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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919화 (676/2,000)

919화. 팔에 깃든 현천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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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정말 그렇게 본 족의 상황이 좋지 않은 것입니까? 사부님의 파천궁(破天弓)을 챙겨 왔으니 적의 신통이 제 열 배 이상이 아니라면 단 한 발로도 죽일 수 있을 것입니다.”

“주아야, 네 신통이 크게 늘었다 하나 이전의 신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네 사부가 친히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 상황을 역전할 방법이 없구나.”

부인은 소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서찰을 받고 급히 오기는 했지만 무슨 일인지는 자세히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어머니께서 연선과를 복용하시고 거기다 정체 모를 상족 수도자를 끌어들이려 하시는 것입니까?”

소녀가 부인의 품에 안겨 슬픈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이미 섬으로 돌아왔으니 이제 너에게도 알려줘야겠구나. 다른 두 종족이 이미 멸족을 당한 것은 너도 알고 있겠지.”

주저하던 부인이 소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예, 그것은 서찰에서 보았습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걱정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다른 두 종족은 저희보다 약소하고 대제사의 수행도 연선과를 복용하기 전의 어머니보다 못하지 않았습니까?”

“너는 그들을 그리 만든 세력에 대해 알고 있느냐?”

“설마 실마리를 잡으신 것입니까?”

“두 종족을 완전히 참살했는데 어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 내 추측이 맞다면 상대는 와씨족의 숙적, 오라족(烏羅族)일 것이다.”

부인은 두려움에 눈빛이 흔들렸다.

“오라족이요? 마, 말도 안 됩니다. 저도 경전에서 보았지만 아주아주 오래전 저희 와씨일족에 의해 씨가 마른 종족이 아닙니까. 어떻게 이곳에 나타날 수 있단 말입니까.”

소녀가 오라족이라는 소리를 듣고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 당시 오라족은 우리 와씨일족과 뇌명대륙에서 전쟁을 치르고 전멸당했다. 하지만 그중 일부가 먼 곳으로 몰래 달아났을 수도 있지. 오라족이 아니면 어느 일족이 사내만 골라 납치해가고 여인들의 뼈를 발라 피와 살을 흡수하겠느냐. 유일하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우리 세 종족이 이곳에서 자리를 잡은 지 수천 년이 넘었는데 왜 이제야 움직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소녀는 부인의 이야기에 너무 놀라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오라족이 다른 두 종족을 쳤다고 해도 어머니는 이미 상족의 반열에 오르셨습니다. 저와 어머니가 나서도 그들을 상대하지 못할까요?”

“평범한 오라인이라면 내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흔적으로 보아 오라왕족(烏羅王族)이 섞여 있는 것 같구나.”

“오라왕족이요? 당시 와씨족의 천제사(天祭司)들이 역천의 신통을 이용해 탐색했지만 오라왕족의 혈통은 끊겼다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말이 되지 않습니다.”

“멸종되었다 여긴 오라인들이 나타났는데 그중에 오라왕족이 한두 명 끼어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 없다. 다만 오라왕족은 태생적으로 우리 와씨족과 상극의 능력을 지녀 와씨황족(娲氏皇族)이 아니고서는 맞서기 어렵다. 게다가 오라왕족의 수련 속도는 뇌명대륙의 몇몇 거대 종족과 맞먹을 정도이니 꽤 수행을 쌓았을 것이다.”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오라인들이 그렇게 대단하다면 저희 화양족에게 이렇게 오랜 시간을 주었을 리 없습니다. 아마 앞서 두 종족을 죽이느라 그들도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을 거예요.”

“네 말이 맞다면 좋겠지만 그들이 두 종족의 사내들을 납치해 간 것을 잊지 말거라.”

“그 말씀은, 그들이 지금…….”

소녀가 무언가를 떠올리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래, 당시 오라족과 우리 와씨족이 생사결전을 치른 것도 그 때문이었지. 그들은 일을 마치고 우리를 칠 생각인 게다. 화양족이 그래도 세 종족 중 가장 세력이 강하고 섬의 방비도 철저하니까 말이야. 한 선배님의 수행이 내 예상과 맞다면 우리 일족의 명운은 그분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대단하다고요? 어머니와 다른 족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중상을 입어 한동안은 큰 힘을 쓰기 어려울 것 같던데요.”

“내 이미 열양신단을 꺼내 그분에게 드리기로 했다.”

