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903화 (660/2,000)

903화. 의견이 갈리다

*

한립이 눈을 반짝이다 미간을 좁히고 입을 열었다.

“저도 수많은 경전을 읽어보았지만 천음지체라는 것은 처음 들어봅니다. 강 선배님께서 기뻐하시는 연유를 저희가 알 수 있겠습니까?”

“하아, 노부가 오랜 세월 간절히 바라던 소원을 성취해 잠시 자네들을 깜빡했구만. 소위 천음지체라는 것은 인족이 아니라 장원족에서 특수한 체질을 부르는 명칭일세. 그러니 자네들이 들어보지 못한 것이 당연하네. 이런 특수 체질은 인족의 공법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장원족의 신통을 익히는 데는 반드시 필요하다네. 노부가 거의 만여 년을 찾아 헤맸지만 한 명도 만나지 못했네. 수사의 성은 원 씨라고? 원 수사는 노부의 문하에 들어올 마음이 있는가?”

노인이 기뻐하며 놀랍게도 원요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강 노인의 말에 원요가 안색이 급변했다.

“선배님께서 원 사매를 제자로 삼고 싶으시단 말씀이십니까?”

연려가 얼떨떨한지 노인에게 직접 물었다.

“노부는 그렇게 했음 좋겠군. 허나 나쁜 마음을 먹고 제안한 것은 아니니 안심해도 좋네. 난 그저 원 수사의 천음지체를 이용해 장원족의 강력한 신통을 수련할 생각인데 이 신통만 익힐 수 있다면 다음 번 천겁을 넘길 가능성이 7할 이상은 되지. 심지어 그다음 천겁도 운이 좋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네. 두 번의 천겁을 무사히 보내는 동안 노부의 수행이 두 단계 진보해 대승 후기에 이르면 도겁기(渡劫期)를 꿈 꿔 볼 수 있겠지.”

강 노인이 미소를 거두고 진심 어린 어조로 말했다.

“도겁기! 선배님은 지금 대승기 수사시군요!”

원요가 놀라 숨을 들이쉬고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허허, 노부는 만 년 전부터 이미 대승 초기 수사였다네. 어떤가? 노부를 따라 수행하며 제자가 되겠는가? 얼마나 많은 수사가 이런 기회를 원하는지 모를 걸세.”

그의 말에 연려는 눈을 크게 뜨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가 스스로 인정하는 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선배님과 같은 분이 제 사부님이 되어주신다면 다시없을 영광일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경황이 없어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허허, 노부가 너무 서둘렀네. 그럼 이렇게 하세나! 일단 내 동부에서 다들 휴식을 취하고 3일 후에 답을 주게. 물론 그 전에 결정을 내리면 직접 나를 찾아와도 좋네.”

강 노인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여유롭게 말했다. 강 노인의 말에 원요와 연려가 마음을 놓고 감사를 표했다.

짝짝!

노인이 웃으며 가볍게 손뼉을 쳤다. 박수 소리가 울리자 대청 쪽문에 반투명한 하얀 그림자가 날아 들어왔다.

“영노(影奴), 이들을 객실로 안내해 주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성심성의껏 들어주고.”

노인은 하얀 그림자를 향해 분부했다.

“예, 주인님!”

하얀 그림자가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의식으로 하얀 그림자를 훑은 한립은 속으로 뜨끔했다. 강한 기운을 풍기는 하얀 그림자는 연허 후기의 귀왕이었다.

한립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 많았지만 하얀 그림자의 안내를 받으며 얌전히 대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강 노인은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립 일행은 하얀 그림자를 따라 여러 통로를 지나 정원이 딸린 별채에 도착했다. 크고 작은 열댓 채의 건물들로 이뤄진 공간이었다.

그곳에 도착하자 하얀 그림자는 손을 뻗어 별채를 가리키고 냉랭히 말했다.

“세 분은 여기서 휴식을 취하시면 됩니다. 미리 충고를 드리자면 중요한 일이 아니면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큰 소리로 제 이름을 세 번 불러주시면 됩니다.”

하얀 그림자는 말이 끝나자 신형이 흐릿해지며 괴이하게 사라졌다. 남은 한립과 원요 등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두 분도 피곤하실 테니 기력을 회복한 다음에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어차피 3일의 시간이 주어졌으니 서두를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한립이 한숨을 내쉬며 두 여인을 향해 미소를 머금었다. 그 말에 연려도 미소를 지으며 그러겠다고 대답했고, 원요도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립은 먼저 별채 안으로 들어가 가장 왼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그다지 넓지 않았지만 의자와 탁자 등 필요한 것은 전부 갖춰져 있었다. 이곳으로 들어온 통로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청석을 깎아 만들어진 소박한 가구들이었다.

방 한쪽에는 풀잎을 엮어 만든 방석도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한립은 눈썹을 끌어올리며 소매를 털어 열댓 개의 진법을 풀었다. 그러자 진법 깃발이 사방으로 날아가 자취를 감추었다.

곧 푸른빛의 장막이 펼쳐졌다. 염탐을 막는 간단한 금제로 방어능력은 없었다. 그는 금제를 펼치고선 곧장 침상으로 가 골아 떨어졌다.

명하의 땅에 온 후로는 제대로 쉰 날이 하루도 없었다. 지금도 강 노인을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승기 수행을 지닌 수사를 조심해봐야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큰 걱정 없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날 밤 한립은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어릴 적 부모 형제와 함께 살던 꿈을 꾸는가 하면 유년 시절의 친구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따스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여인이 나타났다. 인계에서 그와 부부의 연을 맺었던 아리따운 아내 남궁완이었다.

