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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939화 (696/2,000)

939화. 적의 출현

*

갑옷 병사들과 거대 독수리들은 꼭두각시와 금 구슬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장발 이족인은 이번에는 정말로 포위를 뚫고 달아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더 이상 사자 꼭두각시가 불구슬을 뿜지 않았다. 게다가 일곱 개의 머리가 함께 고개를 숙이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말 꼭두각시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주변 병사들은 움찔 놀라다가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리고 병사들은 힘을 합쳐 커다란 그물 몇 개로 사자 꼭두각시를 덮쳤다. 병사들이 힘껏 그물을 끌어당기자 꼭두각시가 강제로 끌려갔다.

사자 꼭두각시의 엄호가 사라지자 머리 위를 배회하던 쌍두 독수리들도 몰려들어 미친 듯이 날갯짓을 해댔다.

쉬쉬쉬쉬익!

바람의 칼날들이 파공음을 내며 금 구슬을 때렸다. 그러자 금빛이 흔들리며 회전하는 속도가 대폭 줄어들었고, 각종 병장기와 검기의 공격에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한립은 탄식했다. 그보다 경지가 높은 꼭두각시들을 부리는 것으로 보아 장발 이족인은 매우 특수한 신분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곧 잡혀가고 말 것이다.

각치족이 어째서 이 자를 생포하려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굳이 모습을 드러내 괜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한립이 막 조용히 자리를 떠나려는데 갑자기 금 구슬 안에서 장발 이족인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선배님! 저는 만고족의 갑천목이라고 합니다. 저를 도아 본 족으로 돌아가게 해주신다면 통령괴뢰를 바치겠습니다.”

장발 이족인은 전음술을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목소리에 영력을 실어 주변에 있는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뭐라고?’

그 말에 한립은 멍해졌다. 이족인이 어떻게 그를 찾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대놓고 떠들어대는 것은 좋은 의도는 아니었다.

역시 그의 예상대로 각치인들은 흠칫 놀라 주변 산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숨어 있는 거목 인근을 보고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한립이 입꼬리를 꿈틀했다.

‘더는 숨어있지 못하겠구나!’

지금 그에게 각치족 병사들이나 쌍두 독수리들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유일하게 그가 신경 쓰는 것은 두 대의 전함이었다. 그렇다 해도 장발 이족인이 자신의 행적을 모두에게 알린 것에는 무척 화가 났다.

한립은 눈빛이 사나워지며 수십 개의 작은 비검들을 줄줄이 불러냈다. 검빛이 반짝이자 비검들은 푸른 실로 변해 허공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쉬쉭!

푸른 실들이 각치족 병사와 쌍두 독수리를 조각내자 한립이 거목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등 뒤로 한 쌍의 날개가 생겨나더니 순식간에 바람을 타고 사라졌다.

꽈쾅!

장발 이족인을 포위하고 있던 각치족 병사들 사이에서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청백색 뇌전이 번득이고 한립이 괴이하게 나타났다. 한립이 수결을 맺자 그의 몸에서 72개의 푸른 실들이 사방에서 튀어 나갔다.

푸른 실들은 흐릿해졌다가 두 줄기 또는 네 줄기로 갈라졌다. 순식간에 푸른빛이 주변 백장을 뒤덮었고, 그곳에 있던 병사들과 쌍두 독수리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연달아 터져 나왔다.

전부 한립의 푸른 실을 막지 못하고 조각나 떨어진 것이다. 이제 그의 주변에는 적이라고는 남아있지 않았다. 이에 인근의 각치족 병사들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한립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가 다시 소매를 펄럭이자 금색과 검은색 빛이 튀어나왔다. 바로 표린수와 제혼이었다.

“전부 죽여라. 단 한 명도 빠짐없이!”

한립은 살기를 담아 외쳤다.

한립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작은 짐승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열댓 마리의 환영으로 갈라져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발톱에 병사들의 갑옷과 병장기는 종잇장처럼 갈라졌다.

그리고 작은 원숭이는 검은빛을 반짝이며 몸집을 몇십 배로 키워 거대 원숭이로 변했다. 원숭이가 두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콧김을 흥하고 분출했다.

그러자 노란 기운이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쌍두 독수리들이 노란빛에 걸려 비틀거리며 추락했다.

퍼퍼퍽!

