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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926화 (683/2,000)

926화. 기독(奇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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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 머리들은 오색 화염을 분출해 인근 백여 장을 뒤덮었다. 그 결과 검은 그림자가 오색 화염 속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것은 바로 종적을 감추었던 괴물 나방이었다.

괴물 나방은 이전보다 몸집이 열댓 배는 줄어들어 화염 속에서 기이하게 움직였다. 한립은 크게 기뻐하며 입을 벌려 은색 화염과 작은 솥을 분출했다.

은색 화염이 허공을 굴러 한 척 크기의 은색 불새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푸른 솥은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푸른 실뭉치를 내뿜어 괴물 나방 머리 위로 이동해 화염 속 나방을 꽁꽁 에워싸려 했다.

그러나 괴물 나방의 몸에서 빛이 번뜩이고 수정 방패들이 나타나 푸른 실들을 밀어냈다. 그때 은색 불새가 괴물 앞에 도착했다.

은색 불새는 괴물 나방을 공격하지 않고 입을 벌려 금은색 실을 발사했다. 서령불새가 최근 집어삼킨 영선사광이었다. 가느다란 실은 마치 수정 방패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가볍게 괴물의 가슴을 꿰뚫고 빠져나갔다.

괴물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으나 피는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평범한 괴수였다면 급소가 관통 당했으니 쓰러졌겠지만 괴물 나방은 고개를 숙여 가슴에 난 상처를 확인하고는 머리를 쳐들어 날카롭게 소리만 질렀다.

바로 그때 가슴을 뚫고 나갔던 금은색 실들이 선회해 다시 한 번 괴물의 몸을 뚫으려 했다. 이번에는 가슴이 아니라 머리를 노렸다.

그런데 괴물 나방이 갑작스럽게 눈부신 초록빛을 뿜어냈고 두 팔이 오색화염의 금제에서 벗어나 사납게 자신의 가슴을 두들겼다.

꽈앙!

굉음이 울리고 음파가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오색화염도 음파에 닿으면 어지럽게 밀려나다 흩어지기 일쑤였다.

괴물 나방의 구렁이가 괴이하게 회전해 날아드는 금은색 실을 노려보았다.

푸푹!

금색 눈동자에서 금빛 두 줄기가 쏘아져 나가 중간에서 하나로 합쳐져 영선사광과 충돌했다. 영선사광과 금색 빛줄기가 부딪쳐 뜻밖에도 금은색 빛덩이로 변해 터져나갔다.

그때 서령불새가 두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날아들었다. 그런데 거대 구렁이가 검은 액체를 분출해 불새를 가두었다.

이어 괴물 나방의 거대한 꼬리가 아래쪽 허공을 내리쳤고 그 반동을 이용해 화살처럼 한립을 향해 쇄도했다. 괴물 나방은 중간에서 공간을 왜곡하더니 그대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

그것을 본 한립은 즉시 파멸법목을 드러내 파멸신광(破滅神光)을 쏘아 보냈다. 파멸의 빛은 순식간에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 주변 허공을 꿰뚫었다.

쿵!

한립의 머리 위에서 괴물 나방이 비틀거리며 끌려 나왔다. 괴물은 위치가 노출된 순간에도 끈질기게 한립을 노려보며 눈동자에서 금빛을 분출했다.

게다가 갑자기 괴물 나방의 상반신이 쭉 늘어나 한립의 머리 위에서 두 팔을 사정없이 휘둘렀고, 무수히 많은 손톱들이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한립의 머리를 노렸다.

한립은 괴물이 육탄전을 택하자 놀라기보다는 희색을 드러냈다. 그는 어떠한 움직임도 취하지 않았지만 머리 위 금빛 법상이 빛을 머금고 한립의 몸 안으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 금빛 비늘이 뒤덮이고 등 뒤로 네 개의 금색 팔이 자라났다. 각각의 손에는 금색의 무기들이 들려 있었다.

도(刀), 검(劍), 지팡이(杖), 고리(環), 절굿공이(杵), 손잡이가 달린 기다란 사각 봉 형태의 무기인 전권(鐧)까지 총 여섯 개의 무기였다.

미간에서 파멸법목이 빛을 뿜었고 검은 빛줄기가 뻗어나가 두 줄기의 금색 빛을 맞이했다. 이어 여섯 개의 팔이 흔들리고 두 개의 금색 병기가 한쪽에서 날아드는 거대한 뱀 꼬리로 향했다.

나머지 네 개의 무기는 그의 머리 쪽으로 몰려들어 금색 병기 그림자를 만들어 방어했다.

괴물 나방의 금빛, 꼬리, 손톱 환영 등이 한립의 공격에 부딪쳐 엄청난 소리를 내었다. 한립 역시 몸을 부르르 떨며 두 발자국이나 물러났고 금빛 병기들이 산산이 부서져 사라졌다.

그러나 괴물 나방의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꼬리가 튕겨 나가고 두 팔뚝이 피로 얼룩진 것이 꽤 중상을 입은 듯했다.

