니다.”

혈비가 석문의 변화를 보고 소리를 높이자 고계 마수들은 모두 기쁨에 가득찬 얼굴로 석문을 바라보았다.

일다경 동안 반짝이던 석문의 빛이 점차 옅어지며 밝게 빛나던 주술 문자들이 사라져갔다. 세 마수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석문만 뚫어져라 지켜보았다.

쿠릉.

반 시진이 지나자 드디어 석문이 열렸다.

“셋 다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니 정성이 갸륵하구나. 모두 들어 오거라.”

낯선 여인의 목소리가 석문 뒤에서 들려왔다. 온화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에서 운율감이 느껴졌다. 반 쯤 열린 석문 사이로 분홍색 광채가 반짝여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성조 대인, 의식을 회복하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다안마가 앞에 나서 크게 외치자 다른 두 마수도 함께 허리를 숙였다. 세 마수는 들뜬 기색으로 나란히 석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석문 안에는 분홍 광채가 번져 완전히 다른 세상 같았다. 맑은 쪽빛 하늘에 녹음이 우거진 푸른 땅이 끝없이 펼쳐졌다.

그리고 초원 저 끝에 꽃나무 거목이 우뚝 서있었다.

보라색 나무에는 곤꽃을 닮은 분홍색 꽃이 커다랗게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아름다운 자태의 하얀 신형이 서 있었다.

멀리 떨어져 네 마수를 등지고 있었음에도 세상 사내들의 마음을 모두 훔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수들은 여인을 발견하고 다시 예를 올렸다.

“가까이들 오게.”

여인이 살포시 웃으며 꽃나무의 분홍색 꽃송이를 떼어내 던졌다.

펑!

거대한 꽃송이가 빙글빙글 돌다 터져 분홍 기운으로 퍼져나갔다. 그들은 순식간에 거대한 꽃나무와 가까운 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놀란 그들이 서둘러 대례를 올렸다.

“그만 일어들 나게. 나를 오래 따랐으니 내가 예법을 크게 따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것이야.”

“감사합니다, 성조 대인! 수행을 회복하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세 마수들은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다시 한 번 깊이 허리를 숙였다.

“축하받기는 아직 이르다네. 아직 절반 밖에 법력을 찾지 못해 그저 수련만으로는 되찾기 어려울 듯싶네. 영물의 도움이 있어야 해.”

여인이 짧게 탄식했다.

“영물이요?”

그 말에 세 마수들이 시선을 마주쳤다.

“그래, 그것도 평범한 것은 아니어야겠지. 영계도 성계 못지않으니 아마 찾을 수 있을 것이네.”

백의 여인이 살짝 고개를 들어 만발한 꽃나무를 바라보았다.

“대인께서 명만 내려주신다면 어떤 물건이든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철시마가 포권을 하며 충성심을 드러냈고, 혈비와 다안마도 마찬가지였다.

“하하, 자네들의 마음만 받겠네. 이곳은 성계가 아니니 어찌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겠나. 이미 성계의 존재라 수행이 낮은 영계인들은 자네들의 신분을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동급 존재를 만나면 금방 들키고 말 걸세. 내 직접 다녀오는 수밖에.”

침음하던 여인이 결정을 내렸다.

“대인께서 직접 말입니까?”

“절대 안 될 말씀이십니다. 아직 수행을 전부 회복하지도 못하셨는데 바깥에서 동급 존재라도 마주치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대인,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걱정하지 말게. 영계에서 나와 동급 존재를 마주칠 가능성은 희박하니까. 수행이 나 정도 되면 천겁을 대비해 거처에서 수련에만 매진하기 마련이지. 또한 절반의 법력으로 동급 존재를 물리칠 수는 없어도 목숨을 부지할 능력은 되네. 언제든 마지막 경지로 내딛을 수 있는 우리 같은 존재가 쉽게 목숨을 잃겠는가.”

백의 여인은 여유롭게 답했다.

여인의 말에 세 마수들도 더는 말리지 못했다.

“이곳을 나서지 않는다면 회복할 길이 없네. 이런 상태에서 성계의 적들이 넘어오면 저항할 수도 없을 것이고. 내가 다녀올 동안 자네들은 이곳에서 해줄 일이 있네.”

“무엇이든 분부만 내려주시지요, 성조 대인.”

다안마가 공손히 답했고 다른 두 마수도 귀를 기울였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성계의 계면통로가 열린 적이 있는가?”

“그간 아무 일도 없다가 얼마 전 갑자기 통로 너머에서 희미하게 파동이 전해졌습니다. 아주 미세한 반응이지만 성계 쪽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듯합니다.”

다안마 노인이 대답했다.

“그들도 회복했을 테니 슬슬 움직일 때가 되었지. 자네들에게 초대형 진법을 하나 알려주겠네. 계면의 힘을 배로 강화하는 효과가 있으니 그들이 통로를 뚫으려 해도 쉽지 않을 것이야. 진법을 설치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 이 일에만 전념해야 빠르게 완성할 수 있을 것이네.”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마수들이 기뻐하며 입을 모아 명을 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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