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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928화 (685/2,000)

928화. 두 마리 요수

*

두 달 후 바다 위.

갑자기 바닷속에서 짐승의 포효 소리가 들리고 수십 장 높이의 파도가 솟구치며 뿔이 달린 괴상한 물고기가 튀어 올랐다. 날카로운 이빨로 가득한 입을 벌리고 푸른 빛줄기를 한입에 삼키려 했다.

푸른 빛줄기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이전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그곳을 빠져나가 열댓 장 밖에서 나타났다.

철썩!

괴어(怪魚)는 해수면을 거칠게 꼬리로 내리치며 다시 튀어 올랐다. 그때 푸른 빛줄기 속에서 수십 개의 푸른 실들이 날아올라 괴어를 휘감았다. 그러자 괴어가 수많은 조각으로 잘려나가 녹색 피를 뿜으며 바다로 추락했다.

이에 푸른 빛줄기는 푸른 실들을 회수해 느리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 안에는 한립이 거대한 푸른 검을 밟고 무심하게 떠 있었다.

그는 바다 요수를 쫓아온 한립이었다. 바다 요수를 찾는 일은 마치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막막했고 결국 십여 일 동안 괴어들을 해치운 것 외에는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십 리 간격으로 작은 섬들이 있어서 법력 고갈을 신경 쓰지 않고 수색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동안 바다 요수만 찾아 돌아다닌 것은 아니었다.

그의 단전에는 지금 금청색 원영이 작은 방패를 쥐고 영화(嬰火)를 불어대고 있었다. 한립은 대부분의 법력을 방패 연화에 쓰고 있었다. 방패는 이곳에 오기 전 괴물 나방의 시체에서 얻은 수정 비늘과 다른 재료들을 섞어 만든 것이었다.

방패의 재료가 특수한 탓인지 제련법도 복잡하지 않으면서 단단하기 그지없어 대부분의 법술과 검빛 등을 왜곡해 비켜가게 하는 신통을 지녔다. 한립은 잠시 고민하다 아예 자신의 피까지 떨어트려 본명보물로 만들었다.

그것 외에도 괴물 나방에게 얻은 날개를 이용해 360개의 비도(飛刀)를 제련했다. 비도들은 무척 날카로워 평범한 갑옷이나 방패는 손쉽게 잘라버렸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은 괴물의 요단이 산산조각 났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괴물의 괴이한 소리가 어떻게 수사들의 피를 들끓게 하는 것인지 알아냈을 것이다. 음파 공격에 그의 진혈들이 기이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매우 주의해야 할 점이었다. 그것을 생각하니 한립은 조금 불안해졌다.

경칩결이 자신도 모르는 약점을 지녔다면 어쩐단 말인가! 만일 비슷한 신통을 만나 무슨 일이라도 당하게 된다면?

한립은 고민을 거듭하며 의식으로는 해저 곳곳을 뒤졌다. 청소와 검은 치마 여인의 말에 따르면 바다 요수는 거의 백 년간 인근 해역에서 출몰했다고 한다.

끈기 있게 찾다보면 언젠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다 요수가 수둔술(水遁術)에 뛰어나 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립은 미리 그 대책을 마련해 두었다.

바다를 둘러보던 그는 인상을 찡그렸다. 조금 전 바다 요수가 겁도 없이 그를 공격한 것을 보면 주변에 거대 고래 요수와 같은 고계 요수가 없다는 소리였다.

그는 영기의 빛을 반짝이며 속도를 높였다. 한립은 작은 섬을 찾아 며칠간 휴식을 취하고 법력을 회복해 다시 수색에 들어갔다.

그러나 겁도 없이 덤벼든 바다 요수들은 한립의 손에 힘없이 죽어나갔다. 그나마 눈치 있게 달아난 요수들은 그냥 보내주었다.

오랜 시간 한립은 바다 요수를 찾지 못했지만 거대 고래 요수의 흔적은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지하 동굴에서 요수가 벗어 놓은 허물도 찾았다. 요수의 가죽은 아주 단단해 재료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갑옷보다는 영부(靈符)로 만드는데 쓸모가 있었다. 한립은 그것을 이용해 구궁천건부 한 장과 여러 장의 갑원부와 태일화청부를 제련해냈다.

이제 금궐옥서 잔본에 적힌 부적 중 천과부만 제련하면 되었다. 다행히 연허기에 이른 후 천지원기를 장악해 천과부 제련법에 대해 약간의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한립은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바다 위를 돌아다니며 수색을 계속했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았다.

