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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935화 (692/2,000)

935화. 불과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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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자신과 수행이 같거나 더 높은 존재라면 강력한 의식으로 들킬 수는 있지만 수행이 더 낮은 자에게 들킬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한립이 계책에 말려들지 않으면 이대로 쫓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그의 이동 속도가 한립보다 조금이나마 더 빨랐으니 말이다. 자꾸 가까워지는 보라색 그림자에 한립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립과 노인은 단숨에 만 리를 벗어났고, 전방에 나란히 선 두 개의 산봉우리가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녹음이 푸르고 산세가 아주 험해 보였다. 한립은 그곳을 보고 마음이 동해 남색빛이 일렁이는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보라색 그림자가 불과 백여 장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여전히 은밀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한립은 한숨을 쉬며 갑자기 방향을 틀어 숲 속으로 향했다. 푸른 실이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하강한 것이다.

그는 둔광을 거두고 모습을 드러내 수십 개의 비검을 방출했다. 수결을 맺어 무수히 많은 푸른 실들이 아래쪽의 빼곡한 나무들을 잘라냈고, 순식간에 수백 장 너비의 공터가 만들어졌다.

그 후 한립은 나무 그루터기에 서서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푸른 실들이 분분히 허공에 녹아들어 모습을 감추었다.

한립은 다시 수결을 맺어 전신에 무수히 많은 금은색 뇌전들을 장포로 응결해 몸에 걸쳤다. 대비를 마친 그는 뒷짐을 쥐고 조용히 허공을 응시했다.

그때 한립이 서 있는 나무 그루터기 아래에 도착한 도 씨 노인은 사납게 눈을 번뜩였다. 지척에 이르렀으니 서둘러 공격할 필요는 없었지만 경지가 3단계나 차이 나는 상대에게 오랜 시간을 빼앗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가 확실히 혼자 있는 것을 확인한 노인은 흙 속에서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푸확! 쾅!

엄청난 굉음이 울리며 한립이 서 있던 나무 그루터기가 폭발해 붉은 거대 손 한 쌍이 그의 발목을 잡으려 했다. 거대 손은 한립이 펼쳐 놓은 보호막에도 개의치 않고 엄청난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미리 공격을 예상한 한립은 신형이 흐릿해지며 열댓 장 밖에서 나타났다. 그가 이동하자 아래에서 붉은빛이 반짝이고 도 씨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이 사나운 눈빛으로 두 팔을 들어 올리자 새빨간 주먹 그림자가 튀어나와 엄청난 고온의 열기와 함께 한립에게 들이닥쳤다. 각치족의 고계 수사인 도 씨 노인도 법체쌍수를 하는 수사였던 것이다.

‘법체쌍수!’

한립의 눈빛에 놀란 기색이 스쳤으나 그의 새까만 손은 조용히 움직였다. 검은 그림자가 데루루루 굴러 나와 작은 산봉우리로 변해 소리 없이 떨어졌다.

위로 솟구치던 붉은 주먹 그림자 바로 위였다. 그러나 도 씨 노인은 입 꼬리를 꿈틀하며 비웃었다. 그는 붉은 주먹 그림자의 위력을 잘 알았다. 상대는 죽는 순간에야 붉은 주먹의 위력을 알겠지만!

이에 노인은 맹렬히 법결을 날렸고 주먹 그림자가 배로 불어나 머리통 만하게 커졌다. 주위의 새빨간 기운이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 주변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는 주먹 그림자로 원자신산을 쪼개버릴 심산이었다.

한립은 그것을 보고 묘한 얼굴을 했다. 바로 그 순간, 주먹 그림자와 검은 산봉우리가 부딪혔다. 그러나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주먹 그림자와 작은 산은 바르르 몸을 떨었고 잠시 동안 허공에서 멈추었다. 그러나 곧 붉은빛과 회색빛이 미친 듯이 교전하다 엄청난 빛의 고리를 뿜어내며 도처로 퍼져나갔다.

쿠콰콰쾅!

한립은 엄청난 굉음에 귀가 먹먹해졌다. 그 여파로 인근의 나무들과 나무 그루터기들이 가루로 변해 사라졌고 수십 장의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다.

한립은 너무 놀라 명청령안을 발동해 상황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원자신산은 여전히 허공에서 자리를 지켰고, 붉은 거대 주먹 그림자가 와해돼 이런 현상을 일으킨 것이었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의 손바닥들이 작은 산을 받쳐 들고 있었다. 손바닥의 주인은 바로 도 씨 노인이었다.

