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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965화 (722/2,000)

965화. 횡포

*

마수 머리를 앞뒤로 살피던 월종과 섬섬은 소름이 돋았다. 코와 입은 없고 털이 수북한 뺨에 새빨간 눈만 열댓 개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많은 눈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으니 정말 끔찍했다.

“다, 다안마(多眼魔)입니다. 태생적으로 미혼술과 섭혼술에 능하고 마금산맥에서도 보기 드문 종류이지요. 마아 떼들이 서식지를 떠나 외곽으로 몰려올 만 했습니다.”

“다안마! 어쩐지 눈을 계속 깜빡 거리더니 섭혼술을 쓰려 했던 모양이군. 쯧쯧, 내게 섭혼술을 펼치려 들다니.”

한립은 대수롭지 않게 혀를 찼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겨우 일다경 만에 고계 다안마를 참살하고 돌아오시다니요. 미혼술 뿐 아니라 다른 신통도 강력해 자신보다 수행이 더 높은 수사를 만나도 쉽게 밀리지 않는 마수인데요.”

월종이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강력한 신통을 펼칠 시간을 주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어차피 법력 자체는 상족 7, 8계 정도이니 그다지 수행이 높은 것도 아니었고.”

한립은 담담히 미소를 지었다. 그 말에 월종은 할 말을 잃었다.

“다안마에 대해서는 저도 들은 바가 있습니다. 마수의 몸에서 가장 귀한 재료가 바로 눈알인 미혼안주(迷魂眼珠)이지요. 정신류 법기를 제련하기에 최적의 재료라 성계 다안마의 눈알은 거의 영보에 가까운 이보를 만들 수도 있다고 합니다.”

섬섬이 웃으며 설명을 보탰다.

“성계 다안마였으면 나도 멀리 피해갔을 것이네! 그래도 가장 중요한 재료를 챙겼다니 다행이군. 나머지는 마기 속으로 떨어져 찾기가 어려워서 말이지.”

“다안마를 처리해 안심입니다. 다른 마수를 부리거나 연합하는데 능하고 원한을 기억하는 습성이 있어 놓쳤다면 후환이 무궁무진했을 것입니다. 이곳은 오래 머무를 곳이 못되니 어서 떠나시지요. 조금 전 전투가 다른 고계 마수들의 주의를 끌었을지도 모릅니다.”

“예, 월 형. 한 선배님 출발하시지요.”

섬섬이 바로 찬성했고 한립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수 머리를 거둔 한립은 곧바로 푸른 둔광을 일으켰다. 이렇게 셋은 다시 길을 재촉했다.

* * *

그들이 떠나고 반나절 후, 어딘가에서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삽시간에 검은 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뒤덮었다. 그 안에서 열댓 개의 핏빛 기둥이 쇄도해 검은 안개를 뚫고 들어갔다. 빛기둥이 닿는 곳마다 검은 안개들이 물러나 바닥이 드러났고 머리가 없는 괴상한 마수의 시체가 나타났다.

하반신은 녹색 구렁이에 상반신은 도마뱀을 닮은 마수의 시체를 본 검은 구름 속 그림자가 비통하게 절규했다. 마치 울부짖는 것 같았다.

“누가 감히 내 아들을! 반드시 갈가리 찢어 죽일 것이다. 영원히 고통 속에 머물며 혼백조차 남기지 못하게 할 것이야!”

노쇠한 노인이 매섭게 소리쳤다.

“구야, 오읍! 당장 머리를 가져간 놈을 찾아내라. 전부 씹어 죽일 것이야!”

“예!”

“존명!”

검은 구름이 갈라지며 은빛과 붉은빛이 튀어나갔다. 머리 잃은 시체에게 내려간 빛에서 반인반수의 괴물들이 나타났다.

하나는 머리에 새까만 뿔 한 쌍이 솟은 거구의 사내로 검은 갑옷을 입고 있어 상반신은 인족과 비슷했다. 하지만 굽은 두 다리가 짐승의 것으로 새까만 털이 자라 있었다.

그리고 옆에 선 여인은 두 눈이 청록색에 귀가 뾰족하고 엉덩이에 노란 살쾡이 꼬리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그들은 시체 주위를 맴돌았다.

잠시 후 사내가 입에서 검은 빛을 뿜어 시체에 불어 넣었고 동시에 머리의 새까만 뿔이 빛을 머금었다. 시체가 부르르 떨리며 검은빛에 휩싸인 회색 기운이 떠올랐다.

그리고 곱상한 여인은 코를 킁킁 거리며 주위를 마구 헤집고 다녔다.

“찾았습니다. 소주(少主)를 해친 것은 단 한 명의 소행입니다. 곁에서 느껴지는 외부인 두 명은 일행인 듯합니다.”

