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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938화 (695/2,000)
  • 938화. 마주치다

    *

    인근의 성들을 전부 피해 돌아갔기에 한립은 황량하고 외진 곳만을 날아갔다. 처음 며칠간은 아무 일도 없이 평화로웠다. 간혹 약간의 이족 수사들이 바삐 지나가는 정도?

    보아하니 인근의 성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한립은 몰래 고개를 내저을 뿐 그들을 위해 경고해주지는 않았다.

    수행이 낮은 이족 수사들은 각치족이 갑자기 공격을 해오자 인근의 성으로 가 전송진을 이용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거나 성 안의 고계 수사에게 의탁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가 홀로 이동한지 보름쯤 됐을 때 드디어 순찰을 도는 각치족 갑옷 병사들과 마주쳤다. 대략 열댓 명 정도였고 다들 새하얀 쌍두 독수리를 타고 있었다.

    수행이 가장 높은 자가 원영기였고 나머지는 대부분이 결단기였다. 갑옷 병사들을 본 한립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인근에 큰 성이 없는데 각치족 병사들이 여기까지?’

    의아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그들로 인해 위기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들을 쓸어버리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신형을 숨기고 있었기에 각치족 병사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떠나갔다.

    한립은 어두운 얼굴로 사라지는 각치족 병사들을 보고는 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그 후로도 연달아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무리들과 마주쳤다.

    점점 순찰을 도는 각치족 병사들을 만나는 일이 빈번해졌다. 수행이 너무 낮아 그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설마 인근 지역을 전부 점령했단 말인가?’

    * * *

    막 성을 점령한 각치족 세 명의 고계 수사들이 대전에 앉아 무언가를 상의하고 있었다. 붉은 머리의 부인과 마른 노인이 각각 대전의 양쪽 금색 의자에 앉아 있었고, 가운데에는 젊은 여인이 자리했다.

    여인은 용모는 수려했지만 피부가 금속성 광택을 냈고 눈동자는 자금색(紫金色)으로 빛났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두 눈에 극통이 느껴지는 신통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미간 사이로 솟은 작은 뿔은 굉장히 섬세하고 정교했다.

    마른 노인과 붉은 머리 부인은 연허기 최고봉의 존재였음에도 여인 앞에서는 아주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아직까지 행적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말인가?”

    “은 존자님께 아룁니다. 순찰을 도는 병사들에게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기운을 숨기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면 찾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서늘한 여인의 말에 주름 진 노인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숨어 있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본 족이 대군을 이끌고 인근 지역을 점령하고 있다는 것을 알 테니 말이야. 일단 우리가 이 일대를 정복하면 그자가 아무리 수행이 높아도 죽은 목숨일 것이다. 나도 처음부터 이런 대어(大魚)가 걸려들 줄은 몰랐구나. 그자를 생포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아주 큰 공을 세우게 될 것이야!”

    “그자가 천운13족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절대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야겠지요. 이미 대량의 인원을 파견해 주변을 봉쇄했고 따로 두 부대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어디서든 소식이 들려오면 그들이 바로 전송될 것입니다. 물론 전송에는 거리 제한이 따르고 소모되는 대가도 크지만 그자를 잡기 위해서라면 당연한 일이지요.”

    붉은 머리 부인도 공손히 입을 열었다.

    “그래, 조금 마음이 놓이는구나. 아, 며칠 전 천도사자(天圖使者)가 우리에게 협조를 청한 건은 무엇이었지? 누구를 붙들어 달라고 했던가?”

    은 씨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제를 돌렸다.

    “예! 도 대인께서 초상을 보내 순찰을 돌 때 함께 수색해달라 부탁하셨습니다. 상족 7계 존재인데 임무와 연관된 중요한 물건을 지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주름진 노인이 머뭇거리다 사실대로 고했다.

    “흥, 쓸모없는 자들 같으니라고. 성족에 가까운 자들이 겨우 상족 존재를 눈앞에서 놓치다니! 어차피 이곳을 철저히 봉쇄할 것이 아니었다면 그런 요구를 들어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여인의 눈빛에 멸시가 묻어났다. 그녀의 말에 붉은 머리 부인과 주름진 노인은 눈치만 볼 뿐 무어라 대꾸하지 못했다.

