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956화 (713/2,000)

956화. 기이한 요수

*

소포의가 신중한 얼굴로 다른 손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예리한 기운이 감도는 고풍스러운 단검은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곧 단검이 붉은 액체 덩어리를 향해 날아갔다.

츠츳!

단검이 변한 예리한 빛이 붉은 액체에 닿는 순간 괴이한 소리를 내며 녹아버렸다. 액체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똑똑히 보셨습니까? 하자품이라도 금속과 돌덩이도 녹여 버리는 속성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무엇을 만들어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소포의가 대중을 둘러보며 천천히 설명했다. 그리고 입에서 푸른 기운을 뿜어 붉은 액체를 휘감았다.

쿠르릉!

붉은 액체는 활활 타오르면서 사람 머리만 한 구슬로 변했다. 작열하는 열기로 순식간에 경매대전 안이 용암지대로 변한 기분이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의 수행에 열기를 두려워할 까닭은 없었지만 많은 이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다들 소포의가 정순한 영기를 주입하자 액체가 폭발적으로 열기를 내뿜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하자품에 불과한데도 유리천화액이 이렇게 대단한 위력을 지니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대청 안이 다시 웅성이기 시작했고 많은 이들이 탐욕스런 눈길로 불구슬을 주시했다.

활활 타오르던 화염은 다시 붉은 액체로 변해 옥병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가격을 제시해 주시지요!”

소포의가 다시 유리천화액의 경매 개시를 선언했다.

“3천만!”

경매가 다시 시작되자마자 놀라운 액수가 대청 구석에서 들려왔다. 첫 번째 가격의 거의 배를 부른 것이다. 많은 이들이 놀라 그쪽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창백한 인상의 새까만 장포를 걸친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 사내는 바로 한립이었다.

그가 부른 가격을 듣자마자 운성 수사들 중 일부는 바로 포기했다. 아무리 귀해도 하자품인데 이렇게 가격이 올라가면 낙찰받아도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이었다.

한립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내심 흥분한 상태였다.

‘하자품이라 효과가 크게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유리천화액이다.’

청원자에게 쓸모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 기회를 놓치면 세상천지 어디에 가서 유리천화액을 찾겠는가?

그래서 일부러 시작부터 기선 제압에 들어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쉽게 낙찰받지는 못하겠지만 일단 경쟁자의 수를 줄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여러 수사들이 경쟁적으로 가격을 올리다 보면 상상을 뛰어넘는 경우도 많았다.

“3천만 나왔습니다. 다른 분 안계십니까? 셋을 센 후에는 유리천화액은 저분에게 돌아갑니다.”

소포의가 한립 쪽을 힐끗 보고 낭랑히 외쳤다.

“하나!”

“3천2백만!”

소포의가 숫자를 세기 시작하자 바로 노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립은 미간을 좁히며 슬쩍 그쪽을 살폈다.

대청 중앙에 앉은 노란 장포 노인은 누런 머리카락에 짙은 눈썹과 푸른 눈을 지니고 있었다.

“부 어르신께서도 유리천화액에 관심이 있으셨구만.”

누군가 노인을 알아보고 수군거렸다.

“4천만.”

한립이 입을 떼기도 전에 3층에서 고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것을 들은 부 노인이 머뭇거리다 3층을 올려다보았다. 입술을 달싹이든 노인은 결국에는 고개를 젓고 입을 다물었다.

“4천만! 하나!”

“둘!”

소포의가 미소를 머금고 재빨리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이미 예상한 가격보다 높았고 3층 성족이 나섰으니 다른 이들은 모두 포기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4천5백만.”

그러나 한립은 동요하지 않고 가격을 불렀다. 그 소리에 대청의 다른 수사들은 물론 소포의마저 의아하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경매에서 성족과 가격 경쟁을 하려는 상족 수사는 드물었다.

“4천7백만!”

3층의 성족 여인도 어이가 없는지 싸늘하게 외쳤다. 한립은 눈꼬리를 끌어올리며 주저 없이 5천만을 불렀다. 이렇게 높은 가격은 그의 예상 밖이었다.