여인이 행동을 멈추고 먹구름 쪽으로 떠올라 공손히 아뢰었다.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알아냈느냐?”

노쇠한 목소리가 냉랭히 물었다.

“그 자가 비술로 기운을 감추기는 했지만, 마기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이방인이 기운을 완벽히 숨길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저쪽으로 날아갔습니다. 하지만 달아난 지 오래라 기운이 옅어져 따라잡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인은 솔직히 답했다.

“흥, 그럼 소용없는 것 아니냐!”

노인이 벌컥 화를 냈지만 여인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거구 사내가 날아올라 여인의 옆에 섰다.

“주인님께 아룁니다. 소주의 체내에 남은 혼백의 잔해를 통해 흉수의 모습을 알아냈습니다.”

“보이거라!”

노인이 음산하게 명했다.

사내가 소매 속에서 회색 기운에 검은 빛이 섞인 괴이한 구슬을 불러냈다. 그는 두 손으로 수결을 맺으며 빛구슬을 향해 연달아 법결을 불어넣었다.

빛구슬이 폭발하고 흐릿하게 누군가의 상반신이 나타났다. 푸른 장포를 걸친 청년은 온몸이 금빛으로 반짝였고 미간 사이에 검은 눈알이 반짝이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한립이었다.

펑!

흐릿한 환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파멸법목! 저 놈이 확실하구나. 파멸법목이 아니면 어찌 내 아들이 달아나지도 못하고 죽었겠는가. 당장 이 놈을 잡으러 출발한다.”

노인은 한립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이를 악물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대인께서 직접 추격을 하시려는 것입니까?”

“내 명령을 듣지 못한 것이냐?”

주저하던 거구 사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노인의 목소리가 더욱 냉랭해졌다.

“아닙니다. 그저 대인께서 이번에 출관한 이유를 잊으신 것은 아닌지 걱정되어 말씀드린 것입니다. 성조 대인의 분신이 이번 마기 폭발의 힘을 빌려 깨어나시기 직전이 아닙니까. 주인님께서 늦게 가시면 철마 쪽에서 성조 대인께 무어라 중상모략을 할지 모를 일입니다.”

“흥, 철마 따위!”

노인은 하찮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지만 확실히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구야, 네가 추적과 은신에 능하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흉수를 찾아 내거라. 나는 우선 성조 대인의 출관을 맞이하고 돌아와 합류하겠다. 그때까지 그것들을 찾아내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고 있겠지?”

“존명!”

여인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오읍, 우리는 출발한다.”

먹구름 속에서 푸른 비늘로 뒤덮인 거대 손이 나타나 아래쪽의 머리 잃은 시체를 쥐고 돌아갔다.

“예, 주인님!”

뿔 난 거구 사내는 공손히 답하고 먹구름 안으로 뛰어들었다.

쿠르릉!

먹구름이 굉음을 내며 날아갔고 이제 남은 것은 여인뿐이었다. 먹구름이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자 그녀는 짧게 한숨을 쉬고는 방향을 잡고 은색빛으로 날아올랐다.

* * *

마금산맥으로 들어온 화신기와 연허기 이족인이 천천히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천천히 비행을 하며 진법 원반의 반응을 수시로 확인했다.

“이게 벌써 며칠째 입니까? 지선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왕 사숙님, 이 방향이 맞는 것입니까?”

화신기 수행의 청년이 참다못해 중얼거렸다.

“내 복괘술(卜卦術)이 백발백중은 아니라도 5분의 1은 맞다. 여러 번 점을 쳐서 전부 이 방향을 나타냈으니 맞을 것이야.”

수척한 얼굴의 중년인이 진법 원반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답했다.

“5분의 1이면 틀릴 수도 있지요.”

“그래도 아예 아무런 단서가 없는 것보다는 낮지 않더냐.”

청년이 불퉁거리는 사이 그들은 꽤 높은 산봉우리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곳은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새까만 땅이었고 암석은 기이한 빛으로 번들거렸다.

그들이 막 산봉우리를 넘어가려는데 사단이 났다.

쾅!

갑자기 산봉우리 한쪽이 폭발하며 거대한 검은빛의 칼날이 날아든 것이다.

“헛!”

중년인이 깜짝 놀라 재빨리 입에서 하얀 방패를 뿜었다. 방패는 커다랗게 변해 중년인의 앞을 막아섰다. 검은빛이 날아들고 중년인과 방패가 종이처럼 잘려나갔다. 검은빛의 칼날을 전혀 막지 못한 것이다.

이상한 일은 맹렬히 달려든 검은빛의 칼날이 곁에 있던 청년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콰콰쾅!

