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0화. 삼원참(三元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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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립이 의식으로 명을 내리자 은색 불새가 입을 벌려 금은색 실을 분출했다. 그 속도가 더없이 빨라 영선사광이 날아들자마자 진법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웅!
핏빛 기운이 진법 상공에 나타나 거대 원숭이를 보호했다. 그러나 금은색 실은 아무렇지 않게 핏빛 보호막을 뚫고 거대 원숭이의 머리를 노렸다.
“헛!”
그러나 한립은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켰다. 거대 원숭이 몸 위로 보라색 갑옷이 나타나 보호했기 때문이었다.
금은색 실은 갑옷에 힘없이 튕겨 나갔다. 이에 한립은 더는 주저하지 않고 금빛을 크게 일으켜 머리 위로 삼두육비법상을 불러냈다.
법사의 세 머리 중 두 개가 번쩍 눈을 뜨고 여섯 팔이 동시에 합장을 했다. 금빛 찬란한 손 사이에 세 개의 검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검에는 주술 문자가 흘렀고 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종이처럼 얇은 검은 금빛으로 빛났고, 두꺼운 긴 검은 푸른빛으로, 뭉툭한 검은 새까만 빛으로 반짝였다.
“베어라!”
슉! 슉! 슉!
검빛이 튀어나가 하나로 합쳐지더니 삼색의 검빛이 검은 원숭이를 갈랐다. 그리고 미리 배치해놓은 푸른 구슬들이 검은 기둥으로 떨어지며 폭발했다.
쿠왕! 쿠쿠쿵!
12개의 검은 기둥이 뇌전의 힘에 무너져 내렸을 뿐만 아니라 진법 자체가 푸른 뇌전으로 뒤덮였다.
콰쾅!
진법의 핏빛 보호막이 무섭게 떨어져 내려 푸른 뇌전에 맞아 갈라졌고, 그 틈을 노려 서금충 두 마리와 삼색 검빛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삼색 검빛은 한립이 범성진마공에서 깨달은 진원의 힘을 하나로 융합하는 신통이었다. 비술을 통해 범성진마공, 청원검결 그리고 금강결의 세 가지 신통을 동시에 부를 수 있었다.
범성진마공과 청원검결은 그렇다 치고 금강결은 몸을 단련하는 공법이라 원래 몸 밖으로 분출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한립이 삼원참(三元斬)이라고 부르는 이 신통은 각기 다른 진원의 힘을 보완해 위력을 증폭시킬 수 있었다. 조금 전 일격으로 한립은 꽤 많은 진원을 끌어다 썼다.
바다를 가르고 산을 베어낼 수 있는 강력한 공격이라는 뜻이다. 거기다 다른 공격까지 펼쳐 놓았으니 검은 원숭이를 단번에 죽일 가능성이 7할이나 되었다.
그때 푸른 뇌전이 먼저 거대 원숭이의 보라색 갑옷을 공격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핏빛 나무 침상에 주술 문자들이 반짝이며 눈부신 빛이 보라색 갑옷으로 흘러들어가더니 뇌전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곧 삼색 검빛과 서금충 두 마리가 선회하다 핏빛과 충돌했다.
쿠콰쾅!
대청 전체가 극심하게 흔들리고 다양한 색으로 뒤덮였다. 마치 다채로운 빛을 지닌 태양이 진법 중심에 떠오른 것 같았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 손으로는 허공을, 나머지 한 손으로는 수결을 맺어 범성진마법상을 발동했다.
맑은 울음소리가 들리고 서령불새가 나타나 빛 속으로 뛰어들었다. 다채로운 빛 속으로 은색 화염이 사라졌다. 한립은 금색 법상이 들고 있던 거검을 흩어버리고 금색 빛구슬을 만들어 날려 보냈다.
콰앙!
소용돌이가 치며 대청 안이 빛과 소음으로 가득 찼다. 거대한 풍압이 밀려와 입구에 서있던 한립도 두 걸음이나 물러서야 했다.
‘……!’
그러나 한립은 돌연 표정이 달라지며 법상의 공격을 멈췄고, 그의 소매 속에서 회색 기운과 오색 한염이 빠져나와 주변을 방어했다. 수정 방패 역시 그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한립은 조용히 제자리에서 서서 진법 가운데를 응시했다.
명청령안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아무리 중상을 입었다고 해도 성계 마원(魔猿)이 아직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일격에 죽었다고 해도 이렇게 조용할 수는 없다.’
한립은 의식을 퍼트려 주변을 살피려 했다. 그런데 그때 대청 중앙에서 킥킥거리는 괴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놀란 한립이 의식을 거두고 금색 돌풍을 쳐다보았다.
