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924화 (681/2,000)

924화. 남호도(藍湖島)

*

“청 수사, 그 바다요수가 출몰하는 곳을 알고 있는가?”

“그 요수를 죽이러 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렇다네. 뇌명대륙까지 날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아닌가! 아무리 쉼 없이 날아간다 해도 뇌명대륙까지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네. 게다가 반년 동안 심해를 돌아다니려면 지금보다 수행이 열 배나 높지 않으면 십중팔구 변고를 당해 죽을 것이야.

허나 원래 대륙으로 돌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뇌명대륙으로 가야겠지. 그곳에는 다른 대륙으로 향하는 초대형 전송진이 있을 테니까. 자네들이 계속 그 바다요수를 노리는 것도 전송진을 수리하기 위해서 아닌가.”

“선배님 말씀대로 입니다. 인근 해역의 영맥이 쓸 만하다지만 수련을 위해 필요한 영약과 보조 재료 등은 이미 고갈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많은 수사들이 수행의 고비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지요. 이대로 몇 천 년이 더 흐르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 것입니다. 선배님께서도 그 요수를 잡고자 하신다면 저희와 함께하시는 것은 어떨지요?”

여인이 빙긋 웃고는 덧붙였다.

“이번에 제가 동부를 떠나있었던 것도 요수를 죽이기 위해 인근 해역의 1인자라 불리는 은사 거사님을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선배님께도 요청을 드리고 싶었고요.”

“전송진만 수리할 수 있다면 같이 움직여도 나쁠 것 없겠지.”

“그 점은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다른 재료와 진법사는 모두 부족하지 않으나 공운정만 없으니까요. 공운정만 찾으면 전송진은 이전과 똑같이 복구할 수 있습니다.”

청소가 기뻐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일세.”

“선배님께서 도와주신다면 이번에는 정말 성공할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은사 거사께서도 이미 넉 달 전에 답을 주셨고, 때가 되면 남쪽 해역의 남호도(藍湖島)에서 모여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선배님께서 관심이 있으시다면 이 은사령(銀鯊令)을 지니고 약속 장소로 가시면 됩니다.”

청소는 손바닥을 뒤집어 은빛 영패를 꺼내 한립에게 주었다. 한립은 영패를 끌어당겨 잠시 살펴보았다. 은빛이 반짝이는 영패의 바깥 면에 커다랗게 사(鯊) 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그는 무표정하게 영패를 집어넣었다.

청소는 한립이 이 일을 수락하자 기뻐하며 한담을 나누다가 자리를 떠났다. 여인이 하얀 빛줄기로 변해 장원을 날아오를 때쯤 나무문이 닫혔고 금제가 다시 발동되었다.

* * *

두 달 후, 작은 산 아래에서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에 섬의 뱀 인간들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대전에서 고계 뱀 인간들과 논의를 하던 화 부인도 그 소리를 듣고는 표정이 달라져 대전 밖으로 나왔을 정도였다.

멀리 작은 산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잠시 후 맑은 소리가 뚝 끊기더니 푸른 빛줄기가 산 아래에서 날아올라 섬 바깥으로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푸른 빛줄기는 천운도 천리 밖 해상에서 나타나 남쪽으로 향했다. 한립은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고민해보았으나 이번에 인근 해역의 수사들과 연합해 해수를 죽이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었다.

그래야 뇌명대륙에 날아가 풍원대륙으로 돌아갈 방법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실패한다면 잠시 이곳에 머물다 다시 기회를 보아 바다요수를 죽일 작정이었다.

그는 자원이 부족한 곳이라도 오랫동안 수련할 정도의 약재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인족을 떠나온 지도 오랜 세월이 지났다. 이족 연합군과의 대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천연성은 아직도 멀쩡할 것이다. 인족의 일원으로 천연성에 머문 기간은 멀지 않았지만 그래도 인족이 멸망하는 꼴은 보고 싶지는 않았다.

또 하나, 그가 인족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는 남궁완이 영계로 비승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다. 남궁완이 비록 단시간 내에 공간접점을 통해 영계로 오기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변수가 존재했다.

