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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957화 (714/2,000)

957화. 인면교(人面蛟)

*

“저게 인면교의 피를 이어받은 영수라고? 겉보기에는 평범한 여우 요수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데?”

성질 급한 누군가가 실망해서 중얼거렸다.

“평범한 여우 요수? 다들 눈을 크게 뜨고 잘 살피시지요.”

육 노인이 그 말을 들었는지 순간 얼굴이 굳었다.

콰르릉!

그가 허공을 내려치자 검은 우리 속에서 무수히 많은 뇌전들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작은 짐승에게 내리꽂혔다.

이에 작은 짐승은 분노하며 털에서 보라색 빛을 뿜자 은색 교룡의 허상이 나타나 짐승을 보호했다. 그리고 모호한 교룡의 허상이 하얀 뇌전들을 흡수해 버렸다.

뇌전을 흡수한 교룡은 거세게 울부짖으며 몸집을 불려 검은 우리를 가득 채웠다.

끼기긱!

검은 우리가 부서질 것처럼 삐거덕 소리를 냈다. 그것을 보고 장내 이족인들을 놀란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아직 새끼에 불과한 보라색 짐승이 만들어낸 허상이 엄청난 기운을 내뿜었기 때문이었다.

육 노인의 말대로 잠재력이 엄청난 영수였다.

경매의 분위기가 바뀌자 육 노인은 웃음을 흘리며 손에서 금은색 빛을 뿜어 작은 짐승을 밧줄로 묶었다. 밧줄도 대단한지 교룡 허상을 그대로 투과해 여우 짐승만을 꽁꽁 묶었다.

작은 짐승이 묶이자 은색 교룡 허상은 즉시 연기처럼 사라졌다.

“어떻습니까? 영수의 위력은 모두 확인하셨겠지요! 8대 기수의 혼혈 영수, 최저가 8천만으로 시작합니다.”

소포의가 적절한 시점에 끼어들어 경매 시작을 선포했다.

“8천5백만!”

“9천만!”

영수의 잠재력을 확인한 수사들이 놀라운 액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는 경매가가 1억을 넘어섰다. 그러나 한립은 경매에 참가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첫째, 영수의 잠재력이 높지만 키우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둘째 그가 원한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많은 영석을 지불할 능력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에 갇힌 보라색 여우를 보는 한립의 눈빛이 이상했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밧줄에 묶여 있는 작은 짐승의 표정과 분위기가 뜻밖에도 은월과 닮아 있었다. 은월은 은월랑족 출신이었으나 인계에서 여우 영수의 몸에 깃들어 있었으니 닮은 것이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어쩐다…….’

한립은 보라색 여우를 보면 볼수록 역행통로로 인계를 떠나기 전, 그녀의 흔들리던 눈빛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당시에는 수행이 미치지 않아 그녀가 영계로 떠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립의 시선이 다른 이족인들과는 달라서인지 보라색 여우가 시선을 돌렸다. 여우는 한립과 시선이 마주치자 기다란 눈꺼풀을 떨며 찰나의 순간 의혹과 약간의 반가움을 드러냈다.

아주 미묘한 변화였지만 예리한 그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

움찔한 한립은 상대가 왜 그러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1억3천만!”

믿기지 않는 숫자가 3층에서 들려왔다. 노쇠한 목소리를 끝으로 장내가 잠잠해졌다.

“1억3천만 나왔습니다. 하나.”

“둘!”

“셋!”

소포의는 가격이 만족스러운지 재빨리 숫자를 세고 3층을 올려 보았다.

“축하드립니다, 남 형! 수사께서 이런 영수를 손에 넣으시다니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입니다.”

“허허, 못 본 지 오래인데 소 수사가 단번에 노부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3층에서 노쇠한 목소리가 들리며 노란 빛줄기가 날아올라 무대 위로 떨어져 내렸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노란빛 속 인물을 확인했다.

그는 미색 장포를 입은 노르스름한 피부의 노인이었다.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노인은 소포의보다 훨씬 키가 크고 건장했다.

“데려가시기 전에 영수를 기절시켜 드릴까요? 그냥 꺼내 가시면 다루기가 성가실 것입니다.”

“겨우 새끼 영수를 노부가 어쩌지 못하겠습니까. 걱정 말고 영석 수량이나 맞는지 확인해 주십시오! 육 수사가 보물을 회수하면 내 알아서 영수를 챙겨 가겠습니다.”

곱슬머리 노인이 자신 있게 영석 주머니를 던져주며 말했다.

“하하, 남 형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당연히 금제를 거두어 드려야지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검은 우리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키학!

