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932화 (689/2,000)

932화. 강적

*

“말도 안 돼!”

빛덩이를 보자 허상들은 몸을 떨며 분노에 찬 고함을 외쳤다. 붉은 빛덩이는 그가 허공을 향해 쏘아올린 홍월영력(紅月靈力)이었다. 상대는 한립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세 개의 허상을 동시에 움직여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것을 본 한립은 피식 미소 지었다.

파앗.

그가 한 손을 뒤집자 하얀빛이 반짝이고 붉은 부적들이 붙은 옥갑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서늘한 빛이 번뜩이며 푸른 비검들이 튕겨나가 옥갑으로 쇄도했다.

“미쳤습니까!”

천천히 물러나던 화월인이 그것을 보고 깜작 놀라 소리쳤다. 그리고 두 개의 허상이 붉은빛 속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뛰어올랐다.

그중 하나는 붉은 거대 손이 되어 옥갑을 노렸고, 다른 하나는 교활한 미소를 머금고 방향을 틀어 붉은 빛줄기로 변해 한립을 향해 달려들었다.

세 번째 허상은 시종일관 멀리서 꼼짝하지 않았다. 한립의 태연한 행동에 화월인은 그를 상당히 경계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개의 화신을 보내 공격하는 대신 본체는 안전한 곳에 남겨 둔 것이다.

두 허상의 속도는 한립의 예상을 훨씬 초월했고 막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공중의 거대 손이 옥갑을 잡아챈 순간, 또 다른 허상이 한립을 뚫고 지나갔다. 붉은빛이 가시고 한립의 몇 장 뒤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허상이 고개를 돌렸다.

화륵!

한립은 화염 속에서 붉은 불구슬로 변해 맹렬히 타올랐다. 별안간 한립의 몸이 화염 속에서 무(無)로 돌아간 것이다. 붉은빛 속 화월인은 옥갑을 손에 넣고 한립마저 간단히 죽이자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 순간 붉은 거대 손이 쥔 옥갑에 푸른빛이 흐르고 괴이하게도 푸른 구슬로 변했다. 거대 손이 반응하기도 전에 구슬이 먼저 폭발해 버렸다. 천둥소리가 크게 울리고 무수히 많은 뇌전들이 튀어나와 거대 손을 구멍투성이로 만들어 버렸고 결국 빛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아!”

그 광경을 지켜본 화월인은 순간 안색이 하얗게 변하며 입에서 녹색 피를 뿜어냈다.

“어떤 현묘한 화신술(化身術)을 쓰나 했더니 겨우 분혼술(分魂術)이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두 화신은 제가 사양하지 않고 처리해 드리지요.”

갑자기 허공에서 한립의 목소리가 울리고 두 번째 허상을 금빛 칼날이 사정없이 갈랐다. 너무 빨라 번개 같았다. 비명을 내지른 허상의 몸이 반쪽으로 갈라졌다.

양쪽으로 갈라진 시체는 바닥에 닿자마자 영기의 빛으로 흩어졌다 그제야 금빛이 번뜩이고 금색 갑옷을 입은 갑옷 병사가 흙 속에서 튀어나왔다.

또 다른 분신마저 죽임을 당하자, 붉은빛 속 화월인의 안색은 더욱 하얗게 질렸고 두 뺨에 기이한 붉은 기운이 돌았다. 원기가 크게 상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화월인은 두 번째 화신이 죽는 순간 즉시 입을 벌려 푸른색 작은 종을 분출해 종을 울렸다.

댕!

귀를 쩌렁쩌렁 울리는 무형의 음파가 청동 종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붉은빛 속 화월인은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상대가 각치인들을 불러들이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한립과 겨룰 마음이 없었기에 붉은 빛줄기로 변해 고공으로 솟구쳤다. 그러나 허공에서 서늘한 코웃음 소리가 들리고 푸른빛이 반짝이며 연꽃이 나타났다.

푸른 연꽃은 곧 둘로, 다시 넷으로 또 여덟로 쉼 없이 불어나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을 완전히 뒤덮었다. 이에 화월은 화들짝 놀라 두 팔을 펼쳐 은색 단도와 영패를 동시에 발동했다.

단도는 그의 손을 떠나자마자 거대한 칼날로 변해 허공을 갈랐고 금색 영패는 금빛 교룡을 토해냈다.

쿠르릉! 쾅!

굉음이 울리며 은빛과 금빛이 동시에 푸른 연꽃을 공격했고, 푸른 연꽃은 반으로 완전히 갈라져 버렸다.

