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7화. 새로운 꼭두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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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퍼펑!
인형들이 순간적으로 폭발해 오색 기운을 뿜고는 오색 의복을 걸친 아름다운 여인들로 나타났다. 그리고 대청 양쪽으로 스물네 명의 수려한 청년들이 각종 악기를 들고 자리를 잡았다.
곧 사람의 마음을 유쾌하게 해주는 음악 소리가 대청을 울렸고 여인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여인들은 굉장히 유연하면서도 움직일 때마다 기이한 향기가 풍겼다.
별안간 대청 안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갑천목은 인형들이 등장한 순간부터 눈을 크게 뜨고 주시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음악 소리가 그치고 춤을 추던 스무 명의 여인들도 동작을 멈추었다.
“재미있군요. 저 인형들이 품은 의식은 한 수사의 것이 아닌 것 같은데요.”
갑천목이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알아보셨군요! 영시라 불리는 꼭두각시인데, 영체(靈體)와 물체의 중간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통령괴뢰와 달리 어떤 영충의 혼백과 꼭두각시의 몸을 융합해 만들어 낸 것이죠. 어찌 보면 통령괴뢰와 가는 길은 달라도 지향점은 비슷하다고 불 수 있습니다.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영성을 개발할 여지가 없다는 점은 다르지만요.”
“영체와 꼭두각시의 융합이라! 이전에 저도 생각은 해보았지만 수많은 영수의 혼백으로 실험했어도 번번이 실패하고는 했습니다. 이 영시들은 어떤 영체를 주입한 것입니까?”
놀람과 기쁨이 교차하는 얼굴로 갑천목이 물어왔다.
“저도 우연히 손에 넣은 것이라 구체적인 것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수사께서 영시를 연구해 혼백을 분리해 낸다면 정체를 알아내는 일이 어렵지는 않겠지요.”
“그건 그렇습니다. 그 말씀은 이 꼭두각시들을 제게 주신다는 말씀인지요?”
“흥미롭기는 하지만 제게는 별 필요가 없는 물건입니다. 수사께서 괴뢰술에 재능이 뛰어나시니 이것을 통해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이 영시들은 확실히 제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귀중한 물건을 그냥 받을 수는 없습니다. 높은 가격에 구입하겠습니다.”
“영석은 되었고, 갑 수사께서 정 마음이 불편하시다면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립은 눈을 반짝이며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갔다.
“질문이요? 무엇이든 물어보시지요. 본 족의 기밀 사항이 아니면 답해드리겠습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절대 귀 종족의 기밀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든 물어보셔도 됩니다.”
갑천목은 한결 편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성에 머무는 동안 천운이 대륙 간 전송진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게 사실입니까? 사실이라면 어느 일족이 장악하고 있는 것입니까?”
“대륙 간 전송진이라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느 한 종족의 것이 아니라 13개 종족 중 일부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어느 일족들이 관리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전송진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수시로 수리하기 위해 정족(晶族), 석충족(石茧族), 다수족(多手族) 그리고 우리 만고족(万古族)이 관리합니다. 한 수사께서는 전송진의 진법에 관심이 있으신 겁니까, 아니면 전송진을 이용하고 싶으신 겁니까?”
갑천목은 총명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그는 한립의 질문을 듣고 곧바로 상대의 의도를 짐작했다.
“저는 전송진을 이용해 다른 대륙으로 건너가고자 합니다.”
“안타깝지만 전송진을 이용하시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갑천목은 이유도 묻지 않고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전송진을 가동하는 대가가 크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어떤 대가를 치르던 꼭 사용해야합니다. 제가 수사께 묻고 싶은 것은 외부인인 제가 전송진을 빌려 쓸 기회가 전혀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립은 상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겉보기에는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갑천목을 찾아온 진짜 목적이었다.
“수사께서 그렇게 물어보시니 저도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형께서 성족이고 천운 출신이기만 했어도 초대형 전송진을 이용하는 일이 쉬웠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한 형의 신분으로는 너무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지금처럼 각치족 대군의 침입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전쟁 중에 천운을 위해 큰 공을 세우면 상의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죠.
