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958화 (715/2,000)

958화. 오해

*

대승기와 합체기는 천양지차였다. 일반적으로 연허기 최정상의 존재들이 힘을 합쳐 합체 초기의 적을 상대할 수 있었지만 합체기 최정상 수사들이 대승 초기의 적을 만나면 도망가기 급급했다.

대승기에 이르면 절반쯤 진선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 강력한 천지법칙을 깨우치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도겁기(渡劫期)는 이름만 다를 뿐 법력이 높다는 것을 제외하면 대승기 최정상과 신통에서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도겁기의 경우 초기, 중기, 후기를 나누지 않았고, 바깥세상에서 볼 일이 거의 없는 존재였다. 진선천겁을 치를 준비를 하며 오직 진선계로 비승할 날만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 말은 대승기 수사가 영계에서 천지 진령을 제외하면 마주칠 수 있는 가장 강대한 존재라는 뜻이다. 자신들이 잡아 온 보라색 짐승이 대승기 인면교의 직계 혈통이라는 것을 알고 두렵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만약 인면교 홀로 쳐들어왔다면 이리 겁먹지는 않았겠지만, 문제는 비 씨 청년이 인면교와 친분이 있고 그를 직접 데리고 왔다는데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수사들이 육 노인 등을 도울 리 없었다.

비 씨 청년이 직접 나서서 인면교의 일격을 막아 주지 않았다면 눈치 볼 것도 없이 당장 흩어져 달아났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비 형을 보아 저들의 목숨을 거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허나 저놈이 딸아이를 고문했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지요!”

은색 장포인의 한쪽 팔이 괴이하게 움직이자 은빛이 반짝이고 육 노인의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며 대량의 피가 뿜어 나왔다.

그 모습에 비 씨 청년이 팔이 잘려나간 부분을 손끝으로 만지자, 초록빛이 크게 일며 피가 멎고 상처부위가 아물기 시작했다.

“도 형께서 벌을 내리셨으니 더는 자네들을 건드리지 않을 것일세. 허나 이런 소동을 일으켰으면 그만한 대가는 치러야겠지? 지금 즉시 영석 일억 개씩을 모아 사죄의 의미로 도 수사의 따님께 드리게. 그만한 영석이 없다면 알아서 팔 한쪽을 자르던가.”

비 씨 청년의 말에 육 노인 등 네 수사는 오히려 한시름을 놓았다. 대승기 수사에게 밉보였으니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무서워서 영원히 운성을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육 노인은 이미 팔을 잘렸고 정혈을 잃었지만 그의 수행에 다시 팔을 붙일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객경 수사들은 곧바로 영석을 모아 네 개의 주머니를 공손히 청년에게 내밀었다.

청년이 영석의 수량을 확인하고 미소를 머금었다.

“도 형, 이걸로 완전히 화를 푸실 수는 없겠지만, 저들이 자미해(紫薇海)를 잘 몰랐고 초범이 아닙니까. 제 체면을 보아 좋게 마무리 짓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시종일관 서늘한 눈빛을 하고 있던 인면교 사내는 청년의 말을 듣고 고민했다. 잘려나간 육 노인의 팔뚝과 청년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중년인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비 형을 생각해서 저들을 살려두겠습니다. 하지만 자미해에서 다시 보게 된다면 저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중년인의 준수한 얼굴에 흐릿하게 은색 문양이 떠올랐다.

“그러시지요!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저들은 우리 운성의 객경이 아닙니다. 마음대로 처리하셔도 됩니다.”

비 씨 청년이 웃음을 머금고 영석 주머니들을 던져주었다. 육 노인과 다른 객경들은 긴장한 상태로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중년인은 영석 주머니를 받고서야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는 주머니를 거두고 작은 짐승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파앗!

보라색 빛이 짐승의 몸을 타고 흐르자 예닐곱 살짜리 여자 아이가 나타났다. 새하얀 피부에 새까만 눈동자를 지닌 아이는 보라색 머리를 곱게 땋아 굉장히 귀여웠다.

