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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904화 (661/2,000)
  • 904화. 새로운 청원검결

    *

    작은 산은 건물 천장으로 날아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고 회색 기운이 흩어져 그들을 둘러쌌다. 빛의 장막을 본 여인들은 의아해했지만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제야 한립은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건 제가 수련하는 원자신광입니다. 대승기 수사 앞에서야 그 위력을 언급할 가치도 없겠지만 누군가의 의식이 침투하는 것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할 말이 강 선배님께 불경한 내용이라 누군가 듣지 못하도록 방비한 것입니다.

    연 수사, 만일 강 선배님께서 원 소저에게 천겁을 이겨내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니면 천겁을 치르는 방법이 원 소저의 몸에 치명적인 상해를 남기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게 할 수도 있다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두 여인이 놀란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다 연려가 간신히 미소를 머금었다.

    “말이 조금 과하신 듯합니다. 대승기 수사이신 강 선배님이 저희 같은 후배들을 속이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미간을 좁힌 한립이 그들을 바라보다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괜한 걱정을 했군요. 두 분이 이미 이 문제에 대해 고려하셨다면 더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원 소저에게 한마디 하자면 강 선배님이 제자를 거두는 일에 선택의 여지를 준 것은 아마 강제로 시키기 어려운 일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이 점을 고려해 결정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한 형의 말씀은 잘 새겨듣겠습니다.”

    원요가 쓴웃음을 지으며 인사하자 한립이 허공에 손을 저었다. 그러자 원자신산이 사라지고 주변을 둘러싼 회색빛의 장막도 허물어졌다.

    이제 그들은 다른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 노인이 이곳에 머무는 이유 같은 것들 말이다.

    그 후 원요는 아무래도 당장 해결을 해야겠는지 먼저 강 노인을 찾아 가겠다고 말했다. 정말 귀물이 되는 것을 막거나 되돌릴 방법이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이에 한립과 연려도 그녀와 같이 건물을 나섰다. 원요가 세 번 크게 부르자 하얀 그림자가 번득이며 나타났다. 그림자 귀신은 시종일관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이 강 노인을 뵙고 싶다고 하자 귀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들은 첫날 갔었던 대청에서 다시 강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담담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원 소저, 노부의 문하에 들기로 결정한 것인가?”

    “선배님의 호의에 감지덕지할 따름입니다. 물론 선배님 곁에서 수련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난처한 일이 있어 당장 선배님의 제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원요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난처한 일이라! 허허, 어디 어떤 일인지 노부에게 말해보게나.”

    강 노인은 원요가 제자가 되고 싶다는 말에 눈을 반짝이며 자신 있게 물었다. 이에 원요도 사람의 몸을 되찾고 싶은 마음과 그간을 일을 설명했다.

    “허허허, 나는 또 무슨 일이라고! 다시 사람의 몸을 되찾고 싶다면 아주 간단하네. 노부가 자네를 위해 단약 몇 가지만 제련하고 체내의 음기를 제거해주면 몇 년 내로 해결될 걸세. 장원족 공법을 익히는 데도 전혀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고.”

    이야기를 들은 강 노인은 뜻밖에도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말을 들으니 정말 사소한 일 같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제가 사정을 해서라도 선배님 문하에 들어가야지요! 원요가 사부님께 인사 올립니다.”

    상대의 말에 더없이 감동한 원요가 대례를 올리며 말했다.

    “되었다. 이제 내 제자가 되었으니 이제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몇 년 정도는 충분히 기다려 줄 수 있으니 언제고 사람의 몸을 회복하면 장원족 신통을 수행하도록 해라.”

    원요의 말에 강 노인은 크게 기뻐하며 소매를 털어 원요를 일으켰다.

    “사부님께서 제가 사람의 몸을 회복하도록 도와주신다 약조하셨으니 사실 저는 더 이상 원이 없습니다. 허나 저와 연 사저는 오랜 세월 친자매처럼 지내왔습니다. 그러니 연 사저도 함께 문하로 들여 귀물의 몸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청 드립니다.”

    몸을 일으키던 원요가 갑자기 두 눈이 붉게 충혈되어 강 노인을 향해 사정했다.

    “너를 제자로 들인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데 어찌 연 수사까지 제자로 맞을 수 있겠느냐. 다만 너의 체면을 보아 연 수사의 몸은 회복하도록 도와주겠다.”

