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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942화 (699/2,000)

942화. 운성(雲城)

*

거산(巨山)의 땅속, 어두컴컴한 전당 안.

고요한 전당 안에 하얀빛이 반짝이자 진법에서 두 명의 인영이 모호하게 나타났다. 바로 푸른 장포를 입은 한립과 머리를 산발한 갑천목이었다.

“이곳은 굉장히 비밀스럽게 관리되어 왔습니다. 저희 만고족이 전송진을 건설한 후, 위급할 때가 아니면 발동하지 못하게 해두었으니까요. 이곳을 아는 이는 손에 꼽힐 것입니다. 이제 각치족 점령 지역에서 멀리 떠나왔으니 천운13족에서 세 번째로 큰 운성까지는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갑천목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손을 펼쳐 벽에 박혀 있는 수정돌을 향해 법결을 날렸다.

파앗!

전당 벽 곳곳에 박힌 수정돌이 동시에 빛을 반짝이며 전당 내부가 환해졌다. 전당은 푸른색과 흰색의 암석으로 이뤄져 있었고, 평범해 보였지만 무척 깔끔했다.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오랫동안 아무도 드나들지 않은 것이 확실하군요. 그런데 운성까지는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듣자니 만고족의 대장로께서도 그곳에 머물고 계시다고 하던데요.”

“오, 한 수사께서도 그 일을 아십니까? 하하, 보름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운성은 구조가 굉장히 특이한 것으로 유명하지요. 또한 각치족이 진공해 오는 방향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거대성이라 전쟁이 발발하면 천운 족들의 중심지가 될 것입니다.”

“그럼 잘 되었습니다. 그렇게 유명한 성이라면 규모가 상당할 테니까요. 안 그래도 거대성을 찾아 처리할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운성에 임시 거처가 있어 반쯤 본토인과 다름없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 저를 찾아 주십시오. 중대한 사안이 아니라면 언제라도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갑천목이 한립을 향해 활짝 미소 지었다. 이미 위험한 지역을 벗어났지만 그는 한립과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럴 일이 생기면 꼭 찾아뵙지요.”

“지금 운성에 13족 이외의 수사가 들어가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한 형처럼 낯선 수사들은 더욱 들어가기 어려울 테지요. 허나 수사께서 각치족 동급 수사들을 처리하는 것을 보았으니 제가 나서서 신분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허허, 말이 나와서 그런데……. 혹시 저희 만고족으로 들어와 객경(客卿)으로 머물러 계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제가 장로님들께 추천해 드릴 수 있답니다. 수사의 신통이면 본 족에서도 크게 환영할 것이고 객경으로 머무는 동안 얻는 것도 꽤 많을 것입니다.”

갑천목이 눈을 깜빡이며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갑 형의 호의는 감사하지만 제가 천운에 오래 머물 수 없어서요. 이 일은 나중에 이야기하시지요.”

한립은 잠시 침음하며 가벼운 어조로 답을 미루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운성으로 출발하시지요! 가는 대로 제가 성에서 가까이 지내는 친우들을 몇몇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전송진을 지나 전당을 빠져나왔다. 석문을 밀어내니 청석으로 만들어진 통로가 나타났고 한립과 갑천목은 두 줄기의 둔광으로 변해 그곳으로 들어갔다.

하얀빛과 푸른빛줄기가 거산에서 날아올라 하늘 끝으로 사라졌다.

“이곳이 운성!”

한립은 먼 곳을 응시하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습니다. 이름 그대로 운성(雲城)은 영계에서 천공의 섬에 버금가는 또 다른 형태의 공중 주거 지역입니다. 천공의 섬처럼 마음대로 이동할 수는 없어도 계절에 따라 고도를 조절할 수는 있지요.”

갑천목이 짧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들은 운성과 수백여 리 떨어진 곳에 떠서 거대한 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름으로 둘러싸인 하얀 성은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깜짝 놀랄 만한 전경을 갖고 있었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거대한 성 주변의 열댓 개의 거대 구체였다. 멀리서 보면 그다지 커 보이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직경이 만 장에 달하는 거대한 물체였다.