    “허나, 나도 궁금하기는 하군. 장로회에서 그들을 파견해 도대체 무엇을 빼앗으려는 것일까? 심지어 보급 전함까지 내주시고 말이야. 그 때문에 원래 계획이 틀어져 인근 지역 점령이 늦어지고 있고.”

    은 씨 여인이 냉소하며 도 노인과 영 씨 중년인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존자님, 보급 전합을 내준 것은 장로회에서 친히 내려온 명령이라 저항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로회에서 이 일을 중시하는 것을 보면 빼앗아오라는 물건이 큰 쓸모가 있는 것이겠지요.

    빠져나간 인원에 대해서는 본 족에서 전우(戰偶)를 추가로 파견해 충당되었습니다. 저희가 인근 지역을 철저히 통제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이제 두 개의 성만 남았고, 그곳도 저희가 철저히 포위하고 있습니다.”

    붉은 머리 부인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전우들은 쓸 만하지만 대규모 전투에서나 쓸 수 있다. 순찰이나 수색과 같은 일은 하지 못하니까. 현재 지역 봉쇄에 인력 대부분을 쓰고 있어서 남은 두 성을 아직도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시일을 지체할 수 없으니 본 족의 대군이 도착하기 전에 어서 진영을 꾸려야해. 어쩔 수 없이 내가 친히 나서야겠구나! 그렇지 않으면 장로들께 면목이 서지 않겠어.”

    “존자께서 나서주신다면 두 성을 점령하는 일은 금방 해결될 것입니다.”

    노인은 순간 멈칫했다가 얼른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결정을 내리겠다. 내일 전함에 승선해 출발한다.”

    “예!”

    “존명!”

    붉은 머리 부인과 주름진 노인은 황급히 허리를 숙여 명을 받들었다.

    * * *

    보름 후, 작은 산 아래 거목 밑에서 한립은 기운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검은 천을 뒤집어쓰고 신중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머지않은 고공에는 똑같이 생긴 은색 섬이 두 개나 떠 있었다. 은색 섬은 녹광성에서 보았던 전함과 비슷했지만 크기가 훨씬 작았다. 그러나 은색 갑옷을 입은 병사들과 대량의 쌍두 독수리들이 인근에 몰려 있었다.

    각치족이 이곳에 진을 친 것은 겨우 이족인 한 명을 포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회백색 머리를 산발한 패기 넘치는 얼굴의 이족인이었다. 그는 베틀 북 형태의 보물을 밟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양쪽에는 짐승 형태의 꼭두각시들이 한 마리씩 떠 있었다.

    말의 몸뚱이에 교룡의 머리를 한 꼭두각시와 머리가 일곱 개 달린 괴이한 사자였다. 두 마리 모두 평범한 꼭두각시는 아니었다.

    각치족 대군이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있는것도 이 때문이었다. 지켜보던 한립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사실 그는 전함과 수많은 각치족들이 나타나자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각치족 병사 중 연허급 이상이 없다는 것과 낯선 이족인을 포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흥미가 생겨 몰래 인근에 숨어들었다.

    이족인의 수행은 겨우 화신급이었지만 그가 대동한 꼭두각시는 연허급으로 하나는 연허 중기, 다른 것은 연허 후기였다.

    두 꼭두각시의 강대함에 한립은 크게 놀랐지만 더욱 의아한 것은 이렇게 강한 꼭두각시를 데리고도 이족인은 각치족 병사들과 쌍두 독수리를 무찌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각치족 측이 수적으로는 우세했지만 화신급이 몇 명 되지 않았다. 유일하게 걸리는 점은 위력을 모르는 두 대의 은색 전함이랄까?

    그런데 그때 포위당한 이족인이 고개를 들어 각치족 병사들과 거대 독수리들을 향해 홀연히 수결을 맺어 두 꼭두각시를 움직였다.

    교룡의 머리를 지닌 괴수가 두 개의 거대한 칼날을 만들어내고는 푸른빛으로 쏘아져 나갔다.

    푸른빛은 곧바로 병사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푸른빛이 닿는 곳마다 독수리와 갑옷 병사들이 둘로 갈라져 떨어졌다.

    그리고 괴상한 사자 꼭두각시는 일곱 개의 입을 벌려 무수히 많은 불구슬을 분출했다. 불구슬들이 하나로 모여 불바다를 이루자 다른 방향에 있는 적들을 덮쳤다.