괴물의 힘은 한립보다 위였지만 몸의 강도는 그를 따라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거대 나방의 몸을 보호하던 수정 방패도 병장기와 같은 실체화된 공격에는 속수무책인 듯했다.

쉬쉿!

괴물 나방의 금색 눈동자가 빛을 머금자 피로 얼룩졌던 두 팔이 초록빛으로 뒤덮여 완전히 회복되었다. 그리고 날개를 털어 다시 하얀 기운을 폭발적으로 분출했다.

날개가 번뜩이며 사라지고 수백 개의 칼날들이 허공에 떠올라 섬뜩한 빛을 발산했다. 괴물의 눈빛이 흉악해지고 칼날들이 울어대는 것이 당장이라도 공격할 기세였다.

그러나 한립은 피식 웃었고 온몸을 뒤덮고 있던 금색 비늘 갑옷과 등 뒤로 나타났던 금빛 팔 네 개가 모호하게 사라졌다.

꽈광!

그 순간 한립이 수결을 맺었고 등 뒤에서 천둥소리가 나며 수정 날개 한 쌍이 나타났다. 한립은 날개를 펄럭여 그 자리에서 소리 없이 사라졌다가 수십 장 밖에서 괴이하게 나타났다.

이상하게도 바로 공격할 생각이 없는 듯 묘한 눈길로 괴물 나방을 지켜보았다. 괴물 나방은 의아했지만 날카롭게 울며 몸의 비늘을 세워 그를 추격했다.

바로 그때, 한립이 갑자기 손뼉을 치며 미소 지었다.

“쓰러져라! 쓰러져! 쓰러져라!”

한립의 말소리에 괴물 나방은 머리가 무거워지고 가슴 부위의 감각이 점점 무뎌지기 시작했다. 이에 다급히 고개를 숙여 확인하니 가슴 상처의 절반이 어두운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게다가 코를 찌르는 비린내가 괴물의 온몸에서 풍겨 나왔다. 처음 보는 기이한 독에 중독된 것이다. 독은 은밀하면서도 효과가 패도적이라 처음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다가 일단 발작하면 이미 손쓸 도리가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괴물 나방은 너무 놀라 입을 벌려 초록빛에 휘감긴 청록색 구슬을 가슴으로 보냈다. 구슬이 빙글빙글 돌며 녹색의 빛을 뿜었고 기이한 약향이 퍼져나갔다. 그러자 코를 찌르던 비린내가 점점 옅어지고 빠르게 퍼져나가던 보라색 독기도 굳어 더는 퍼져나가지 못했다.

이에 한립은 내심 놀라고 말았다.

영선사광의 독성에도 바로 죽지 않는 것은 독에 어느 정도 저항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립은 돌연 앞쪽으로 몸을 날려 푸른 대붕으로 변신했다.

푸른 돌풍을 동반한 대붕은 독을 다스리고 있는 괴물 나방 위에 이르렀다. 대붕이 두 날개를 펼치자 천둥소리가 크게 울렸고 굵직한 금빛 뇌전과 한 쌍의 금빛 발톱이 사납게 튀어 나갔다.

아래쪽 괴물 나방도 몸을 털어 등 뒤의 괴상한 칼날들을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대붕은 빽빽하게 날아드는 하얀 칼날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아래로 쇄도했다.

퍼펑! 피피피피핑!

괴상한 하얀 칼날들은 대붕의 깃털에 부딪히자마자 분분히 튕겨나갔다. 안 그래도 단단한 한립이 대붕으로 변신까지 했는데 겨우 이런 칼날로 상처를 입을 리 없었다. 도리어 대붕의 날카로운 발톱이 칼날을 뚫고 번개처럼 괴물 나방의 몸을 꿰뚫었다.

푸확!

괴물 나방의 몸은 갈가리 찢어졌지만 그 안이 텅 빈 것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진짜 괴물 나방은 진작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껍질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가슴에서 독을 몰아내던 녹색 구슬도 빛을 번쩍이며 흩어져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에 대붕은 재빨리 남색빛을 일렁이며 주위를 돌아보았고 날개를 흔들어 주변에 폭발적으로 금색 뇌전을 분출했다. 금색 뇌전들이 하나로 응결해 뇌전으로 변해 튀어나갔는데 그 길이가 족히 수십 장은 되었다.

콰릉 콰콰쾅!

금색 뇌전이 주변 수백 장을 귀신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하며 괴물을 찾았다.

쾅!

굉음이 울리고 금색 뇌전이 오십 장 밖 허공에서 무수히 많은 가느다란 뇌전으로 그물을 펼쳤다. 그런데 그 아래에 초록빛이 반짝이고 무언가 금빛 그물을 뚫고 나왔다.

바로 몰래 달아났던 괴물 나방이었다.

괴물 나방은 몸의 3분의 2가 어두운 보라색으로 물들어 겨우 독성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두 팔과 꼬리는 독성에 저항력이 있는지 은은한 초록빛을 반짝이며 검은 빛이 옅게 드리워있었다.