상대가 이래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3층 여인은 더 높은 가격으로 낙찰을 받는 것은 이해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여겼는지 입을 다물었다.

“좋습니다. 5천만 영석에 유리천화액 반병은 이쪽 수사 분에게 돌아갑니다. 낙찰을 받으신 분은 즉시 영석을 지불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한립은 곧바로 일어나 무대로 나가 미리 준비해둔 극품영석 무더기를 주머니에 담아 건네주었다. 의식으로 주머니를 살핀 소포의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작은 병을 그에게 전달했다.

한립은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기쁜 마음으로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이들이 그를 훑는 것이 느껴졌다.

환술로 정체를 숨기고 있으니 경매소를 나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면 그를 알아보는 자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 특수한 공법을 익히고 있어도 진짜 얼굴이 아니라 환술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정도일 것이다.

단천인 등 합체기 수사가 쉽게 그의 진짜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그 이하는 말할 것도 없었다. 또한 그 이상의 존재가 겨우 하자품에 눈독 들여 일을 벌일 가능성도 낮았다.

자리로 돌아간 한립은 두 눈을 감고 이후의 경매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후에도 경매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유리천화액에 맞먹는 보물이 두 가지나 더 등장했다. 그러나 그것들도 경매의 마지막을 장식한 최상품은 아니었다.

그중 하나는 상고시대의 유적인 이보 ‘만수라(万獸螺)’로, 통천령보는 아니지만 이 악기를 불면 일정 범위의 저계 영수들을 부릴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립이 내놓은 ‘등룡단’이었다.

소포의가 단약의 효과에 대해 설명하자 대청 안의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원래 법력을 높여주고 고비를 넘겨주는 단약들은 누구나 반기는 법이었고, 연허기에 도움이 되는 단약은 무척 희귀해서 장내의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심지어 연허기 이하의 수사들도 경쟁에 참여할 정도였다. 게다가 고비가 임박한 연허급 이족인들이 경쟁에 참여해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결국 한립의 등룡단은 놀랍게도 6천3백만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낙찰되었다. 한립이 유리천화액을 낙찰 받은 금액보다 훨씬 높은 액수였다.

등룡단은 한립과 유리천화액을 두고 경쟁하던 성족 여인의 손에 들어갔다. 그녀가 쓰려는 것은 아니고 문하의 제자나 후배들을 위해 구입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가 낙찰받자 1, 2층 수사들 사이에서 연신 한숨 소리가 끝이지 않았다. 한립은 최종 가격을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생각에 잠겨있을 때 무대에서는 열댓 번째 보물이 낙찰되고 있었다.

짙은 남색의 꼭두각시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고 소포의가 진지한 얼굴로 대중을 훑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제부터는 경매소에서 정성을 다해 선별한 이번 경매의 대미를 장식할 물품들을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그중 두 가지는 저희 4족에서 내놓은 진귀한 물건이고, 나머지 두 가지는 다른 수사 분이 제공해주셨습니다.”

우웅!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무대 위 전송진에 빛이 흐르고 4명의 수사가 나타났다. 긴 수염을 기른 왜소한 노인, 금색 가면을 쓴 거구의 갑옷 병사, 호리호리한 몸매에 청록색 비늘로 뒤덮인 여인, 머리가 둘 달린 새까만 괴인이었다.

생김새는 모두 달랐지만 관중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태연자약한 것은 똑같았다. 그들을 본 경매참가자들이 들썩였다.

“저 선배님들이 이곳에!”

“그러게 말입니다. 운성의 4대 객경 아닙니까? 4족 경매회에서 저분들을 초청하다니!”

장내의 소란에 한립도 두 눈을 번쩍 떴다. 무대 위에 나타난 네 명의 수사들은 모두 합체 중기로 대부분은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는 듯했다.

소포의는 미소를 머금고 포권을 했다.

“네 분이 고생을 해주셔야겠습니다.”

“고생이라니요. 보수를 받고 하는 일인데요.”

