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7화. 금조진화(金鳥眞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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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들이 검진 안으로 들어온 순간, 빛이 반짝이고 푸른빛의 장막이 나타나 네 마리 마조들을 가두었다. 마조들이 놀라 분분히 방향을 틀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빛의 장막을 할퀴려 들었다.
챙강!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빛의 장막이 부서져 내렸다. 그런데 부서진 빛의 장막 뒤로 푸른 연꽃으로 뒤덮인 괴이한 공간이 나타났다. 마조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는 입에서 빛기둥을 분출했다.
슈욱- 펑!
연꽃들이 빛기둥을 맞고 사라지기는커녕 폭발하며 더욱 크기를 키웠다. 그것을 본 마조들은 화들짝 놀랐고, 춘려검진은 더욱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마조들이 공격한 곳 외에서도 빛의 장막이 산산조각이 나 사라지고, 푸른 연꽃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연꽃들이 빙빙 돌고 주변 풍경이 흐릿해진 순간, 마조들은 푸른 거목들이 가득한 숲에 들어와 있었다.
각각의 나무들이 높이 뻗어 그 끝이 보이지 않았고 이파리가 무성해 하늘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에 마조들도 기겁했다.
조류 마수들이 가장 꺼리는 것이 이런 빼곡한 수풀에 갇히거나 하천 등에 빠지는 것이었다. 뛰어난 비행 능력과 고유의 신통을 마음껏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네 마리 마조들은 동시에 날개를 펼쳤다.
그러자 작열하는 하얀 화염이 튀어나와 백 마리가 넘는 불나방으로 변해 주변 거목들로 날아갔다.
하얀 화염은 그들의 비장의 한 수였다. 진짜 거목이라면 버티지 못했겠지만 푸른 거목들은 아무렇지 않게 하얀 화염을 통과시켰다.
“환술!”
연허 초기 마조들은 우두머리보다는 못해도 지능이 아예 낮은 것은 아니었다. 그중 성질 급한 한 마리가 거목 한 그루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춘려검진의 무서움은 일반적인 환술과 달리 허상 속에 진짜가 감춰져 있다는 것이었다.
쿵!
거목에 부딪힌 마조가 데구루루 튕겨 나와 고개를 저었다. 이에 다른 세 마리 독수리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 * *
진법 바깥의 새하얀 마조는 수하들이 모두 빛의 장막 안으로 사라지자 깜짝 놀랐다. 그러나 곧 분노하며 날개를 펼쳐 하얀 기운을 불러냈다.
화륵!
순식간에 새하얀 깃털들이 활활 타오르는 화염으로 변했다. 흑백 깃털을 지닌 나머지 마수들과 달리 우두머리의 화염 속에는 희미하게 은색 주술 문자들이 요동쳤다.
이에 주변 온도가 삽시간에 치솟아 숨겨져 있던 춘려검진이 본 모습을 드러냈다. 빛이 반짝이고 푸른빛의 장막이 떠오른 것이다.
“한 선배님, 절대 금조진화(金鳥眞火)에 닿아서는 안 됩니다. 마조들이 진령 금조(金鳥)의 피를 타고났다 봅니다.”
섬섬은 우두머리 마조가 펼친 괴이한 화염을 보고 재빨리 전음을 보냈다.
‘금조진화!’
한립은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크게 기뻐했다. 그때 마조가 거대한 불새로 변해 기세등등하게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아직 불새가 도착한 것도 아닌데 기온이 급격히 오르고 콩알 크기의 붉은 불씨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를 중심으로 공간 자체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한립은 기이한 현상에도 동요하지 않고 입을 벌려 은색 불구슬을 뱉었다. 불구슬은 번뜩이며 은색 불새로 날아올랐다. 은색 불새가 나타나자 주변의 새빨간 불씨들이 불나방처럼 밀려들었다.
불새가 소리 없이 불씨들을 흡수하자 주변 온도가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은색 불새는 몸집을 불리며 달려드는 하얀 불새를 바라보았다. 마조가 변한 하얀 불새의 몸집이 훨씬 큰데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마조는 은색 불새의 출현에 표정이 변했다. 약간의 두려움과 반가움이 교차했고, 숨길 수 없는 탐욕에 눈이 이글거렸다.
은색 불새가 자신을 향해 날아들자 마조가 네 눈을 번뜩이며 속도를 높였다.
쾅!
불새들이 충돌하자 하얀 불꽃과 은색 화염이 타올랐다. 각각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고 기이한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갔다.