저는 본 족에서 꼭두각시 제련만 담당하고 있어 이런 이야기는 장로님들과 자세히 상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큰 전쟁을 앞두고 외부 종족에서 객경을 모집 중입니다. 한 형께서 각치족 동급 수사를 손쉽게 처리한 일을 제가 이미 장로님들에게 말씀드렸고 그분들도 수사께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갑천목은 고심하며 확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한립은 미간을 좁혔다. 그는 남의 전쟁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이렇게 거대한 세력의 전쟁에 휘말렸다가는 조그만 실수에도 목이 날아갈 것이다.
“말씀은 고맙지만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혹시 앞으로도 귀 족의 장로님들을 뵙고 싶으면 갑 수사께서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귀한 선물을 받고 그 정도야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갑천목은 주저 없이 답했다. 그 후로 한립은 갑천목과 괴뢰술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꼭두각시 이야기가 시작되자 갑천목은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눈을 빛내며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그의 괴뢰술은 실로 놀라워 그가 한 이야기를 되뇌이다보면 적잖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한립 역시 대연신군에게 전수받은 괴뢰술을 이야기해 갑천목을 놀라게 했다. 둘의 대화는 아주 즐겁고 유익했다.
반나절 후, 한립은 그의 배웅을 받으며 운하산을 내려와 거처로 돌아갔다. 객잔으로 들어간 한립은 즉시 금제를 발동해 방을 완전히 봉쇄했다. 그는 방 한쪽으로 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얻지 못했지만 초대형 전송진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고, 통령괴뢰도 생겼으니 나쁘지만은 않았다.
파앗.
그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한 손으로 저물탁을 스쳐 네모난 목함을 꺼내들었다. 뚜껑을 열자 가만히 누워있는 기다란 하얀 뱀이 눈에 들어왔다.
남색빛으로 일렁이는 눈으로 목함을 주시하던 그는 꼭두각시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아쉽지만 명청령안을 펼치고도 중요 부위는 모호해 어떤 원리로 되어 있는지 살필 수 없었다.
그것을 본 한립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강대한 의식을 방출해 하얀 뱀을 휘감아 핵심 부위를 훑으려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강제로 의식이 튕겨 나왔다.
그러나 다른 곳은 평범한 꼭두각시와 차이가 없었다. 재료가 조금 특이하고 몇몇 기관 장치의 배치가 굉장히 정교하다는 것은 알아냈지만 통령괴뢰의 진정한 정수는 그가 확인할 수 없는 부위에 담겨 있을 것이다.
강제로 의식을 주입해 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꼭두각시가 망가질 것이다. 거기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이들이라고 못하겠는가?
아직까지 통령괴뢰의 제련법을 만고족이 독점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아마 꼭두각시가 망가지는 동시에 통령괴뢰의 비밀도 같이 파괴될 것이다.
한립은 자신을 주인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입을 벌려 푸른 실을 내뿜었다. 푸른 실이 그의 손목을 한 바퀴 돌며 빠르게 몸 안으로 들어갔다.
한립은 손목을 앞으로 내밀었다. 푸른빛이 반짝이고 몇 방울의 피가 손목을 타고 천천히 하얀 뱀에게 떨어져 내렸다. 핏방울은 하얀 뱀의 반짝이는 몸에 닿아 괴이하게 사라졌다.
그는 수결을 맺어 법결을 하얀 뱀에게 연달아 날렸다. 그러자 뱀이 쉭쉭거렸고, 꼭두각시가 목함 속에서 날아올라 한립의 얼굴 주변을 꿈틀거리며 날아다녔다.
한립은 다른 손을 뒤집어 다양한 색의 진법 원반 한 벌을 꺼냈다. 그가 손을 펼치자 진법 원반들이 열댓 개의 영기의 빛으로 변해 튀어나갔다.
빙글빙글 돌던 영기의 빛이 허공에서 사라졌다가 주술 문자들이 반짝이는 오색 진법이 나타났다.
한립은 하얀 뱀을 향해 법결을 발동했다. 그러자 꼭두각시가 붉은 눈을 번득이고 망설이다가 한립의 의식을 거스르지 못하고 천천히 진법으로 날아갔다.
우웅!
진법이 낮게 울고 주술 문자들이 떠올라 꼭두각시 속으로 빠르게 흡수되었다. 하얀 뱀은 새빨간 기운에 둘러싸여 꼼짝하지 못했다.
