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945화 (702/2,000)
  • 945화. 천외마갑(天外魔甲)

    *

    “……!”

    여인은 몰려드는 마기에 안색이 변해 서둘러 하얀 보호막을 형성해 몸을 보호했다.

    치익!

    마기는 보호막에 닿아 기이한 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한립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수결을 맺어 온몸에서 금빛을 방출하고 삼두육비의 법상을 불러냈다.

    법상의 세 머리가 주술을 외며 마기를 발산중인 갑옷에 금색 빛기둥을 뿜었다. 그러자 경악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금색 빛기둥에 맞은 보라색 갑옷이 빙글빙글 돌다 사라진 것이다. 다음 순간 범성진마법상에 검은 기운이 흐르고 보라색 갑옷이 괴이하기도 법상의 몸에 입혀졌다.

    갑옷을 입은 순간 법상의 기세가 몇 배로 늘어났고, 검은 기운이 철철 넘쳐 마기 속에 신형이 가려질 정도였다. 한립은 고개를 들어 허공의 법상을 확인하고 크게 기뻐했다.

    갑옷에는 아직 영성이 남아 있었고 범성진마공으로 부릴 수도 있었다. 범성진마공 자체가 고마계의 신비 마공을 모태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고마(古魔)와 천외마두가 다르다지만 진마기를 힘의 원천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했다.

    물론 천외마갑이 손상되지 않아 영성이 충만했거나 주인이 살아 있었다면 이렇게 쉽게 갑옷을 부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주 좋군, 이 마갑은 확실히 내게 쓸모가 있네. 아쉬운 것은 손상 정도가 심하다는 것인데, 그렇지 않았다면…….”

    “갑옷이 완전무결했다면 어찌 제가 손에 넣을 수 있었겠습니까. 또한 선배님께서 대가를 지불해 주신다면 수리할 방법은 있습니다. 적어도 원래 위력의 10분의 2, 3은 회복할 수 있겠지요.”

    정족 여인이 법상을 보며 놀란 마음을 감추고 차분히 말했다.

    “오, 수사가 정족 사람인 것을 잊을 뻔 했군. 자네가 말한 대가란 무엇인가?”

    “본래 이 물건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입니다만, 어쨌든 마갑인지라 마수(魔修)가 아니고서는 부릴 수 없지요. 뇌명대륙에서 마수는 굉장히 희귀한 존재이고 선배님의 경지까지 수행을 쌓은 이는 더더욱 만나기 어렵습니다.

    제가 보물을 얻은 후 선배님을 만나기까지 갑옷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이렇게 하시지요, 선배님께서 진귀한 재료와 영단을 적당히 내어주십시오! 거기다 극품영석 약간만 더 지불해 주시면 갑옷을 내어드리겠습니다.”

    정족 여인은 미리 생각을 해두었는지 오래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그렇게 간단히 말인가?”

    한립은 의외의 답변에 움찔했다. 조건이 너무 후했다. 정족 여인은 그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일단 수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들어보지.”

    한립이 바로 마갑 수리에 대해 질문했다. 정족 여인은 그제야 약간 주저하다 탄식하듯 입을 열었다.

    “마갑의 수리는 간단합니다. 선배님께서 마핵(魔核)만 충분히 구해주신다면 마갑을 수리할 수 있습니다.”

    “마핵이 무엇이지?”

    “보통 마핵은 고계 마수의 내단을 말합니다. 천외마갑을 쓸 만하게 수리하려면 적어도 수백 개의 마핵이 있어야겠지요. 게다가 반드시 상족(上族) 이상의 수행을 지닌 마수여야 합니다. 그 중 주재료가 될 마핵은 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습니다. 성계(聖階) 마수의 내단이라면 더할 나위 없고요.”

    “성족급 마수? 농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게 많은 마핵을 내 어디 가서 구할 수 있겠는가. 어쩐지 마갑을 사는 값보다 수리하는 값이 더 드는 것 같구만.”

    한립은 얼굴을 굳히고 거침없이 따졌다.

    “선배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아쉬울 따름입니다. 마갑을 제대로 수리하면 위력이 배는 늘 것입니다. 그것은 주재료인 마핵에 달렸는데 저계 마핵으로 수리하면 위력이 크게 떨어질 테지만 성계 마핵으로 수리하면 위력이 두 배에서 세 배로 늘어날 것입니다.

    그러니 대가가 비싼 것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또한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닙니다. 선배님께 알려드릴 성계 마핵에 관한 정보가 두 가지나 있습니다.”

