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4화. 현천연기술(玄天煉器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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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천과실이 사라진 순간 통로 속을 휘몰아치던 공간 폭풍도 힘없이 사라졌고 다시 마기가 가득 찬 상태로 돌아갔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허공을 쥐었다. 멀리 마기 속에서 주먹 크기의 푸른빛들이 반짝이더니 72자루의 작은 비검들이 돌아왔다. 괜히 현천의 보물 사이에 끼어들어 부서진 청죽봉운검이었다.
한립은 의식으로 세밀하게 비검들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검령화허의 신통 때문에 다행히 본 모습을 찾고도 크게 원기를 상하지는 않았다.
한립은 비검을 거둔 후 다른 곳을 가리켰다.
쉬쉭!
크고 작은 거무튀튀한 물체가 마기를 뚫고 날아왔다. 보라색 갑옷을 입고 있는 마원의 육체와 칼날 조각이었다.
마원의 육체는 바짝 말라붙어 있었고 입고 있던 갑옷은 마원이 죽으면서 위력을 많이 상실한 것 같았다.
한립은 갑옷의 가슴 부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 끝에서 회색빛이 반짝이더니 갑옷이 몇 개로 분리되어 마원의 육체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것은 곧 공중에서 한 번 선회하더니 보랏빛을 발했다. 아직 영성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한립은 진즉 그 갑옷의 심상치 않은 위력을 알고 있었다. 그는 허천정을 꺼내 푸른 실 뭉치를 뿜어 보랏빛 갑옷 조각들을 휘감은 뒤 거두어들였다.
그리고는 이내 목내이처럼 돼버린 마원의 시체로 향했다. 털이 수복한 마원의 피부는 어두운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는데 누가 보면 죽은 지 꽤 된 줄 알 것이다.
한립은 마원의 육체를 반으로 가를 생각으로 푸른 검기를 방출했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 달리 금속성의 마찰음이 들리고 검기가 튕겨져 나갔다. 이에 한립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것도 잠시, 그는 곧 푸른 검을 꺼내 시체를 향해 날려 보냈다.
검은 주위의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할 정도로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시체의 단전을 노리고 날아갔다.
턱!
둔탁한 소리가 나며 검 끝은 겨우 손가락 한 마디 정도만 파고들었다. 한립은 깜짝 놀랐다. 성계 마원의 육체의 단단함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검진에 가두고 싸우지 않았다면 손쉽게 처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합체 중기라서 그런지 이전에 싸웠던 각치족 합체 초기 수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상대가 부상을 입지 않았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한립은 다시 한 번 팔뚝에 금빛을 일으켜 직접 푸른 검을 쥐고 괴력을 발휘했다. 그러자 장검이 힘차게 울부짖으며 시체 속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칼끝이 단전에 이르자 한립은 힘껏 틀어 작은 구멍을 만들어냈다.
그가 손을 뻗어 검을 빼자 시체의 단전 부근에서 무언가 쉭! 하고 날아올랐다.
검은 수정 구슬은 은은한 검은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구슬이 발산하는 것은 정순한 진마기로, 바로 이번 여정의 목표였던 성계 마수의 마핵이었다.
‘이게 있으니 천외마갑 수리는 문제없겠지.’
아직 천외마갑의 위력을 잘 모르지만 손상된 마원의 보라색 갑옷보다는 뛰어날 것이다. 마원의 보라색 갑옷은 딱 봐도 전 주인이 완벽히 연화를 시켜놓아 다시 제련해도 위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다.
한립은 검은 옥함을 꺼내 마핵을 담았다. 옥함에 부적을 붙이자 금빛과 은빛이 번지며 흘러나오던 마기를 완전히 봉인했다. 저물탁에 옥함을 집어넣고 그는 보랏빛의 칼날 조각을 바라보았다.
“이게 현천의 보물이라고? 위력이 너무 떨어진데다 생긴 것도 이상한데…… 보물의 일부분이라 그런 것인가?”
한립은 일단 칼날 조각을 내버려두고 의식으로 체내를 세밀하게 살폈다. 그리고 수결을 맺어 온몸에 금빛을 일으켜 삼두육비의 법상을 불러냈다.