    난색을 표하던 강 노인이 곰곰이 생각하다 한숨을 쉬듯 답했다. 이에 원요가 다시 사정해보려는데 연려가 먼저 나서서 예를 올리고 원요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강 선배님께서 단약과 법력을 허비해 나를 도와주시겠다는 것만으로도 감격할 일인데 제자가 될 꿈까지 꾸겠어. 사매 더 이상 선배님을 곤란하게 해드리지 마!”

    연려가 진심을 다해 설득하자 원요는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도 강 선배의 신분에 한 번 내린 결정을 쉽게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간청을 들어준 것도 자애를 베푼 것이었는데 더 이상 요구를 한다는 것은 옳지 못했다.

    한립은 그들 곁에 서서 조용히 있었다. 다만 시선은 줄곧 노인의 얼굴을 향해 있었는데 이상한 점은 없는지 살피고 있었다.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한립은 내심 마음을 놓았다. 강 노인은 확실히 원요를 제자로 받아들이려는 듯했다.

    “한 수사, 이제 자네와 따로 나눌 이야기가 있네. 들어보겠는가?”

    그때 한립의 귓가에 노인의 전음이 들려와 그를 깜짝 놀라게 했다.

    “분부가 있으시면 무엇이든 말씀하시지요. 경청하고 있겠습니다.”

    한립은 신중한 얼굴로 전음에 답했다. 원요와 연려도 한립과 강 노인이 입술만 달싹이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것을 보고 둘이 전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분별 있게 조용히 기다렸다.

    “본래 노부는 천음지체를 지닌 원요를 발견하기 전에는 자네를 문하로 들이려고 했네. 내 공법을 계승하기 위함이었지. 하지만 이미 이 아이를 제자로 들였고 곧 닥칠 천겁을 준비해야 하기에 자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어! 자네가 수련하고 있는 법체쌍수의 길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는데 말이야.”

    노인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잔뜩 묻어났다.

    “선배님과 제 인연이 여기까지인 모양입니다. 선배님의 제자가 될 복은 제게 없었던 것이지요.”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말이었기에 한립은 더욱 공손히 답했다.

    “허나, 자네는 청원자가 인계에 남긴 검결을 익혔고 금뢰죽으로 72개의 청죽봉운검을 제련했네. 어떻게 보면 이미 반쯤 노부의 문하에 들어 온 것이나 매한가지인 게지. 이렇게 하세! 원한다면 신청원검결(新靑元劍決)과 청죽봉운검을 새롭게 제련할 수 있는 비술을 전수해주겠네. 다만 그렇다고 진짜 제자는 아니니 이런 구결들을 배워가려면 몇 가지 물건들로 거래해야겠지. 한 번 잘 생각해 보게.”

    “신청원검결!”

    듣기만 해도 가슴이 요동치는 말이었다.

    “청원자가 인계에 남겨놓은 검결은 절반밖에 되지 않네. 영계에 온 후로 나머지를 만들었고 그걸로 합체 초기의 경지까지 이루었지. 나중에 장원족의 몸과 혼백을 융합하고는 장원족 신통으로 주 수련 공법을 바꾸었지만 말이야. 일단 새로운 검결을 익히고 금뢰죽 비검들을 다시 제련해 불순한 물질을 제거하면 검진의 힘만으로 합체 후기의 존재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것이네.”

    “하지만 저는 겨우 화신기 수사일 뿐입니다. 어찌 선배님의 눈에 들 만한 물건을 바칠 수 있겠습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금뢰죽은 조금 남겨두지 않았는가?”

    “금뢰죽을 원하십니까?”

    의외의 요구에 한립이 잠시 멍해졌다.

    “그렇다네. 만일 비검 세 자루를 만들 만한 금뢰죽을 제공하면 구결들을 전수해 주지. 거기다 세 자루를 더 만들 수 있는 금뢰죽 재료를 내놓을 수 있다면 내 직접 수사를 도와 72개의 비검을 다시 제련해 줄 수도 있네.”

    노인이 미소 지었다.

    “제가 어찌 금뢰죽을 지니고 있을 거라 확신하시는지요?”

    한립은 이상하다는 얼굴로 강 노인을 바라보았다.

    “확신하지는 않네. 다만 자네가 72개나 금뢰죽 비검을 제련했으니 금뢰죽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일세.”

    “송구하오나 제게는 남은 금뢰죽이 없습니다. 당시 우연히 대량의 재료를 구하기는 했으나 72개의 비검도 겨우 제련한 것입니다.”

    “없단 말인가?”

    노인은 의외라는 듯 이맛살을 구겼다.

