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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949화 (706/2,000)

949화. 광한계(廣寒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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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자의 분부에 더 많은 병사들이 몰려와 주변을 봉쇄했고, 객잔은 강제로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향지례는 깜짝 놀라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한립은 후덕한 노인을 따라 객잔을 떠났다. 광한령이라 불린 영패는 수많은 병사들의 주시 하에 객잔에 남겨졌다. 백월과 창영도 그곳에 오래 남아 있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천기자는 둔광을 이용해 날아가지 않고 사자처럼 생긴 거대 영수 두 마리가 끄는 마차를 객잔 앞으로 불렀다.

한립이 마차에 오르자 금색 거대 사자의 다리에서 바람이 일며 허공을 달려 나갔다. 천기자는 마치 안에서는 이야기할 마음이 없는지 한두 마디를 건네다 먼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한립은 그를 따라가면서 계속해서 고민했다. 갑천목을 구해준 은혜는 이미 통령괴뢰를 받음으로써 갚았다.

지금 그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피로 발동된 광한령 뿐이었다. 저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광한령을 깨운 그의 협조가 있어야 ‘광한계’라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 같았다.

이게 사실이라면 전송진을 이용할 좋은 기회였다.

그들이 탄 영수 마차는 확실히 평범한 마차보다 훨씬 빨라서 얼마 지나지 않아 운성의 절반을 가로질러갔다. 한립은 마차 창문으로 보이는 여덟 개의 거대한 산봉우리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의 거처로 데려가려는 것인가?’

마차가 거대한 산에 이르자 잠시 후 작은 산성(山城)이 나타났다. 면적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외부의 성벽이 겹겹이 세워져 있어 일고여덟 겹은 돼보였다.

성벽은 안으로 갈수록 높아져 멀리서 보면 산성이라기보다는 거대한 탑처럼 보였다.

한립이 명청령안을 발동하자 성벽 위에 있는 은백색 조각상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요수의 형상을 한 것도 있었고 인간의 모습을 한 것도 있었지만 전부 알 수 없는 살기(煞氣)가 느껴졌다.

그리고 긴 창을 쥔 푸른 갑옷 병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는데 살아있는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전부 인간형 꼭두각시였다. 그리고 산성의 네 모서리에는 수정 기둥이 솟아 있었다.

노란색, 남색, 붉은색, 초록색의 기둥들은 무수히 많은 주술 문자들이 반짝여서 눈길을 끌었다.

한립이 속으로 놀라고 있을 때, 영수 마차는 산성 위로 날아올라 중심부에 있는 청록색 전당 앞에 내려섰다. 한립은 마차에 내리자마자 전당에 걸린 커다란 편액을 발견했다.

‘통령전(通靈殿)!’

전당 이름을 보고 그는 불현 듯 통령괴뢰가 떠올랐다.

‘통령괴뢰와 관련된 곳인가?’

그가 생각에 잠겨있을 때 천기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수사 안으로 들게. 이곳은 만고족의 요지(要地)이자 우리 천운족이 중요한 논의를 할 때 사용하는 공간이라 외부인을 들이는 경우는 드물다네.”

“영광입니다, 선배님.”

한립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합체 최고봉 앞에서 건방지게 굴어봤자 좋을 건 없었다. 그의 예의 바른 태도에 천기자는 입 꼬리를 올리며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전당 입구에는 하얀 장포를 입은 병사가 서있었는데 노인을 보고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그들을 살핀 한립은 그 이유를 금세 알아챘다.

“한 수사도 알아보았구만! 저들도 통령괴뢰일세. 상족 9계의 실력을 지니고 밤낮 없이 이곳을 지키지. 나 같은 늙은이들과 몇몇 특수한 신분의 사람들만이 손님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그 밖의 인물이 접근하면 사정없이 공격한다네.”

‘상족 9계라면, 연허 후기의 수행이 아닌가!’

하얀 장포 꼭두각시들을 보는 한립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런 꼭두각시들을 전당 문지기로 쓰다니 엄청난 낭비가 아닐 수 없었다.

한립은 부러운 마음이 가득했지만 천기자가 안으로 들어가니 바짝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겉모습과 달리 통령전 내부는 단출했다. 중간의 대청과 좌우의 편전이 전부였다.

대청도 수십 개의 굵은 금속성 기둥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천기자는 대청 중앙에 두 줄로 늘어선 의자로 걸어가 중간의 상석에 앉았다.