우리 안의 짐승이 그것을 보고 털을 세운 채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그 소리에 수행이 떨어지는 수사들은 머리가 어지럽고 법력이 응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연허기 이상의 수사들에게는 영향이 미미했고, 수염 난 노인 역시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손에서 푸른빛을 뿜었다.

남 노인은 작은 짐승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노인이 보물을 거두자마자 금제를 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에 그곳에 있던 수사들은 우리를 쳐다보느라 정신없었지만 한립은 작은 여우를 보며 눈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가 손에 힘을 주는 바람에 돌로 만든 팔걸이에서 우수수 돌가루가 떨어졌다.

바로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콰쾅!

대전 밖에서 굉음이 울리고 각종 금제로 반짝이던 경매대전의 대문이 폭발했다. 경매대전 안이 워낙 고요했던 터라 다들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경비! 어서 경비를!”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자욱한 먼지 속에서 수사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했다.

“모두 당황할 것 없습니다. 설마 천운의 네 종족이 주관하는 4족 경매회에서 무슨 변고라도 당할까 그러십니까.”

솔직히 소포의도 놀랐지만 합체기 수사답게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천둥같은 목소리에 객석의 소란이 가라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 모인 상족 수사만 해도 몇 명인데 침입자를 두려워하겠는가.

“자신만만하구나! 어디 이곳에 누가 나를 막을 수 있을지 보자!”

음산한 사내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누구신데 감히 운성에서 소란을 피우시는 것입니까?”

소포의는 상대의 당당한 태도에 경계심이 들긴 했지만 침착함을 유지하며 물었다.

“운성이 본 존이 오고 싶어도 못 올 정도로 그리 대단한 곳이던가?”

은색 장포를 걸친 중년 사내가 얼음장 같은 표정을 지으며 경매대전 안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왔다.

대청 안의 수사들은 그자를 훑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상족이든 성족이든 의식이 전부 튕겨나가 상대의 수행을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운성 안에서 경매소 문을 뚫고 들어올 정도면 대단한 내력을 지닌 자가 확실했다.

그때 무대 위의 보라색 짐승이 준수한 사내의 얼굴을 보고 미칠 듯 기쁨을 표하고 있었다.

“이곳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깥의 병사들을 어찌하셨고요.”

“이분은 내가 모시고 왔고, 바깥의 병사들도 내가 물러나라 명했네! 이의가 있는가?”

소포의의 말에 돌연 또 다른 목소리가 울리며 누군가 걸어 들어왔다. 맨발에 하얀 장포를 걸친 스물 일고여덟 살 정도의 평범한 청년이었다.

“비 선배님!”

청년을 보고 소포의가 크게 놀라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선배님을 뵙습니다.”

“비 선배님을 뵈옵니다.”

남 노인과 수염 노인을 포함한 무대 위의 4대 객경들도 표정이 달라져 예를 올렸다. 그뿐만 아니라 3층 밀실에 자리하던 성족들도 분분히 날아 내려와 인사를 올렸다.

그 중에는 합체 최고봉인 천기자와 단천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 역시 공손한 태도로 포권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승기(大乘基)!’

그 순간 한립의 머릿속을 번뜩 스치는 것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성족들이 우르르 몰려와 인사를 하는데 청년의 신분을 모를 수 없었다. 대다수 수사들이 기함해 어쩔 줄 몰라 했다.

“비 선배님께서 여기까지는 어인 일이십니까? 폐관 수련 중인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3층에 있다 내려온 또 다른 합체 수사가 청년을 보고 말했다. 그는 얼굴에 어두운 녹색 반점이 가득했고 이상한 짐승 가죽 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흑 현질, 자네도 이곳에 있었구만. 다른 이야기는 되었고, 내 운성에 온 것 원래 각치족 침공 때문이었네. 그런데 도 수사를 뵙게 되어 이곳에 들른 것이지.”

“아, 도 선배님께서는 어인 일로…….”

괴인이 머뭇거리며 묻는데 청년이 고개를 돌려 은색 장포 중년인을 보았다.

“도 형, 찾으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주위를 훑던 은색 장포인은 무대 위의 보라색 짐승을 보고 반가워하다, 검은 우리와 밧줄을 보고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의 모습이 은빛 속에서 사라져 무대 위에서 소리 없이 나타났다.

“선배님 왜 그러시는…….”

무대 위에 서 있던 남 노인은 지척에 은색 장포인이 등장하자 기겁해 소리쳤다.

“썩 꺼지거라!”

