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9화. 서령불새와 유리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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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잖은 이들이 의식을 이용해 꼭두각시를 살피려 들었다. 그러나 의식을 방출한 이들은 하나같이 화들짝 놀랐다. 마차에서 기이한 흡인력이 발생해 의식을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아직 마차에 주인이 없어서인지 다행히 재빨리 회수하자 아무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것이 마차의 신묘함을 더욱 부각시켜 많은 이들이 욕심을 드러냈다.
한립도 관심이 가긴 했지만 곧 쓴웃음을 지으며 마음을 접었다. 아직 가격을 듣기 전이었지만 성족급 존재를 막을 수 있는 보물이라면 엄청난 가격에 낙찰될 게 뻔했다.
그나저나 아직 금뢰죽이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경매소가 그의 물품을 아주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소포의가 무대 위에서 지유전차의 경매가를 밝혔다.
“지유전차, 최저가 1억2천만으로 시작합니다.”
엄청난 가격에 한립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지유전차는 높은 가격에도 경쟁이 치열했다. 그러다 몇몇이 한두 번 가격을 불러보다 2억이 넘어가자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지유전차는 천으로 얼굴을 가린 복면 여인에게 2억2천만이라는 가격에 낙찰되었다.
그녀가 물건을 받으러 나서자 많은 이들이 이상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겨우 화신 중기의 수행에 이렇게 큰 액수를 내놓을 수 있는 자라면 평범한 신분은 아닐 것이다.
한립도 의아했지만 바로 관심을 거두었다. 소포의가 드디어 그가 내놓은 비취색 나무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벽사신뢰를 품은 금뢰죽입니다. 최저가 1억7천만으로 시작합니다.”
이번 설명은 아주 간결했고, 소포의는 대나무를 들어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가볍게 흔들었다.
쿠르릉 콰쾅!
무수히 많은 금빛 뇌전들이 대나무에서 튀어나와 뇌전 그물로 펼쳐졌다.
“헛, 금뢰죽이!”
“벽사신뢰!”
“지목신뢰(至木神雷)…….”
거의 열댓 명이 동시에 기쁨에 가득 차 탄성을 질렀다. 그중에는 3층에서 들려온 소리도 있었다. 다른 수사들도 금빛 뇌전을 보며 웅성거렸다.
한립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흐뭇했다. 금뢰죽 가격을 그가 예상한 것보다 잘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연의 요왕들이 벽사신뢰를 꺼리던 것을 떠올리며 금뢰죽에 또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운성에 온 후 여러 경전을 뒤져 보았지만 금뢰죽과 벽사신뢰에 대한 다른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할 때 3층에서 어떤 성족이 2억5천만을 외쳤다.
그러자 다수의 경쟁자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른 성족이 각각 2억6천만과 2억7천만을 제시했다. 그중 한명은 뜻밖에도 천기자였다. 만고족 장로인 천기자도 그의 금뢰죽을 눈독들인 것이다.
또 다른 한 명은 경매가 시작되고 유리천화액을 두고 겨루었던 열 씨 사내였다. 그들이 나서자 금뢰죽을 노리던 다른 이들은 아쉽지만 슬슬 포기하는 눈치였다.
대청 안이 적막해졌다.
“3억!”
‘3억?’
처음부터 높은 가격을 불렀던 성족이었다. 그의 외침에 이번에는 천기자도 탄식하고는 나서지 않았다.
“3억1천만! 혹시 경 수사 아니십니까? 금뢰죽이 꼭 필요해서 그러니 제게 양보해주시지요.”
열 수사가 주저하다 가격을 제시한 후 예의 바르게 청했다.
“열 형, 그건 안 됩니다. 이렇게 높은 가격을 제시할 때는 저도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양보하지 못하겠군요. 3억2천만!”
“알겠습니다. 경 수사의 뜻이 그렇다면 제가 물러나지요.”
열 씨 사내는 상대에 대해 조금 아는지 더 이상 경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하, 고맙습니다.”
“3억3천만.”
경 씨 사내가 득의양양하게 웃음을 터트렸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아래쪽에서 다른 누군가가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놀랍게도 조금 전 지유전차를 낙찰받은 복면 여인이었다.
한립을 포함한 대청 안 수사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게 많은 영석을 내놓고도 또 이런 엄청난 금액을 부르다니.’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복면여인과 경 씨 사내의 경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3억4천만!”
기분 좋던 경 씨 사내의 목소리가 서늘해졌다.
“3억5천만!”
복면 여인은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가격을 제시했다. 잠시 침묵하던 경 씨 사내가 냉랭히 외쳤다.