“……!”

이에 기뻐하던 화월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푸른 연꽃이 갈라지고 푸른빛이 번쩍이더니 또 다른 거대 연꽃이 나타나 앞을 막은 것이다.

화월인은 안색이 달라지며 두 개의 보물로 맹공을 가한 다음 속으로 주술을 외웠다. 무언가 강력한 신통을 쓰려는 듯했다.

그때 한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검진 속에 들어왔으면서 어딜 가려고 하십니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연꽃들이 흩어지고 푸른빛이 주위를 뒤덮었다. 은색 거대 칼날과 금색 교룡의 허상은 그 안으로 잠겨 종적을 감추었다. 푸른빛에는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았다.

화월인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신형을 멈추었다. 바로 그때 푸른빛이 더욱 기세를 높여 거대한 파도처럼 그를 덮치려 들었다.

화월인은 깜짝 놀라 미리 준비하고 있던 법결을 방출했다. 그의 몸에 흐르던  붉은빛은 날카로운 칼날로 변해 주위를 선회했다.

휘휘휙!

날카로운 칼날이 만들어낸 붉은 돌풍이 그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제야 화월인은 조금 안심했다.

푸른빛의 장막이 덮치자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화월인의 주변이 모호해지더니 푸른 초원 위에 서있었다. 막 피어난 푸른 새싹과 이름 모를 각양각색의 야생화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새의 지저귐이 생생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맑아지고 온몸이 나른해지는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환술!”

화월인은 잠시 미혹되나 싶더니 바로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그는 서둘러 고공을 쳐다보았다.

쪽빛 하늘에는 하얀 구름들이 떠있었고, 발밑의 풀밭은 푹신했다. 초목들의 기운이 느껴지는 이곳은 누가 보아도 푸른 초원이었다.

“깨져라!”

화월인은 자신의 혀끝을 깨물며 일갈했다. 그의 주위를 맴돌던 붉은빛의 칼날들이 우뚝 멈추고 화살처럼 사방팔방으로 쏘아져 나갔고, 하얀 흔적이 허공 곳곳에 나타났다.

붉은 칼날이 너무 날카로워 허공을 가르기라도 한 것 같았다. 핏빛 칼날이 미친 듯이 주위를 가르자 풍경이 모호해지고 푸른 초원과 쪽빛 하늘이 왜곡되며 허물어져갔다.

그것을 본 화월인은 매우 기뻐했다. 남달라 보이던 환술을 이렇게 쉽게 깰 수 있다는 것이 의외였다.

그러나 미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왜곡되었던 주위 풍경에서 눈을 찌를 듯한 초록빛이 방출되었다. 화월인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뜨고 몸에서 붉은빛을 돋워 다시 무수히 많은 칼날로 돌풍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곧 난색을 표했다. 주위 풍경이 달라져 수십 장 크기의 거목들이 빼곡하게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목들은 잎이 무성해서 하늘을 다 가릴 정도였다.

그는 밀림 지대에 서있었다. 그는 환술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환술에 걸려든 것이다.

이에 화월은 놀랍기도 했지만 열을 받기도 했다. 그 순간 발밑이 요동치고 주위의 거목들이 전부 그를 향해 다가왔다. 무수히 많은 거목의 그림자들이 그의 머리를 뭉개려 떨어져 내렸다.

놀란 화월인은 곧바로 날카로운 칼날로 그것들을 잘라냈고, 거목들은 그에게 닿기 전에 마구 잘려나갔다. 화월인은 그제야 안심하며 빛의 칼날들을 날려 다시 환술을 깨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퍼펑!

허공의 검은 그림자가 너무 단단해 붉은빛의 칼날이 사라진 것이다. 그 검은 그림자는 더욱 몸집을 키워 엄청난 기세로 떨어져 내렸다. 이제 보니 그것은 거목이 아니라 백여 장 높이의 검은 산봉우리였다.

“헛!”

화월인은 기겁해 입에서 붉은 안개를 뿜어냈다.

붉은 안개는 작은 산봉우리와 부딪쳤고 주술 문자가 빼곡하게 떠다니는 붉은색 나무판자 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판자 보물의 위력도 상당했지만 원자신산의 기이한 중량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검은 산이 즉시 나무판자를 압도해 붉은빛을 흩어버리고 화월인의 머리로 떨어져 내렸다.

“이런!”

화월인이 검은 산에 깔리자 주위의 풍경이 왜곡되며 허물어지고 원래 있던 작은 산골짜기로 돌아왔다. 그의 발밑은 허공이었고 검은 산에 밀려 그대로 추락했다.