은색 장포인은 상대의 말을 듣지도 않고 그를 향해 소매를 펄럭였다. 그러자 거대한 무형의 기운이 남 노인을 덮쳐왔다. 남 노인은 황당했으나 일단 노란 기운을 뿜어 공격을 막으려 했다.

쿵!

폭음이 터지고 남 노인이 노란 보호막에 둘러싸인 채 밀려나 거의 무대에서 떨어질 뻔했다. 그것을 본 소포의의 표정이 급변했다.

남 노인의 실력은 그가 잘 알았다. 흙 속성의 특수 공법을 익혀 힘이 장사였는데 은색 장포인이 대충 날린 공격에 맥을 못 춘 것이다. 상대는 대승기 수사가 확실했다.

왜소한 육 노인 등 네 명의 객경들이 은색 장포인이 다가오자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은색 장포인은 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검은 우리로 다가갔다.

콰직!

그가 두 손으로 창살을 잡고 벌리자 검은 우리가 힘없이 찢겨나갔고 안에 붙들려 있던 작은 짐승이 떨어져 내렸다. 이에 작은 짐승은 즐겁게 갸르릉 거렸고 은색 장포인은 금은색 밧줄을 터트려 버렸다.

자유를 찾은 보라색 짐승은 즉시 은색 장포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흥, 그러니 얌전하게 거처에 있을 것이지 뭐한다고 바깥을 싸돌아다닌 것이냐. 이제 고생 좀 해보았으니 자중해야 함을 알겠지? 그래, 너를 잡아온 놈이 누구더냐.”

작은 짐승을 애지중지 안은 사내의 목소리가 서늘해졌다. 옆에서 이를 듣고 있던 육 노인 등 네 명의 수사는 서로 눈치를 살피며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어린 짐승을 잡아다 경매에 내놓은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경매 무대에 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라색 짐승이 사납게 육 노인을 노려보고 중년인을 향해 칭얼거렸다.

“뭐라, 저놈이 감히 너를 고문해! 너는 목숨으로 그 죗값을 치를 것이다.”

사내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엄청난 살기를 내뿜었다. 그는 한쪽 팔을 육 노인에게 휘둘렀다.

분명 도 씨 사내와 육 노인은 상당히 떨어져 있었는데 팔이 늘어난 것처럼 다섯 손가락이 노인의 면전에 들이닥쳤다. 너무 빨라 피할 길도 없었다.

‘큰일이다.’

육 노인은 다급히 입을 벌려 푸른 구슬을 뿜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법결을 발동해 세 가지 종류의 보호막을 불러냈다.

펑!

그러나 구슬은 은빛으로 번뜩이는 다섯 손가락에 산산조각이나 떨어졌고 보호막들은 종잇장처럼 뚫려 그의 머리가 깨지기 직전이었다. 바로 그때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 수사, 사정을 봐주시지요. 이곳에 오기 전 제게 약조한 것을 잊으신 겝니까?”

갑자기 허공에서 손바닥이 나타나 은색 손가락을 막았다. 이어 공간에 파문이 일고 육 노인과 도 씨 중년인 사이에 비 씨 청년이 나타났다.

“여기서 살생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저들을 이대로 놔둘 수야 없지요.”

중년인은 청년이 막아서자 얼굴을 굳히며 손을 거두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이들이 도 수사의 여식에게 실례를 범하였으니, 죽이지는 않아도 합당한 처벌을 해야 할 것입니다.”

청년이 미소를 머금고 동의했다.

“예? 이, 이분이 인면교!”

죽다 살아난 육 노인은 청년의 말을 듣고 놀라 숨이 막혀왔다.

“그래, 본 존이 인면교다. 왜 나도 잡아다 경매에 올리고 싶으냐?”

중년인이 노인을 쳐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 아닙니다. 어찌 제가 그런 망상을 하겠습니까. 영애(令愛)의 신분을 모르고 저지른 것이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육 노인은 성족이었지만 굽혀야 할 때를 아는 자였다.

“자네들, 너무 경솔했구만. 어찌 도 형의 동부 근처에서 아무렇게나 영수를 잡아 온단 말인가! 게다가 도 형의 따님을 말이야. 아직 아무 일도 없었으니 망정이지 무슨 일이 있었다면 나라도 자네들을 도와주지 못했을 것이네.”

비 씨 청년이 엄하게 꾸짖었다.

“저희는 그쪽 해역에 도 선배님이 기거하시는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절대 이런 짓을 벌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청년의 말에 노인이 진땀을 흘리며 해명했다. 다른 수사들도 노인 못지않게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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