“……3억6천만! 이 이상을 부른다면 내가 양보하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복면 여인이 태연하게 ‘3억7천만’을 제시했다. 3층에서 들려오는 경 씨 사내의 웃음소리에 노기가 묻어났다.
“하, 대단하구만! 그리 필사적으로 금뢰죽을 원하다니, 운성을 떠날 때까지 금뢰죽과 함께 평안하기를 바라겠네!”
운성 성족은 상족 수사에게 밀리자 기분이 상했는지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복면 여인은 못들은 척 아무 말도 없었다. 그녀는 3층으로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차분히 무대 위로 올라가 금뢰죽을 받아 왔을 뿐이었다.
여인의 태도에 오히려 경 씨 사내가 마음이 불편해져 멋쩍게 웃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 남은 물품은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대부분 알고 계실 겁니다. 바로 총 13알의 만묘단입니다. 만묘단은 성족으로 이르는 고비를 뚫어주는 신묘한 효능에 복용하면 체질을 개선해 주기까지 합니다.
이전에도 만묘단이 경매에 나온 적은 있었지만 기껏해야 서너 알 정도로 이렇게 대량으로 나온 것은 처음이지요. 이번에 감사하게도 정족의 몇몇 장로들께서 적극 협조해 주셔서 가능했습니다.
제가 이번 경매를 주관하지 않았다면 함께 경쟁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제가 복용할 일은 없겠지만 문하의 제자들에게 한 알씩 나누어주면 얼마나 큰 기연이 되겠습니까.”
소포의가 정말 아깝다는 얼굴로 설명을 마쳤다. 그는 금색 가면을 쓴 갑옷 병사에게서 은색 병을 받아 들어올렸다. 마지막 경매품에 1, 2층 이족인들은 전부 열렬한 눈빛을 보냈다.
“만묘단 한 병, 최저가 3억으로 시작합니다.”
미소를 머금고 소포의가 경매를 시작했다. 한립은 구석에 앉아 팔짱을 끼고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그는 전혀 경쟁할 마음이 없었다. 그저 어디로 가야 만묘단의 약방을 구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원재료가 초목류라면 스스로 만드는 것이 상책이었다. 만묘단의 신비한 효과에 체내의 진령의 피가 보조를 해주면 합체기에 이르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 * *
반나절 후, 운몽산 동부의 밀실 안.
한립은 가부좌를 틀고 남색 주머니와 작은 병을 들고 앉아 있었다. 그는 주머니를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그것은 4족 경매회에서 그가 얻은 극품영석으로 초대형 전송진 비용의 절반을 감당할 만한 양이었다. 채류앵이 말한 대로 나머지 절반을 내준다면 전송진을 충분히 발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광한계로 가서 만고족이 원하는 연기 재료를 수집하고 채류앵과 단천인을 도와 금제 속 물건을 찾는 일뿐이었다.
광한계는 수행의 고비를 뚫는 최적의 장소였으니 들어가기 전 연허 초기의 최고봉까지 법력을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광한계의 영기를 빌려 그 안에서 연허 중기에 진입한다.’
한립은 계획을 세밀하게 검토하고 영석 주머니를 거둬들였다. 이제 남은 것은 작은 병뿐이었다.
“유리천화액.”
경매에 나왔던 다른 물건들보다 저렴한 편이었지만 청원자가 약속한 명하신유를 생각하면 그에게는 더없이 귀한 보물이었다.
소포의는 하자품이라 위력이 크게 줄었지만 중요한 효능은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을 직접 검증해볼 필요가 있었다. 만일 청원자에게 가져갔다가 쓸모없는 것으로 판명나면 큰일이었다.
한립은 즉시 입을 벌려 은색 화염을 분출했다. 그러자 그의 주위를 돌던 화염이 맑은 울음소리를 내며 은색 불새로 바뀌었다.
그리고 옥병을 허공에 띄우고 뚜껑을 열었다.
펑!
붉은 빛기둥이 병 안에서 분출되고 새빨간 액체가 서서히 떠올랐다. 이어 밀실 전체가 새빨갛게 물들고 엄청난 열기가 풍겼다. 그때 옆에서 날아다니던 서령불새가 붉은 액체를 보고 반색했다.
불새는 즐겁게 지저귀더니 한립의 명을 기다리지도 않고 날개를 펼쳐 달려들었다.
한립은 눈썹을 끌어올리며 수결을 맺어 불새를 막았다. 그러자 서령불새는 불만스럽게 지저귀며 붉은 액체 주변을 배회했다.
