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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930화 (687/2,000)
  • 930화. 추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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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허상이 길게 숨을 들이마시며 맑은 울음소리를 내자 겁에 질려 날뛰던 광장 수사들의 마음이 가라앉았다. 광장에 모여 있던 수만 명의 수사들은 즉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모두 당황하지 말고 들으세요! 방어 진법은 바로 부서지지 않고 잠시 동안은 본 성을 지켜줄 것입니다. 이제 모든 수사들은 성에 있는 네 개의 문으로 결집하도록 하십시오.

    일각 후 모든 성문의 금제를 개방할 것이니 그때 전력을 다해 도망치면 됩니다. 모두를 위해 미리 당부하자면 각치족은 돌연 전쟁을 선포하고 천운13족을 철저히 멸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 투항해 목숨을 부지할 생각은 접어야 합니다. 들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붙들린 자는 각치족의 빙화흑옥(氷火黑獄) 등으로 끌려가 노예 생활을 하거나 혼백을 뽑혀 연단이나 법기 제련에 쓰인다고 합니다.”

    대두 거한의 연설이 섬뜩하게 마무리되었다. 광장의 수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고함을 지르며 뿔뿔이 흩어졌다. 금공 금제가 걸린 광장을 떠난 수사들은 바로 둔술을 펼쳐 성의 네 문을 향해 날아갔다.

    이에 대두 거한은 다시 수결을 맺었고 거대한 허상이 사라졌다. 그는 나머지 세 수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를 따라오십시오. 우리 같은 존재가 저들과 섞이면 오히려 화가 되는 법입니다.”

    그 말에 다른 이들은 분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곧 빛줄기로 변해 광장을 빠져나갔다.

    그때 성 위의 남색 보호막이 완전히 빛구슬로 범벅이 되었다. 방어 진법이 낮게 울어대며 한계에 이르렀다는 표시를 하자 대두 이족인이 뒤를 돌아보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성을 떠나기 아쉬워 그러십니까, 원 형!”

    “제가 녹광성에 머문 세월이 천 년입니다. 이곳의 모든 금제도 전부 제 손을 거친 것들이고요. 그게 모두 망가진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군요.”

    붉은빛 속 이족인의 말에 대두 이족인이 안타까운 속내를 토로했다.

    “너무 상심하실 것 없습니다. 각치족 세력이 크다지만 우리 천운13족도 연합하면 만만치 않습니다. 언젠가 이 섬도 되찾을 날이 오겠지요.”

    “그런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원 형, 각치족 대군이 어째서 이렇게 빨리 들이닥친 것일까요? 며칠 전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아직 이틀거리에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갑작스레 각치족의 전함이 성을 공격하다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녹색 피부 이족인이 질문을 던졌다.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 각치족 선봉은 어떤 등급의 전함도 지니고 있지 않았는데요. 녹광성에 각치족의 역(域)급이나 성(城)급에 다음가는 보(堡)급 전함이 타나난 것을 보면 그 안에 성족 3계의 존재가 타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병력이 아니라는 말이죠.”

    원 씨 대두인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성족이 없다 하더라도 저렇게 큰 전함에는 우리와 동급인 수사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저 적들이 다른 이들을 쫓느라 우리의 행로를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립은 흠칫 놀라 원 씨 대두인을 힐끔 보았다.

    그가 광장에 모인 수사들에게 달아나라고 당부한 것은 그들이 미끼가 되어 각치족의 주목을 끌기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조용히 이곳을 떠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한립은 가슴이 서늘해졌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의 목숨도 걸린 일이었기에 상대의 부도덕성에 대해 따질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한립은 이번 일로 세 이족인들에 대한 경계심을 더욱 높였다.

    그들은 순식간에 날아가 평범해 보이는 한 누각 앞에 도착했다. 누각의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휘잉~ 쿠앙!

    원 씨 대두인이 바람을 날려 보내자 굳게 닫혀 있던 누각의 대문이 힘없이 터져나갔다. 한립을 포함한 수사들은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누각 1층에는 탁자 몇 개와 의자를 제외하면 텅 비어 있었고, 벽에는 거대한 조각상이 있었다. 조각상은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앉아 있었는데 배가 평평하고 네 개의 눈과 네 개의 팔을 지녀 무척 기이해 보였다.