콰릉!

다음 순간 땅에서 경천동지할 굉음이 터져 나왔다. 검은 산이 바닥을 몇 장이나 파고 들어가 거대한 구덩이를 만든 것이다.

화월인은 그 안에서 으깨져 죽어버렸다. 그는 비록 한립과 마찬가지로 연허급 존재였지만 그의 육체는 매우 약했다. 물론 그의 신통이 겨우 이 정도 일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처음에 화신술을 사용했다가 한립의 뇌문 구슬과 감원부가 변한 그림자 꼭두각시에 참살당하는 바람에 원기를 크게 상했고, 그의 춘려검진의 환술에 걸려들어 원자신산에 기습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때 검은 산봉우리에 깔린 화월인의 시체에서 붉은빛이 반짝이며 달걀 크기의 구슬이 흙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자 검은 산봉우리 아래에서 회색 기운이 흘러나와 흙속으로 들어간 구슬을 쫓아 휘감았다.

결국 회색빛이 빛나며 구슬이 땅 위로 끌려 나왔다. 한립은 회색빛에 둘러싸인 구슬을 빠르게 그의 손바닥 위로 잡아당겼다. 자세히 살펴보니 투명한 구슬 안에 한촌 크기의 작은 사람이 숨어 있었다.

화월인과 모습은 똑같았지만 머리에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뿔이 솟아있었다.

“각치족과 연관이 있기는 했군요. 이제는 정말 당신이 각치인인지 화월인지 궁금해지는군요.”

한립이 구슬을 들어 올리고 냉소했다. 그러나 구슬 속의 작은 사람은 눈을 감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제 옥갑을 노렸을 때는 그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정보를 제공하면…….”

“내 원신이라도 살려 보내 주겠다는 소리입니까?”

“아니요. 추혼술을 당하는 고통을 줄여드리지요!”

“그렇다면 됐습니다. 내게 추혼술을 쓸 생각이라면 그쪽도 시간 낭비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내 의식은 성족급 존재가 금제를 걸어놓아 성족 상 3계 수사가 추혼술을 펼쳐도 알아낼 수 없고, 원신만 터져나갈 것입니다.”

한립은 그 말을 듣자마자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꽈광!

천둥소리가 울리고 금색 뇌전이 튀어나와 구슬을 깨자 그 안에 있던 작은 사람은 소멸되었다. 상대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이곳에서 오래 머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상대의 의식에 표식이라도 남아 있을까봐 원신을 살려둘 수도 없었다.

화월인의 원신이 사라진 순간, 녹광성 상공에 위치한 은색 대전 안에서 누군가 놀라 숨을 들이켰다.

“도 형,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제가 홍멸에게 남겨 놓은 의식 금제가 조금 전 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목숨을 잃은 것 같군요.”

은색 장포를 입은 노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의 머리 위에는 새빨간 짧은 뿔이 솟아나 있었다. 노인이 허공을 쥐어 푸른 나무패를 살피자 나무패의 중심에 새빨간 구슬이 산산조각 나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정체를 들켜 협공당한 것입니까?”

은색 장포를 입은 중년인이 의아해했다.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요. 홍멸의 수행이 약하지 않고 지난번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녹광성에 성족 3계의 존재는 없다고 했으니까요. 여러 동급 수사에게 협공당하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면 우리가 오기 전 갑자기 성족급 존재가 성 안으로 잠입했을 수도 있지요. 솔직히 아무리 감시해도 성족 급 존재의 행적을 파악하기는 불가능한 일 아닙니까.”

노인이 짧은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렇다면 만일을 대비해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번에 빼앗으려던 보물이 대체 무엇입니까? 우리 같이 성족의 수준에 한 발을 걸친 이들을 다 보내고 말입니다.”

중년인이 탄식하며 말했다.

“한쪽 발을 걸치고 있다고 우리가 정말 성족인 것은 아니지요. 우리의 수행이 성족 1계에 맞먹지만 전부 장로 열댓 분이 돌아가며 비술을 이용해 도움을 주신 덕분입니다. 겨우 법력상의 경지는 넘어섰지만 의식이나 공법 수준은 그에 미치지 못하지요.

수천 년 정도 수련에 매진하지 않으면 진정한 성족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인원이 모자라 장로들도 어쩔 수 없이 우리를 보낸 것이고요.”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렇습니다. 그래도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성족 1, 2계 정도는 상대할 수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녹광성에 정말 성족급 존재가 있을 가능성도 희박하고요.”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