수염 난 노인이 미소를 보이자, 다른 세 명도 소포의를 향해 인사를 하고 덤덤하게 서 있었다. 소포의가 무대 앞으로 고개를 돌리고 설명을 이어갔다.

“마지막 물품에는 영수, 재료, 보물 등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절대 여러분을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육 형께서 먼저 물건을 보여주시지요.”

수염 난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갑자기 주술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소매에서 손바닥 크기의 검은 주머니가 날아올랐다.

파앗.

평범해 보이는 검은 주머니는 노인의 주술 소리에 커다란 검은 우리로 변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보라색 짐승이 밧줄에 묶여 웅크리고 있었다. 털이 복슬복슬한 작은 짐승은 멀리서 보면 그냥 털 뭉치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립을 포함한 장내의 수사들은 신중한 얼굴로 영수를 주시했다. 조금 전 낙찰된 상족 4계의 통령괴뢰도 경매의 마지막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설마 저 영수가 성족급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검은 우리는 특수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의식으로 작은 짐승의 수행을 살피려 해도 검은빛이 반짝이고 전부 튕겨내 버렸다.

“허허, 모두 기대감이 큰 모양입니다. 육 형, 직접 소개해 주시지요.”

그것을 본 소포의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사실 이 영수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영계 진령급 다음으로 불리는 8대 기수(奇獸)에 대해서는 아실만한 분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육 노인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8대 기수! 저 영수가 그중 하나란 말인가!”

“정말 8대 기수라면…….”

깜짝 놀란 수사들로 대청 안이 들썩였다. 3층의 별실에서도 놀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오해 마십시오! 영계 8대 기수가 진령급 보다는 못해도 겨우 성족 수사에게 포획되겠습니까. 우리 안의 영수는 8대 기수 중 하나인 인면교(人面蛟)의 피를 받은 혼혈 요수입니다. 혼혈이기는 하지만 인면교의 피를 다량 품고 있어 잘만 키우면 나중에 어떤 위력을 발휘하게 될지 모릅니다.

아직 태어난 지 100년이 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상족 초계에 맞먹는 영기의 파동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성족 수사들이 힘을 합치지 않았다면 포획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바로 저희 네 명이서 힘을 합쳐 포획한 영수입니다.”

노인이 웃음을 흘리며 검은 우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펑!

작은 짐승을 묶고 있던 밧줄이 터져 가느다란 빛으로 변해 노인의 손으로 돌아왔다. 경매대전 안이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모두 인면교의 피를 이어받은 영수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포박이 풀린 짐승은 뜻밖에도 바로 일어나지 않고 엎드려 있었다. 그 모습에 수사들이 실망하려던 찰나 우리 안에서 예상치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

퍼퍽!

보라색 기운이 작은 짐승 안에서 폭발적으로 튀어나와 우리를 가득 채웠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순간도 우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헛!”

“영수가 어디로 간 것이지?”

“이럴 수가.”

빛이 가시자 이족인들은 혼란스러워했다. 검은 우리 안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대 위의 수사들의 표정에는 어떤 변화도 업었다.

“여기까지 끌려와서도 허튼수작을 부리려 하다니. 네가 쓴맛을 덜 보았구나.”

육 노인이 콧방귀를 뀌며 투박한 손을 들어 검은 우리 방향을 움켜쥐었다.

쉭!

콩알만 한 빛덩이가 육 노인의 손끝에서 튀어나가 검은 우리 구석에서 폭발했다.

그 순간 보라색 작은 짐승이 허공에서 굴러떨어지는 것이 포착되었다. 그러나 아주 가벼운 솜뭉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놀랍게도 여우와 꼭 닮은 보라색 짐승이었다.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는 새까만 눈은 사람의 눈빛과 비슷했다. 높은 지능을 지닌 영수라는 증거였다.

유일하게 평범한 여우와 다른 점은 영수의 코와 두 귀에 은색의 비늘 몇 개가 있는 것인데, 비늘이 매우 작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기 어려웠다.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