    병사들이 놀라 우왕좌왕하자 우두머리 수사가 급하게 지시를 내렸다. 그제야 병사들은 병장기를 들고 두 마리의 꼭두각시를 공격했고, 거대 독수리들도 꼭두각시를 향해 쇄도했다.

    드디어 폭음과 괴성이 끊이지 않는 대규모 전투가 시작되었다.

    한립의 예상대로 꼭두각시들이 움직이자 주변의 병사들과 쌍두 독수리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병사들은 산산조각 나거나 불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다.

    꼭두각시들은 쌍두 독수리의 날카로운 발톱과 신통들을 번번이 튕겨냈고, 화신기 수사들이 발동한 보물조차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각치족 병사들은 이미 예상한 일이었는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허리춤을 내리쳐 오색 광채를 불러내 장발 이족인에게 사정없이 투척했다. 오색광채로 만든 그물을 이용해 이족인을 생포하려는 심산인 듯했다.

    그러나 장발 이족인은 그들의 공격에 냉소하며 한 발로 베틀북 모양의 비선(飛船)을 내리쳐 두꺼운 보호막을 펼쳤고 하얀 뇌전을 불러내 커다란 그물을 막았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고 두 개의 방패를 꺼내 병사들에게 날렸다. 방패가 날아들자 병사들은 깜짝 놀랐지만 괴이하게도 방패는 한 바퀴 돌더니 이족인에게 다시 돌아갔다.

    쾅!

    방패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장발 이족인의 몸에 부딪혀 눈부신 금빛을 토해냈다. 금빛이 사라지자 이족인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직경 한 장의 금색 구슬이 떠 있었다.

    철컥.

    금빛 구슬에는 각종 주술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갑자기 괴상한 소리를 내며 날카로운 칼날들이 빼곡하게 솟아올랐다.

    구슬은 그대로 회전해 병사들에게 돌진했다. 이에 병사들은 재빨리 공격을 가했으나 구슬이 너무 빠르게 회전하는 바람에 전부 튕겨나갔고, 구슬에 닿은 병사들은 모두 갈가리 찢겨 흩어졌다.

    병사들을 처치한 금 구슬은 꼭두각시들과 만나 쌍두 독수리가 하강하지 못하도록 막는데 집중했다. 금 구슬과 꼭두각시의 협공은 굉장히 위력적이었다. 주위 병사들과 쌍두 독수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거의 백 마리나 죽어나갔다.

    그때 각치족 대장이 돌연 사납게 소리치자 장발 이족인을 둘러싸고 있던 병사들이 갑자기 도처로 물러났다. 줄곧 머리 위를 맴돌던 쌍두 독수리들도 같은 명을 받았는지 똑같이 흩어졌다.

    그러자 금 구슬과 꼭두각시 주변 백 장이 갑자기 텅 비고 말았다.

    ‘……!’

    구슬 안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장발 이족인이 순간 멈칫했다. 그때 공중의 두 전함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전함 아래에서 수백 개의 수정 기둥이 쏟아져 내렸다. 하얀빛이 빼곡하게 허공을 메우고 폭음이 귀를 쩌렁쩌렁 울렸다.

    엄청난 공격에 금 구슬과 꼭두각시들은 하얀빛에 매몰되었다. 그 틈을 타 병사들과 쌍두 독수리들은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주변을 막아섰다. 두 전함의 공격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잠시 후 빛기둥이 멈췄다.

    하얀빛이 사라지자 다시 모든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이에 전장의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한립도 상황을 주시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포위망 정 가운데에 거대한 우산이 펼쳐져 있었다. 직경이 열댓 장은 되는 거대한 우산은 영기의 빛으로 반짝였고, 우산 아래에는 장발 이족인의 상반신이 솟아 있었다.

    그가 다급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는 것을 제외하면 꼭두각시들과 금 구슬은 멀쩡했다. 그는 더 이상 시간을 끌 생각이 없는지 낮은 기합 소리를 내며 한 손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우산이 급격히 줄어들며 장발 이족인은 다시 구슬 속으로 들어가 버렸고, 말 꼭두각시와 사자 꼭두각시는 신형을 날려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이로써 대규모 전투가 재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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