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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961화 (718/2,000)

961화. 지선(芝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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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환영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입을 열었다.

“어쨌든 걱정 마! 이미 그 둘을 통제할 방법을 마련해 두었잖아. 둘 다 딴마음을 품고 있지 않다면 다행이지만, 문제가 생기면 너보다 조금 높은 존재라도 막을 수 있을 거야.”

“평범한 수사라면 그렇겠지! 그러나 그들 중에 평범한 인물이 있냔 말이야. 준비한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

정족 여인이 예리하게 핵심을 짚었다.

“네 몸 안에 숨어 있었지만 나도 몇 번 만나보니 알 것 같더라. 월종은 기운이 수시로 강해졌다 약해졌다 들쑥날쑥하고, 가까이 다가가면 희미하게 살기(煞氣)가 느껴졌어. 직감이지만 필살(必殺)의 신통을 지닌 패도적인 공법을 익혔을 거야. 거기다 다른 신통과 비술도 만만치 않으니 마금산맥을 수시로 드나들고도 살아남았겠지.

하지만 한립이라는 녀석은 더욱 경계해야 해! 수행이 훨씬 높은 것은 물론이고 익힌 공법과 신통이 묘하다니까. 왠지 모를 위기감이 느껴지는 존재야. 하지만 내가 알려준 방법은 지금 네 수준에서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야. 적을 죽이지는 못해도 목숨은 부지할 테니 마음 놓으라고.”

기린 환영의 어투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기영, 네 말을 믿어볼게. 그런데 그보다 더 걱정되는 일이 있어.”

섬섬이 한숨을 쉬며 가늘게 눈을 떴다.

“뭔데?”

“기린 원신이 자폭하면서 10만 개의 분혼들이 달아났잖아. 살아남은 분혼이 너 혼자가 아니라면 진령의 혈에 대해 아는 다른 자들이 있을 거야. 수백 년이 지났는데 벌써 누가 다녀갔으면 어떻게 해?”

“당시 수많은 분혼들이 갈라져 나왔지만 달아나는데 성공한 건 손에 꼽혀. 그들도 나중에 변고를 당하거나 다른 몸을 찾는데 실패했을 수도 있고. 진령의 혈을 살피기 전에는 확신할 수 없겠지만 누가 다녀갔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

“그러길 바라야겠지. 이번 일만 성공하면 앞으로 수련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질 테니까.”

“하하, 분명 그럴 수 있을 거야.”

섬섬의 말에 기영이 웃음을 흘렸다.

“맞다, 한립이라는 자의 의식이 상당히 강한 것 같으니 앞으로 될 수 있으면 나와 연락하지 마. 다음번에 불러낼 때는 진령의 혈이길 바라!”

기영은 당부를 마치고 정족 여인의 몸으로 뛰어들어 사라졌다. 섬섬은 짧게 탄식하고는 전송진으로 걸어 들어가 공간을 빠져나갔다.

* * *

3일 후, 운성 인근의 작은 산.

평범한 외모의 청년이 푸른 장포를 입고 뒷짐을 쥔 채 서 있었다. 산을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그는 바로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한 한립이었다. 이제 막 하늘이 밝아오는 것을 보니 조금 일찍 나온 것 같았다.

오랜만에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며 맑은 공기를 마시니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반 시진 후, 파공음이 들리고 핏빛 줄기가 그의 옆으로 떨어졌다.

“한 선배님을 뵙습니다. 오래 기다리신 것은 아닌지요.”

월종이 포권을 하며 인사했다.

“아니네.”

한립의 말에 월종은 미소를 머금고는 대충 주변을 정리하고 깨끗한 자리를 찾아 가부좌를 틀었다. 그러나 한립은 여전히 암석에 서서 주변을 조망하고 있었다.

한식경이 되자, 드디어 섬섬이 도착했다. 하얀 빛덩이가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월종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섬 선자도 왔으니 출발하지.”

한립은 먼저 푸른 빛줄기로 변해 날아올랐고, 월종과 섬섬도 얌전히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에게 한 달이란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일이 잘 풀리면 돌아오는 시간을 포함해 세 달이면 충분할 것이다.

* * *

한 달 후, 한립과 섬섬 그리고 월종은 끝없이 이어지는 산맥을 앞에 두고 멈추었다. 전방에 대량의 푸른 구름이 운해(雲海)를 이루고 있었다.

