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6화. 영종(靈種)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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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체기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유혹이었다. 하지만 ’진린본원’이라는 말은 생전 처음 들어보았기에 반신반의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거대 괴물이 기괴한 소리를 냈다.
“크크크, 진린본원을 나눠 갖겠다고? 너희에게 그럴 기회가 있을 것 같으냐. 너희는 아직도 몸이 이상한 것을 모르겠느냐?”
그 말에 규 씨 사내와 섬섬이 흠칫 놀라 급히 의식으로 몸을 살폈다. 갑자기 규 씨 사내의 화신 둘이 비명을 질렀다. 피부 속에서 무수히 많은 검은 실들이 튀어나와 화신들을 파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 자리에서 검은 덩어리 두 개가 떠올랐다. 규 씨 사내의 화신들은 육신은 물론이고 혼백까지 잘려나가 검은 빛덩이에 흡수당했다. 그리고 은교는 몸이 터져 죽지는 않았지만 은빛으로 반짝이던 비늘에 검은 실들이 침투해 고통스럽게 울부짖다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푸른 기린 허상 역시 무수히 많은 검은 실들이 뚫고 나와 체형이 마구 줄어들며 마지막에는 섬섬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눈부신 푸른빛에 둘러싸인 그녀는 주변의 검은 실들을 겨우 버티고 있었다.
섬섬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운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어, 언제 이런 짓을 한 것입니까!”
이를 악문 섬섬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당연히 너희가 내게 삼켜졌을 때다. 이전에도 진린본원을 찾으러 온 것들을 이렇게 죽이곤 했지. 본 존의 체내에 들어온 너희에게 영종(靈種)을 심는 것은 너무 간단한 일이니까 말이야. 아직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몸이 목각인형처럼 뻣뻣해 졌을 것이다. 분수를 모르고 끼어든 저 놈만 제거하면 다음은 너희 차례라는 뜻이지.”
말을 마친 거대 괴물의 몸에서 천둥소리가 울리고 검은 뇌전들이 수많은 검은 검으로 변해 한립을 향해 달려들었다.
수백 개의 검들은 풍차처럼 검은 뇌전을 분출해 거대한 뇌전 그물이 되어 한립을 사방팔방에서 포위하며 다가왔다.
“검진.”
한립이 이상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콰릉!
거대 괴물이 기괴한 주술을 외는 동안 천둥소리는 더욱 거세졌고 검은 뇌전 그물은 촘촘히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한립은 한 손으로 허공을 쥐었다.
그러자 떨어져 있던 푸른 거검이 반짝이며 사라져서는 곧 한립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우웅!
맑은 울음소리가 울리고 거검이 72개의 푸른 검으로 변해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한립은 속으로 주술을 외웠다.
웅.
그러자 검들이 부르르 몸을 덜며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백 개의 검빛들이 허공에 떠올라 푸른빛을 머금고 각각 푸른 거대 연꽃으로 변해 그를 감싸안았다. 연꽃이 빙글빙글 회전해 푸른 검기들을 폭발적으로 쏘아 보냈다.
푸푸푹!
검은 뇌전 그물이 푸른 검기들에 종잇장처럼 찢겨졌다. 그러나 천둥소리가 울리고 찢겨나간 뇌전들이 하나로 뭉쳐져 다시 검은 뇌전 그물을 만들었다.
이에 한립의 안색이 달라졌다.
그때 거대 괴물이 교활한 웃음을 흘리며 방대한 육체를 꿈틀거렸다. 검은 빛덩이에서 굵직한 네 다리가 뻗어나오고 비대한 육체가 점점 새까만 기린의 형상을 갖추어 갔다.
거대 기린은 멀리서 보면 새까만 산으로 보였다. 거대 괴물은 기린의 이마에 박혀 요사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묵기린(墨麒麟)은 즉시 앞발을 들어 한립을 향해 걷어찼다. 그러자 한립의 머리 위에서 파동이 일며 새까만 짐승의 발이 나타났다.
짐승이 발이 떨어져 내리기 전에 먼저 거대한 압력이 들이닥쳤다. 푸른 검기 속의 한립도 몸에 철근이 박힌 것처럼 꼼짝 못했다.
그때 새까만 발이 떨어져 내렸고, 주변의 검은 뇌전 그물도 파치직 거리는 소리를 내며 지척에 이르러 있었다. 그러나 한립은 당황하지 않고 길게 숨을 들이마시며 전신을 금빛 비늘로 덮었다.
콰쾅!
그가 금빛 팔을 좌우로 휘두르자 굉음이 울리며 속박에서 벗어났다.
한립은 속박에서 벗어나 새까만 손으로 위쪽 허공을 쥐었다. 그러자 회색 거대 손이 허공에 나타나 손바닥을 펴고 떨어져 내리는 검은 발굽을 향해 날아갔다.
