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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941화 (698/2,000)

941화. 온념주(蘊念珠)

*

한립은 고개를 돌려 금빛이 날아든 곳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 장발 이족인이 금색 구슬 밖으로 나와 커다란 남색 꼭두각시를 데리고 서 있었다. 짙은 남색의 꼭두각시의 손에는 아직도 희미하게 금색 뇌전이 남아 있었다.

갑천목이란 이족인은 고계 꼭두각시를 두 마리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벽사신뢰를 방출하는 세 번째 꼭두각시의 출현은 정말 한립의 예측을 뛰어넘었다.

놀라운 것도 잠시 대붕은 날개를 펄럭여 은색 전함 위로 솟아올라 푸른빛을 반짝이며 몸집을 더욱 부풀렸다. 그리고 두 개의 발톱에 뇌전을 머금고 전함을 힘껏 내리쳤다.

콰쾅!

발톱이 은색 전함을 뚫고 들어가 힘차게 양쪽으로 갈랐다. 그러자 천둥소리가 울리고 전함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대붕이 입을 벌려 굵은 뇌전을 분출하자 번갯불이 번득이며 구멍 안으로 사라졌다. 전함 속에서 비명과 절규가 울려 퍼졌다. 얼마나 많은 각치인들이 그 안에서 죽어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대붕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날개를 펄럭여 하얀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거대한 전함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곤두박질쳤다.

쿠콰콰쾅!

땅이 크게 울리고 전함이 땅에 떨어져 내렸다. 이에 대붕은 길게 울부짖으며 날개를 접고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립은 지면에서 눈을 돌리고 수결을 맺었다.

수십 개의 푸른 비검이 동시에 나타나 푸른 실로 변해 쏘아져 나갔다. 잠시 후, 땅에 떨어진 전함은 수많은 비검의 난도질에 갈라져 결국 폭발했다.

대부분의 각치족 병사들과 쌍두 독수리들은 표린수와 제혼에 의해 사라졌고, 처음부터 달아난 소수의 병사들만이 운 좋게 목숨을 건졌다.

한립은 전투가 끝나자 영수환을 분출해 다시 제혼과 표린수를 불러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고개를 돌려 갑천목을 향해 날아갔다.

상대의 냉담한 시선에 갑천목은 가슴이 서늘해졌으나 겉으로는 웃음을 띠고 포권을 했다.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약조한 바는 꼭 지키겠습니다. 본 족으로 돌아가는 대로 통령괴뢰를 드리지요.”

“감히 나를 끌어들일 생각을 하다니, 담도 크구나! 내가 자네도 같이 죽일지 모른단 생각은 하지 않은 것이냐?”

일순 한립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

“농담도 잘하십니다. 만일 수사께서 그렇게 하고자 했다면 저는 벌써 죽은 목숨이었겠지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저도 살기 위해 한 선택이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내가 있는 것은 어찌 알아챈 것인가? 은신술에 꽤 자신이 있어 동급 이하의 존재에게 들킬 리는 없다고 여겼건만.”

“제 수행에 어떻게 선배님의 은신술을 알아차릴 수 있었겠습니까. 선배님의 위치를 파악한 것은 전부 이것 덕분입니다.”

갑천목은 잠시 주저하다 구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뜻밖에도 검은색과 하얀색이 엇갈려 있었는데, 표면에 희미하게 영기의 기운들이 소용돌이치는 것이 보였다.

“이게 무엇인가?”

“이것은 온념주(蘊念珠)로 희귀 영수인 얼혈수(孽形獸)로 만들어진 보물입니다. 수사의 의식을 잠시 두 배 넘게 끌어올려주어 감각을 불가사의한 경지까지 증폭해주는 물건이지요. 한 번 사용하면 체내에서 몇 년 동안 배양해야 하고 후유증도 만만치 않지만 위급한 순간에는 아주 유용합니다.”

“의식을 배로 증폭해 준단 말인가?”

한립은 깜짝 놀랐다.

수행을 배로 늘려 준다고 했으면 이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임시로 수사의 법력이나 경지를 늘려주는 수단은 드물기는 했지만 없지는 않았다.

의식이라는 것은 수행이 늘면서 차츰차츰 강해지는 것이기도 했고 공법에도 영향을 받았다. 허나 외부의 물건으로 의식에 영향을 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온념주! 얼형수!”

한립은 중얼거리며 구슬을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그러나 온념주를 제련하기 위해 꼭 필요한 얼형수는 영계에서 멸종된 지 오래입니다. 게다가 이 구슬은 한번 사용하면 다른 사람이 절대 사용할 수 없고요. 다른 이의 구슬을 삼켰다가는 오히려 의식이 혼잡해져 광증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갑천목도 한립의 표정 변화를 감지하고 서둘러 덧붙였다.