“한 수사도 앉게. 광한령에 관한 일이라 다른 두 명의 장로께도 연락드렸네. 운성에서 만고족에 관한 일은 우리 셋이 주관하고 있지.”

“그러시군요. 광한령이 굉장히 중요한 물건인 모양입니다.”

한립은 내심 놀랐다. 오는 동안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 틈에 소식을 보내 놓은 것이다. 역시 합체 최고봉의 존재는 달랐다.

“수사는 뇌명대륙 출신이 아니군.”

천기자의 말에 한립은 가슴이 서늘해졌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는 다른 대륙에서 왔습니다. 갑 수사께서 제가 초대형 전송진을 빌려 쓰고자 한다는 것을 이야기 했나봅니다.”

“그렇다네. 또한 뇌명대륙 사람이라면 광한령을 모를 리 없고 그렇게 쉽게 발동할 수도 없었겠지.”

“광한령이 그렇게 유명한 것입니까? 경전에서 읽은 적이 없는데요. 괜찮으시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일반 경전에는 적혀 있지 않을 것이야. 광한령은 유명하지만 개인이 소유하고 이용하기는 어려운 물건이니까! 종족 차원의 지원이 없는 한 광한령을 얻어도 광한계로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네. 하지만 보통 상족 이상의 수행을 지닌 자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일이기도 하지.”

“종족 차원의 지원이라니 광한계는 대단한 곳인가 봅니다. 그런 대가를 치르고도 들어가고 싶어 하다니요.”

“그냥 대단한 정도가 아닐세! 광한계에서 구할 수 있는 몇몇 물건에 일족의 성쇠(盛衰)가 직결되기도 하니까. 당연히 그런 보물들은 광한계에 들어간다고 해서 아무나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네. 광한계가 각광은 받는 이유는 그곳의 천지영기가 영계의 열 배 이상이기 때문이지. 그곳의 영약과 영과들은 영계에서도 구하기 힘든 것들이라네.”

후덕한 노인은 한립과 눈을 마주쳤다.

“영기가 그렇게 짙단 말입니까?”

“하하, 자네는 광한계가 어떤 곳이라 여기는가. 공간균열? 아니면 영계에 부속된 작은 세계?”

천기자가 수염을 쓸어내렸다.

“가르침을 청합니다.”

“우리도 아직 확신하지 못하지만 광한계는 진선계에 딸린 불완전한 공간일 가능성이 크다네.”

“진선계!”

“진선계에서 버려진 공간이란 말일세. 이전에 광한계에 진입했던 수사들은 선인의 거처로 의심되는 곳을 찾거나 심지어 유골을 발견하곤 했다네. 그러나 살아있는 선인을 마주친 경우는 없었지.”

천기자의 설명에 한립은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모든 것이 증명할 수 없는 추측에 불과하니 너무 놀라지 말게! 어차피 그곳에 들어간다고 해도 아무나 영천의 보물을 찾아내고 영약과 영과를 구해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후덕한 노인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광한계에 진귀한 보물들은 널렸지만 그것을 얻을 수 있을 지는 전부 스스로의 운에 달렸다는 말이네!”

대청 밖에서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리고 하얀 빛줄기가 날아들었다. 빛이 가시고 미색 장포를 입은 중년인이 나타났다. 가늘고 긴 눈에 매부리코를 지닌 하얀 얼굴의 소유자였다.

“마 장로께서 서둘러 와주셨습니다. 황 장로께서 먼저 도착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군요.”

천기자가 중년인을 보고 만면에 웃음을 머금었다. 한립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상대가 만고족의 또 다른 합체기 장로라 생각하고 일어나 예를 올렸다.

“황 장로는 최근 단약을 제련하는 중이라 소식을 받았어도 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자네가 천 장로께서 말씀하신 광한령을 발동한 외부인인가?”

마 씨 중년인이 한립을 아래위로 훑으며 물었다.

“예, 맞습니다.”

“흠, 상족 5계라. 수행이 탄탄하구만! 동급 수사에 비해 법력이 두 배 이상이라 6, 7계의 존재와 싸워도 해볼 만하겠어.”

마 장로는 한 눈에 한립의 수행을 파악했다.

“제가 익힌 공법이 특수해 법력에서 약간의 이득을 보았습니다.”

속으로는 깜짝 놀랐지만 한립은 겸손하게 대답했다.