그것을 본 대청의 수사들은 표정이 이상해졌다. 스스로 인간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는 작은 짐승을 소녀로 바꾼 것은 그만큼 인면교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증거였다.

여자아이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자마자 중년인의 품에서 은색 장포를 쥐고 흔들었다. 연신 육 노인 등을 가리키며 억울하다는 얼굴로 무어라 재잘거렸다.

“됐다, 이만하면 저들도 교훈을 얻었을 것이야. 게다가 말을 듣지 않고 나돌아다닌 너의 잘못도 있다. 돌아가는 대로 수련에 매진해 화형(化形)하기 전까지는 거처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할 줄 알거라.”

은색 장포 중년인은 귀여워 죽겠다는 얼굴이었지만 하는 말은 엄격하기 그지없었다.

그 말에 아이가 입을 내밀고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중년인은 그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청년을 향해 말했다.

“비 형 덕분에 딸아이를 금방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은혜는 마음 깊이 간직했다 반드시 갚겠습니다. 처가 거처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니 일단 가보겠습니다.”

중년인이 포권을 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말리지 않겠습니다. 조심히 가시지요!”

청년도 인면교가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자 안심했다. 육 노인 등 네 명은 운성의 객경이었고 성족이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죄다 죽여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더욱 꺼려지는 것은 인면교 일가와 악연을 맺는 것이었다. 인면교 중년인도 신통이 대단했지만 그 부인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경매소를 쳐들어오는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은색 장포 중년인이 바로 몸을 돌려 떠나려하는데 품 안의 여자아이가 재빨리 옷깃을 잡아당기며 종알거렸다. 손가락으로는 무대 아래 한쪽 구석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인면교 중년인은 둔광을 일으키려다 말고 놀라 멈추었다.

“도 형, 따님이 무어라 하는 것입니까?”

“별 건 아니고, 이곳에 제 부인과 관련된 혼혈인이 있나봅니다.”

인면교 중년인이 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자 청년도 의아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쪽에 앉아 있던 수사들은 대승기 수사들이 갑자기 자신들을 훑자 긴장해 불안감을 드러냈다.

한립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는 여자아이가 정확하게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고 확신했다. 문제는 왜 그러는 것인지 그도 영문을 모른다는 것이다.

인면교와 비 씨 청년이 무대로 올라간 순간부터 누가 손을 쓴 것인지 다른 이들은 그들 간의 대화를 일절 들을 수 없었다.

그 순간 강력한 의식이 주변을 훑어 인근 수사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한립도 의식이 자신이 몸을 스치는 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다. 마치 절대 꺾을 수 없는 만황요수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가 놀라고 있을 때 인면교 중년인의 시선은 한립에게 고정되었다.

파앗.

인면교 중년인이 걸음을 떼는 순간 한립의 눈앞이 밝아졌다. 중년인이 보라색 머리 아이를 안고 앞에 나타난 것이다. 여자아이는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그를 신기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배님을 뵙습니다.”

한립은 불안한 와중에도 차분하게 일어나 예를 올렸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대승기 존재에게 밉보일 수는 없었다.

“맞구나, 네 모친 일족의 기운이 느껴져. 하지만 너무 미약해서 신경 쓸 필요는 없겠다. 너는 어미의 그 많은 신통을 다 놔두고 하필 제일 쓸모없는 감응술(感應術)을 타고 났느냐. 이만 가자꾸나.”

인면교 중년인이 한립을 대충 살피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딸아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즉시 은색 빛줄기로 변해 대전 밖으로 날아갔다.

한립은 인면교의 말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인족인데 어찌 다른 일족의 기운이 느껴진단 말인가.

‘설마 진령의 피 때문에?’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진령의 피는 체내에 녹여 넣은 후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티가 났다면 이전에 마주친 강대한 존재들이 몰라봤을 리 없었다.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주변의 이족인들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대 위의 비 씨 청년과 3층의 합체기 수사들도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왔다. 그중에 단천인은 바로 한립을 알아보고 표정이 묘해졌다.

‘이런…….’