아직 유리천화액 위력도 알아보지 못했는데 서령불새가 꿀꺽 삼키게 둘 수는 없었다. 그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고 붉은 액체가 다양한 색깔의 법결로 날아들었다.
그중 일부는 액체 속으로 스며들었고 일부는 액체의 표면에서 튕겨 나왔다. 타들어가는 소리를 내며 폭발하기도 했다. 반응이 워낙 각양각색이라 지켜보는 한립의 표정도 수시로 달라졌다.
마지막 하얀 법결이 붉은 액체에 부딪혀 하얀 기운으로 폭발하자 그는 손을 내리고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가 정교한 진법 깃발 한 벌을 불러냈다.
진법 깃발들은 빛줄기로 변해 허공에서 사라졌고 그 대신 빛의 진법이 떠올랐다. 다섯 가지 색깔의 빛의 진법은 아래로 갈수록 협소해져 삿갓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한립은 기합을 넣으며 붉은 액체를 빛의 진법 안으로 불러들였다.
우웅!
붉은 액체가 진법 안으로 들어가자 고요하던 진법이 낮게 울어댔고, 오색 빛의 장막 속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한립은 다시 빛의 진법을 향해 열손가락을 튕겼다.
푸푸푸푸푹!
그러자 파공음이 연달아 울리고 손끝에서 가느다란 수정실이 튀어나갔다. 그가 손가락을 미세하게 구부리자 빛의 장막 안으로 들어간 수정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주술 소리가 울려 퍼지고 수정실 표면에 기이한 빛이 흘렀다. 진법 안에서 무언가 전송되고 있는 것 같았다.
한립은 수정실에 시선을 고정하고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이건 대연신군이 남겨 준 독창적인 비술 중 하나로 의식과 진법을 연결해주고, 의식의 힘을 강화시켜 주는 한편 진법 속 물건에 불가사의한 영향을 미쳤다.
수정실들이 바르르 떨리며 빛이 깜빡였다. 동시에 무수히 많은 주술문자들이 붉은 액체 안으로 뛰어들었고 반대로 액체 안에서도 주술 문자들이 뿜어져 나왔다. 붉은 액체의 표면이 붉은빛으로 요동쳤다.
한식경이 지나자 한립은 수정실을 거두고는 곧바로 수결을 맺었다.
웅!
진법이 크게 진동하자 오색 빛의 장막이 꿈틀거리고 소량의 붉은 액체가 빠져나왔다.
한립이 신중한 표정으로 붉은 액체를 가리키자 주변을 배회하던 서령불새가 번뜩이며 날아가 붉은 액체를 한입에 삼켜버렸다.
불새는 즐겁게 지저귀다 불덩이로 변해 몸속으로 돌아갔다. 한립은 소매 속에서 푸른빛을 방출했다.
펑!
푸른빛이 오색 빛의 장막을 허물자 빛의 진법이 드러났다. 빛줄기들이 진법에서 빠져나와 진법 깃발로 변하더니 소리 없이 흩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먹 크기의 붉은 액체만이 남았다. 우윳빛 옥병이 날아가 남은 유리천화액을 빨아들였고 한립은 옥병을 회수하고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미간을 좁히고 앉은 모습이 무언가를 궁리 중인 것 같았다. 그는 한참 후 가만히 손바닥을 펼쳤다.
화륵!
은색 화염이 일고 그 안에서 붉은 불씨가 괴이하게 반짝였다. 붉은 불씨를 살피던 한립은 입에서 푸른빛을 뿜었다. 그러자 주먹 크기의 은색 화염이 푸른빛을 만나 폭발해 버린 것이다.
빛이 가시고 열댓 배로 불어난 은색 불구슬이 나타났다.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벌리자 거대한 은색 불구슬이 즉시 은색 화염으로 돌아와 입 속으로 사라졌다.
“소포의의 말이 거짓은 아니구나. 위력은 조금 떨어지겠지만 유리천화액의 기능은 전부 지니고 있으니. 문제는 정체모를 불순물이 섞여 있다는 것인데 이걸 유리천화액으로 쳐줄지…….
그나저나 서령천화가 이걸 삼키고 정순한 영기를 빌려 위력을 끌어 올릴 수 있게 되었으니 적을 상대할 때 유용하겠어.”
그는 다시 자리를 잡고 4족 경매회에서 보고들은 것을 다시 되새겼다. 그리고 곧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자 품에서 등룡단 한 알을 꺼내 삼켰다.
다시 수련을 시작한 것이다.
광한계 개방일이 언제인지 알 수 없었기에 수련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그곳의 영기를 이용해 고비를 넘길 필요도 있었고, 실력을 높여 두어야 광한계 안에서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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