쿠아앙!
경천동지할 폭음이 들리고 빛무리를 가느다란 보라색 흔적들이 마구 갈라냈다. 이에 거대한 진법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역시!’
진법은 완전히 훼손돼 여기저기 구덩이가 파였지만 핏빛 침상만은 멀쩡했다. 그리고 그 위로 보라색 갑옷을 입은 검은 원숭이가 반쯤 몸을 일으켰다.
마수는 머리에 솟은 세 개의 노란 뿔을 제외하고는 온몸을 갑옷으로 가리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마치 금속 꼭두각시 같아 보였다. 보라색 갑옷은 이곳저곳 갈라져 있었고 새까맣게 그을린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마원의 두 손에는 무언가 꽉 쥐어져 있었다. 바로 한립의 성체 서금충이었다.
서금충들은 마원의 중지 하나씩을 사정없이 갉아댔지만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쉽게 뚫리지 않았다. 마원도 서금충을 경계해 손가락을 내주면서도 놓아주지 않았다. 마갑의 약점을 찾아 갉아대면 더욱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시선을 끈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마원 앞에 보라색으로 반짝이는 칼날 조각이었다. 그리고 반투명한 칼날 안에는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건…….”
한립은 명청령안으로 보라색 칼날 안을 확실히 살필 수 있었다. 교룡 같기도 하고 봉황 같기도 한 그것은 각치족의 날개달린 교룡을 닮았다.
교룡의 몸뚱이에는 커다란 날개가 달려있었는데 날개에는 깃털 대신 보라색 비늘이 가득했다. 또한 등에 솟은 날개는 두 쌍으로 서로 크기가 달랐고, 코에 금색 뿔이 솟아 있었다.
한립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동공을 수축했다. 그는 칼날이 뿜어내는 엄청난 영기에 기함하고 있는 중이었다. 저 정도로 부서졌는데도 이런 기운을 지니고 있다면 멀쩡했을 때는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성계 마수는 중상을 입었지만 강력한 보물들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생각처럼 쉽게 끝날 싸움은 아니었다. 한립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런데 그때 보라색 갑옷에서 괴이한 웃음소리가 그치고 마원이 침상에서 내려왔다. 이에 한립은 입술을 꿈틀하며 멀리 허공을 가리켰다.
화륵!
무수히 많은 은색 화염이 마원 주변에서 나타나 비처럼 쏟아졌다. 그리고 대청 벽에서는 빛이 반짝이고 수백 장의 부적들이 떠올랐다가 즉시 자취를 감추었다.
거대 원숭이 위로 은빛 빛의 진법이 나타났고, 그 안에 흐릿하게 거대한 궁궐이 아른거렸다.
솨아-
궁궐 주변에 무수히 많은 부적들이 날아다니며 괴이한 연주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로 구궁천건부였다.
빛의 진법이 회전하다 은색 빛기둥을 분출했다. 두 종류의 공격이 마원을 향해 날아든 것이다. 그러나 마원은 피할 생각이 없는 듯 음산한 웃음을 흘리고 주먹을 휘둘렀다.
퍽!
검은 충격파가 폭발적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주변의 은색 화염이 흩어진 것은 물론이고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던 은색 빛기둥도 허공에서 멈추었다. 그것을 본 한립은 안색을 굳히고 속으로 맹렬히 법결을 외웠다.
우웅!
빛의 진법 속에서 연주소리가 커지고 궁궐이 몇 배로 커져 마원을 향해 추락했다. 마원이 슬쩍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순간 마원의 칼자루가 움직이며 궁궐 환영과 고공의 빛의 진법을 갈라버렸다. 빛의 진법은 두 동강이 났고 한립의 표정도 확 달라졌다.
그가 미처 다른 신통을 부리기도 전에 칼날 조각이 수직으로 섰다가 한립을 향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또 다른 보라색 흔적이 한립의 눈앞에 나타났다.
동시에 우둔해 보이던 마원이 한립 옆에서 나타나 주먹으로 그의 머리를 내리치려 들었다. 주먹이 보호막에 닿기도 전에 벌써 두 귀가 먹먹해지며 무형의 파동이 한립을 압박했다.
서걱!
쿵!
보라색 흔적이 번뜩이고 한립이 서있는 곳을 하얀 충격파가 뒤덮었다.
한립과 성계 마원이 충돌하고 있을 때, 섬섬은 마기로 가득 찬 통로 속에 서 있었다. 검은 보호막의 비호를 받으며 푸른 기린 허상과 함께 나아가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통로가 끝난 듯 저 멀리 새까만 벽이 보였던 것이다.
“여기가 맞을 거야!”
