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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971화 (728/2,000)

971화. 혼체분원대법(魂體分元大法)

같은 시각, 핏빛이 마기로 가득 찬 절벽 입구 앞에서 떨어져 내렸다. 은색 갑옷을 입은 규 씨 사내가 음침한 얼굴로 나타났다.

“이전에 남겨 놓은 경계 금제가 발동했군. 그들이 정말 진령의 혈을 노리고 왔구나! 그래, 본 존을 위해 진령의 혈을 개방해 두거라.”

규 씨 사내가 살기를 드러내며 중얼거렸다. 그는 핏빛 빛줄기로 변해 통로로 들어갔다. 어떤 공법을 익힌 것인지 새까만 마기가 그의 핏빛 기운을 거스르지 못하고 길을 터주었다.

규 씨 사내가 안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공에서 구야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고 호리호리한 그녀는 마기가 가득 찬 통로를 보고 무척 놀란 듯했다.

“이렇게 마기가 짙은 곳이 있었다고? 철마나 혈비의 비밀 거처란 말인가?”

잠시 고민하던 그녀 역시 은색 빛줄기로 변해 안으로 들어갔다. 고계 마수인 그녀가 마기를 두려워할 까닭이 없었다.

* * *

대청 구석에 선 한립의 양 어깨에 금빛의 머리와 팔이 네 개나 나타났다. 각각의 손에는 지팡이, 절굿공이, 수레바퀴, 자를 닮은 무기를 들고 커다란 주먹을 막고 있었다.

우웅-

네 개의 무기들이 부르르 떨고 있는 것이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검은 기운이 느껴지는 주먹은 수시로 충격파를 내뿜었다. 그러나 충격파는 한립 앞의 수정방패 때문에 이리저리 스쳐 지나가기만 했다.

웽웽.

저 멀리서 주먹 크기의 금색 딱정벌레가 보라색 칼날 조각 주위를 정신없이 날아다니며 공격하고 있었다.

보라색 흔적이 허공을 갈라 그 중 한 마리를 멀리 날려 보냈지만 나머지 한 마리가 바짝 달라붙어 갉아대는 통에 칼날 조각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위력이 대단해도 계속 연달아 공격할 수는 없었다. 또한 서금충도 공격을 온전히 견디기에는 조금 쇠약해져 있었다.

웽!

튕겨나갔던 서금충이 날개를 퍼덕이며 다시 돌아왔다. 이렇게 칼날 조각은 한립을 베고 싶어도 성가시게 달라붙는 서금충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마원이 기세등등하게 공격하자 한립의 원자신광과 오색 한염은 잠시 버티다 흩어졌고 수정 방패가 간신히 앞을 막아섰다.

마원 자체의 괴력은 그렇다 치고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보라색 칼 조각의 위력이 너무 강했다.

전투 경험이 풍부한 한립은 바로 서금충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곧바로 범성진마법상과 자신의 몸을 일체화한 다음 네 개의 보물을 불러내 상대의 두 주먹을 봉쇄했다.

그 틈을 노려 변이 서금충은 마원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서금충들은 칼날 조각을 전담으로 막기 시작했다.

마원은 당장 주먹으로 그의 머리를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한립의 힘도 만만치 않았기에 지금까지 대치중이었다.

문제는 생각보다 마원의 힘이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이미 법상과 일체화해 범성진마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는데도 상대의 힘에는 약간 못 미치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마원도 중상을 입어서인지 다른 수를 쓰지는 않았다.

‘이대로는 안 돼. 다른 수를 써야겠는데…….’

그가 심호흡을 하며 해골 머리 다섯 개를 분출했다. 해골 머리들은 마원을 향해 오색 한염을 뿜었다. 그리고 한립의 입에서 푸른 색 작은 솥이 나타나 빙글빙글 돌며 무수히 많은 푸른 실을 날리고 사라졌다.

꽈광!

날개를 불러낸 한립은 청백색 뇌전으로 변해 대청 출구로 쇄도했다. 오색 한염과 허천정의 푸른 실로 잠시 마원을 붙들어두고 상대와 거리를 벌리려는 생각이었다.

‘그런 다음 춘려검진 속으로 유인하는 거야!’

검진에 마원을 가두고 싸우는 것이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청백색 뇌전이 대청 입구에서 번뜩인 순간, 옆에서 핏빛이 반짝이고 기다란 물체가 그를 내리쳤다. 놀랍게도 마원이 누워있던 핏빛 침상이었다.