꿈속에서 남궁완은 따스한 눈빛으로 묵묵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의 눈빛을 느끼며 점점 더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얼마 후 한립의 눈꺼풀이 움직이며 잠에서 깨어났는데 남궁완의 모습이 수면에 비친 달빛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는 바로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고 아늑한 기분에 몸을 맡겼다.

한식경이 지나자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차분함을 느꼈다. 우연인지 바로 그때 문밖에서 연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형, 일어나셨습니까? 깨어있으시면 잠시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바로 나가겠습니다.”

“그럼 저와 사매는 중간에 있는 건물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한립은 즉시 침상에서 일어나 몸을 일으켰다. 그가 손을 흔들자 푸른빛이 그의 몸을 타고 흘렀다. 한립은 상쾌한 마음으로 방을 나섰다.

원요와 연려가 기다리고 있는 중간 건물은 그가 묵는 곳보다 배는 큰 곳이었지만 돌로 만든 탁자와 의자 몇 개가 전부였다. 그곳에 연려와 원요가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대청 모서리마다 검은 깃발이 나부끼며 검은빛으로 방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두 여인이 먼저 약간의 금제를 펼쳐 놓은 듯했다.

“한 형, 마침 잘 오셨습니다. 저희는 강 선배님 일로 고민하느라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요.”

연려가 한립을 보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원요도 눈을 반짝이며 뒤따라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이미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군요. 저를 믿으신다면 어찌하고 싶은지 말씀해 주시지요. 제가 수행은 높지 않아도 머리는 잘 굴리는 편이니까요.”

한립이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그가 성큼성큼 걸어가 자리를 잡자 그녀들도 다시 의자에 앉았다.

“사실은 강 선배님 같은 분이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신다는 것은 아주 엄청난 기회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우선 인족으로 돌아가 사람의 몸을 되찾을 수 있는 공법과 비술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장원족 신통이 아무리 대단해도 반인반귀로 살아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사저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강 선배님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더군요.”

원요가 유감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원 사매, 사람의 몸을 회복하는 것은 급할 것 없잖아. 일단 강 선배님 문하에서 얼마간 수행을 쌓고 나중에 인족으로 돌아가 방법을 구해도 된다니까. 이런 좋은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연려는 완전히 마음을 먹은 듯 그녀를 설득하려 했다.

“나중에 인간의 몸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왜 고민을 하겠어! 사저도 알다시피 음양륜회결을 익힌 후로는 체질이 계속 귀물로 변해가고 있잖아. 아무리 억제하려해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완전 귀물이 되고 말 거라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수련에 매진하겠어.”

“나도 알지. 그래서 말했잖아. 사매는 여기에 남아 사부님을 모시고 내가 인족으로 떠나 사람의 몸을 회복할 공법이나 비술을 찾아본다고. 절대 사매가 귀물이 되게 두지 않아.”

원요가 머리가 아프다는 얼굴로 한숨을 쉬자 연려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저, 그렇게 말해도 소용없어! 강 선배님께서 하시는 말씀 못 들었어? 다음번 천겁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셨잖아. 만일 내가 그분 문하로 들어가면 장원족 신통을 익히기에도 시간이 촉박할 텐데 다른 공법을 어떻게 수련하겠어?”

원요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같이 있을 수 있다면 귀물로 변하면 또 어때! 영계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알잖아. 사람의 몸을 회복하고 죽는 것보다 강 선배님 문하로 들어가 그분의 보호를 받는 것이 훨씬 나아. 이후 신통을 대성하고 사람의 몸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도 늦지 않을 거야.

어쨌든 나중에 귀물이 된 것과 진정한 귀물은 차이가 있을 테니까.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강 선배님이 사매를 이렇게 중시하는데 싫다고 말하면 떠나게 가만두실 것 같아?”

“그러니까 나중에 다시 사람의 몸으로 돌아올 방법이 없으면 어떻게 하냐고.”

원요는 순간 한립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동의를 구하는 얼굴이었다.

“한 형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연려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두 분의 생각은 잘 들었습니다. 원 소저께서는 사람의 몸으로 돌아오지 못할까봐 걱정되어 강 선배님의 문하에 들어가고 싶지 않고, 연 소저는 이렇게 좋은 기회를 원 소저가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지요. 제 말이 맞습니까?”

“예, 그 말이 맞아요. 하지만 서로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어요.”

연려가 쓴웃음을 지었다.

“원 소저께서 귀물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연 수사께서 원 소저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도 모두 이해합니다. 그러니 두 분의 생각이 틀렸다고 볼 수 없지요.”

“한 형, 저와 사매는 의견을 구한 것이지 이해를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연려가 미간을 좁히고 불만을 토로했다.

“하하, 오해를 하셨군요. 저는 다만 원 소저와 수사의 뜻을 모두 이룰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었습니다.”

“정말이십니까?”

연려가 한립의 웃는 얼굴을 보고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이렇게 중요한 일에 어찌 농담을 하겠습니까!”

“두 의견을 아우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어서 말씀해 주세요.”

연려가 웃음을 머금었다.

“이 일은 우리가 걱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두 분이 고민하고 있는 것을 강 선배님께 말씀만 드리면 될 테니까요. 상대는 대승기 수사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려운 일도 대승기 수사에게는 손쉬운 경우가 많지요. 두 분이 귀물의 몸에서 벗어나게 할 방법은 없더라도 완전히 귀물이 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니 강 선배님의 대답을 듣고 결정을 내려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조언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바보 같이 그 생각은 하지 못했군요.”

연려가 신이나 말하자 원요도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 저는 두 분이 생각하시는 것 말고 다른 걱정이 있습니다.”

“예? 그게 무엇입니까?”

연려가 멈칫해 물었고 원요도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한립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한 손을 뻗어 거무튀튀한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바로 원자신산이었다.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