    수사들은 방안을 둘러보다 통로가 눈에 띄지 않자 모두 대두 이족인을 바라보았다. 대두 이족인은 그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각상 앞으로 걸음을 옮기더니 입을 벌려 노란 수정을 분출했다.

    끼익!

    조각상은 노란 수정을 흡수하더니 갑자기 영기의 빛을 반짝이고 네 개의 팔을 휘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네 개의 눈에는 노란빛이 번뜩였다. 이 기이한 조각상은 놀랍게도 꼭두각시였던 것이다.

    이에 수사들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지금부터였다. 대두 이족인이 두 손으로 수결을 맺자 꼭두각시가 두 배로 커지더니 네 개의 팔로 자신의 배를 두드렸다.

    끼이익.

    영기의 빛이 반짝이고 꼭두각시에 반달 모양의 문이 생겼다. 문은 녹슨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렸다. 그 안에는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바닥에 소형 전송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문이 열리자 대두 이족인은 주저하지 않고 꼭두각시 뱃속으로 들어가 전송진 위에 섰다.

    “이 진법은 비밀 통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럼 저 먼저 갑니다.”

    원 씨 이족인이 손에서 법결을 뿜어 전송진을 때렸다.

    우웅!

    하얀빛이 감돌고 이족인의 모습이 모호해지더니 곧 사라졌다.

    “원 형의 머리가 참 비상합니다. 전송진을 꼭두각시 체내에 감춰둘 생각을 하다니요.”

    녹색 피부 이족인이 성큼성큼 걸어가 한 손으로 법결을 날려 전송되었다.

    “한 형, 먼저 가시죠.”

    붉은빛 속 이족인이 한립을 훑고 양보했다. 한립은 의외라고 여겼으나 티내지 않고 슬쩍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나섰다.

    전송진을 통한 이동은 무척 빨랐다. 심지어 어지러움도 느끼지 않고 순식간에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 도착했다. 다행히 천장에 박혀 있는 수정돌 하나가 빛을 발해 주위를 비춰주었다.

    대두 이족인과 녹색 피부 이족인은 옆으로 난 통로 옆에 서 있었다. 대두인은 심각한 얼굴로 진법 원반을 들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한립이 전송진으로 걸어 나오고 곧 붉은빛 속 이족인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주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서 이곳을 떠나야합니다. 녹광성의 방어 진법이 더는 버티지 못할 듯합니다.”

    녹색 피부 이족인이 조급히 말했다.

    “예, 그러시죠. 안 그래도 시간이 거의 되었습니다. 이제 성문의 금제를 풀어 다른 이들을 달아나게 하지요.”

    대두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진법 원반을 허공에 던져 두 손으로 빠르게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다양한 색의 법결들이 차례로 원반 속으로 흡수되었다.

    펑!

    잠시 후 진법 원반이 진동하며 기이한 빛을 머금고 폭발했다. 그것을 본 나머지 세 사람은 움찔했다. 겨우 성문의 금제를 푸는데 진법 법기가 스스로 폭발할 리가 없었다.

    “녹광성 아래 자폭 진법을 발동했습니다. 한 시진 후면 성 전체가 재가 되어 사라질 것입니다.”

    대두인이 세 수사들의 의혹을 읽고 먼저 설명했다.

    “자폭진법!”

    듣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했다.

    ‘손속이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구나. 대부분이 달아나기는 하겠지만 분명 성 안에 많은 범인들과 숨어있는 수도자들이 있을 터인데.’

    다른 두 이족인도 그 말을 듣고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나 대두인은 신경 쓰지 않고 먼저 노란 둔광을 일으켜 통로를 향해 날아갔다. 이에 나머지 일행도 둔술을 펼쳐 그를 따라갔다.

    그때 녹광성 성문 보호막에 직경 백여 장의 구멍이 뚫렸다. 미리 결집해 있던 이족인들은 바로 날아올라 유성우처럼 구멍을 통해 빠져나갔다.

    그중 일부는 진흙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고 또 다른 이들은 풀이 자란 목초지를 구르다 사라졌다. 토둔술과 목둔술(木遁術)에 능한 이족인들이었다.

    그밖에 대다수의 이족인들은 법기를 타거나 빠르게 날아갔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3명 내지 5명 정도가 부채꼴 모양을 이루어 흩어져 날아갔다.