하지만 독성이 발작해 위태로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괴물 나방은 벽사신뢰를 이겨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법력을 끌어다 썼고 겨우 버티고 있던 독성이 다시 사납게 퍼져 더욱 상태가 악화되고 말았다.

푸른 대붕은 번개처럼 튀어 올라 냉랭한 눈빛으로 거대 나방을 굽어보았다. 한립이 변신한 대붕이 진짜 곤붕 진령은 아니지만 진혈을 지니고 있어 알 수 없는 중압감을 풍겼다.

이에 괴물 나방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스쳤고 회색빛을 반짝이며 둔술을 이용해 달아나려 했다.

쨍강!

갑자기 괴물 나방의 청록색 구슬이 아무 이유 없이 깨져나갔다. 갑작스런 이변에 괴물 나방은 물론이고 한립도 움찔했다. 그러나 괴물 나방은 괴성을 지르며 폭발적으로 신형을 부풀렸고 또다시 목에서 사자 머리가 괴이하게 솟아났다.

괴물은 흉악한 눈빛으로 한립에게 달려들었다. 두 팔을 마구 휘두르는 통에 주변의 손톱 허상들이 두 개의 거대한 손톱으로 뭉쳐져 날아들었다. 그러자 주변의 천지원기들이 무수히 많은 빛의 점으로 떠올라 두 손톱으로 빨려 들어갔다.

거대한 손톱 허상은 천지원기에 둘러싸여 서서히 한립을 할퀴었다. 피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이에 대붕은 맑은 울음을 터트렸고 푸른빛이 휘몰아치며 순식간에 오색빛의 공작으로 바뀌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는 뜻밖에도 경칩결을 발동해 오색공작으로 변했다.

그로 인해 불가사의한 일이 펼쳐졌다.

손톱 허상이 지척에 이르자 오색공작의 깃털이 튀어나와 몸을 둘러싼 화염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오색빛은 몇 십 배로 불어나 활활 타올랐다.

괴물 나방은 갑자기 나타난 오색공작과 오색빛의 엄청난 기세에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빛이 번뜩이고 거대 손톱과 오색빛이 충돌했다. 오색빛 안에서 거대 손톱 허상은 거품처럼 녹아들어갔다. 이전의 괴이한 기세는 모두 환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립은 신중을 기하고 오색빛을 번뜩이며 스무 장 밖에서 나타났다. 괴물 나방은 이번에도 공격이 실패하자 표독한 표정으로 한립을 노려보았다. 바로 그때 보라색 독기가 힘차게 솟아올랐고 두 머리 모두 어두운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괴물은 눈에 총기를 잃은 채 몸을 부르르 떨며 땅으로 추락했다. 이에 오색 공작이 날개를 접고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립은 허공에 떠서 추락하는 거대 나방을 바라보았다.

퍽!

괴물 나방의 보라색 몸뚱이가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한립은 눈썹을 끌어올리며 은색 불덩이를 불러냈다. 바로 거대 나방에게 갇혀 있던 서령천화였다. 은색 불덩이는 곧 날개를 펴고 은빛 찬란한 불새가 되었다.

불새가 바닥에 너부러진 괴물 나방을 덮치려는 순간, 괴물의 두 머리가 폭발해 핏빛 안개로 흩어졌다. 그 속에서 녹색 불덩이 두 개가 튀어나와 각각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갔다.

파앗-

공중에서 지켜보던 한립은 곧바로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녹색 불덩이 뒤로 파동이 일며 푸른 실뭉치가 나타났다.

푸른 실뭉치들이 두 개의 녹색 불덩이를 꽁꽁 묶자, 가까이에서 작은 솥이 떠올랐다. 이에 한립은 서늘한 눈빛으로 은색 불새에게 분부를 내렸고 그의 명을 받은 은색 불새는 스스로 폭발해 두 개의 불덩이로 변해 튀어나갔다.

은색 화염에 휩싸인 녹색 불덩이는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며 서서히 둥그런 물체로 변해갔다. 마치 한립을 향해 눈을 깜빡이는 것 같기도 했다.

‘뭐지?’

한립이 흠칫 놀라 무의식중에 신형을 날려 자리를 떴고 녹색 불덩이는 은색 화염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열댓 장 밖에서 푸른빛을 번쩍이고 한립이 나타났다. 고계 괴수의 혼백은 쓸모가 많은 재료였다. 하지만 내력을 알 수 없는 혼백을 살려둔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후환을 남기는 일이기도 했다.

또 자신보다 고계의 존재에게 추혼술을 써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혼백을 두 개나 지니고 있을 줄이야…….’

한립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먼 곳을 향해 소매를 펄럭였다. 그러자 은색 화염과 허천정, 원자신산과 72개의 청죽봉운검까지 모조리 그에게 돌아왔다.

그제야 한립은 푸른빛을 거두고 표표히 아래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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