그의 아름다운 아내가 또 다른 기연을 얻어 화신기에 이르고 이미 인족 땅에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그의 신통과 수행은 인족 땅에서 충분히 남궁완을 비호할 만했다.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자 한립은 상념에 잠겼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집중해 길을 재촉했다.

다행히 해역도를 따라 한 달 보름을 날아간 한립은 어느 낯선 해역에 도착했다. 그는 질풍처럼 날아가며 의식으로 도처를 수색하는 중이었다.

‘이제 남호도 근처일 텐데…….’

아무리 날아가도 텅 빈 바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립은 더욱 속도를 높였고 한식경 후에는 기괴한 해역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곳은 바다 위로 폭설이 쏟아지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아래쪽 바다 표면은 전혀 얼어붙을 기미도 없이 오히려 뜨끈한 기운이 풍긴다는 점이었다. 차갑고 뜨거운 공기가 맞닿는 지점에 하얀 바다 안개가 뭉실뭉실 피어났다.

한립은 눈보라 속에서 아래를 향해 손을 쥐어 바닷물을 빨아 당겼다. 손바닥에 고인 바닷물이 따끈하기 그지없었다.

“…….”

그는 눈썹을 끌어올리며 짙은 해무를 보다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안개 속으로 들어갈수록 눈보라는 더욱 심해졌고 아래쪽 바닷물은 더욱 끓어올랐다. 심지어 어디선가는 보글보글 거리는 소리까지 났다.

그러나 한립은 모른 척하며 줄곧 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하얀 안개 속에서 수십 리를 날아가자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면서 안개가 사라지고 전방에 수정처럼 반짝이는 얼음 섬이 나타났다. 눈보라는 그쳤어도 온도는 이전보다 더 낮아졌고 바닷물도 얼기 시작했다.

한립은 고민 없이 얼음 섬으로 다가갔다. 멀리서 보니 섬의 면적이 꽤 커서 화운도 보다 몇 배는 거대했다.

‘이곳이 남호도구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얼음 섬 가장자리에 이르렀다. 그러나 섬으로 진입하기 직전, 돌연 아래쪽 깊은 곳에서 낮은 포효소리가 들려왔다.

“헛……!”

그 소리에 한립의 안색이 급변하며 체내의 기혈이 들끓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한립은 즉시 수결을 맺어 범성진마공을 운용했다. 그러자 공법의 위력에 들끓던 체내의 기혈도 안정을 찾아갔다. 하지만 상황이 호전되기 전에 등의 피부가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이에 한립은 푸른 장포를 걷어내고 상반신을 드러냈고, 한 손을 펼쳐 금빛 거울을 꺼냈다.

거울이 그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며 빛을 내뿜자 등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의 등 뒤에는 네 개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화려한 채봉(彩鳳), 푸른 대붕, 다섯 발톱의 진룡, 오색공작이었다.

한립의 체내에 녹여 넣은 진령의 피가 응집해 일으킨 현상 같았다. 네 개의 문양은 영기의 빛을 번뜩이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의 등에서 꿈틀거렸다. 범성진마공으로 억누르지 않으면 진혈들이 몸 밖으로 빠져나갈 것 같았다.

그래서 한립은 내심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경칩십이결(驚蟄十二決)의 비술을 사용해 진혈들을 철저히 연화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이런 괴이한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멀리서 들려온 괴성 때문이었다.

크하아악!

재빨리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아무런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멀리서 또다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등 뒤의 진령들이 기이한 빛을 발산하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

한립은 당황하지 않고 수결을 맺어 전신의 금빛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진령 들이 바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한립은 깊게 심호흡을 하며 한 손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펑.

가벼운 폭음과 함께 금색 거울이 폭발해 금빛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한립은 푸른 빛줄기로 변해 곧장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쏘아져나갔다.

진령의 피를 요동치게 하는 괴이한 울음소리의 정체를 알아내지 않고는 안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신통과 수행이 연허기에 이르렀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만약 연허기에 이르지 못했다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것이다.

한립은 푸른 빛줄기로 변해 하늘 저 끝으로 사라졌다. 울음소리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는데 그가 단숨에 3, 40장을 날아갔는데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더욱이 얼음 섬 자체의 자력(磁力)이 작용해 의식이 다른 곳보다 훨씬 미약해졌다. 주변 십여 리 밖에는 탐색할 수 없었다.

