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6화. 인면취(人面鷲)
*
이틀 후, 높은 거목들이 빼곡하게 자라난 하늘 위를 두 무리의 이족인들이 쫓고 쫓으며 날아갔다.
앞에서 달아나는 이들은 노란 배를 타고 있었는데 모두 남색 장삼을 입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부상을 당했는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들을 뒤쫓는 것은 원뿔 형태의 괴상한 비차였다. 새빨간 비차를 회색 기운이 보호하고 있었고 희미하게 귀물 환영들이 번뜩였다.
그 위에는 새빨간 가시가 돋친 은색 갑옷을 입은 사내가 서있었다. 뇌운각에서 한립과 겨룰 뻔한 규 씨 사내였다. 그는 비차에 서서 탐욕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노란 배와 원뿔 비차의 거리가 점점 좁아졌다.
“저희는 수사와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습니다. 추격 법기를 내놓고 당장 산맥을 떠날 테니 우릴 놔주십시오.”
결국 노란 배에 탄 수사 중 하나가 다급히 소리쳤다.
“놔 달라? 그럴 수야 있나. 정혈과 원신이 얼마나 몸을 보하여 주는데.”
규 씨 사내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울려 퍼졌다.
“과연 천인공노할 짓을 벌이고 다니는 사수(邪修)였구나 이놈!”
그 말을 듣고 사내의 인상이 구겨지며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손에 잡힐 것을 생각하니 공포가 엄습했다.
노란 배를 조종하던 두 명은 피를 토해 속도를 높였고, 부상을 치료하던 수사도 어쩔 수 없이 운공을 멈추고 법력을 보탰다.
이에 노란 배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져 점점 좁혀지던 원뿔 비차와의 거리를 조금씩 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규 씨 사내가 냉소하며 한 발로 비차를 내리치자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다.
새빨간 원뿔 비차 주위의 회색 기운이 요동치더니 엄청난 구름떼가 형성된 것이다.
크아앙!
뒤에서 들려오는 괴성에 앞서 달아나던 세 수사가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회색 구름을 뚫고 은색 교룡 한 마리가 튀어나와 번쩍이며 사라진 것이다.
이에 흠칫 놀라 더욱 빨리 배를 조종했으나 순식간에 노란 배 위에서 파동이 일고 교룡이 나타나 달려들었다.
“……!”
세 수사들은 기겁했지만 곧바로 수결을 맺어 보물 일고여덟 개를 사정없이 방출했다. 그것을 본 교룡의 눈이 핏빛으로 물들고 입에서 새빨간 구슬을 뿜었다. 구슬이 빙글빙글 돌다 갑자기 대량의 검붉은 빛을 발산했다.
모든 보물들은 핏빛에 닿자 애달피 울며 추락했다. 노란 배의 보호막도 핏빛 앞에서는 촛농처럼 녹아내렸다.
세 수사가 핏빛에 휩싸인 건 바로 그다음이었다. 처절한 비명이 연들아 터져 나왔고, 핏빛은 남색 장삼 수사들을 녹여 주먹 크기의 핏덩이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은색 교룡은 핏덩이들을 한입에 꿀꺽 삼키고는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입가에 핏자국을 닦아낸 규 씨 사내는 서늘한 눈빛으로 산맥 깊은 곳을 살폈다.
* * *
산맥 사이사이에 하얀 안개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주변의 새까만 안개와 비교가 되어 더욱 눈에 띄었다. 한립 일행은 그 앞에 멈추었다.
“이곳을 통과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까요?”
섬섬이 월종을 보며 물었다.
“갑자기 나타난 마봉(魔蜂) 떼를 돌아가느라 벌써 이틀을 허비했습니다. 여기를 지나지 않고는 제시간에 도착하기 어렵습니다.”
월종이 미간을 좁히며 솔직히 답했다.
“하지만 예전에는 이런 안개가 없었다고 하셨잖아요. 너무 괴이한 일입니다.”
“괴이하다 뿐이겠는가, 안개 속에 살기가 느껴지는 것이 강대한 마수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네. 안개 자체를 고계 마수가 생성한 것일 수도 있고.”
한숨을 쉬는 섬섬을 보며 한립이 한마디 했다.
“한 선배님께서 계시는데 고계 마수가 있다고 해도 문제없지요.”