기린 허상이 입을 열었다.
“기영, 확실한 거지? 진령의 혈을 개방하는 깃발은 단 한 번 밖에 못 써. 단 한 벌 밖에 제련해오지 못했다고.”
“그럼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겠어. 잠깐 기다려봐!”
기린 허상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동의했다. 허상의 입에서 푸른 구슬이 튀어나왔고, 구슬이 데구루루 굴러 푸른 안개로 변해 벽으로 날아갔다.
휘잉!
푸른 기운이 석벽에 흡수되자 안쪽에서 나지막하게 바람소리 같은 것이 들리고 검은빛으로 반짝였다. 그리고 푸른 기운은 바로 거대한 힘에 밀려 밖으로 튕겨 나왔다.
“확실해!”
푸른 기운이 구슬로 돌아가 기영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알았어. 바로 진법을 펼치고 진령의 혈을 개방할게!”
섬섬은 희색을 드러내며 미리 준비한 푸른 진법 깃발 한 벌을 꺼냈다. 평범해 보였지만 깃발 좌우로 금은색 실이 수놓아져 있어 복잡한 문양을 이루고 있었다.
쉬쉬쉬쉭!
섬섬이 깃발을 날리자 푸른빛으로 변한 깃발들은 허공에 진법을 만들어내고는 그대로 석벽으로 스며들었다.
새까만 석벽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예상한 일인지 당황하는 기색 없이 남색 종과 하얀 여의(如意)를 꺼내들었다.
작은 종은 남색 액체가 맺혀있어 굉장히 아름답게 빛나는 반면 여의는 색이 탁하고 약간 망가져 있었다. 정족 여인은 아까워 죽겠다는 얼굴로 두 보물을 보다가 힘차게 집어 던졌다.
남색빛과 하얀빛이 튀어 올라 충돌했다.
챙강!
두 보물이 서로 부딪혀 깨져나가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색과 붉은색의 액체 두 방울이 고요하게 떠올랐다. 기린 허상은 그것을 보고 욕심이 생겼지만 꾹 참고 중얼거렸다.
“이 팔족원수(八足元獸)와 불사조(不死鳥)의 정혈은 네가 수백 년간 재물을 모아 겨우 구한 거잖아. 거기다 두 가지 보물 속에서 백년 넘게 배양했으니 그대로 복용해도 체질을 바꿔주고 내 혼백에도 큰 도움이 될 텐데.”
“우리 정족은 다른 종족과 달라. 진령의 피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지. 게다가 아무리 진령의 피가 귀해도 진령의 혈에 있는 물건보다 중요하겠어?”
섬섬이 담담히 답했다.
“하하, 그건 그래! 정족처럼 특수한 체질은 진령의 혈에서 구한 물건쯤은 되어야 큰 효과를 볼 수 있지.”
기영의 말에 정족 여인이 말없이 열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법결들이 액체 방울로 흘러들어갔고, 액체 방울은 회전하다 하나로 합쳐져 남색과 붉은색이 혼재하는 구슬로 변했다.
섬섬의 조종으로 구슬은 천천히 석벽으로 향했다.
휘잉!
석벽에서 바람 소리가 일고 사라졌던 푸른 진법이 떠올랐다. 주술 문자가 반짝이는 진법 속에서 푸른 기운이 나와 남홍색 구슬을 휘감았다.
우웅!
진법은 구슬을 품은 채 석벽 안으로 종적을 감추었고, 정족 여인은 주술을 외고 수결을 맺느라 정신이 없었다.
잠시 후 석벽에 검은 빛이 흐르고 왜곡되기 시작하더니 이곳저곳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뜻밖에도 커다란 빛의 얼굴이 두 눈과 코 그리고 커다란 입을 갖추고 나타났다.
나이와 종족을 특정할 수 없는 얼굴은 눈을 꼭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빨리, 지금이야!”
기영이 빛의 얼굴을 보고 다급히 외쳤다. 그 소리에 섬섬은 긴장된 기색으로 법결을 발동했다.
웅!
사라졌던 푸른 진법이 번뜩이며 나타나 남홍색 액체 구슬만 남겨두고 사라졌다. 그러자 커다란 얼굴에 굳게 닫혀 있던 새까만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홍색 진령의 피를 본 얼굴은 갑자기 벽에서 튀어나와 그것을 삼키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빛의 얼굴은 섬섬은 쳐다보지도 않고 커다란 입을 쩍 벌렸다.
빛이 가시자 커다란 입 안으로 하얀 통로가 펼쳐졌다.
“됐어! 혈령이 잠들었으니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기영이 기분 좋게 소리쳤다. 섬섬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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