그는 몸과 법상의 상태를 살피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 법력의 절반을 소모한 상태라서 범성지마법상이 원래의 위력을 찾으려면 수십 년은 지나야 할 듯 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체내의 정혈을 이용해 현천과실을 보검(寶劒)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서 원기가 상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첫째 직접 현천의 보물을 발동하지 않고 법상이 대신했기 때문이고, 둘째로 현천의 검이 칼날 조각에 자극을 받아 스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보다 위력이 크게 줄었지만 마원을 죽이기에는 충분했다. 눈앞의 칼날 조각이 천지법칙의 힘을 통제하는 것은 맞지만 현천의 검과 위력 차이가 많이 나 한립은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춘려검진을 베어냈다는 것만으로도 보통의 통천령보와 비교할 수 없는 보물이었다. 칼날 조각 자체가 현천의 보물 중에서 위력이 낮은 것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현천의 검의 힘에 억눌렸던 것일 수도 있다.
한립은 보라색 칼날 조각을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팔뚝에 봉인된 현천의 검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지만 위력이 크게 떨어진 현천의 보물 조각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수행이 팍 떨어지고 육신을 잃은 마원조차 칼날 조각을 잘 다뤘으니 말이다. 한립은 심호흡을 하며 손에서 회색 기운을 뿜어 보라색 칼날 조각을 끌어오려고 했다.
펑!
뜻밖에도 회색 기운은 칼날 조각의 보라색 기운에 막혀 밀려났다. 이에 이어서 오색 한염을 방출했으나 오색 한염도 칼날 조각을 어쩌지 못하고 갈라지고 말았다.
놀란 한립이 고민하다가 손에서 금빛 기운을 뿜어냈다. 이번에는 보라색 칼날 조각이 얌전히 금빛 기운에 실려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보물은 투명하게 반짝였고 주변의 금빛 기운을 흡수하고 있었다. 기진맥진하던 칼날 조각이 기운을 차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보라색 칼날 조각은 금빛을 흡수하며 한립의 범성진마공에 동화되는 중이었다. 그것을 본 한립은 화들짝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기뻤다.
범성진마공의 마기를 주입하고 나면 칼날 조각을 바로 부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순한 마기를 반기는 것을 보고 칼날 조각이 마기의 물건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머뭇거리던 한립은 몸의 금빛을 더욱 키워 피부에 금빛 찬란한 비늘을 드러냈다. 범성진마공을 극성으로 운용해 금빛 기운을 칼날 조각으로 콸콸 쏟아 부어 준 것이다.
칼날 조각은 거리낌 없이 금빛을 흡수하면서 보라색에서 금색으로 변해갔다. 금빛을 흡수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칼날 조각도 더 밝게 빛났다. 결국 절반밖에 남지 않은 법력이 3분의 1이나 줄어들고 말았다.
한립은 즉시 금빛 기운을 흩어버리고 금색으로 변한 칼날 조각을 집어넣었다. 완전히 동화된 것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부릴 만 했다. 괜히 법력만 낭비한 것은 아니란 소리였다.
그는 생각을 정리하며 저물탁에서 가지각색의 단약들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전부 법력을 급속도로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단약이었다. 이걸로 최상의 상태를 회복할 수는 없겠지만 복용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의 손에서 비취색 빛이 반짝이고 최상급 영성이 나타났다. 정순한 영력을 흡수하기 위함이었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영석을 아까워할 때가 아니었다.
한립은 영력을 흡수하면서 단전에 구멍이 뚫린 마원의 시체로 시선을 돌렸다. 이리저리 살펴도 저물탁으로 보이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한립은 미간을 좁히며 검은 팔찌를 불러내 쏘아 보냈다. 검은 팔찌는 말라비틀어진 시체에 하얀 빛을 쏘여 저장한 다음 되돌아왔다.
그리고 한립은 빛줄기로 변해 몸을 날려 텅 빈 대청으로 돌아갔다. 부서져버린 진법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핏빛 침상만이 구석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의식으로 대청 구석구석을 살펴본 한립은 손을 뻗어 핏빛 침상을 가까이 불러들였다. 육안으로는 별 다른 점을 찾지 못해 의식으로 훑으려 하니 침상 표면에서 의식을 튕겨냈다.
그러나 한립은 오히려 웃음을 머금고 명청령안을 발동했다.
‘흐음…….’
그는 신중한 얼굴로 법결을 날렸다.
파아앗!
신비하게도 침상에서 핏빛이 터져 나오고 주먹 크기의 은색 고대문자들이 떠올라 문장을 이루었다.
“은과문!”
‘어찌 은과문이 여기서 나타난 거지?’
의아했지만 고대 문자들을 빠르게 훑어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현천연기술(玄天煉器術).”
한참 후 한립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대충 살펴보니 은과문은 한 번도 본적 없는 신비한 연기술(煉器術)을 다루고 있었다. 일부 내용만 보았는데도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기술된 재료나 제련 방식은 그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고, 은과문 경문(經文) 마지막에는 이렇게 만든 보물은 현천의 보물에 비견되며 이것을 ’현천연기술’이라 부르고 있었다.
