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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955화 (712/2,000)

955화. 유리천화액

*

대나무 감정을 맡은 이가 심호흡을 하며 새까만 호리병박을 꺼내 검은 기운을 불러내 대나무에 흘려보냈다

콰르릉!

천둥소리가 울리고 금색 뇌전들이 검은 기운을 공격했다. 그러나 한립은 그저 미소를 머금고 팔짱을 낀 채 기다렸다.

검은 기운이 깨끗하게 사라지자 그가 이번에는 녹색 병을 꺼내 대나무에 부었다.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맞습니다. 노부, 확실히 금뢰죽이라 자신합니다.”

감정을 맡은 이가 한숨을 쉬며 단언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사, 단약은 어떻습니까? 영성을 지닌 단약이니 평범한 물건은 아닐 텐데요.”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반대쪽 인물을 향해 물었다.

“나무 속성을 위주로 흙과 금속 속성도 지닌 단약입니다. 이미 영성을 지녀 상족 7, 8계가 복용하기에 적합하고, 9계가 복용해도 10분의 1의 효과를 볼 것입니다. 귀한 단약이군요.”

단약을 감정하던 이가 정확하게 등룡단의 약성에 대해 파악해 설명했다. 이에 한립도 조금 놀랐을 정도였다.

“축하드립니다, 수사! 금뢰죽은 물론이고 단약까지 이번 경매회에 출품이 가능하겠습니다. 특히 금뢰죽은 경매의 마지막을 장식할 물건들과 함께할 것이고요. 아, 이 단약의 이름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것이 저희가 생각하는 경매의 최저가입니다. 만족하시는지요.”

여인이 한립을 향해 웃으며 하얀 옥패에 무언가를 적어 그에게 던져 주었다. 한립은 액수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저가는 이 정도면 될 듯합니다. 어찌되었든 최저가에 낙찰될 물건들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단약의 이름은 ‘등룡단’이라 합니다. 제련하기 굉장히 어려운 물건이지요.”

“등룡단이라, 좋은 이름입니다. 그렇게 경매에 올리도록 하지요! 경매가 끝난 후 그 옥패를 가지고 오시면 수사의 몫을 받아 가실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경매가 끝나고 뵙지요.”

“예, 물건은 저희가 잘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한립이 몸을 돌려나서자 감정사 중 하나가 금제를 조종하는지 보호막이 반짝이며 열렸다. 한립은 감정을 기다리는 다른 수사들을 지나 천천히 통로를 빠져나갔다.

대청에는 수많은 이족인들이 모여 있었지만 대부분이 경매대전이라고 적힌 통로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도 주저하지 않고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노란빛으로 반짝이는 통로를 지나자 거대한 대청이 나타났다. 3층으로 이루어진 대청은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티끌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리고 1층과 2층은 평범한 탁자와 의자들로 되어 있었지만 2층과 3층은 기둥도 없이 허공에 고정돼 있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또한 3층에는 영기의 빛으로 뒤덮인 금제가 설치된 독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운성에서 신분과 지위가 있는 자들을 위한 자리가 틀림없었다.

한립은 대충 살펴보고는 곧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경매를 기다리는 동안 수많은 이족인들이 경매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3층은 아직 여유로웠지만 1층과 2층은 거의 만석이었다.

경매에 참가한 이들은 원영기 수사부터 합체급 수사까지 다양했고 한립이 아는 이들도 단천인과 천기자를 비롯해 다섯 명이나 되었다.

3층에는 6, 70명이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전부 합체급 이상이라고 생각하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운성에 13개 종족이 모여 있고 다른 이족인들도 있다지만 한 성에 이렇게 많은 합체급 존재들이 모여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천연성에 있을 때는 인요 양족를 전부 합쳐도 열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댕! 댕! 댕!

종소리가 세 번 울리고 오색빛이 화려하게 퍼지면서 경매 대전의 문이 서서히 닫혔다. 문이 닫히면 비로소 경매가 시작된다.

대청 앞쪽에는 높다란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무대 옆에 인간형 꼭두각시들이 은색 창을 들고 있다는 점이랄까?

그리고 무대 가운데에는 남색 진법이 펼쳐져 있었고 그 안에 붉은 탁자가 보였다. 탁자도 빼곡하게 주술 문자가 적혀 있어 무언가 특별한 용도가 있는 듯했다.