“마금산맥을 둘러싼 청령운해(靑靈雲海)라는 금제입니다. 산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입구가 있는 곳이지요. 다른 곳으로 무턱대고 들어가다가는 화를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월종이 푸른 운해를 보며 눈을 빛냈다.

월종의 말에 한립은 생각에 잠겼고, 섬섬의 눈에서는 열기가 느껴졌다. 그들은 다시 둔광을 일으켜 월종이 이끄는 대로 날아갔다.

상당한 거리였지만 속도가 빨라 일다경 만에 청령운해에 다가갈 수 있었다.

“…….”

날아가던 한립의 표정이 미미하게 달라졌다. 멀리서는 몰랐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푸른 안개 안에서 굉음이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월종의 푸른 빛줄기가 먼저 멈추고 금색 영패를 꺼내 던졌다. 안개 속으로 영패가 사라지고 금빛이 번지는 곳마다 푸른 안개가 밀려나 통로를 만들었다.

“저를 잘 따라와 주십시오. 통로를 벗어나면 안 됩니다.”

월종이 당부를 하고 둔광을 일으켜 날아갔다. 한립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괜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차분히 월종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섬섬이 따라가며 이상하다는 얼굴을 했다.

“저도 이전에 마금산맥에 와본 적이 있는데 다른 곳에 먼저 들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다른 수사들이라면 그래야겠지요. 하지만 제가 이곳에서 약간의 명성이 있어 그런 수고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월종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금빛이 안내하는 대로 운해 속으로 한참을 날아갔다.

잠시 후 돌연 눈앞이 밝아지고 저 멀리 건물들이 보였다. 대로를 사이에 두고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석조 건물들이 모여 있는 마을이었다.

마을 중앙의 높은 누각은 총 다섯 개의 층으로 이뤄져 있었고 특별히 청회색 바위를 깎아 웅장한 면모를 드러냈다. 그러나 거리를 거닐고 있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월종은 바로 마을 중앙의 누각으로 향했고, 한립과 섬섬도 그를 따라갔다. 커다란 대문 위에는 뇌운각(雷雲閣)이라는 글씨가 고대 문자로 적혀 있었다.

“안으로 드시지요! 이곳은 금제 영패를 수령하는 곳입니다. 섬 선자께서도 와보셨지요?”

월종이 웃으며 정족 여인을 보았다.

“예, 한번 와보았습니다. 그때는 먼저 다른 곳에 들려 분운령(分雲令)을 구입한 후에야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지만요.”

“선자께서 구입하신 분운령은 한 달밖에 사용할 수 없는 물건입니다. 제가 운해를 가르며 사용한 보물은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보물이고요! 제가 워낙 마금산맥을 자주 드나들다 보니 이곳을 지키는 선배님 한 분이 특별히 내주신 것입니다.

저희가 수령할 벽뢰산(闢雷傘)이야 말로 진정으로 마금산맥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행패라 할 수 있습니다. 뇌전 금제는 성족 존재도 함부로 뚫고 들어가지 못하니까요.”

월종은 누각 안으로 들어가며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1층에는 탁자와 의자 몇 개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1층을 지나 바로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에 올라가니 하얀빛의 장막이 계단 입구에 떠있었다.

월종은 아무렇지 않게 빛의 장막을 지나갔고 한립도 무표정하게 빛의 장막으로 들어갔다. 그 역시 막힘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빛의 장막을 지나자마자 계단 위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듯했다. 떠들썩한 소음에 월종과 섬섬마저도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곧 침착함을 유지하고는 3층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3층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서른 명이 넘는 다양한 복색의 이족인들이 모두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어 북적였다.

중간에 놓인 원형의 돌 탁자를 제외하면 바닥은 수사들이 놓아둔 방석으로 가득했다.

“엇, 월 형!”

“월 수사도 오셨습니까?”

“하하, 어쩐지 월 형이 왜 안 보이시나 했습니다.”

그곳에 모인 이들 중 거의 절반이 반갑게 그에게 인사를 했고, 그중에는 월종보다 수행이 높은 자도 있었다. 그와 개인적인 친분이 없는 경우에도 월종이라는 이름을 듣고 표정이 달라졌다.

마금산맥에서 유명하다는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월종을 보고 별 반응이 없는 이들은 오히려 한립을 훑었다.