    정족 여인이 다 생각해 두었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두 가지 소식? 어디 들어나 보지.”

    “하나는 세 달 후, 운성의 경매소 중 하나인 운상(雲祥) 경매소에서 성계 형극마수(荊棘魔獸)의 마핵이 출품될 거라는 소식입니다. 워낙 진귀한 마핵이라 심지어 몇몇 성족급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지요.”

    ‘성족들도!’

    미간이 절로 찌푸려지는 소리였다.

    그도 재산이 적진 않지만 합체급 이상의 존재와 겨를 자신은 없었다. 그런 노괴들은 만 년 혹은 수만 년 이상 살아왔을 텐데 그간 모은 보물과 영석이 수량이 얼마나 많겠는가!

    물론 지니고 있는 수많은 영단과 재료들을 전부 영석으로 바꾼다면 성족들과 대결해볼 만 했다. 하지만 괜히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가는 마핵을 낙찰받기 전에 성가신 일이 생길 것이다.

    한립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고개를 저었다.

    “성족이 참가하는 경매에서 그 물건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네.”

    “선배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두 번째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천운에 최근 오신 분 같은데 혹시 마금산맥(魔金山脈)에 대해 들어 보셨는지요?”

    “마금산맥!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네만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지는 모르네.”

    “모르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곳은 최근 만 년 사이에 발견이 된 것이라 타 지역 사람들은 거의 알지 못하니까요. 제가 상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여인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수고 해주게.”

    고개를 끄덕인 한립이 머릿속으로 최근 구입한 운성 인근 지도에서 본 마금산맥의 위치를 떠올렸다.

    “대략 만 년 전, 운성에서 한 달 거리에 있는 황야 지역에 갑자기 공간 폭풍이 나타났습니다. 공간 폭풍이 지난 후 돌연 검은 산맥이 생겨났고요.

    자욱한 마기로 둘러싸인 산맥의 허공은 공간이 극도로 불안정해져서 크고 작은 공간균열들이 생겨나고는 했습니다. 그 안에서 대량의 마기가 새어나왔고 고계 마수들도 튀어나왔지요. 그 중에는 성계 마수들도 있고요. 얼마 지나지 않아 산맥을 중심으로 수백만 리가 마기로 뒤덮여버렸고, 쉬지 않고 영역을 넓혀 갔습니다.

    이 일로 천운족의 성족 최상급 수사들이 나서게 되었지요. 성족 예닐곱 명이 힘을 합쳐 마기의 구역에 들어간 다음 대부분의 성족 마수를 죽이고 산맥 중심부로 들어가 완전히 일을 해결하려 했습니다.”

    정족 여인이 진지한 어조로 설명했다. 그녀가 공간균열과 대량의 마기가 뿜어져 나온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한립은 문득 명하의 땅을 떠올렸다. 정족 여인이 길게 숨을 들이 마시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성족 수사들이 산맥 안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장장 반년이 지나서야 돌아왔지요! 그들은 바로 엄명을 내려 주변 구역을 철저히 금제로 봉쇄하고 입구를 하나만 남겨 두었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공간균열에서 일정 수준의 마기와 성계 마수만 나올것이고 현재의 면적과 마수 수량을 유지할 것이라고 공표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이후로 성족 이상의 존재는 금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금했고, 성족 이하의 존재만 안으로 들어가 마수를 죽여 내단을 얻거나 진귀한 재료를 찾는 일을 허락했지요.

    다만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시기는 1년 중 딱 한 달 뿐이고, 수확이 있든 없든 한 달 밖에는 머물지 못합니다. 그곳의 마기가 너무 짙어 마수라 해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중에는 마기와 동화되어 마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마수도 많고 진귀한 재료를 찾기에도 좋아 처음 몇 년 간은 구역을 개방할 때마다 많은 중, 고계 수사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원이 줄어 지금은 들어가려는 이들이 거의 없지요.”

    정족 여인은 한숨을 푹 쉬었다.

    “어째서 그렇지?”

    “살아 돌아오는 이들은 귀한 재료를 가득 갖고 나왔지만 열에 아홉은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세월이 흘러도 고계 요수는 늘기만 하고 줄어들지 않으니 다들 두려운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마금산맥 내부에는 고계 마수들이 많을 뿐 아니라 당시 살아남은 성계 마수도 몇 마리 있었거든요.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산맥 중심부에 서식하지만 우연히 마주치는 날에는 죽은 목숨 아닙니까.