우웅!

드디어 문이 닫히고 남색 진법이 빛나며 낮게 울자 누군가 탁자 뒤에서 나타났다. 남색 진법은 전송진이었다.

고상하게 생긴 중년 남자는 비단장포를 입고 있었고 수염 없는 하얀 얼굴이 인족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상대를 훑고는 흠칫 놀랐다.

중년인은 합체 중기로 무언가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아마 운성에서 꽤나 유명한 인물인지 그가 나타나나자 웅성거리던 장내가 조용해졌다.

적잖은 수사들이 무대 위 중년인을 보고 두려움을 드러냈다. 중년인은 대청 안을 살피고 미소를 머금었다.

“제가 소포의라는 것은, 이곳에 모인 수사들 중 대부분이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니 제 소개는 건너뛰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번 4족 경매회는 제가 속한 사족에서 주최해 제가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경매 규정은 다른 경매와 똑같습니다.

미리 이번에 나올 경매품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주최 측은 이번에 어떤 4족 경매회보다 높은 낙찰가가 나오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는 성약 ‘조화단(造化丹)’ 이상의 경매품이 나올 예정이니까요. 그럼 여기까지 하고 바로 4족 경매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소포의는 소리를 높이지 않았지만 대청 안의 수사들이 누구라도 똑똑히 들을 수 있게 영력을 실어 말했다. 간단명료했지만 장내에 모인 수사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우웅.

그의 말이 끝나자 탁자 위에 열댓 개의 초소형 빛의 진법이 떠올랐다. 각각의 진법이 반짝이고 열댓 개의 크고 작은 함들과 옥패 하나가 나타났다.

경매 참가자들은 눈을 크게 뜨고 탁자 위를 주시했다. 소포의가 옥패를 들어 내용을 빠르게 훑고는 차분히 첫 번째 옥함을 열었다.

“가장 먼저 소개해드릴 물품은 각종 재료와 원료들입니다. 먼저 이 봉황석(鳳凰石)을 보시죠.”

그가 옥함을 허공에 띄우자 새를 닮은 오색 돌멩이가 들어 있었다.

“봉황석은 진봉(眞鳳)이 탄생한 곳에서만 발견이 되는 귀한 재료입니다. 법기를 제련하든 단약에 넣든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최상의 품질에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봉황석, 최저가 영석 2백만부터 시작합니다.”

한립도 소포의의 설명을 듣고서 마음이 동했다. 저 봉황석은 꽤 큰 데다 쓸모가 많아 영석 2백만이면 저렴한 편이었다.

‘지금은 필요 없어도 언젠가 쓸 일이 있을지도.’

하지만 곧 벌어진 상황에 그는 깨끗이 마음을 접었다. 수사들이 거침없이 가격을 올렸기 때문이다.

“350!”

“4백만!”

봉황석의 가격은 가뿐히 4백만을 넘어갔고, 묵록족 여인이 낙찰을 받았을 때는 5백 20만까지 올라있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영석을 지불하고 물건을 받아갔다.

한립처럼 운성 경매에 처음 와본 이들은 놀랄 만한 액수였다.

‘좋은 물건이기는 하지만 가격이 너무 높지 않은가.’

“6천 년 된 금왕화(金王花)입니다. 진귀한 단약의 약성을 끌어올리는데 제격이지요. 최저가 3백만으로 시작합니다.”

소포의가 다음 옥함을 열어 금빛 꽃을 꺼내들었다. 꽃송이는 꽃잎마다 주술 문자가 떠올라 있었고 금으로 만든 것처럼 단단해 보였다.

이번에는 봉황석과 달리 잠시 대전 안에 정적이 흘렀다. 누군가는 미간을 좁혔고 또 누군가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대부분이 ‘금왕화’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었다.

한립 역시 턱을 쓰다듬으며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처음 보는 꽃이었다. 그러나 무대 위의 소포의는 그러든지 말든지 담담히 미소만 짓고 있었다.

“3백만.”

드디어 누군가 가격을 제시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머리에 하얀 뿔이 난 마른 노인이 앉아 있었다.

“420만.”

또 다른 누군가 입을 열었다.

“450!”

“480만.”