“그건 틀린 말일세. 한 두 마리라면 처리할 수 있겠지만 고계 마수 무리가 있다면 내 목숨도 보전하기 급급할 것이야.”
“고계 마수 무리요? 그럴 리가요. 고계 마수들은 무리를 이루어 서식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섬섬이 어색하게 미소를 유지했다.
“장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안개가 옅기는 하지만 이렇게 넓은 영역에 퍼져 있는 것을 보면 마수 떼가 모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굉장히 강력한 고계 마수가 살든 아니면 여러 마수들이 떼거지로 있든 둘 중 하나겠지요.”
월종까지 이렇게 말하자 섬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자는 말씀이십니까?”
“당장 돌아갈 정도는 아니고 들어가면 각자 조심하자는 것이네. 나도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닥치면 돌아가야겠지만.”
한립이 미소 지었다. 그 말에 섬섬은 얼굴을 풀었고 월종이 오히려 표정이 굳었다.
“한 선배님께서는 들어가시기로 마음을 정하신 것입니까?”
“그렇네. 중요한 일로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야 없지. 월 수사는 돌아가고 싶은 것인가?”
“선배님께 은혜를 입었으니 꼭 들어가셔야 한다면 함께 하겠습니다.”
월종은 불안했지만 이를 악물고 결정을 내렸다.
“결정된 것 같으니 안으로 들어갈까요? 혹시 강력한 마수를 마주친다고 해도 제 걱정은 하실 것 없습니다. 수행은 낮지만 스스로를 지킬 수단은 지니고 있으니까요.”
“섬 선자의 말을 들으니 더욱 안심이 되는군.”
섬섬의 말에 한립이 먼저 푸른 빛줄기로 변해 안개 속으로 들어갔고, 정족 여인과 월종도 그의 뒤를 따라갔다.
한립은 저공비행을 하면서 쉼 없이 주위를 살폈다. 그는 지금 명청령안을 극성으로 발휘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는 주술문자들이 쉼 없이 떠다녔다. 괴물 나방에게 얻은 재료로 만든 수정 방패였다. 예기치 못한 위험을 대비한 방비였다.
뒤에서 한립을 따라오고 있는 월종은 이상하게 생긴 금색 상자를 꺼냈다. 뚜껑을 여니 하얗고 토실토실한 은색 반점이 있는 애벌레가 들어 있었다.
갑자기 애벌레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섬섬은 금빛 속에서 작은 거울 8개를 날려 주변을 맴돌게 했다. 거울 뒷면에 고대 문양이 새겨진 것이 꽤 쓸 만해 보였다. 물론 월종과 섬섬은 그밖에도 다른 보물도 꺼내 하얀 안개 속에 도사리고 있을 미지의 위험을 경계했다.
한립도 강적을 만나면 바로 날릴 수 있게 몰래 푸른 뇌문 구슬을 쥐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그들을 둘러싼 하얀 안개는 마기와 달라 마화가 될 위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안에서도 의식과 영목 신통이 제한받아 멀리까지 살필 수 없었기에 한립은 주변을 단단히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은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다. 안개 속에 무엇이 있든 자극하지 않고 조용히 빠져나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 * *
그들은 반 시진 넘게 하얀 안개 속을 날아갔다.
한립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섬섬은 초조한 기색을 드러냈다. 월종 역시 어두운 얼굴로 자주 상자 속의 괴충을 살폈다.
삐익! 삐이익!
갑자기 뒤에서 다급한 벌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월종이 들고 있는 애벌레 괴충이 꼿꼿이 몸을 세우고 괴상한 경고음을 내고 있었다.
애벌레의 은색 반점들이 번득이고 머리 위의 악귀 문양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주변에 고계 마물이 나타났습니다. 저희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어요!”
“어느 방향인지 말해주게.”
월종이 다급히 외치자 한립은 당황하지 않고 물었다.
“서남쪽이고, 총…… 다섯 마리입니다.”
애벌레의 경고음이 더욱 커지자 월종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어떤 고계 마수인지 모르지만, 다섯 마리라면 꽤 골치 아프겠군.”