쿠릉!
회색 거대 손은 부들부들 떨면서도 검은 발굽을 막아냈다. 검은 빛과 회색 기운이 교전하며 폭음이 끊이지 않았고 괴이한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콰르릉 콰쾅!
동시에 한립 주변의 푸른 연꽃들이 수많은 뇌전들을 방출해 거대한 금색 뇌전 연꽃을 만들었다. 금색 연꽃은 뇌전을 층층이 발산하며 검은 뇌전 그물을 들이 받았다.
콰르르릉!
천둥소리가 울리고 두 개의 뇌전이 충돌해 검은 빛과 금빛이 주변으로 튀어나갔다. 한립이 거대 괴물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이에 거대 괴물이 멈칫하며 입을 벌렸다.
휘이이잉!
바람 소리가 울리며 묵기린 앞에 새까만 동굴이 나타났다. 그 안에서 검은 빛이 회전하며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대탄멸술입니다. 조심하세요!”
섬섬이 묵기린의 행동을 보고 대경실색해 경고했다. 그녀가 깃들어 있던 푸른 기린 허상도 비슷한 술법을 펼쳤지만 묵기린이 펼친 것과는 천양지차였다.
‘……!’
이미 심상치 않다고 느끼고 있던 한립은 섬섬의 말에 손바닥에서 검은 동산을 방출해 던졌다.
작은 동산은 날아가며 거산으로 변해 묵기린 못지않게 커졌고 태산과 같은 압력으로 떨어져 내렸다. 거산으로 인해 하늘이 가려져 주변이 어둑해졌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새까만 동굴에서 갑자기 검은 기운이 뻗어 나와 원자신산을 맞춘 것이다. 커다란 검은 주술문자로 변한 기운은 그대로 거산 속으로 흡수되었다.
검은 거산은 몸을 떨더니 갑자기 조그맣게 줄어들었고 새까만 동굴에서 흘러나온 기운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립은 화들짝 놀랐다. 원자신산과 감응이 미약해지며 거의 끊기기 직전이었다.
오랜 세월 정성을 들여온 원자신산이 이렇게 되었다는 것은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는 얼굴을 굳히고 주술을 읊었다. 그러자 손등에서 잿빛이 번뜩이고 산봉우리 문양이 떠올랐다.
파앗.
회색빛 속에서 검은 동산이 괴이하게 떠올랐다. 마치 처음부터 방출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허!”
이번에는 거대 괴물이 크게 놀랐다. 괴물은 원자신산이 백맥련보결로 한립의 손과 동화되었다는 것을 몰랐다. 원자신산은 만 리를 떨어져 있어도 소환만 하면 언제든지 불러들일 수 있었다.
한립이 다른 신통을 쓰려는데 대탄멸술이 진정한 위력을 드러냈다. 키득키득 거리는 괴이한 웃음소리와 함께 빛이 사라졌다.
‘이건!’
한립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비린내 나는 바람을 느끼며 떠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이 사라진 것처럼 어두컴컴했다. 그는 명청령안을 발동해 서둘러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주변은 여전히 텅 비어있었다.
꼭 낯선 공간으로 빨려 들어온 것 같았다.
‘제 자리에서 꼼짝 않고 있었는데 괴물의 뱃속으로 끌려 들어오다니!’
기이한 대탄멸술의 위력에 그도 피하지 못하고 걸려든 것이 틀림없었다.
가슴이 서늘해진 한립은 푸른 연꽃과 금빛 뇌전으로 먼저 두 겹의 보호막을 만들고, 마지막에는 수정 보호막을 펼쳐 철저히 방비했다.
정족 여인과 규 씨 사내가 어떻게 당했는지 보았으니 괴물이 영종을 심지 못 하게 한 것이다. 한립은 이곳에 잠시라도 더 머물 마음이 없었다. 그가 열손가락을 현란하게 움직이자 날카로운 푸른 검기들이 폭우처럼 사방에서 쏟아져 내렸다.
푸푸푹!
그러나 푸른 검기들은 얼마 가지 못해 늪에 빠진 것처럼 종적을 감추었다. 한립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수결을 맺었고 주변의 금빛 뇌전이 응결해 커다란 뇌전 교룡으로 변해 날아갔다.
콰르릉!
금색 교룡도 얼마 못가 금제에 충돌했고 태양처럼 밝은 빛을 내뿜으며 터졌다. 금빛 파장이 퍼지며 검은 공간이 극심하게 흔들렸다. 당장이라도 붕괴할 것 같았다.