거대한 검은빛이 지면에 떨어져 깊은 골짜기가 파이고 말았다.

청년은 화신기 수사였지만 전투 경험이 많지 않은지 겁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급히 하얀 빛줄기로 변해 도망치려 했다. 그런데 폭발한 산봉우리 암벽에서 회색빛이 감돌고 흉악한 얼굴이 눈을 떴다.

흉악한 얼굴은 입을 벌려 노란 기운으로 청년의 하얀 둔광을 빨아들였다.

쿠쿵.

암벽에서 누각만한 거대한 무언가가 몸을 일으켰다. 그것은 놀랍게도 엄청난 크기의 두꺼비 마수 거서였다. 마수의 전신이 회백색으로 매끄럽게 빛났고 거대한 머리가 몸의 3분의 1은 되었다.

이렇게 거대한 마수가 산봉우리 한쪽에 웅크리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런데 봉우리 반대편에서도 커다란 인영이 천천히 날아올랐다.

그는 푸른 갑옷을 입고 등 뒤에 검은 날개가 솟아있었다. 사내의 몸집이 큰 만큼 날개도 거대했고 표면에 깃털 대신 은색 주술문자가 빼곡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철마 대인, 겨우 영계인 두 명인데 잠복해서 기습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두꺼비 마수가 날개 괴인에게 날아가 물었다.

“오랫동안 마금산맥을 찾는 이들이 없었는데 영계인들이 쏟아져 들어온 것이 이상하지 않더냐. 성조 대인께서 깨어나시기 직전인데 소란을 피우게 둘 수야 없지. 그래서 깨끗이 정리를 하는 것이다.”

날개 괴인이 담담히 답했다.

“지금은 성조께서 영계 최상급 수사들과 약조한 기간입니다. 누군가 들어왔다고 해서 이상한 일은 아니지요.”

“지금은 사소한 것도 그냥 넘길 수 있는 때가 아니다. 거서, 흡혼술(吸魂術)로 저들의 혼백을 분해해 그냥 마수를 사냥하러 온 것인지 확인 하거라.”

날개 괴인이 냉랭히 분부했다.

“예, 대인!”

거대 두꺼비는 성가신 눈치였지만 감히 명을 거스르지 않고 눈을 감았다. 오색빛이 마수에게서 뿜어져 나왔고, 검은 주술문자들이 그 주위를 빠르게 회전했다.

일다경이 지나자 거서가 눈을 떴다. 주변의 오색빛과 검은 주술문자들이 거대한 몸뚱이로 흡수된 후였다.

“대인, 영계인들의 목적을 알아냈습니다. 알고 보니 부상당한 지선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결과라 거서도 얼떨떨했다.

“지선? 그게 무엇이지?”

“사람의 형상을 갖춘 영지(靈芝)를 뜻하는 것입니다.”

“정말이더냐?”

그 말을 듣자마자 날개 괴인이 희색을 감추지 못했다.

“영계인의 원신을 완전히 소화했으니 틀림없습니다. 대인께서도 지선에 관심이 있으신지요?”

“흐흐, 고마계의 화형 마소(魔魈)는 너도 알겠지. 지선이 바로 그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것만 찾을 수 있다면…….”

날개 괴인이 눈을 반짝였다.

“화형기 마소요? 어쩐지 영계인들이 전부 그것을 찾느라 난리더라니! 그런데 저들은 지선의 진정한 용도를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놀란 거서가 영계인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어찌 되었든 지선이 그들 손에 넘어가게 둘 순 없지! 성조 대인을 환영하는 자리에 늦을 수도 없으니……. 이렇게 하자, 너는 돌아가 마수들을 소집해 지선을 찾아 오거라. 마수들이 주변 지리에 환하니 어렵지 않을 것이야. 주의할 점은 ‘다안’이나 ‘혈비’의 수하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은밀히 움직여야 한다.”

“알겠습니다, 대인! 바로 돌아가 지선을 찾겠습니다. 영계인들이 추적용 법기를 지니고 있으니 전부 빼앗아오면 더 쉽게 찾을 수 있겠지요. 대인이 처리한 자의 법기는 손상되었지만 제가 삼킨 자의 법기는 멀쩡합니다. 일단 이것을 바치겠습니다.”

거서가 커다란 입을 우물거리다 진법 원반을 뱉어냈다.

“그렇다면 영계인들은 싹 다 죽여야겠구나. 즉시 그렇게 처리하거라!”

날개 괴인이 진법 원반을 받고 기뻐했다.

“존명!”

거서가 공손히 답하고 육중한 몸을 날려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날개 괴인도 법기를 챙겨 넣고는 날개를 펄럭여 하늘 저편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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