연허기에 이른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미뤄두었던 것들을 천천히 연구해보고 공법과 신통에서 깨달음을 얻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립은 이전처럼 저공비행을 하며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처음 들어보는 괴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한립은 정신이 번쩍 들어 남색빛을 발산하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의 얼굴에 놀람과 기쁨이 교차했다.

“드디어 찾았어! 그런데 함께 싸우고 있는 요수는 대체 뭐지?”

한립은 전투중인 요수를 보고는 푸른빛을 크게 북돋아 푸른 실로 변해 튀어나갔다. 푸른 빛줄기는 수백 장 밖에서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졌다.

* * *

작은 섬의 인근 바다에서 커다란 요수들이 대치중이었다.

거대한 암초에 올라가 있는 것은 단단한 껍질을 지닌 새빨간 거대 새우였고, 암초와 떨어진 바다 위에 떠오른 것은 한립이 그동안 찾고 있었던 고래 모양의 바다 요수였다.

듣기로 괴물의 몸은 고래와 똑같았고, 머리를 뒤덮은 비늘과 금색 뿔, 그리고 한 쌍의 기다란 촉수는 교룡과 닮았다고 했다.

두 요수들은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거대 새우는 끊임없이 괴성을 질러댔는데 암초 주변의 거센 파도와 머리 위의 먹구름 모두 이 요수가 불러낸 듯했다. 그리고 거대 고래 요수는 출렁이는 바다 속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하얀 눈을 빛냈다.

두 요수 모두 꼼짝하지 않았지만 거대 새우가 훨씬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돌연 거대 고래 요수가 눈알을 굴려 놀란 눈빛으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고래 요수 위로 영기의 빛이 반짝이고 보일 듯 말 듯 하던 푸른 실이 불가사의한 속도로 쇄도했다. 더 이상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에 거대 고래 요수뿐만 아니라 핏빛 새우도 경계의 빛을 드러냈다. 푸른빛이 사라지고 한립이 두 거대 요수 위에 나타나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

“과연 맞았어! 호오, 혈염하(血焰蝦)도 있다니. 잘 됐구나. 헛고생을 한 것은 아니었어.”

한립은 두 요수의 정체를 확인하고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립은 바로 푸른 검들을 거대 고래 요수를 향해 날려 보냈고, 연이어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와 거대한 산으로 변해 핏빛 새우를 향해 떨어졌다.

한립은 이에 멈추지 않고 수결을 맺어 머리 위로 삼두육비의 금빛 법상을 불러냈다. 금빛 법상은 나타나자마자 여섯 개의 팔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푸푸푸푹!

파공음이 울리고 금빛 빛기둥 여섯 개가 뻗어 나갔는데 세 줄기는 핏빛 새우를 향해, 세 줄기는 거대 고래를 향해 날아갔다. 한립은 동시에 두 바다 요수를 공격하면서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범성진마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기에 금색 빛기둥의 속도도 엄청났다. 빛이 번쩍하는 순간 두 요수 바로 앞에 빛기둥들이 도달해 있었다.

요수들은 겁에 질려 한 마리는 입에서 남색빛을 뿜었고, 하나는 몸에 핏빛이 흐르고 커다란 핏빛 화염을 일으켰다.

퍼퍼펑!

요수가 내뱉은 남색빛은 금색 빛기둥과 부딪혀 소리 없이 흩어졌고, 금색 빛기둥들은 멀쩡한 모습으로 거대 고래의 몸을 공격했다. 날카로운 괴성을 방출한 고래 요수의 몸에 커다란 구멍이 세 개나 뚫렸다.

엄청난 양의 피가 용솟음쳤다.

조금 전 분출한 남색빛은 보기에는 별다른 것 없어 보였지만 오랜 세월 물속의 규정(葵精)을 모아 제련한 보호 신통이었다. 위력이 강해 오랜 세월 그의 목숨을 여러 번 구했다.

그런데 금색 빛줄기가 그것을 가볍게 흩어버리고 몸을 꿰뚫었으니 영리한 요수가 불길한 느낌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빛줄기가 만들어 놓은 상처는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거대한 몸을 움직이자 바닷물이 요동치며 물속에서 남색빛이 올라와 상처를 뒤덮었다. 영기의 빛이 반짝이고 관통당한 부위가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한립은 그것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한 편 다른 금색 빛기둥들도 핏빛 화염 속으로 파고들었다. 금색 빛기둥은 화염은 쉽게 뚫었지만 거대 새우의 단단한 껍질에 이르자 갑자기 위력이 급감했다.