다만 성의 한쪽 면밖에 보이지 않아 구체의 정확한 수량은 파악할 수 없었다.

“저건 무엇입니까?”

“아, 운성의 호위병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우리 만고족과 석충족(石茧族)이 정성을 들여 만들어낸 운성 방어의 핵심이지요. 구체적인 것은 자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하하, 지금은 궁금하셔도 참아 주세요!”

갑천목이 뜻밖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한립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운성에 대한 호기심을 품은 채 푸른 빛줄기로 변해 날아갔다.

운성에 가까이 다가가자 견문이 넓은 한립도 놀라 숨을 들이마셨다. 마치 하늘의 절반을 가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점점 다른 이족인 수사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요수가 이끄는 비차나 영선(靈船)들도 심상치 않게 돌아다녔다. 한립이 거대한 구체를 맨 눈으로 살필 수 있을 쯤에는 날아다니는 둔광의 수가 굉장히 많아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러나 대부분 거대 구체에 접근하거나 일정 범위 내로는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한립의 눈동자가 남색빛으로 일렁이자 구체가 마치 지척에 있는 것처럼 눈에 들어왔다

거대 구체의 외부 재료는 운성의 재료와 같아 보였는데, 자세히 관찰하니 희미하게 균열이 가있었다. 마치 여러 조각의 재료를 덧댄 것 같았다.

각각의 조각에 은은하게 금은색 주술문자가 반짝여 굉장히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한립은 미간을 좁히며 거침없이 의식으로 구체를 훑었다.

“…….”

구체의 표면에서 강력한 금제의 힘이 작용해 그의 의식을 튕겨 버렸다. 그러나 한립은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식으로 쉽게 훑을 수 있었다면 더욱 놀랐을 것이다.

“혹시라도 금속성 보물이나 재료를 지니고 계시면 구체에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금속성 물체는 강제로 빨려 들어가거든요.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에 대해서는 운성이 배상해 주지 않습니다.”

갑천목은 구체를 살피는 한립을 보고 주의를 주었다.

“그렇습니까?”

한립도 멀리 돌아가는 수사들을 보았기에 그의 말을 믿었다. 주변의 둔광들이 방향을 틀어 운성의 거대한 성문 중 하나로 날아가고 있었다.

성문 밖에는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엄숙한 얼굴로 성 안으로 들어가려는 이들을 검문하고 있었다. 이런 검문은 들어가려는 수도자들에게 집중되었고 성 안에서 나오는 수사들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병사들은 갑옷과 투구로 온몸을 가리고 있어 어떤 종족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한립은 둔광을 멈추지 않고 갑천목과 함께 성문 밖에 도착했다. 그들과 같이 검문을 받으려고 대기하는 이들이 열댓 명은 되었다.

검문은 몇 명의 병사들이 특이한 모양의 진법 원반을 들고 낯선 방문객의 얼굴을 비추면, 다른 병사가 법기를 들고 무언가를 이야기해 정보를 주입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운성의 고공은 금제로 보이는 빛의 장막이 보이지 않았는데도 텅 비어 있었다. 아무도 수백 장 높이의 담을 넘어 나오거나 들어가지 않았다.

갑천목은 별다른 설명 없이 미소를 머금고 검문 중인 이족인에게 다가갔다. 수사들은 새치기를 당하자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축기기나 결단기 수사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의식으로 갑천목을 훑고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상대가 상족이라는 것을 알고는 어떤 내색도 못한 것이다. 그러나 갑천목과 비슷한 수행의 병사들은 개의치 않고 서늘한 시선을 보내왔다.

갑천목이 그것을 보고 검은색 영패를 병사들 우두머리에게 날려 보냈다. 병사는 잠시 멈칫하더니 영패를 받아 확인했다. 동시에 갑천목은 입술을 달싹여 전음을 보냈다.

이에 우두머리 병사가 깜작 놀라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그는 대번에 갑천목에게 다가가 영패를 돌려주고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만고족의 갑 대사님이셨군요.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장로들께서 이미 분부를 해두셨습니다. 대사님께서 무사히 운성으로 복귀하는 즉시 천욱각(天旭閣)으로 모셔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성 안에 각치족 첩자가 숨어들었을 수도 있으니 바로 병사들로 하여금 호위하도록 하겠습니다.”