    “예, 저도 선배님의 새로운 검결을 전수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안 될 것 같습니다.”

    한립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 말은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다. 비록 수중에 신비한 병과 금뢰죽 뿌리를 지니고 있지만 그가 지닌 것만으로도 충분해 더는 배양하지 않았다.

    신비한 병을 사용해 배양할 것이 얼마나 많았던가! 한립은 강 노인의 제안에 마음이 끌렸지만 어쩔 수 없이 거절했다.

    “금뢰죽이 없다면 노부도 검결을 넘겨줄 수야 없지. 아, 혹시 당시 금뢰죽을 채취하며 그 댓잎들은 어찌했는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노인이 금뢰죽의 이파리를 언급했다.

    “재질이 금속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 것이 특수하여 많이 모아두었습니다. 줄곧 쓸 곳이 없어 그저 가지고만 다녔지요.”

    “전부 지니고 있단 말인가? 좋아, 그럼 되었네! 금뢰죽이 없다면 그것이라도 노부에게 넘겨주면 검결과 비검 제련법을 전수해 줌세. 다만 제련은 알아서 해야 하네. 원하는가?”

    “당연히 원합니다.”

    한립도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금뢰죽 이파리가 어디에 쓰이는지는 몰라도 그에게는 무용지물이었으니 이렇게 좋은 거래가 어디 있겠는가!

    파앗.

    한립은 한 손으로 저물탁을 스쳐 푸른빛 속에서 연두색 목갑 두 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손을 털어 목갑을 노인에게 날려 보냈다.

    노인은 손도 꿈쩍하지 않고 눈만 번득였는데 두 개의 목갑이 괴이하게 허공에서 멈추었다. 이어 목갑들이 하얀빛을 반짝이며 뚜껑이 열리고 금빛 찬란한 댓잎들이 드러났다.

    “금뢰죽 이파리가 확실하군.”

    노인은 흡족해하며 소매를 펄럭였다. 그러자 두 목갑이 허공에서 사라지고 하얀빛이 한립을 향해 쏘아져나갔다. 한립이 손바닥을 펼쳐 받아든 것은 하얀 죽통이었다.

    “새로운 검결과 제련법을 담아 놓았으니 바로 살펴봐도 된다. 괜히 나중에 노부가 자네를 속였다고 말하지 말고.”

    “제가 감히 어찌 그러겠습니까.”

    한립은 얌전히 죽통 모양의 옥간을 품에 넣었다.

    “이파리도 이미 선배님께 넘겨 드렸으니 혹시 그것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허허, 아직 남은 이파리가 더 있는가 보군. 허나 걱정할 것 없네. 이 정도면 충분하니 남은 것은 달라고 하지 않을 것이야. 인족에서는 이것에 대해 아는 이가 없겠지만 장원족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정보니 말해주겠네. 금뢰죽 이파리는 두 가지 용도가 있네.

    첫 번째로는 금강멸마뢰(金罡滅魔雷)라는 신뢰를 제련할 수 있는데 마물을 상대하는 데는 위력이 벽사신뢰보다 위이지. 노부 같이 대승기에 진입한 수사들이 전문적으로 역외천마(域外天魔)를 상대하는데 훌륭한 무기가 되어주네.

    두 번째로는 이 댓잎을 몇몇 영충들에게 먹이면 변이가 일어날 확률이 높지. 물론 상당히 많은 금뢰죽 이파리를 먹여야겠지만.”

    노인은 딱히 개의치 않고 상세히 이야기를 해주었다.

    “저, 역외천마는 무엇인지요?”

    “역외천마는 어떻게 보면 수사들의 ‘뇌겁’과도 비슷하다네. 영계 수사들이 겪는 뇌겁은 근본적으로 정해진 간격으로 나타나지만 역외천마의 경우 대승기에 이른 수사들이 수시로 겪게 되는 마두의 공격이지. 그것들은 형태가 없어 마치 심마(心魔)와 같지만 그 위력은 백 배 이상이라네. 일반적으로 대승 이후 수사들이 법력이나 의식이 약해졌을 때 역외천마가 쉽게 나타나고는 하지. 그것을 막지 못하면 육신이 붕괴되고 원신과 혼백이 오염되어 천마의 일원이 되고 마는 것이야! 나는 금뢰죽 이파리로 금강멸마뢰를 제련해 이런 역외천마들이 성가시게 구는 것을 대비할 생각이네.”

    짧은 시간에 숙원을 두 개나 이룬 강 노인은 기분이 좋은지 묻는 족족 답변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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