“그렇구만.”

순간 살심이 일었던 한립은 크게 실망하며 눈꼬리를 내렸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구슬이 눈에 익었다. 어쩐지 자신도 저물탁에 이렇게 생긴 물건이 하나 있는 것처럼…….

눈을 깜빡이던 한립은 순간 추마골에서 영촉과(靈燭果)를 채취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정체 모를 변이 요수를 죽이고 얻은 내단이 온념주와 너무 비슷했다.

‘설마 그 요수가 얼형수!’

온념주만 있다면 한 번에 부릴 수 있는 서금충의 수가 대폭 늘어날 것이다. 생사가 걸린 순간 적을 격퇴시킬 수 있는 엄청난 한 수였다.

하지만 한립은 상대가 무언가를 눈치챌 것을 우려해 더는 온념주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 대신 갑천목 곁의 꼭두각시를 보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이것들 때문에 각치인들이 수사를 대우하는 것 같던데 평범한 신분은 아닐 것 같군. 자네는 누구인가?”

“저는 겨우 상족 3계의 존재일 뿐입니다. 그저 괴뢰술에 약간의 실력이 있어 조금 이름을 날리는 정도이지요.”

갑천목이 별 것 아니라는 듯 답했다.

“각치족 장로들까지 중시할 정도라면 괴뢰술이 보통 경지가 아니겠구만.”

한립은 눈을 반짝였고, 그의 말에 갑천목이 웃음을 흘렸다.

“선배님, 이곳은 오래 머물 곳이 못되니 나머지는 가면서 이야기하시지요.”

“흥, 일리 있는 말일세! 허나 내가 언제 자네와 같이 간다고 했던가? 그만 각자 갈 길을 가도록 하지. 자네 같은 인물과 다니다 또 불똥이 튀고 싶지 않으니.”

한립은 콧방귀를 뀌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잠시만요! 이미 아시겠지만 적들이 삼엄하게 인근을 봉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선배님의 둔술이 고명해도 쉽게 빠져나가시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비밀 전송진의 위치를 알고 있어 그것을 이용하면 바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한립의 몸에 푸른빛이 반짝이자 갑천목이 재빨리 소리쳤다. 그가 정말 가버릴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비밀 전송진? 거짓은 아닐 테지?”

“안심하셔도 됩니다. 천운13족이 저와 같은 몇몇 특수한 수사들을 위해 마련해 둔 비밀 전송진입니다. 가보시면 바로 아실 것입니다. 거짓이라면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갑천목의 이야기에 한립은 잠시 침음했다. 각치족의 순찰이 확실히 가면 갈수록 빈번해졌다. 심지어 은색 전함도 자주 출현했다.

들키지 않고 이렇게 삼엄한 경계를 뚫을 수 있을 거라 그도 확신하지 못했다. 전송진을 이용해 곧바로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면 훨씬 안전할 것이다.

또한 각치족이나 천운13족 모두 그와는 아무 상관없지만, 각치족이 녹광성을 점령하고 학살을 자행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가 옥갑을 바친다고 해도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천운13족은 외부 종족을 크게 배척하지 않았다. 우선 천운13족의 구역에서 머물다가 천천히 풍원대륙으로 갈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은 생각 같았다.

게다가 지니고 있는 옥갑도 해결해야 했으니 만고족에서 상당한 지위를 지닌 그가 도움이 될 것이다. 한립은 한결 온화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수사의 제안대로 하지요.”

그는 천운13족으로 가기로 결정하자 말투까지 달라졌다. 그것을 들은 갑천목은 크게 기뻐하며 감사인사를 했다. 괴뢰를 부릴 특수 영석도 거의 떨어진 상황에서 한립의 보호 없이 전송진으로 갈 자신이 없었다.

갑천목은 각치족에게 붙들려간 꼭두각시들을 전부 회수하고 한립과 함께 하늘을 가르며 날아갔다. 금색과 푸른색 빛줄기가 번쩍이자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연노란 보호막으로 가려진 거대한 성 주위에 크기가 다른 은색 전함 백여 대가 떠 있었다. 그중 가장 커다란 전함에서 열댓 명의 각치족 연허기 수사들이 아래의 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장 상석에는 은백색 피부에 자금(紫金)색 눈동자를 지닌 젊은 여인이 앉아 있었다. 다른 이들이 아래쪽 성을 가리키며 수군거릴 때 그녀는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갑자기 누각 밖에서 영기의 빛이 반짝이고 붉은 빛줄기가 젊은 여인에게 날아들었다.

“…….”