갑자기 한몸에 관심을 받게 된 한립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경매를 계속 진행하지! 나는 먼저 가보겠네. 자네들은 앞으로 자미해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야. 앞으로의 일은 나도 책임질 수 없으니 알아서 처신하게.”

청년이 소포의와 육 노인 등을 보고 말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선배님이 중재해주셨으니 망정이지 큰일을 치를 뻔했습니다.”

4대 객경들이 청년에게 감사를 표했고, 소포의도 공손히 예를 올렸다. 청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전 문 쪽으로 걸어가다 번뜩이며 사라졌다.

대승기 수사들이 모두 떠나자 합체기 노괴들도 다시 3층으로 올라가 밀실로 들어갔다.

“육 형께서는 부상을 입으셨으니 먼저 돌아가 쉬시고, 곤 부인과 다른 분들은 경매가 끝날 때까지 머물다 가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시간이 지체되었으니 말씀드린 보수에서 2할을 더 얹어 드리겠습니다.”

소포의가 남 노인과 다른 객경들에게 공손히 제안했다.

“걱정 마세요, 소 형!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약속한대로 경매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킬 것입니다.”

곤 부인이 다른 객경들과 시선을 교환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소포의가 밝게 웃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 기분이 상해 가버리면 그도 말릴 자신이 없었다. 육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바닥에 떨어진 팔을 불러들이고는 말없이 진법으로 걸어갔다.

우웅!

남색 진법이 밝게 빛나고 왜소한 노인이 자취를 감추었다. 성족 신분에 이렇게 많은 수사들 앞에서 팔이 잘렸으니 창피했을 것이다.

“이미 보셨다시피 조금 전 낙찰은 어쩔 수 없는 사유로 취소되었습니다. 남 수사께서 지불하신 영석은 바로 돌려 드리겠습니다. 이번 일에 대한 보상으로 수사께서 나머지 세 물품 중 하나를 낙찰받으신다면 영석 천만 개를 제해드리겠습니다.”

소포의가 헛기침을 하며 곱슬머리 노인에게 다가갔다. 곱슬머리 노인은 인면교가 나타난 뒤로 화를 입을까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영석 주머니를 돌려받은 곱슬머리 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됐습니다. 겨우 낙찰받은 물건에 문제가 생긴 것은 이번 경매와 제가 인연이 없다는 뜻이겠지요. 오늘은 그만 가보겠습니다.”

노인은 바로 몸을 돌려 경매대전을 나가버렸다. 그것을 지켜보던 소포의가 곧바로 얼굴을 돌려 청록색 비늘이 있는 곤 부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품을 뒤져 바로 검은 물체를 던졌다. 그러자 검은 구름이 허공에 몰려들고 거센 바람이 몰아쳐 자연스럽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히히힝!

하얀 뇌전이 번뜩이며 먹구름이 걷히자 그 자리에 새까만 마차가 떠 있었다. 고대 양식으로 된 마차는 거친 느낌이 물씬 풍겼고 앞에는 까만색의 뿔 달린 네 마리의 말들이 있었다.

말들 위로는 평범한 체구의 검은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등에 궁을 메고 앉아 있었는데 날개 달린 말들과 갑옷 병사들은 전부 꼭두각시들이었다.

“두 번째로 선보일 물품은 ‘지유전차(地幽戰車)’입니다. 수십만 년 전 멸족된 지령족(地靈族)을 알고 계십니까? 당시 뇌명대륙에서 기관 괴뢰술로 최고라 불리던 일족입니다. 이 지유전차는 숨겨져 있던 지령족 유적지에서 발굴이 된 것이고요.

전차의 위력은 말할 것도 없고, 기마병 괴뢰들만 해도 각각 연허 중기의 실력을 지니고 있어 협공 비술을 펼치면 성족 초기의 공격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지유전차의 신통은 무한하니 더 알아내는 것은 낙찰받은 수사의 몫이겠지요.”

소포의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음을 머금고 설명했다. 소포의의 말이 끝나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고, 기마병 꼭두각시의 협공을 통해 성족 초기 존재를 막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오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