“장로님들이 모두 천욱각에 계시단 말인가? 안 그래도 장로님들을 만나 뵈러 갈 생각이었는데 잘 되었군. 호위에 관해서라면 신경 쓸 것 없네. 여기 한 수사께서 계시면 합체기 수사가 기습하지 않는 한 아무 일도 없을 테니. 흠, 한 수사께서는 천운인(天雲人)이 아니시니 고계 자유 신분패를 준비해 드리게. 내가 신분은 보장할 것이니.”

“예, 대사!”

병사가 고개 숙이며 명을 받들었다. 그때 한립이 차분히 걸어왔다.

파앗.

몇몇 병사들이 바로 진법 원반으로 그를 비추었다. 한립은 진법 원반이 빛나자 미세한 영기의 압력을 느꼈다. 병사들의 몸에서 의식이 방출되어 놀랍게도 하나로 뭉쳐진 다음 그의 몸을 훑었다.

‘이런…….’

여러 명의 의식을 하나로 융합하는 공법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천운13족의 핵심이 되는 거대성이라더니 일개 병사들 또한 불가사의한 공법을 익히고 있었다.

그런데 그를 살피던 병사들이 동시에 화들짝 놀랐다. 상족 7계의 존재는 천운13족과 같은 연맹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부류가 아니었다.

우두머리 병사는 진법 원반을 보고 각치족 혈맥에게서 보이는 반응이 없자 마음을 놓으며 말했다.

“선배님! 갑 대사님께서 신분을 보장해 주신 데다 진법 검사를 통과하셨으니 바로 고계 신분패를 내어드리겠습니다. 이 신분패를 지니시면 몇몇 중요 지점을 제외하고는 자유롭게 다니실 수 있습니다.”

“그럼 수고해주게!”

한립이 인자한 태도를 보이자 병사가 더욱 공손해졌다. 그리고 더 이상 호위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잠시 후, 누군가 간단한 정보가 담긴 옥패를 들고 왔고, 우두머리 병사의 손짓에 다른 병사들이 길을 내주었다.

갑천목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고 한립도 차분히 그의 뒤를 따랐다.

“갑 수사, 조금 전 병사들이 펼친 의식을 하나로 융합하는 공법이 신비합니다. 저런 공법을 익힌다면 적을 상대하는 데 있어 강력한 무기가 되겠어요.”

한립이 걸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응신귀일술(凝神歸一術)이라 합니다. 청족(靑族)이 만들어낸 신기한 술법이지요. 그런데 이 술법을 익히기 위한 제약이 너무 큽니다. 피를 나눈 형제가 수련한 공법과 수행이 차이가 없어야만 펼칠 수 있습니다.

청족의 경우 다른 종족과 달리 쌍둥이들이 몸이 연결된 채 태어나는 경우가 많으며 한 번에 여섯 쌍둥이가 나오는 경우도 흔하답니다. 일정 나이가 되면 분리되어 각자 생활할 수 있고요. 그래서 운성의 네 문은 전부 청족의 수사들이 검문을 수행합니다. 응신귀일술을 펼치면 의식이 본래 경지의 3, 4성까지 높아져 그들을 속이기 쉽지 않거든요.”

“그런 비술이 다 있습니까? 갑 수사께서도 이 술법을 어떻게 익히는지 아십니까?”

“응신술이 청족이 중시하는 술법이기는 하지만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수사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갑천목의 호탕한 답변에 한립은 웃음을 머금었다.

“허허, 별 것 아닙니다. 한 수사께서는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이 정도는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아, 그럼 저는 장로님들을 뵈러 먼저 가보겠습니다. 이곳이 제 거처이니 며칠 후에 찾아주시면 약속드린 통령괴뢰를 드리겠습니다.

제 거처에도 두세 마리밖에 없는 것이라 외부 수사에게 주기 위해서는 장로님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물론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저도 족 내에서 어느 정도 지위가 있어 절대 문제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갑천목이 씨익 웃고 한립에게 돌조각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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