    솔직히 말해 수사들이 마수를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마수들을 위해 수도자를 넣어주는 꼴이 된 지 오래입니다.

    다행인 것은 고계 마수들은 보통 산맥 깊은 곳에 머물며 주변부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도 들어갈 생각을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누군가 그곳에서 살아 돌아오면 하룻밤 사이에 벼락부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곳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선망하는 마음이 합해져 ‘마금산맥’이라 불리게 된 것이고요.”

    “수사가 이리 자세히 말해준 것은 내가 그곳으로 들어가 성계 마수를 사냥해 오기를 바라서인가?”

    한립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겉으로는 무표정했지만 마음을 정한지 오래였다. 천외마갑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었다.

    “마금산맥 중심부가 얼마나 위험한데 제가 어찌 그런 말씀을 올리겠습니까? 제가 선배님께 노려보시라 말씀드린 것은 마금산맥의 성계 마수의 마핵이기는 합니다만…….”

    정족 여인이 입 꼬리를 끌어올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백 년 전, 이름 모를 성계 마수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마금산맥의 결계를 뚫고 나와 인근 도시들을 공격했습니다. 소문을 듣고 달려온 여러 성족들에 의해 중상을 입고 달아났지요. 제가 우연히 그 마수가 숨어 있는 곳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게 사실인가?”

    한립의 표정이 신중해졌다

    “한 치의 거짓 없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요수는 그때의 부상이 너무 심해  마금산맥 변두리에 몸을 숨기고 깊은 잠에 빠져있지요. 원래 실력의 10분의 1도 내지 못하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유일하게 성가신 점은 요수가 잠들어 있는 곳에 마기로 결계가 쳐져 있다는 것인데, 마기를 부릴 수 있는 고계 수사가 아니면 결계에 접촉하는 순간 요수가 깨어날 것이란 겁니다. 그래서 진작 요수의 행적을 알고도 어쩌지 못하고 있었지요.

    제가 선배님을 대신해 마갑을 수리해 드리는 대가로 받고 싶은 것은 바로 마핵을 제외한 마수의 다른 재료들입니다. 적절한 대가라고 여기신다면 바로 마수가 잠들어 있는 곳의 위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정족 여인은 드디어 진짜 거래 조건을 제시했다.

    “마수가 정말 마금산맥 인근에 잠들어 있는 것이 확실한가? 신통도 제 실력의 10분의 1밖에 못되고 말이지. 이런 구체적인 정보는 어떻게 알아낸 것인가?”

    한립은 오래 고민하다 물었다. 여인의 말에 마음이 동하긴 했으나 중요한 일 일수록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했다.

    “모두 사실입니다. 제가 이것을 보여 드리면 모든 의문이 풀리실 것입니다.”

    정족 여인은 신중한 한립의 태도에 오히려 기뻐하며 소매 속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연기는 그녀의 머리 위에서 응결했고 그것은 뜻밖에도 주먹 크기의 괴조로 전신은 까맣고 눈은 금빛으로 빛났다.

    “마연조(魔烟鳥)!”

    한 눈에 괴조의 정체를 알아본 한립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

    “맞습니다. 마연조는 영계에서도 희귀한 마수 중 하나이지요! 공격 능력이 없는 대신 탐색과 잠행에는 신비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심지어 주인의 의식 한 줄기를 장기간 깃들게 해 직접 조종도 가능하고요. 성계 마수의 행방을 찾은 이후 저는 마연조를 이용해 여러 번 잠들어 있는 마수를 직접 확인했습니다.”

    정족 여인이 특유의 미소를 머금었다.

    “기왕 마연조까지 보았으니 수사의 말을 믿도록 하겠네. 하지만 몇 가지 더 물어봐야겠군. 성계 마수라 해도 당시 여러 성족들의 공격을 피해 달아났다면 급이 낮지는 않을 것이야. 게다가 종류에 따라 동급의 신통을 훨씬 뛰어넘는 마수일 수도 있겠지. 수사가 직접 보았다니 어떤 종류인지는 확인했겠지?”

    “마수와 성족들 간의 전투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성족 2계 혹은 3계와 맞먹는 신통을 지녔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다른 수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린 결론이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마수인지도 말하기 어렵습니다. 겉보기에는 전설 속의 진령 ‘산악거원(山岳巨猿)’과 닮아 있었고요. 진령의 피가 어느 정도 섞인 종류일 수도 있습니다.”

    ‘산악원!’

    정족 여인의 말에 한립의 표정이 미미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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