“네? 열양신단을 그자에게 준다고요? 안 됩니다. 어머니가 연선과를 복용했어도 열양신단으로 몸을 보하시면 축난 수명을 얼마간 보충할 수 있을 거예요. 그것이 없으면 앞으로 어쩌시려고 그러세요!”

소녀가 부인의 품에서 빠져나와 큰소리로 외쳤다.

“내가 지금까지 고민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분이 주아 네 사부님과 동급의 수사이기만 해도 열양신단이 헛되지 않을 텐데 만일 나보다 약간 높은 정도거나 보물로 수행을 감추고 있는 것이라면 큰 낭비가 아니겠느냐.”

“그자를 어찌 제 사부님과 비교하세요. 사부님은 상족 제5계의 존재십니다. 인근 해역의 상족 수도자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자시라고요.”

“비록 나도 상대의 수행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어미보다 훨씬 높은 수행을 지녔을 것이다. 부상을 입고 있는데도 언제든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위압감이 느껴졌으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굳이 사정해서 섬에 남겨 두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부인이 신중히 생각을 밝혔다.

“그와 이야기를 나눈 그 누구도 상대의 신통이 어떤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열양신단을 그에게 준다는 것은 너무 무모한 일이예요. 거래를 하더라도 실력은 확인해봐야지요.”

“확인을 해보자고? 상대는 법력을 크게 상했는데 어찌 확인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법력이 고갈되었어도 상족 고계 수사라면 의식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어머니, 안심하세요! 열양신단을 주러갈 때 저와 같이 가시지요. 정말 신통이 대단하다면 화양족의 미래를 위해 단약을 넘겨주고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면 귀한 단약을 내어 줄 수는 없지요.”

“그건…….”

부인은 소녀의 말에 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열양신단에 그녀의 수명도 달려있으니 확실히 마음을 정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 그럼 네가 한 번 확인해 보거라. 허나 절대 과분한 무례를 범해서는 안 된다.”

결국 고개를 끄덕인 부인이 동의했다.

“걱정 마시라니까요.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사흘 후면 지화에서 단약을 꺼낼 수 있다. 그때 나와 함께 가보자꾸나. 대신통을 지닌 선배라면 한참 어린 후배가 의식을 시험해 본다고 해도 크게 불쾌해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오라족의 침입이 머지않았기에 우호적이었던 주변 종족들에게 도움을 청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족 내의 몇몇 장로들과 상의해 경비를 더욱 삼엄히 해야겠지.”

부인의 말에 소녀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섬의 방어와 오라족에 관한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 논의했다.

다음 날, 나무 침상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한립이 두 눈을 뜨고 몸에 흐르는 금빛 기운을 거두었다. 암담했던 그의 눈빛이 어느 정도 생기를 되찾았다. 한립은 한 손을 들어 손바닥을 살피고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 해보았다.

그러나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약간의 법력은 회복했으나 정혈과 의식의 소모가 너무 커 아무리 많은 요상용 영약을 먹어도 3, 4년은 지나야 최상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스스로의 안전은 책임질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그래서 부인의 요청에 따라 섬에 남은 것이다.

그는 소매를 털어 거무튀튀한 고리를 분출했다. 고리가 빙글빙글 돌자 검은 빛과 금빛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땅에 착지한 것은 작은 검은 원숭이 제혼과 표범을 닮은 표린수였다.

한립은 한참을 쉬고 난 후에야 간신히 두 영수를 소환해냈다. 법력과 의식의 고갈로 함부로 영수환을 개방해 둘을 불러낼 수도 없었다.

제혼은 나오자마자 희죽거리며 그의 어깨에 올라타 쪼그리고 앉았고, 표린수는 한립의 품으로 들어가 친밀하게 그의 손등을 핥았다. 그 모습에 미소를 머금은 한립은 두 영수를 쓰다듬어 주고는 간신히 의식을 움직여 몇 마디 분부를 내렸다.

그러자 제혼이 먼저 어깨에서 뛰어내려 몸집을 키웠고 검은빛 속에서 한립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신했다. 이어 ‘한립’으로 변신한 제혼은 빙긋 웃으며 한립 옆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표린수 역시 한립의 품에서 빠져나와 잔영을 남기며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저물탁을 스쳐 다양한 색의 진법 깃발 한 벌을 꺼내 벽 곳곳에 쏘아 보냈다. 그러자 그가 머물고 있던 목조 건물에 은은한 하얀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한립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생각에 잠겼다가 한 팔을 들어 자세히 관찰했다.