한립은 기분이 좋았다. 이런 방식은 천붕족에서 알게 된 것인데 주인을 인식하는데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일단 주인을 인식하면 그보다 법력이 열 배가 많은 수사라도 쉽사리 꼭두각시를 빼앗지 못할 것이다.
한립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의식은 꼬박 하루가 걸렸고 한립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그는 주술을 외며 진법을 가리켰다.
진법 안의 하얀 뱀은 전신에 빛을 발하며 백의 여인으로 변해 천천히 그의 옆에 내려섰다. 무표정한 얼굴의 여인은 말이 없었다. 한립은 여인의 얼굴을 유심히 보며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아직 영성이 높지 않아 인형과 다를 바가 없구나. 앞으로 ‘와와’라고 부르마!”
그의 말을 들은 백의 여인의 눈에 붉은빛이 스쳤다. 하지만 여전히 냉랭한 얼굴로 움직이지 않았다. 한립은 고개를 저으며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그녀를 저물탁에 넣었다.
그리고 빛의 진법도 삽시간에 허물어져 열댓 개의 진법 원반으로 변한 다음 돌아왔다.
이번에는 또 다른 옥갑을 꺼내들었다. 붉은 색 부적이 겹겹이 붙은 옥갑은 바로 대두 이족인이 준 물건이었다. 대두인의 말과 각치족 병사들의 추격으로 보았을 때 중요한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만고족 장로들과 교섭하기 전에 이 안에 든 게 무엇인지 알아야지.’
옥갑 속 물건이 만고족에 더없이 중요한 물건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옥갑을 대가로 전송진을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물건의 정체도 확인하지 않고 대충 만고족에게 넘겨줄 수는 없었다. 정체를 알아야 가치를 가늠해 제대로 된 거래를 할 수 있었다.
한립은 하얀빛이 반짝이는 금제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만일 옥갑을 여는 과정이 너무 소란스럽다면 지금의 결계로 숨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에 한립은 저물탁에서 진법 깃발 여러 벌을 더 꺼내 벽으로 던졌다.
그러자 바로 푸른빛 장막과 오색빛 장막이 생겨났다. 한립은 그제야 안심하며 한 손으로 검은 그림자를 불러냈다. 검은 그림자가 손바닥을 빠져나와 한 척 크기의 검은 산으로 변하더니 빙글빙글 회전했다.
산봉우리 아래에서 회색빛이 흘러나와 보호막을 이루고는 한립 주변을 조용히 감쌌다.
한립은 옥갑에 붙어 있는 붉은 부적에 대해서는 미리 연구해 두었었다. 부적에 다른 기능은 없었지만 영기의 압력을 억제하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유일하게 걸리는 점은 부적이 옥갑 속 다른 금제와 연계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한립은 부적을 뜯어내자마자 옥갑이 폭발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길 바라지 않았다.
다행히 그가 지닌 몇 가지 신통이 이런 금제를 해결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한립은 단단히 대비를 마치고 옥갑을 허공에 띄웠다.
의식으로 검은 산을 조종하면서 새하얀 손을 들어 올려 허공을 쥐었다. 그러자 검은 산에서 원자신광이 이전보다 진하게 분출되었고 새하얀 손끝에서는 다섯 개의 해골 머리들이 튀어나와 바람을 가르며 옥갑으로 달려들었다.
“깨라!”
한립은 다섯 개의 해골을 가리키며 낮게 소리쳤다.
쉬쉬쉬쉭!
해골들은 동시에 입을 벌려 오색 한염을 뿜었다. 그러자 오색 한염이 반짝이고 붉은 부적들이 가볍게 옥갑에서 떨어져 내렸다. 마지막 부적이 떨어졌을 때 한립은 옥갑에서 일어난 변화를 똑똑히 보았다.
“……!”
그의 안색이 급변하며 옥갑을 휘감고 있던 오색 한염이 오색 거대 손으로 변해 옥갑을 잡아채려 했다. 옥갑 속에서 강력하지만 불안정한 파동이 흘러나와 오색 거대 손에 붙들렸다.
쾅!
그런데 그때 폭음이 터지고 옥갑을 중심으로 하얀 빛의 진법이 나타났다. 수축했다 늘어났다 하는 것이 언제라도 터져버릴 것 같았다. 한립은 엄청난 영력을 함유한 진법을 보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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