두 화염은 서로를 먹어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서령천화의 위력이 조금 더 뛰어났지만 마조도 만만치 않아 시간을 끌면 잡아먹힐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에 한립이 수결을 맺자 손가락에서 가느다란 푸른 빛기둥이 뻗어나가 싸우고 있는 은색 불새 속으로 흡수되었다. 짙은 남색의 빛기둥들은 한립의 정순한 진원(眞元)이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생겼다. 은색 불새가 마구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은색 불새는 단숨에 하얀 불새의 크기를 압도했고, 은색 화염은 하얀 불꽃을 조금씩 잡아먹기 시작했다.
이에 마조가 겁을 먹고 입에서 하얀 구슬을 뱉었다. 티끌 한 점 없는 구슬은 눈부신 빛을 뿜었다. 마조가 오랜 세월 품어온 마핵이었다.
마핵이 뿜어내는 빛이 수천 개의 하얀 바늘로 변했고, 바늘들은 두 방향으로 튀어나갔다. 일부는 서령불새를 향해 튀어나가 은색 불새의 몸을 사정없이 뚫어 놓았고, 나머지는 한립을 향해 쇄도해 푸른빛의 장막과 부딪혔다.
가느다란 바늘은 특수한 능력을 지녔는지 푸른빛의 장막을 통과해 한립의 코앞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한립은 움직이지 않았고 앞에서 수정 방패가 나타나 빛을 뿜었다.
가느다란 바늘들은 바르르 몸을 떨더니 방패 양쪽으로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동시에 그가 한 팔을 움직이자 해골 머리 다섯 개가 나타나 입에서 오색 화염을 뿜어 떨어져 내리던 바늘들을 전부 휘감았다.
오색 한염 속에서 가느다란 바늘들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한편 수백 개의 구멍이 뚫린 서령불새는 불길이 번득인 후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위력이 급감했다. 이에 마조의 하얀 금조진화와 은색화염은 다시 팽팽하게 대치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본 한립은 돌연 수결을 맺어 오색 채봉(彩鳳)으로 변했다. 오색빛이 퍼지고 봉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채봉이 날개로 전방을 가르자 허공에 하얀 선이 생기고 공간이 왜곡되어 공간균열이 생성되었다.
채봉은 날개를 펼쳐 그 틈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파앗.
그때 마조와 서령불새가 겨루고 있는 상공에 하얀 선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사이로 채봉의 상반신이 불쑥 튀어나왔다.
한립이 변신한 채봉이 공간신통을 이용해 서령불새와 마조가 싸우고 있는 곳 위에 나타난 것이다.
마조는 가느다란 바늘이 통하지 않자 그를 유심히 주시했고 당연히 채봉으로 변하는 것도 똑똑히 지켜보았다. 이에 마조는 겁에 질렸다.
진령 천봉은 조류의 왕으로 불렸고, 진령 금조라 해도 천봉을 마주치면 제 위력을 내기가 어려웠다.
한립이 경칩결을 이용해 변신한 채봉은 진정한 천봉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천봉진혈을 몸에 품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채봉이 품고 있는 진혈의 기운이 마조를 움츠러들게 했고, 뜻밖에도 서령불새가 금조진화를 먹어 치우기 시작해 마조는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했다.
끼륵!
마조는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우윳빛 빛기둥을 분출해 하얀 화염을 거두고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한립이 그를 놓아줄 리 없었다.
그가 의식을 움직이자 은색 불새가 입에서 금은색 실을 내뿜었다. 바로 서령천화가 연화시킨 영선사광이었다. 빛기둥과 가느다란 금은색 실이 충돌하며 빛기둥이 반사되었다.
마조는 자신의 공격이 다시 되돌아오자 당황해 두 날개를 펄럭여 빛기둥을 갈라냈다. 그때 금은색의 가느다란 실이 번득이며 나타났다.
마조는 금은색 실의 괴이한 능력을 보았기에 상대하지 않고 피하려 했다. 그러나 머리 위에서 봉황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푸른 기운이 드리웠다. 채봉이 공간균열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날개를 펄럭인 것이다.
그 순간 금조진화와 교전하던 은색 화염이 갑자기 응결해 방향을 틀며 괴력을 발휘했다. 그가 움찔한 순간 푸른빛이 드리웠고 하얀 불길로 활활 타오르던 마조의 몸이 푸른빛에 눈 녹듯 녹아내렸다. 금조진화와 상극의 신통을 지닌 것이 틀림없었다.