    그때 고공에 있던 각치족 고계 수사들이 성 안의 수사들이 달아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잠시 후 섬에 거대한 쌍두(雙頭) 독수리들이 나타났다.

    거대 독수리들은 머리가 둘에 하얀 갑옷을 입고 발톱에는 금속으로 만든 날카로운 칼날처럼 생긴 장갑을 끼고 있었다. 이런 거대 독수리는 천여 마리가 넘었고 엄청난 속도로 녹광성을 탈출하고 있는 이족인들을 추격했다.

    그 속도가 결코 결단기 수사에 뒤처지지 않았다. 그리고 거대 섬은 영기의 빛을 머금더니 이번에는 대량의 통나무배들을 방출했다.

    주술문자가 새겨진 기다란 통나무배에는 은색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타고 있었다. 통나무배는 거대 독수리보다 속도는 느렸지만 한 번 움직일 때마다 8, 90장을 뛰어넘어 대부분의 이족의 둔술을 넘어섰다.

    그러나 거대 섬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곧 일고여덟 마리의 거대한 요수들을 내보냈다. 요수들은 등에 오색 날개가 달려 있어 교룡과 비슷했다.

    화려한 색을 가진 요수들은 몸을 금빛으로 반짝여 교룡과 구분이 가지 않았다. 요수들은 섬을 날아오르자마자 신형이 흐릿해져 사라졌다가 3, 40장 밖에서 나타났다.

    엄청난 속도였다.

    녹광성 이족인들은 세 무리의 각치족이 추격해오자 더욱 필사적으로 도주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수만에 이르다 해도 수행의 차이가 너무 컸다.

    고계 수사들은 벌써 수립 리를 날아갔는데도 저계 수사들은 아직 십여 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쌍두 독수리에게 따라 잡힐 듯 보였다.

    쌍두 독수리들은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러 법기를 타고 날아가는 저계 이족인의 보호막을 가르고 그대로 머리와 몸을 뜯어먹었다. 그러자 바닥은 머리가 뜯겨나간 이족인들의 피로 가득했다.

    어떤 자들은 쌍두 독수리들이 동시에 쪼아대는 탓에 온몸에 구멍이 뚫려 죽기도 했다.

    물론 몇몇은 힘을 모아 독수리와 싸웠지만 그들의 공격력은 너무 약했고 쌍두 독수리가 입고 있는 갑옷은 너무 단단했다.

    쌍두 독수리들은 공격당한 것에 분노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이족인들을 더욱 맹렬히 공격했다.

    참혹한 비명이 울리고 땅에는 피범벅이 된 수백 명의 시체들이 쌓여갔다. 그때 뒤에서 검은 통나무배가 스쳐 지나갔다.

    통나무 위 갑옷 병사들은 병장기를 휘두를 때마다 은빛을 번뜩였고 도망자들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다행히 갑옷 병사들은 저계 존재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휙 하고 지나가 비교적 수행이 높은 이족인들만 노렸다.

    그리고 가장 늦게 나선 교룡들은 처음부터 쉬지 않고 이동해 고계 이족들을 노렸다. 교룡의 속도를 생각하면 고계 이족들이 따라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녹광성을 중심으로 처절한 비명과 전투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같은 시각, 녹광성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산.

    퍽!

    산골짜기의 평범한 벽이 푸른빛으로 반짝이고 둔중한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폭발이 가시고 암벽에 숨겨져 있던 통로가 나타났다.

    쉬쉬쉬쉭!

    그 안에서 빛줄기가 빠져나오며 네 명의 수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한립과 연허기 수사들이었다. 그들은 매우 외진 곳에 있었고 네 개의 성문과도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아직 각치족 병사들이 쫓아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주위를 경계하며 재빨리 주변을 훑고 즉시 의식을 거두었다.

    “각치족이 아직 여기까지는 오지 않았나 봅니다. 당장 떠나시지요! 우리가 각자 달아나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한데 모여 다녀봤자 각치족의 이목을 피하기만 어려울 테지요.”

    녹색 피부 이족인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당연한 소리입니다. 허나 떠나기 전에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모두 거절하지 말고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두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머뭇거리다 말했다.

    “부탁이요? 무슨 부탁이십니까?”

    나머지 세 수사들은 모두 이상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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