거대 원숭이는 두 팔을 마구 휘둘러 떨어져 내리는 쌍두 독수리들을 전부 해치웠다. 수백 명의 각치족 병사와 쌍두 독수리들이 한립과 두 영수들의 손에 도륙당하기 시작했다.

이에 남은 병사들은 겁에 질려 달아나기 시작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함을 향해 필사적으로 도주했다. 그러나 한립은 푸른 빛줄기로 변해 그들을 추격했다.

검빛이 반짝인 자리에서 병사들의 시체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쿠르릉!

그런데 갑자기 상공에서 굉음이 울렸다. 한립이 흠칫 놀라 고개를 들자 은색 전함에서 빛기둥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각치족 병사들의 안위를 무시한 채 대규모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한립은 코웃음을 치며 날개를 펄럭여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빛기둥들이 떨어지는 면적은 상당이 광범위했지만 그를 맞추지는 못했다.

다음 순간 은색 전함 위쪽에서 한립의 신형이 나타났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전함을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바로 회색빛이 반짝이는 검은 산이었다.

작은 산은 미친 듯이 불어나 전함보다 더 큰 산봉우리로 변해 사납게 떨어져 내렸다. 원자신산의 기세가 어마어마했다. 전함을 지키던 각치인들은 대경실색해 전함으로 이동하려 했지만 이미 한발 늦은 후였다.

쿠콰쾅!

산봉우리가 전함과 충돌하는 순간, 영기의 빛이 아른거리며 산봉우리가 미세한 탄력에 의해 떠올랐다.

그리고 전함은 맹렬히 흔들리다 표면이 움푹 들어가 바닥에 처박혔다. 전함의 절반이 흙더미 속에 묻혀 단시간 내로는 다시 떠오르기 어려울 듯 보였다.

그것을 본 한립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원자신산의 일격에도 전함이 부서지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몰라도 이렇게 큰 전함을 만들려면 엄청난 양의 재료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는 녹광성에서 보았던 커다란 은색 전함을 떠올리곤 가슴이 서늘해졌다.

‘영족에서 손꼽히는 강대한 종족은 역시 다르구나!’

한립은 잠시 놀라긴 했으나 공격을 멈출 마음은 없었다. 그의 손끝이 검은 산봉우리를 향하자 원자신산이 맑은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다.

경천동지할 굉음이 터져 나오며 은색 전함은 고철처럼 찌그러졌다. 안에 타고 있던 각치족 병사들은 목숨을 잃지 않았더라도 큰 부상을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전함에 은색 빛이 반짝이더니 찌그러진 부분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원상태로 회복하려는 것이다. 이에 한립은 눈썹을 끌어올리며 수십 개의 푸른 실들을 다시 손에 모았다.

쉬쉭!

눈부신 푸른빛이 번득이고 한 장 크기의 거검이 나타나자 전함을 향해 힘껏 휘두르려 했다. 그런데 그때, 장발 이족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조심하십시오!”

그의 목소리에 멈칫하는 순간, 측면에서 강대한 영력이 폭발하는 것이 느껴졌다. 한립은 몸을 돌려 거검을 휘둘러 강대한 영력을 갈랐다.

검기와 영력은 그와 서른 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충돌해 폭발했고 푸른색과 검은색 소용돌이가 하늘로 치솟았다.

멀리서 보아도 그 기세가 대단했다. 폭발의 위력이 조금씩 사라지자 또 다른 은색 전함 위에서 네 명의 이족인이 나타났다.

그 중 창백한 얼굴의 맨발 괴인이 투명한 칼날 위에 서서 이상하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이번 기습은 아마 그의 소행인 듯했다. 그리고 옆에는 노파와, 난쟁이 그리고 가죽옷을 걸친 거한이 서 있었다.

한립이 의식을 방출해 그들의 수행을 살폈는데 맨발 괴인은 연허 중기였고 나머지는 연허 초기였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연허기 수사들의 등장에 일이 성가셔지기는 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그들이 어떻게 갑자기 나타난 것인지 궁금했다.

“감히 우리 각치족 전함을 훼손하다니 담도 크구나. 보아하니 천운13족 인물도 아닌 것 같은데. 허나 상관없다. 잡아가 고문하면 정체가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을 테니!”

맨발 괴인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의 고개가 곧 옆으로 돌아갔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금 구슬에서 벗어난 장발 거한이 연허기 수사들을 보고 난색을 표하고 있었다.