‘흠…….’

대부분 연허급이었고 수행이 연허기 최정상에 이른 자도 셋이나 되었다. 또 다른 한 명은 보물로 법력을 가려놓아 정확한 수행을 파악할 수 없는 자도 있었다.

“언 선배님께서 여기까지 다 오셨습니까? 마금산맥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월종은 말을 걸어오는 수사들에게 일일이 포권을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회백발의 노인을 발견하고는 먼저 다가가 인사를 했다.

노인은 연허 최정상의 수사로 인자한 눈빛을 보내는 것이 월종과 친해보였다.

“월 현질도 그 일로 마금산맥에 들어가려던 것이 아니었는가?”

회백발 노인이 의외라는 듯 반문했다.

“저는 따로 볼 일이 있어 왔습니다. 산맥의 마기가 분출하는 기간인데 어찌 이렇게 많은 수사들이 모여 있는 것입니까? 설마 다들 벽뢰산 때문에 온 것은 아니겠지요.”

월종은 낯선 수사들의 얼굴을 훑었다.

“마금산맥에 오르지 않을 거면 누가 이곳에 오겠는가. 이유를 말하자면 조금 긴데……. 그런데, 이 수사 분들은 누구신가?”

노인이 월종 뒤에 선 한립과 정족 여인을 보며 물었다.

“한 선배님과 섬 선자는 이번에 저와 마금산맥에 함께 들어가실 분들입니다. 엄 선배님, 하실 말씀이 있으면 그냥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여기서 사정을 모르는 것은 저희 셋뿐이니까요.”

“그건 그렇지! 간단히 설명하자면, 며칠 전 인간의 형상을 한 지선(芝仙)이 갑자기 마을로 내려와 수사 한 명을 공격하고는 마금산맥으로 달아났다네.”

“인간의 형상을 한 지선이요? 정말입니까?”

월종은 크게 놀라 되물었고, 한립과 정족 여인도 시선을 교환했다.

“정말이고말고! 누군가 지선을 공격해 몇 방울의 지선혈(芝仙血)을 얻어 대량의 영석으로 교환해 갔다네.”

“영약이 화형(化形)하는 것만 해도 정말 어려운 일 아닙니까! 그저 오래 자란다고 영성을 갖추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인간의 형상을 한 영약이라니, 영계를 통틀어도 보기 드문 일입니다. 이 소식이 퍼지면 다른 곳은 몰라도 천운 지역 전체가 요동치겠어요. 그렇다면 이곳에 모인 수사들은 근처에 있다 우연히 정보를 들은 이들입니까?”

월종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맞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더 많은 수사들이 몰려들 거예요. 하지만 너무 늦게 소식을 접한 이들은 결코 지선을 잡지 못할 겁니다. 이번에 나타난 인형 지선은 흙과 나무 두 가지 둔술에 정통한 데다 ‘부광화영(浮光化影)’이라는 원거리 이동 능력까지 지니고 있으니까요.”

하얀 얼굴에 말쑥한 청년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부광화영! 그런 전설적인 둔술을 익힌 지선을 쫓아 마금산맥 안을 수색한다고요? 이곳에 모인 수사들이 아니라 성족 수사들이 몰려와도 잡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섬섬이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게 지선이 공격했던 수사가 특수한 신통을 익히고 있어 불의의 기습을 당하자 바로 ‘금원금광(金元禁光)’이란 빛을 쏘아 보냈거든요. 그걸 맞고 달아나려던 지선이 원거리 이동 신통을 펼치려 했지만 금원금광이 발작해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뇌운대진(雷雲大陣)의 강력한 뇌전을 뚫고 마금산맥 안으로 달아난 것이지요.”

말쑥한 청년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이야기를 다시 이어나갔다.

“지선을 공격한 수사의 말에 따르면 금원금광이 한두 달은 지속된답니다. 그가 직접 지선 체내의 금광을 추적할 진법 원반을 제련할 수도 있다고 했고요. 백 리 안에 지선이 있으면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것이지요.

지선이 둔술과 은신술이 고명해도 전투 능력은 그리 높지 않고 중상을 입어 마금산맥 깊은 곳으로 달아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두 달이 지선을 잡을 절호의 기회란 말이지요. 멀리서 소식을 듣고 오는 수사들은 때를 놓치고 말겁니다.”

한립 일행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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