하지만 무언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고 공간에 검은 동굴이 나타나 금빛을 모조리 흡수해버렸다. 검은 동굴은 형태가 왜곡되며 검은 방포를 입고 하얀 가면을 쓴 사내의 모습으로 변했다.
“크크, 달아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버리거라. 이전의 두 녀석은 내가 일부러 풀어준 것이지만 너는 어찌해도 달아나지 못할 테니.”
흑포 사내의 말소리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괴이한 웃음소리만은 또렷하게 들렸다.
“글쎄요! 저는 못 믿겠습니다만.”
눈을 가늘게 뜨고 사내를 주시하던 한립이 코웃음을 쳤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흑포 사내가 몸을 부르르 떨며 놀랍게도 목석처럼 뻣뻣해져 아래로 추락했다.
괴이한 신통을 지닌 흑포 사내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격이었다. 한립 등 뒤로 천둥소리가 울리고 수정 날개가 펼쳐졌다. 그가 가볍게 날갯짓을 하자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추락하는 흑포 사내 앞에 청백색 뇌전이 번뜩이고 한립이 나타나 푸른 장검을 휘둘렀다.
서걱.
흑포 사내의 얼굴이 가면과 함께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나버렸다. 한립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즉시 두 손을 교차해 금빛 뇌전을 분출했다. 두 동강 난 흑포 사내의 몸이 천둥소리 속에서 검은 연기로 흩어졌다.
그것을 본 한립은 드디어 입 꼬리를 끌어올렸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금빛 속에서 흩어지던 검은 기운이 독사처럼 꿈틀거리며 튀어나간 것이다.
벽사신뢰가 대부분을 막고 터트렸지만 뇌전들을 피해 빠져나간 일부가 하나로 뭉쳐져 왜소한 사내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흑포 사내와 똑같이 생긴 난쟁이들이 백 명이 넘었다.
그것들은 신형이 흐릿하고 깜빡거려 환영처럼 보이기도 했다. 순식간에 흑포 사내들의 포위에 갇힌 꼴이 되었다.
흑포 사내들은 손을 뻗어 한립을 향해 새까만 빛기둥을 쏘아 보냈다. 그러나 검은 빛기둥들은 한립 주변에서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이에 작은 흑포 사내들은 움찔했고 한립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원자신광이 오행의 힘을 억제하는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서늘한 기운을 품은 검은 빛기둥들은 물 속성을 기반으로 했기에 원자신광을 당해낼 수 없었다.
한립은 발밑의 푸른 연꽃에서 수많은 푸른빛을 쏘아 보내 주변의 흑포 사내들을 벌집으로 만들어버렸다.
“내 몸속에서 내 원신들은 불사신이다. 아무리 죽여도 끝이 없지!”
키득키득 웃는 거북한 웃음소리가 허공을 가득 채웠다. 그의 말대로 구멍이 뚫린 검은 기운들은 다시 수백 명의 흑포 사내로 변했다. 이번에는 더욱 작아져 손바닥만 했다.
한립은 매서운 눈초리로 금색 칼날 조각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마원이 갖고 있던 현천의 보물 조각이었다.
상대가 자신을 이곳에 가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끌려가서는 안 된다. 그는 칼날 조각을 발동해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대탄멸술이 아무리 신묘해도 천지법칙의 힘에는 대항할 수 없을 터!’
그의 몸이 금빛으로 빛나는 순간, 소매 속에서 무언가 울부짖었다. 불안감과 흥분이 공존하는 소리였다. 한립은 움찔하며 과감히 소매를 털었다.
후우우.
검은 팔찌가 소매 속에서 날아올라 무언가를 뿜었다.
검은빛이 반짝이고 나타난 것은 새까만 원숭이 제혼이였다. 제혼은 한립이 의식으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검은 기운을 흘리며 거대한 원숭이로 커졌다.
제혼은 두 눈이 새빨갛게 물들고, 머리 위로는 뿔이 솟아 있는 귀물의 형상을 띄었다. 그리고 등 뒤로 뻗은 세개의 날카로운 가시가 엄청난 기세의 음산한 기운을 풍겼다.
“혀, 형수(刑獸)!”
허공에서 기괴하게 키득거리던 목소리가 겁에 질려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리고 주변을 빼곡하게 매우고 있던 작은 흑포 사내들도 검은 안개로 변해 숨어버렸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한립은 어안이 벙벙했다.
크하하아앙!
그때 제혼이 변한 거대 귀물이 정신을 놓기라도 한 것처럼 음산하게 울부짖고 제 3의 요목(妖目)에서 핏빛 빛기둥을 발사했다.
짤랑.
핏빛 빛기둥이 허공에서 거대한 쇠사슬로 변해 무언가를 가두자 쇠사슬에서 천둥소리가 크게 울리고 핏빛 뇌전이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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