이에 마조는 대경실색했다. 푸른빛에 구속되어서가 아니라 미간 사이로 날아드는 금은색 실 때문이었다. 한립과 서령불새의 완벽한 협공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마조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벌려 무언가를 빨아들였다. 그러자 인근에 떠있던 하얀 마핵이 그 앞으로 이동했다. 마핵을 이용해 위기를 모면할 생각이었다.
그의 마핵은 정말 단단해서 웬만한 최상급 보물의 공격해도 멀쩡했다. 그러나 금은색 실은 마핵을 아무렇지 않게 통과해 버렸다.
푹!
마조의 네 눈 사이에 작은 구멍이 뚫렸다. 마조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치자 몸에서 하얀 불길이 배로 커졌고, 날개까지 파닥이자 주변의 푸른빛이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갔다.
이에 마조는 은색 화염과 교전하고 있던 하얀 불길을 과감히 끊어냈다. 이어 몸에서 하얀 빛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나 주변을 하얀 불바다로 만들기 시작했다.
하얀 불바다 속에서 마핵을 중심으로 거대한 괴조의 환영이 떠올랐다. 은은한 금색 몸에 새까만 두 눈을 지닌 괴조는 발톱이 세 개였다.
“금조법상! 과연 진령의 피를 타고났구나!”
한립이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중얼거렸다.
끼르르륵!
불바다 속의 마조가 길게 울부짖자 주변의 하얀 불길들이 미친 듯이 금조 법상의 환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금조진화를 흡수한 환영은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며 한층 뚜렷해졌다.
마조는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한립을 노려보았다. 당장이라도 금조법상을 부려 공격을 가할 기세였다. 그러나 한립은 금조법상에게서 눈을 돌려 피식 웃으며 한 손으로 마조를 가리키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쓰러져라.”
마조가 흠칫 놀라 무언가 하려는데 갑자기 몸이 떨려왔다.
끼륵!
마조는 갑자기 외마디 비명을 남기고 추락했다. 힘없이 떨어져 내리는 마조의 몸은 어느새 어두운 보라색을 띄었고 비린내가 풍기며 액체로 변했다. 원신은 달아날 틈도 없었다.
그것은 영선사광이 함유한 치명적인 극독 때문이었다. 그 극독은 중독된 후에도 발작하기 전까지는 알아차릴 수 없었다.
예전에 처치한 괴물 나방보다 마조가 독에 대한 저항력이 약한지 발작 한 번에 끝장나고 말았다. 그제야 한립은 한시름을 놓았고, 은색 불새는 신이 나 마조의 몸뚱이가 녹아내린 독수(毒水)를 삼키려 들었다.
한립은 잠시 고민했지만 막지 않았다.
금조 진혈도 진귀했지만 경칩12결 중에 금조 변신술은 없었다. 그렇다면 서령불새가 삼키게 두고 이후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미 영성을 지닌 불새가 진화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불새는 독수를 삼키고도 바로 돌아오지 않고 고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런데 거대 금조법상은 마조가 죽었는데도 흩어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꼭 빛을 잃은 꼭두각시 같았다.
은색 불새는 거대한 금색법상의 몸으로 파고들어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하얀 불길까지 뱃속에 넣고는 몸집을 줄여 한립에게 돌아왔다.
불새가 그의 몸속으로 자취를 감추자 이제 허공에 남은 것은 눈부신 빛을 발산하는 하얀 마핵과 가느다란 바늘들뿐이었다.
한립은 푸른 기운으로 마핵과 수백 개의 바늘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춘려검진이 만들어낸 푸른빛의 장막을 보고 수결을 맺었다.
우웅!
수결을 맺자 빛의 장막이 깨지고 푸른 연꽃들이 사라진 자리에 72자루의 비검들이 떠올랐다. 비검들 중심에 수십 개의 조각난 마조들의 시체가 떠 있었다.
연허 초기 마조들은 춘려검진의 위력에 참살을 당한 것이다. 한립은 대수롭지 않게 푸른빛을 날려 마조의 잔해들을 전부 저물탁 속에 담아 두었다.
마조들이 지닌 금조 진혈은 극히 소량이었지만 나중에 서령불새에게 주면 좋아할 것이다. 영계에서 진령의 피는 매우 귀했으니 조금이라도 낭비할 수 없었다.
한립은 신형을 번득이며 섬섬과 월종 곁으로 돌아왔다.
“처리했으니 출발하지.”
월종은 아까부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볼 때 한립은 상족 9계보다도 훨씬 뛰어났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상족 7계 수사가 일다경 만에 이렇게 많은 고계 마수들을 도륙했다고?’
마조들의 우두머리는 상족 9계였고 진령의 피까지 품은 변이 마수였다. 아마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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