그는 어깨가 미세하게 뒤틀리고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지만 그래도 두 손으로 압도적인 무게의 원자신산을 버텨내고 있었다.

한립은 신형이 흐릿해져 작은 산봉우리 위로 이동했다. 그의 발끝이 검은 산봉우리를 지그시 누르자 회백색 빛이 표면을 타고 흐르며 작은 산은 더욱 거대해졌다.

이에 간신히 버티던 도 노인의 얼굴이 꿈틀거렸고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바닥이 꺼져 노인은 종아리까지 묻히고 말았다. 노인은 어쩔 수 없이 영력의 일부를 지면에 흘려보내야 했다.

그것을 본 한립은 다시 한 발을 들어 또 한 번 산봉우리를 눌렀다. 원자신산은 그의 괴력이 실린 발짓에 엄청난 힘으로 떨어져 내렸다. 검은 봉우리가 그대로 땅으로 떨어지자 도 노인은 완전히 그 아래에 묻히고 말았다.

한립은 기뻤지만 이렇게 간단히 합체기 수사를 처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즉시 수결을 맺어 하얀 손바닥을 아래로 향했다.

검은 산봉우리에 회색빛이 반짝이고 크기가 늘어나더니 동시에 오색화염이 새하얀 손끝을 타고 산 아래쪽으로 쇄도했다. 오색화염이 닿는 곳마다 오색 얼음 층이 새겨나 주변 수십 장을 얼려 버렸다.

한립은 멈추지 않고 푸른 빛줄기로 변해 어딘가로 날아가 종적을 감추었다.

우웅웅! 웅웅!

곧 검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낮은 울림이 들려왔고 푸른 비검들이 나타나 푸른 연꽃으로 변했다. 연꽃들은 빙글빙글 돌아 잔영을 남기며 점차 실체화 되었다.

연꽃이 내뿜는 빛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놀랍게도 거대한 빛의 장막을 만들었다. 한립은 그 틈을 타 춘려검진을 발동한 것이다.

바로 그때 산봉우리 밑에서 노호성이 들려오고 주술 소리가 터져 나왔다. 새빨간 안개가 밀려들며 불어나더니 주변이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주변 온도도 매우 높아져 평범한 사람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바싹 타버릴 것 정도였다. 잠시 후 주술 소리가 그치고 붉은 기운들이 오색 얼음 속으로 스며들었다.

콰르릉!

지하 땅 속에서 굉음이 연달아 들려오더니 새빨간 빛기둥들이 얼음을 뚫고 나왔다. 얼음은 새빨간 빛기둥에 빠르게 녹아내렸고 대지는 붉은 용암이 흐르는 것처럼 변했다.

검은 산이 대지 속에서 천천히 가라앉아 눈 깜짝할 사이에 거의 절반이 빠져들었다.

“그저 힘만으로 수사를 억누를 수 있을 거라 여기지는 않습니다.”

한립의 목소리가 사방팔방에서 울렸다. 이어 용암 속의 검은 산봉우리가 급속도로 작아져 검은 빛으로 변해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용암 속에서 도 노인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부의 거처에 둘 보물이 하나 필요했는데 이게 쓸 만하군! 그냥 내가 써야겠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용암이 파도처럼 일어나 열댓 장을 치솟아 새빨간 거대 손으로 변해 검은 산을 잡아챘다. 거대 손이 검은 산을 다시 용암으로 끌어당기려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립이 작은 산의 위력을 대부분 거둬들였다고 해도 원자신산이 겨우 거대 손에 휘둘릴 수는 없었다. 검은 산은 빛을 반짝이며 거대 손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끌려가지는 않아도 주변의 푸른빛의 장막으로 향하지도 못했다. 이에 한립이 서늘히 코웃음을 치자 거대 손 주변에 공간 파동이 일며 푸른 실들이 괴이하게 나타나 거대 손을 재빨리 휘감아 조각조각 내버렸다.

우웅.

그 틈을 타 검은 산은 몸을 떨며 다시 달아났고 검은빛을 몇 번 번뜩이다 푸른빛의 장막 너머로 자취를 감추었다.

“감히 노부를 파묻으려 할 만큼 실력은 있는 자구나!”

노인은 그다지 분노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목소리가 냉랭했다. 용암 지대가 양쪽으로 갈라지고 새빨간 빛으로 반짝이는 도 노인이 천천히 땅 위로 올라왔다. 그는 음산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검진!”

그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도처의 푸른 연꽃들이 빛을 머금고 갑자기 무수히 많은 꽃잎을 날려 왔다. 꽃잎들은 푸른 바람의 검으로 변해 노인의 시야를 가렸다.