“갑 선생, 듣자니 당신은 정순한 만고족 혈맥은 아니라더군요! 그렇다면 꼭 천운13족에게 힘을 보탤 필요는 없지요. 이곳으로 파견되기 전 장로님들께 선생의 이름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뛰어난 괴뢰술에 대해 찬사를 아끼시지 않더군요.

만일 선생이 우리 각치족으로 귀순한다면 아무 대가 없이 환혈세수(換血洗髓)를 통해 선생을 본 족 혈통으로 바꾸어 준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선생이 상족의 최상급에 이를 수 있게 전폭적인 지원할 것이고요. 운이 따른다면 성족급 존재가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맨발 괴인이 한립에게 이야기할 때보다 한결 온화한 목소리와 태도로 말했다.

“당신들에게 귀순하라니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정순한 만고족 혈통은 아니지만 본 족 장로님들께 큰 은혜를 입으며 살아왔습니다. 절대 다른 종족에 투항하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저를 생포하려는 것도 괴뢰술 뿐만 아니라 천운13족의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 아닙니까!”

“갑 선생, 이 상황에서 달아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아무리 꼭두각시들이 대단해도 지난번에 포위를 뚫고 달아나면서 지니고 있던 영석을 거의 다 소모했을 텐데요. 갑 선생 본인의 수행으로는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못합니다. 저희도 더 이상 무례를 범하고 싶지 않으니 스스로 투항하시지요.”

괴인은 상대의 거절에도 미소를 유지했다. 그 말을 들은 갑천목은 힐끗 한립을 쳐다보았다.

“그자를 믿으시는 겁니까? 하하, 그럼 걸림돌을 처리한 다음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괴인이 갑천목의 행동을 주시하며 담담히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한립을 보았다.

“얌전히 잡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육신을 부순 다음 네 원신만 챙겨 돌아갈 것이니.”

“자신감 있는 모습은 보기 좋습니다만, 어디 네 분의 실력이 그만한지 봅시다.”

그의 말에 괴인이 의아해하다가 자세히 한립의 얼굴을 살피더니 표정이 달라졌다. 그리고 뒤쪽의 노파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딘가 낯이 익은데, 며칠 전 도 사자께서 잡아 달라 요청하신 자가 아닙니까?”

“말씀을 듣고 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용모파기와 똑같군요! 그렇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도 사자님의 수중에서 달아날 정도라면 신통이 보통은 아닐 테니까요.”

노파가 한립의 얼굴을 쳐다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괴인과 노파의 대화에 다른 두 명도 조금 놀란 듯했다.

“흐하하! 그렇다면 아주 큰 공을 세울 기회가 아닙니까. 전함 하나가 격추당해 다른 부대가 전송되지 못한 것이 다행입니다. 안 그랬으면 이 공로를 절반으로 나누어 가질 뻔했어요.”

가죽옷을 입은 거한이 광소했다.

“흥, 려 수사께서는 조심 좀 하세요. 저자의 수행이 우리와 비슷한데 그리 방심하다가는 큰 화를 입을 것입니다.”

난쟁이 수사가 냉소하며 말했다.

“흐흐, 아무리 신통이 뛰어나도 홀로 우리 넷을 어찌 상대하겠습니까?”

“전투가 벌어지면 우리 넷을 전부 꺾을 수는 없겠지만 달아날 수는 있겠지요.”

난쟁이가 입을 비죽이며 투덜거렸다.

‘전송?’

그들의 대화를 듣다 한립은 두 대의 전함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들이 뜬금없이 나타난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전함에 놀랍게도 진송진법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송진은 고정된 전송진과는 달랐다. 아마 전송의 대가가 훨씬 높을 것이다.

그들의 말을 들으니 다른 부대와 함께 전송돼야 했는데 그가 전함을 부수는 바람에 그들만 온 듯했다.

겨우 화신급 수사 한 명이 이렇게 많은 연허급 수사들을 움직이다니 꼭두각시를 부리는 이족인은 정말 중요한 신분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저들이 그를 한눈에 알아본 것이 의외였다. 녹광성에서 마주친 합체기 수사가 아직도 그를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두 개의 옥갑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대두인의 말은 진짜였다. 한립은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그때 표린수와 제혼도 각치족 병사들의 추격을 포기하고 그의 옆으로 돌아와 네 명의 수사들을 흉흉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영수들도 이전에 죽인 병사들과 급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고는 무턱대고 공격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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