서남쪽을 살피던 한립이 중얼거리며 곧바로 소매 속에서 72자루의 푸른 검들을 불러냈다. 그가 주술을 외며 허공을 가리키자 검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푸른 연꽃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연꽃들은 빙빙 돌다 하나로 이어져 푸른빛의 장막을 펼쳤다. 바로 한립의 춘려검진이었다. 검진을 펼쳐 두어야 한 번에 여러 고계 마수들을 가두고 상대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마수들을 상대하는 동안 정족 여인과 월종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일정에 그들은 꼭 필요했기에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검진!”
섬섬이 바로 한립의 행동을 알아차리고 기뻐했고, 월종도 그 말을 듣고 희색을 드러냈다. 한립은 담담히 푸른빛의 장막을 향해 손짓했다.
파앗.
푸른 기운이 날아가자 빛의 장막이 흐릿해지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섬섬과 월종은 춘려검진의 신묘한 변화에 안심하고는 한립 쪽으로 다가가 숨었다. 섬섬과 월종이 눈치껏 거리를 두고 숨었기에 한립도 무어라 하지는 않았다.
그러는 동안 남서쪽에서 끼룩끼룩 거리는 새의 울음소리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한립은 불안해졌고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러자 곧바로 대연결이 발동돼 체내를 돌며 머리를 맑게 했다.
그가 뒤를 돌아보자 섬섬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월종은 점점 눈이 풀리고 얼굴에 붉은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새의 울음소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섬섬은 얼굴을 굳혔다.
쉭!
그녀는 손에 들고 있는 부적을 날려 하얀 냉기로 그를 감쌌다.
“아!”
냉기가 스며들자 월종이 화들짝 놀라 몸을 떨었다. 머리 위로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몸이 서늘해지며 몽롱하던 정신이 맑아진 것이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자!”
“아닙니다.”
섬섬이 빙긋 웃고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월종은 의아해했다. 그의 수행이 섬섬을 월등히 앞서는데 어째서 그녀는 멀쩡하단 말인가?
‘정신류 술법과 관련한 보물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그때 서남쪽의 안개가 요동치며 검은 그림자들이 흉흉한 기세로 날아들었다. 전부 대머리 독수리처럼 생긴 마조(魔鳥)들이었는데 머리는 여인의 얼굴을 하고 청록색 눈이 아래위로 4개나 달려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단아해 보였을 여인의 얼굴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다섯 마조들 중 네 마리는 연허 초기였고, 중간에 몸집이 가장 큰 독수리는 연허 후기였다.
“끼룩! 영계인들이라니 잘 되었다. 영계인을 맛본 것이 얼마만인지!”
커다란 마조가 한립 일행을 보고 괴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립은 냉랭히 마수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연허 후기 마조는 지능이 높은지 곧바로 달려들지 않고 고공에 떠서 그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이에 한립은 눈살을 찌푸리다 들고 있던 구슬을 집어던졌다.
구슬들은 다섯 줄기의 푸른빛으로 변해 괴이하게 마조들 앞으로 날아갔다.
끼룩!
우두머리 마조는 뜻밖의 공격에도 당황하지 않고 울음소리를 내 나머지 독수리들을 흩어지게 했다.
이에 한립이 한 손으로 수결을 맺자 푸른 빛덩이 다섯 개가 마조들을 쫓지 않고 가운데로 모여들었다.
콰앙!
쿠르릉 콰쾅! 콰콰쾅!
푸른빛들이 서로 충돌하며 터지더니 동시에 무수히 많은 뇌전들이 괴이하게 나타나 그 일대를 뒤덮어 버렸다. 한립의 공격을 피하던 다섯 마조들도 마구 떨어지는 뇌전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끼루룩! 끼루룩!
월종이 그것을 보고 기뻐하는데 다시 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뇌전 속에서 다섯 개의 빛기둥이 튀어나와 푸른 뇌전들을 분분히 흩어버렸다.
천둥소리가 그치고 다섯 마조들이 푸른 뇌전을 벗어나 허공을 선회했다. 그들은 엄청나게 화가 나 있었다. 그들은 우두머리를 제외하고는 전부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고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깃털이 타들어간 마조들은 분노하며 사납게 날아들었다. 한립을 찢어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였다.
우두머리 마조는 태연한 한립을 보고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했다.
끼룩!
마조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 나머지 네 마리 독수리들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한립의 검진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독수리들은 매우 빠르게 춘려검진의 범위에 들어서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