팔에는 희미한 노란 흔적이 어렴풋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남색 빛이 일렁이는 눈으로 유심히 바라보다 체내의 영기를 노란 흔적으로 결집시켰다.

그러자 모호하던 노란 흔적이 점점 또렷해졌다. 크기며 모양이 딱 한립이 휘두른 후 소실된 현천과실이었다. 그는 이게 왜 몸에 깃들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한립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금은 얼마 되지 않은 법력이지만 노란 흔적을 또렷하게 만드는 게 최선이었다. 그는 노란 흔적을 보기만 해도 심장이 콩닥거렸다.

현천과실이 장검으로 변해 보여준 위력은 그렇다 치고, 겨우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그 대가가 너무 참혹했기 때문이다.

한참 후에야 그는 팔에서 시선을 돌렸다.

한립은 노란 흔적을 만져보다 몇 가지 단약을 꺼내 복용했다. 화양족 대제사가 말한 열양신단이 흥미롭기는 했지만 그것만 믿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잠시 침음하다 눈을 감고 요양에 들어갔다.

이틀 후, 하늘 끝에서 하얀 구름이 날아들었다. 그 위에는 화 부인과 그녀의 딸 주아가 타고 있었다. 화 부인의 손에는 새빨간 옥함이 들려 있었고 소녀의 등에는 노란 대궁과 하얀 뼈 화살 세 개가 꽂혀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은 장원 상공에 도착해 멈춰 섰다.

“그자가 이곳에 있나요? 흥, 금제를 펼쳐 놓은 것을 보니 우리를 경계하나 봅니다.”

주아는 눈을 깜빡이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건물들을 훑어보다가 그중 하나만 하얀빛의 장막으로 뒤덮여 있는 것을 보고 콧방귀를 뀌었다.

“한 선생께서 중상을 입으셨고 우리와 이렇다 할 친분이 없으니 경계하는 것이 당연하다. 금제가 펼쳐져 있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야.”

하얀 구름이 천천히 땅에 내려섰다.

“한 선생님, 열양신단을 갖고 왔습니다. 만나 뵐 수 있을지요?”

“화 수사, 내 직접 나가 맞이하기 불편하니 그냥 들어오시게.”

방에서 차분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얀빛의 장막이 사라지고 문이 열렸다. 화 부인은 즉시 소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 이게……!”

화 부인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안색이 변했다. 침상 위에 두 명의 한립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한명은 웃음을 머금고 그들을 보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무표정하게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소녀도 놀란 눈으로 두 명의 한립을 자세히 관찰했다.

“앉으시게. 그런데 이쪽은?”

“제 딸아이인 백주아라고 합니다. 줄곧 외지에서 수련하다 이틀 전에 돌아왔습니다.”

화 부인이 공손히 답하며 의식으로 두 명의 한립을 훑고는 내심 놀랐다. 한 명은 기운이 굉장히 약하고 다른 한 명은 비교적 강했지만 모두 그녀가 수행을 간파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의 용모나 복색 모두 똑같았다.

신외화신(身外化身)이란 술법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작은 분파의 대제사가 익힐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만 봐도 상대의 신통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화 부인은 딸아이를 말릴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소녀가 사뿐히 걸어가 한립에게 예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께서 본 족에 상족 선배님이 머물고 계신다고 하셔서 함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무턱대고 찾아왔다 나무라지 마세요.”

“화 수사의 천금 같은 따님이셨군요. 어린 나이에 벌써 이 정도 수행을 쌓았다니 축하할 일입니다.”

한립이 미소 지으며 백주아를 칭찬했다.

“아닙니다. 딸의 수행이 어찌 선배님의 눈에 차겠습니까. 그런데 이곳은 지낼 만하십니까? 혹여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바로 말씀해주십시오.”

“이곳의 영기도 쓸 만하다네. 수사가 들고 온 것이 열양신단인가?”

“예, 그렇습니다. 저희 종족의 제1대 대제사께서 인근 해역에서 머리 둘 달린…….”

화 부인은 옥함을 내밀며 간단히 내력을 설명했다. 한립은 약간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받았으나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때 소녀가 소매 속에서 한 손으로는 비취색 이파리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기괴한 수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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