그는 조금 더 날아가다 둔광을 멈추었다. 저 멀리 허공에 영기의 빛이 반짝이고 일고여덟 가지 색의 둔광이 이쪽으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한립은 둔광 속 인영들을 파악했다. 그들은 전부 원영기 수사들로 겁에 질린 얼굴로 죽을힘을 다해 도망가는 중이었다. 마치 강력한 요수나 마물이 쫓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한립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뒤를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둔광 속 인물들을 부르려는데 갑자기 엄청난 울림과 함께 거대한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쿠르릉!

잠시 후 경악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포효 소리 속에서 원영급 수사들의 몸이 불규칙하게 번뜩이더니 그들의 피부가 삽시간에 새빨갛게 물들었다.

동시에 처절한 절규와 비명이 울려 퍼지더니 그들의 몸과 원영이 폭발해 핏빛 안개로 흩어졌다.

한립은 가슴이 철렁했다. 바로 그때 하늘 끝에서 영기의 빛이 번뜩이더니 두 개의 둔광이 날아들었다. 두 줄기 둔광 속에는 얼마전 그를 찾아온 청소와 젊은 부인이 함께 있었다.

그들은 몸이 폭발해 죽은 다른 수사들처럼 포효 소리 속에서 피부가 붉게 달아올라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피부에 영기의 빛을 번뜩이기는 했으나 이전의 수사들처럼 폭발해 죽지는 않았다.

그녀들은 화신 중기로 앞선 수사들보다 수행이 앞선 덕이었다. 그렇다고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정상적인 속도보다 둔광이 훨씬 느려져 있었다.

한립이 그들을 맞이하려다 안색이 달라졌다. 그들 뒤로 수백 장에 달하는 모호한 회색 그림자가 따라오고 있었는데, 그 괴이한 포효소리는 회색 그림자 속에서 울려 퍼진 것이었다.

이에 한립은 범성진마공을 펼쳤으나 등 뒤의 진혈들이 난동을 부리려 하는 것이 느껴졌다. 한립도 이 정도인데 수행이 훨씬 떨어지는 두 여인은 오죽하겠는가!

회색 그림자가 가까워질수록 그녀들은 둔광이 점차 느려지고 무형의 금제에 걸려든 사람처럼 헤어 나오지 못했다. 거대한 회색 그림자가 두 여인들과 거리를 좁히자 여인들은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 공격을 시작했다.

청소는 커다란 궁을 꺼내 황백색 빛을 뿜으며 화살을 쏟아댔고, 검은 치마의 여인은 하얀 빛을 방출해 뇌전 교룡으로 변해 회색 그림자를 내리쳤다.

연합 공격이 강력한 기세를 내뿜으며 회색 그림자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그들의 공격이 닿기도 전에 돌연 무형의 파동이 회색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와 무수히 많은 빛의 화살들과 뇌전 교룡들을 휘감아 터트렸다.

퍼퍼퍼퍼퍼펑!

어떤 공격도 회색 그림자에 접근하지 못했다. 그 틈을 타 회색 그림자는 지척에 이르렀고 두 여인은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조금만 더 거리가 좁혀지면 그녀들도 포효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폭발해 죽을 것이 틀림없었다.

“아, 한 선배님! 저희 좀 살려주십시오!”

청소가 전방에 있는 한립을 알아보고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한립은 남색빛이 일렁이는 눈으로 꿈쩍도 하지 않고 회색 그림자만 주시했다.

회색 그림자는 뜻밖에도 거대 나방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양 날개를 쫙 펴자 몸의 위쪽과 아래쪽에 흉악한 머리가 달려 있었다. 위쪽 머리는 사자를 닮아 털이 복슬복슬했고 눈동자가 짙은 청록색으로 빛났다.

그 괴이한 포효소리는 바로 이 사자 머리에서 나온 소리였다. 그리고 나방 아래쪽에 붙어 있는 머리는 어두운 녹색의 거대한 구렁이로 두 눈을 감은 채 새까만 혓바닥만 날름거렸다.

‘저게 대체 뭐지? 생전 처음 보는 괴물이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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