바다를 녹이고 해를 제련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간단한 제련 방법이었으니 진선계의 진선이 되기 전까지는 시도도 해보지 못할 일이었다. 자세히 내용을 살필수록 실망감도 커졌다.
경전이 은과문으로 쓰여 있지 않았다면 마원이 자신을 골탕 먹이려 꾸며낸 것이라고 의심했을 것이다. 한립은 달갑지 않은 눈빛으로 명청령안을 발동해 핏빛 침상을 다시 훑었다.
그런데 잠시 후, 무언가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신형이 흐릿해지며 핏빛 침상 위에 나타나 다섯 손가락에서 금빛 뇌전을 분출했다.
콰르릉!
수많은 뇌전들이 그물처럼 핏빛 참상에 떨어져 내렸다. 은색 주술문자들은 천적을 만난 것처럼 수축하다 흩어졌고 핏빛 침상도 짙은 피비린내를 흩날리며 갈라졌다.
한립은 미간을 좁히며 다섯 손가락을 오므려 금빛 뇌전을 한데로 모았다. 그러자 뇌전들이 몰려들며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핏빛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손바닥 크기의 우윳빛 옥패만이 둥실 떠있었다. 옥패 표면에는 은색 주술문자들이 가득했다.
“역시 금궐옥서 외장이 맞았군. 그런데 금궐옥서 진본이 어째서 마원의 손에 있는 걸까?”
이것은 그가 얻은 세 번째 금궐옥서 진본이었다. 아쉽게도 적힌 내용이 현실과 동떨어져 대승기 이후는 되어야 써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천연기술을 펼칠 수 없다고 해도 그것을 연구해 얻게 되는 깨달음이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한립은 마음을 정하고 푸른 기운을 쏘아 보냈다. 푸른 기운이 몰려들자 옥패가 빙그르르 돌아 위쪽으로 빠져나가려 들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한립은 번개처럼 손을 뻗었고 무형의 힘이 옥패를 덮쳐 끌어들였다.
그는 저물탁에서 옥함을 꺼내 옥패를 조심스럽게 넣은 후 금제 부적을 여러 장 붙여 넣어두었다.
모든 일을 마치고 한립은 푸른 빛줄기로 변해 대청 밖으로 쏘아져 나가 마기 통로를 따라 날아갔다. 둔광 속의 그는 최상급 나무 속성 영석을 쥐고 흡수하고 있었다.
복용한 단약들도 슬슬 효과를 발휘해서 정순한 영기가 가득 퍼지는 중이었다. 그는 서금충의 위치를 감응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곳으로 가면 섬섬이 위험을 무릅쓰고 마금산맥에 온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전 마원과의 전투는 치열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오랜 시간을 허비 하지 않았기에 따라잡을 수 있었다.
서금충이 아직도 한곳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정족 여인은 아직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듯했다. 그가 비록 마원과의 전투에서 법력을 많이 소모하기는 했지만 정족 여인을 두려워할 까닭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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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를 빠르게 지나 절반 정도 갔을 때 엄청난 굉음이 울리며 산 전체가 흔들렸다. 통로 안의 마기들이 마구 요동치더니 광풍 속에서 새까만 바람의 칼날이 되어 사방을 난도질 했다.
한립이 흠칫 놀라 소매 속에서 회색 기운을 불러내 몸을 보호했다. 아무리 바람의 칼날이 매서워도 원자신광 앞에서는 힘없이 허물어졌다.
히히히잉!
그런데 갑자기 말 울음소리 같은 기이한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
그 소리를 듣자마자 웬일인지 온몸의 법력이 굳어 법술을 펼칠 수가 없었다. 이에 회색빛이 흩어졌고 한립은 추락하며 검은 바람의 칼날에 마구 베였다. 다른 수사였으면 여기서 이미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합체급 마수와 맞먹는 단단한 몸을 가진 그의 몸은 바람의 칼날을 죄다 튕겨냈다. 한립은 대연결을 운용해 얼어붙은 몸 안의 법력을 정상으로 되돌렸다.
콰릉!
그가 다시 푸른 빛줄기로 떠오르자 통로 바닥이 갈라지며 칠흑 같은 뇌전들이 튀어 올랐다. 한립은 움찔하며 들고 있던 영석을 회수하고 수결을 맺어 금은색 뇌포를 불러냈다.
콰르르!
하지만 대량의 검은 뇌전을 맞은 마기 통로는 달랐다.
바닥이 갈라지고 검은 뇌전들이 폭발해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한립은 떨어지는 수많은 바위들을 피하지 못하고 바위더미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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