퍼퍼펑!

핏빛 거대 새우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암초 위에서 튕겨나갔다. 그러나 거대 새우의 껍질에는 움푹 파인 흔적만 남겼다.

게다가 검은 산이 핏빛 새우를 내려누르려 하자 핏빛 새우의 앞다리 두 개가 핏빛을 내뿜고 몇 배로 커져 놀랍게도 괴력으로 원자신산을 받아 들려했다.

집채만 한 다리가 검은 산의 아랫부분과 닿는 순간 회색빛이 반짝이고 콰득! 하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앞 다리가 엄청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갈라진 것이다.

쿠르릉!

검은 산봉우리는 개의치 않고 거대 새우의 몸을 암초에 짓눌러 버렸다. 그러자 암초가 괴력을 이기지 못하고 몇 장을 가라앉았다.

핏빛 새우는 분노에 차 괴성을 지르며 깔리지 않은 몸의 반절을 꿈틀거렸지만 거대한 산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제압당한 요수는 그것을 힐끗 보고는 겁을 먹어 바로 꼬리로 바다 표면을 후려쳤다.

철썩! 쉬쉬쉬쉭!

그러자 한 장 길이의 물의 창이 한립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에 푸른빛의 물의 창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동시에 고래는 물속에서 수많은 남색빛의 점들을 모아 육체를 휘감고 요란하게 반짝였다. 한립의 실력을 보고 수둔술로 달아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바다 요수를 주시하던 한립은 눈빛이 달라지며 회색 기운을 쏘아 보냈고 회색빛의 장막을 펼쳤다. 빛의 장막은 수많은 물의 창들을 막아냈고 남색빛의 창들은 불나방처럼 몰려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원자신광은 오행의 속성을 지닌 술법에는 상극이었기 때문에 물의 창을 처리하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었다. 한립은 오직 남색빛으로 반짝이는 거대 요수만을 주시했다.

한립은 원자신광을 발동하는 동시에 검결을 외웠다. 그러나 거대 고래의 몸이 모호해지며 곧 사라질 것 같았다.

그때 요수 주변 수백 장이 푸른빛으로 반짝이고 72개의 푸른 연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연꽃들은 아른아른 거리다 수백 송이로 나뉘어 푸른빛의 장막을 펼쳤다.

짙은 나무 속성 영기가 빛의 장막에서 분출되었고 거대 고래 요수는 꼼짝없이 그 안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나 바다 요수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자 주변의 남색빛을 터트리고 눈부신 빛덩이로 변했다. 방대한 고래의 육체가 빛 속에서 거품처럼 터져 보이지 않았다. 요수의 수둔술은 듣던 대로 대단했다.

크아악!

거품 속에서 작아진 고래가 슬쩍 빠져나가려다 남색 빛기둥에 가로막혀 울부짖었다. 고래 요수는 화가 나 입을 벌려 은빛 뇌전을 분출해 푸른빛의 장막을 공격했다.

하지만 빛의 장막은 미세하게 반짝일 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고래 요수가 다급해졌는지 돌연 정수리에서 붉은 기운을 내뿜었다.

꽈광!

붉은 기운은 새빨간 벽돌로 변해 순식간에 불어나 푸른빛의 장막을 내리쳤다. 굉음이 울리고 새빨간 화염과 푸른빛이 교전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푸른빛의 장막은 고래 요수의 공격을 받아내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제야 요수는 두려움을 느꼈는지 몸을 부풀려 빛의 장막으로 돌진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한립은 미소를 지었다.

“춘려검진의 위력이 이 정도였다니. 환술을 위주로 하지만 각종 둔술을 막는 데는 대경검진보다 한 수 위인걸.”

그는 요수가 수둔술을 펼쳐 빠져나가기 전에 재빨리 검진을 펼쳤다. 그러자 멀리 푸른빛의 장막에 파문이 일며 모호해졌다. 그 순간 다시 거대해진 고래 요수가 머리로 힘껏 빛의 장막을 들이박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바다 요수의 방대한 몸이 푸른빛의 장막을 아무렇지 않게 밀고 들어왔다. 마치 푸른빛의 장막이 바다 요수를 집어삼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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