노인이 먼저 가격을 부르자 서로 앞 다퉈 가격을 제시했다. 그 수는 많지 않았지만 가격이 올라가는 기세는 이전과 다름없었다. 보아하니 금왕화의 진정한 쓰임을 아는 것 같았다.

금왕화는 노인이 이를 악물고 7백만을 부르고서야 겨우 낙찰되었다. 경매는 이렇게 계속해서 이어졌는데 꺼내는 것마다 평범한 점포에서는 보기 어려운 귀한 재료들이었다.

열댓 개의 함들이 전부 낙찰되고 빛의 진법이 반짝이자 이번에는 영액(靈液)과 영수(靈水)가 든 옥병들을 꺼내놓았다.

옥병에 든 액체들은 진귀하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었고 정체가 공개되는 순간부터 여러 명이 달려들어 경쟁을 했다. 대부분이 최저가의 3, 4배가 넘는 가격에 낙찰되어 수행이 낮은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영액들이 전부 사라지고 탁자 위에는 우윳빛 작은 병만 남았다. 여태껏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 있던 소포의도 마지막 병을 볼 때는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아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한 손으로 옥병을 끌어왔다.

“유리천화액(琉璃天火液) 반병입니다. 시작가 1천8백만!”

많은 이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순간 소란스러워졌다.

“유, 유리천화액? 그런 귀한 물건이 경매에 나왔다고?”

“저건 영계 7대 영액 중 하나가 아닌가!”

많은 이들이 소포의가 들고 있는 작은 병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

심지어 3층 별실에서도 이런저런 소리가 들려왔다. 대청 구석에 자리한 한립도 영액의 이름을 듣고는 표정이 달라졌다.

‘유리천화액!’

그것은 바로 청원자가 모아오라고 청한 주재료 중 하나였다. 합체급 단약을 제련하는데 필수적인 재료 중 하나였고, 한 방울만 마셔도 수련 시간을 1년이나 줄여 주는 영액이었다.

그러니 그 가치가 얼마나 높겠는가!

또한 유리천화액은 나무나 돌에서 채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희귀한 천외의 불(火)에서 정련을 해내는 것이라 극히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한립은 청원자가 모아오라고 내준 자료를 보았을 때 가장 구하기 어려울 거라 판단한 것 중 하나였다.

‘갑자기 여기서 유리천화액을 보다니! 게다가 가격이…….’

영석 1천8백만 개는 어마어마한 액수였지만 영액의 가치에 비하면 엄청 저렴했다. 한립은 분명 소포의가 이상하게 낮은 가격에 대해 설명할 것이라 예상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닌지 대청 안의 수사들도 복잡한 얼굴을 했다. 무대 위에서 반응을 살피던 소포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리천화액의 가격에 다들 놀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 영액이 천외의 불 속에서 정련되는 도중에 하자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허나 제가 보장하건데 효능은 동일합니다. 효과는 대폭 떨어지겠지만요.”

“하자품!”

웅성거리던 장내가 조용해졌다. 다들 고민이 되는 것이다. 이전에도 하자가 있는 보물이 거래되긴 했지만 경매가 끝나고 평이 좋지 못했다. 단약이나 법기 모두 필요한 재료의 양과 품질에 엄격했다.

하자가 있는 보물을 사용했다가 위력이 크게 떨어지거나 아예 제련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청 안은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열기가 식었다.

“하자가 있는 보물이 1천8백만이라니! 가격이 낮은 게 아니라 너무 높게 시작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3층에 있는 한 사내가 냉소하며 말했다.

“열 수사께서는 유리천화액에 관심이 없으시면 가격이 높든 낮든 상관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수사와 같이 염령(炎靈)을 본체로 하는 분은 이 영액이 더없이 필요하실 텐데요?”

소포의는 3층의 별실을 보며 담담히 반문했다.

“멀쩡한 물건이라면 어떻게든 손에 넣었겠지만 하자품을 가져다 어디다 쓴단 말입니까.”

열 씨 사내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불퉁거렸다. 이번엔 소포의도 대답하지 않고 옥병을 가리켰다. 그러자 푸른빛이 반짝이고 병의 마개가 치솟았다.

쉭!

새빨간 빛기둥이 병에서 빠져나오더니 붉은 액체 덩어리가 천천히 떠올랐다. 붉은빛이 마치 찬란한 보석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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