‘이게 왜 여기에…….’

핏빛 침상의 속도는 너무 빨랐고 크고 작은 주술 문자들이 괴이하게 번득였다.

한립은 재빨리 금색 손들이 들고 있던 무기들을 휘두르는 동시에 그의 새까만 손과 하얀 손에서 주먹 환영을 뿜어냈다. 핏빛 침상이 너무 갑작스럽게 나타나 더 강력한 신통을 쓰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법상과 일체화된 몸으로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금빛이 번쩍이고 네 개의 병장기가 핏빛 침상을 내리쳤다.

콰쾅!

금빛과 핏빛이 교전했지만 나무 침상은 멈추지 않고 천천히 압박해 왔다.  한립은 얼굴을 굳히고 흑백의 주먹 허상으로 침상을 마구 내리쳤다.

그런데 그때, 불현듯 모골이 송연해지고 소름이 끼쳤다.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여태껏 자신의 직감을 믿어온 그는 주먹을 거두고 수정 방패에 영력을 불어넣었다.

수결을 맺어 다른 술법을 펼치려 했으나 이미 늦은 후였다. 허공에서 킥킥 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한립 바로 뒤에서 하얀 실선이 생기고 새빨간 팔뚝이 튀어나와 갈고리처럼 휘어진 손톱을 휘둘렀다.

푸욱!

최상급 법기만큼 단단한 한립의 몸이 종잇장처럼 뚫려 가슴 앞으로 핏빛 팔뚝이 튀어나왔다. 한립은 직접 보고도 믿겨지지 않았다.

키키킥!

괴이한 웃음소리가 대청을 울렸다. 그것은 보라색 갑옷을 입은 마원이 아니라 하얀 공간균열 속 핏빛 팔뚝의 주인이 키득거리는 소리였다.

“감히 이 몸을 건드려? 죽으려고 용을 쓰는 구나. 네 법력이 꽤나 정순하니 몸보신이나 해야겠다.”

공간균열에서 핏빛 그림자가 튀어나와 광소했다. 핏빛 그림자는 한립의 가슴을 관통한 손을 끌어당겨 그의 머리통을 물어뜯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퐁!

한립이 비취색 빛에 감싸여 거품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핏빛 팔뚝에 관통당한 부적만이 나풀거렸다. 이에 핏빛 그림자가 멈칫하며 즉시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대청 입구에서 초록빛이 반짝이고 한립이 창백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가슴팍을 본 핏빛 그림자는 움찔했다.

그는 가슴이 뚫려 있지도 않았고 핏빛 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푸른 장포의 가슴 부분이 뜯겨 있지 않았으면 환술에 당한 줄 알았을 것이다.

핏빛 그림자는 얼른 비취색 부적을 보고 그것을 잡아 뜯으려 했다.

“돌아와라.”

한립은 코웃음을 치며 입구 밖에서 명을 내렸다. 그러자 비취색 부적이 흐릿하게 변해 한립의 품으로 들어갔다. 영계에 와서 밤낮으로 정성껏 배양한 화령부였다.

그의 몸속에서 수백 년간 배양했기에 부적의 신통은 인계에 있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다른 보물을 발동할 시간은 없었지만 핏빛 팔뚝이 몸을 뚫으려는 순간 화령부를 발동해 가슴이 뚫리는 일격을 대신 막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립이 제 아무리 생명력이 뛰어나고 몸이 단단해도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앞으로 다시 화령부를 사용하려면 백년 이상은 다시 배양해야 했다.

그런데 잠들어 있던 원숭이는 뭐고, 지금 나타난 핏빛 그림자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마원의 화신(化身)?’

한립은 어두운 얼굴로 명청령안을 발동해 핏빛 그림자를 살폈다.

머리에 솟은 세 개의 뿔, 입 안에 가득 들어찬 송곳니와 무릎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팔.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모습이 보라색 갑옷을 입기 전 마원과 똑같았다.

핏빛 그림자가 제자리에 서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한립을 보고 보라색 갑옷 마원을 향해 손짓했다. 마원은 핏빛 그림자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쉬익!

핏빛 그림자가 빛줄기로 변해 보라색 갑옷 안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검은색과 붉은색 마기가 치솟아 엄청난 영기의 압력을 방출했다. 중상을 입고 골골대던 마원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립은 안색이 급변하며 물러나다 문뜩 탁천마공에 적혀 있던 마공 비술 중 하나를 떠올렸다.

“혼체분원대법(魂體分元大法)!”