“약간의 이득이라고 보기에는 웬만한 상대는 자네에게 상대도 안 되겠군. 허허, 자네의 의식도 평범한 상족 수사가 지닐만한 수준이 아니네 그려!”

마 장로는 무슨 비술을 사용한 건지 얼굴에 금빛 기운이 스치며 또 감탄했다. 한립의 의식이 강대하다는 것을 어느 정도 꿰뚫어본 눈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립도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안색이 조금 달라졌다.

“됐습니다. 마 장로께서 ‘관신(觀神)’ 비술의 1인자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한 수사의 수행이 뛰어난 것은 예상한 일이었고요. 갑 대사를 구하며 동급 수사 여럿을 죽였다는데 평범한 상족 수사라 볼 수 있나요.”

후덕한 노인이 개의치 않고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제가 괜히 재주를 뽐냈습니다. 수사도 그만 앉게!”

중년인이 웃음을 터트리고 천기자 옆으로 가서 털썩 앉았다. 한립은 멋쩍게 웃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멀리서 들으니 광한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더군요. 천 형, 그리 빙빙 돌려 설명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냥 중요한 것만 딱딱 짚어 주시지요.”

마 장로가 자리에 앉자마자 천기자를 향해 불퉁거렸다.

“안 그래도 이야기를 하려는데 마 형이 와서 맥이 끊긴 것입니다.”

“허허허, 그렇다면 제가 조금 경솔했습니다.”

“기왕 오셨으니 한 수사에게 직접 이야기해 주시지요. 어쨌든 직접 광한계에 다녀오시지 않았습니까. 이 노인네보다는 설명을 더 잘 하시겠지요.”

천기자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 그 말에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립을 향해 입을 열었다.

“흠, 뭐 나라고 특별히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라네. 당시 광한계에 들어갔을 때도 인연이 닿지 않아 역천의 보물이나 영초를 구하지 못했으니까. 각 종족이 중시하는 광한천(廣寒天)의 경우 다들 그 안의 엄청난 영기를 눈독 들이는 것인데, 오랫동안 고비를 넘지 못하던 족인들이 그곳의 도움으로 경지를 높이는 정도였지. 나도 그곳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수행을 쌓지 못했을 것이야.”

과거를 회상하며 중년인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그곳의 영기를 이용해 경지를 뛰어넘는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하지만 광한계에서 얻을 수 있는 영물들에 비하면 사소한 일이라네. 고비를 넘길 수 있는가도 각자의 운에 따라 다르고. 나는 거의 빈손으로 돌아왔는데, 듣자니 몇몇 사람들은 아주 진귀한 연기 재료를 구해서 통령급 보물을 제련했다더군.”

마 장로가 아쉬워 죽겠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허허, 그만 하면 만족하셔야지요. 당시 광한궁(廣寒宮)에 들어간 수사를 동급 수사들이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아십니까? 이 늙은이는 아직까지 들어가 본 일도 없는데 말입니다.”

후덕한 노인이 중년인을 힐끗 보고 타박하듯 말했다.

“제가 천 형처럼 천재여서 겨우 천 년 만에 성족에 이르렀다면 광한계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광한계가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 장로가 착잡한 얼굴표정을 해 보였다.

“그건 그렇습니다. 뇌명대륙에 나타나는 광한령의 수도 수백 개이고, 각각의 영패가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인원수 역시 전송진법의 역량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우리 천운에서 줄곧 본 족이 전송진을 담당했는데 가장 강력한 진법을 사용해도 영패 하나로 십여 명 밖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전송진법에 능한 종족들은 한 번에 서른 명 넘게도 진입한다던데. 우리가 지닌 진법이 그들보다 못한 것이 늘 아쉽습니다. 어찌 됐든 한 번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안으로 몰려 들어가니 광한계 내부가 얼마나 혼란스러울 지 충분히 상상이 됩니다.”

후덕한 노인이 공감하며 얼굴을 굳혔다.

“한 수사, 잘 들었겠지? 더욱 난감한 것은 영패의 전송 위치가 무작위라는 점일세. 만일 적대적인 종족과 비슷한 구역으로 전송되면 싸움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지. 그 안에서 고비를 넘기고 경지를 올릴 확률이 바깥보다 3할 이상 높거든. 하아, 아무래도 적의 고계 수사가 늘어나기를 바라는 종족은 없으니까!”

마 장로가 한립을 향해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듣고 한립의 눈빛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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