이에 노인은 얼굴을 굳히며 붉은 기운을 북돋아 새빨간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피피피픽!

바람이 칼날이 불나방처럼 붉은빛 속으로 뛰어들어 눈부신 불덩이로 변해 사라졌다. 도 씨 노인의 불 속성 공법은 아주 뛰어났다. 심지어 환영 공격조차 쉽게 불살라 버렸다.

그러나 노인은 이미 검진에 갇혔고 한립의 공격이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람이 칼날이 사라진 순간 고공에서 푸른빛이 크게 번지고 푸른 거목들이 나타나 떨어졌다.

자세히 보면 거목들은 푸른색 속에 검은빛이 섞여 있어 굉장히 무거워보였다. 그러나 노인은 조소하며 위쪽으로 붉은 기운을 날려 보냈다. 푸른 거목들은 열댓 장 밑에서 붉은빛을 만나 푸른 연기로 소실되었다.

“쓸데없는 짓 말거라! 검진이 다른 속성이었다면 몰라도 정순한 나무 속성이라면 노부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노인이 사납게 소리치며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그를 둘러싼 붉은빛들이 부르르 진동하며 빛기둥으로 변해 사방팔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빛기둥들은 주변의 푸른빛 장막을 사정없이 공격했고, 뜨거운 기운이 빛의 장막을 가득 채웠다. 노인이 득의양양한 얼굴을 했다. 자신의 불 속성 공법이면 나무 속성 금제를 뚫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검진만 파훼하면 금방 그를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콰르릉!

노인의 예상대로 푸른빛의 장막은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푸른 연꽃들도 당장이라도 와해되어 사라질 듯했다. 그런데 그때 노인의 주변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푸른빛의 장막이 사라지고 그는 수십 장 높이의 거목으로 빼곡하게 둘러싸인 아주 낯선 공간에 떨어진 것이다.

“환술!”

경험이 많은 노인도 이번에는 화들짝 놀랐다. 환술이 진법과 금제에 쓰이는 경우는 허다했지만 단순히 위력만을 추구하는 검진에 쓰이는 경우는 무척 드물었다.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노인은 바로 평정을 되찾았고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새빨간 불기둥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가 부적을 뱉어내자 부적은 즉시 사라져 하얀 돌풍으로 변해 불기둥 안으로 흡수되었다.

순간 바람과 불의 힘이 융합되어 불기둥이 열댓 장 크기로 불어났고 그 기세도 대단했다.

노인이 불기둥 중심에서 가부좌를 하고 붉은 기운을 번뜩이자 놀랍게도 전신이 붉은 비늘로 뒤덮은 거대한 허상이 떠올랐다.

허상이 나타나는 순간 주변의 천지원기들이 요동치며 콩알 크기의 오색빛의 점들이 주변의 나무, 풀 등에서 떠올라 검진이 있는 곳으로 밀려들었다.

무수히 많은 빛의 점들이 빼곡하게 허공을 뒤덮었지만 검진에 다가간 순간 푸른 검빛에 의해 가로막혔다.

퍼퍼펑!

검빛에 터져나간 빛의 점들은 오색 안개를 만들어냈다. 그 양이 얼마나 많은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했다.

그런데 잠시 후 안개가 끈적이며 액체처럼 변해 달라붙었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푸른 검에 붙어 속도가 느려졌다.

그와 동시에 도 씨 노인이 만들어낸 거대한 불기둥이 검진의 환술 속을 마구 헤집었다.

환술로 만들어낸 거목들은 불기둥이 몰아치자 재로 변해 흩날렸다.

아무리 환술로 만들어낸 환영에 불과하지만 정순한 나무 속성 영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니 진짜든 가짜든 강력한 불의 기운 앞에서는 불타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에 주변 풍경이 모호해지더니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검진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한립은 그것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합체급 수사는 역시 뛰어난지 검진 밖에서 다량의 천지원기를 끌어들여 검진의 위력을 강제로 낮추고 있었다. 전부 상대와 그의 수행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만일 동급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소환한 천지원기를 흩어버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연허기 이상과 싸울 때는 천지원기를 동원해 상대를 직접 공격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전투 중에 천지원기를 불러 모으는 것은 대부분 강력한 신통을 쓰기 위해 부족한 법력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또한 보통은 어쩔 수 없이 천지원기를 끌어다 써도 주변 백 리 혹은 천 리 정도 범위가 고작이었다.

술법을 펼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혹은 안정적으로 조종하기 위해 수십 리의 천지원기만 불러 모으는 경우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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