“흠? 네가 이 공법의 이름을 어찌 아느냐. 그래, 난 혼체분원대법으로 부상을 치유하고 있었다. 혼백과 몸을 분리하는 것이 약간 위험하기는 하지만 회복 속도를 배로 높여 주니까. 그러고 보니 네 놈은 정말 수상하구나! 분명 영계인인데 우리 고마계의 최상급 마공을 익히고 있다니. 공법을 많이 뜯어고치기는 했지만 위력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구나.”

“그럼 거의 다 회복이 되었겠습니다.”

한립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하! 그래, 몸이 아무는 데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원신은 거의 회복했다. 주제 파악을 했으면 얌전히 내게 정혈을 바치거라. 그러면 네 혼백은 놓아주지.”

마원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광소했다.

“제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습니까? 원신이 거의 회복되었다면 굳이 육신을 내세워 싸울 까닭이 없겠지요. 기껏해야 4할 정도 회복되었을 겁니다. 원신이 몸으로 돌아갔으니 저 혼자서는 적수가 되지 않겠지만 도와줄 이들이 있다면 당신을 죽이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한립이 냉소했다.

“…….”

그 말에 마원의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마원의 갑옷에서 두 덩이의 핏빛이 반짝이고 한 손을 뻗자 멀리서 서금충과 쫓고 쫓기던 보라색 칼날 조각이 사라졌다.

우웅!

칼날 조각은 마원의 손으로 이동해 보랏빛의 거검으로 변했다.

휙! 휙!

거검이 흔들리자 일고여덟 개의 보라색 잔영이 한립 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미리 대비하고 있던 한립은 수정 방패에 법결을 불어넣었고 수정 방패가 보호막이 되어 그를 완전히 가려주었다.

쿠콰쾅!

보라색 잔영이 수정 보호막 앞에서 터져나갔다. 그러나 보라색 잔영의 힘도 만만치 않아 수정 보호막을 뒤흔들며 다시 한립에게 날아들었다. 이에 한립은 통로의 검은 기운 속으로 힘없이 밀려나듯 튕겨나갔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지껄이더니 어딜 가려하느냐!”

마원이 비웃으며 갑옷에서 핏빛을 번득여 통로로 뛰어들었다.

“……!”

그러나 통로로 진입한 순간 괴이한 압력이 느껴지며 조금만 동산이 떨어져 내렸다. 이에 마원은 대수롭지 않게 주먹을 뻗어 무형의 힘을 폭발시키고는 검은 통로를 응시했다. 평범한 수사였다면 마기로 가득 찬 통로에서 아무 것도 볼 수 없었겠지만 성계 마수인 그는 모든 것이 또렷이 보였다.

저 멀리서 한립이 두 손으로 수결을 맺고 있었다. 주위의 마기가 요동치며 물러나는 것이 강력한 신통을 준비하는 듯했다.

“이놈!”

한립이 바로 코앞에서 수를 쓰려하자 마원은 노호성을 터트렸지만 바로 날아들지는 않았다. 그저 신중히 한립을 살피며 그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 순간, 머리 위에서 마원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가 날린 괴력에 동산이 갑자기 몇 배로 불어나 더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렸던 것이다. 마원은 재빨리 보라색 거검을 휘둘렀다.

휘휙!

보라색 잔영들이 허공에 나타나 하나로 합쳐져 검은 산을 아예 조각내 버리겠다는 심산인 듯 위쪽을 갈랐다. 그런데 보라색 잔영이 닿기도 전에 기세등등하던 작은 산은 회색빛으로 반짝이고는 거품처럼 흩어졌다.

이에 보라색 잔영은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마원은 순간적으로 한립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쿠르릉 콰쾅! 콰릉!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자 무언가를 감지한 마원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한립이 어느새 무수히 많은 가느다란 금빛 뇌전에 둘러싸여 있었고, 동시에 금빛 주술문자들이 한립의 손에서 날아가 뇌전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뇌전은 주술문자를 흡수하고 소리 없이 흩어져 대량의 금빛 기운으로 변했다. 그리고 한립이 금빛 주술문자를 외자 금빛 기운 속에서 천둥소리가 더욱 커졌다.

콰르릉 콰콰쾅!

엄청난 천둥소리가 통로를 울리고 금빛 기운이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때 한립의 손바닥 위로 금색 구슬이 고요히 떠올랐다. 올록볼록하게 주술 문자와 문양이 새겨진 구슬은 전혀 영기의 압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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