젊은 여인은 눈썹을 끌어올리며 붉은빛을 가리켰다. 붉은빛이 작은 화염 덩어리로 변해 그녀의 손에 떨어졌고, 여인은 곧바로 의식을 불어넣었다.

“이런 일이! 이 쓸모없는 것들!”

여인이 표정을 굳히며 냉랭하게 중얼거렸다. 이에 수사들이 놀라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여인을 바라보았다.

“존자 대인, 무슨 일이신데 그리 불쾌해하시는 것입니까?”

등이 굽은 사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흥, 상족 7, 8급 수사들이 갑천목을 잡으러 갔다가 전송되자마자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이다. 한 부대는 아예 전송진을 발동하지도 못했고 말이야!”

여인의 눈동자가 보랏빛으로 번득였다.

“갑천목이 아무리 괴뢰술에 정통하다지만 겨우 상족 중계의 수사입니다. 어떻게 추격병들을 몰살시킬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긴 얼굴의 부인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살아남은 자에 따르면 갑천목의 짓이 아니라 또 다른 자의 소행이라더군.”

“또 다른 자요? 저기 횡수성(橫水城) 외에도 아직 성족이 남아 있는 구역이 있습니까?”

곱사등 사내가 조금 놀란 듯했다.

“합체기 수사가 아니라 상족 7계의 수사에게 당한 것이다. 그러니 쓸모없는 것들이라고 한 것이지! 그렇게 많은 인원이 동급 수사의 손에 당해?”

젊은 여인의 분노에 다른 이들은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즉시 도 사자 쪽에 연락하게. 일이 벌어진 장소를 알려주고 이후 갑천목에 관한 일을 맡겨야겠어. 우리는 횡수성을 치는데 집중한다.”

“도 사자도 다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오려고 할까요?”

또 다른 수사가 머뭇거리다 물었다.

“이번 일을 벌인 자가 그들이 잡으려던 자라는 것을 알리게. 그럼 알아서 할 것이야.”

“예? 갑천목을 구해간 자가 도 사자가 찾던 자와 동일인이란 소리십니까!”

모여 있던 이들은 깜짝 놀라며 서로 눈치만 살폈다.

“이 일은 그렇게 처리하는 것으로 끝내지. 지금 중요한 일은 3일 내로 눈앞의 성을 함락하는 것이니까! 이곳만 뚫으면 남은 금갑성(金甲城)은 고립되겠지. 계획대로 움직이게.”

“예!”

각치족 고계 수사들이 일사불란하게 허리를 숙여 명을 받들었다. 곧 그들은 누각을 떠나 자신들이 맡고 있는 대형 전함으로 날아갔다.

콰르릉!

한 시진 후, 모든 전함이 영기의 빛을 내며 엄청난 굉음을 냈다. 무수히 많은 각치족 병사들과 쌍두 독수리, 교룡들이 전함에서 빠져나와 대열을 만들어 인근 하늘을 물샐틈없이 채웠다.

그리고 다양한 색깔의 꼭두각시들이 전함에서 날아올랐다. 대부분은 인간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크기가 작은 것은 평범한 사람만 했고 큰 것은 열댓 장은 족히 되었다.

거기다 단 세 마리뿐인 짐승 꼭두각시는 크기가 백 장이 넘었다.

등딱지에 가시가 솟은 거대 거북 꼭두각시와 호랑이 머리에 원숭이의 몸을 한 꼭두각시, 마지막으로 날개 달린 개미 꼭두각시도 있었다. 개미 꼭두각시는 전신이 백옥 같아서 수정을 이용해 제련한 것 같았다.

각치인들이 공격하려하자 아래의 성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성 안 곳곳의 진법들이 빛을 발하고 굵은 빛기둥들이 진법에서 방출되어 고공의 보호막으로 흘러 들어갔다.

우웅!

보호막이 더욱 강한 빛을 머금었고 한 장 크기의 거대 주술 문자들이 보호막 표면에 떠올랐다. 그리고 성 안의 건물에서 무수히 많은 인영들이 날아올라 빛을 머금은 진법으로 향했다.

“공격 개시!”

거대 선박에 탄 은 씨 여인이 명을 내리자 세 마리 짐승 꼭두각시들이 먼저 공격에 나섰다.

먼저 거대 거북 꼭두각시가 등딱지에 기이한 빛이 흐르며 무수히 많은 가시들을 방출했고, 호랑이 머리 꼭두각시는 금색 빛기둥을 뿜어냈다.

그리고 개미 꼭두각시는 입에서 짙은 녹색 안개를 끊임없이 흘려보냈다.

쿠르릉! 쿠콰콰쾅!

순식간에 폭음과 함성이 섞여 사나운 파도처럼 일대를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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