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1화. 옥대(玉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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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날개가 흐릿해지더니 원요와 연려 앞에 멈추었다.
“곤붕의 기운을 응결해 만든 것입니다. 효과가 있는지 시험해 보시지요!”
원요와 연려는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푸른 깃털을 쥐고 법력을 불어넣었다.
폭음이 울리고 푸른 기운이 퍼져 그녀를 둘러쌌다.
“와, 과연 현묘하네요. 제가 먼저 시도해볼 테니 실패하면 한 형께서 좀 이끌어 주세요.”
연려가 한립을 향해 장난스럽게 웃었다.
“하하, 그래야지요. 제가 옆에서 지켜보겠습니다.”
한립은 고민하지 않고 신형이 흐릿해져 푸른 대붕으로 변해 먼저 검은 안개로 들어갔다. 연려도 손에 푸른 깃털을 쥐고 푸른 기운에 휩싸여 아래로 향했다.
“사저 조심해!”
원요가 참지 못하고 당부했다.
“걱정 마. 한 형이 지켜봐 주시는데 별일 있겠어?”
연려는 가볍게 말하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이에 원요는 조용히 그녀를 지켜보았다. 한립이 변한 푸른 대붕이 검은 안개 근처에서 조용히 연려를 기다렸다.
곧 푸른 기운이 검은 안개 속으로 진입하고 기쁨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효과가 있습니다. 다량의 영력을 사용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비행을 하고 공법과 보물을 부리는 것은 문제없어요.”
“그럼 됐습니다. 원 소저도 이제 내려와서 직접 확인하시지요.”
고공에서 둘의 대화를 들은 원요도 긴장을 풀고 싱긋 웃으며 내려왔다.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고요하던 검은 안개가 갑자기 요동치더니 돌풍이 불어 소용돌이치기 시작한 것이다.
대붕으로 변한 한립은 화들짝 놀랐다. 바람이 강한 데다 강력한 흡인력 때문에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저 최선을 다해 빨려 들어가는 속도를 늦출 뿐이었다. 그는 연려 옆으로 이동해 그녀를 쥐고 두 날개를 힘껏 움직였다.
콰르릉 콰쾅! 콰쾅!
하지만 그때 검은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무수히 많은 뇌전이 빼곡하게 나타났다.
“……!”
익숙한 광경에 한립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검은 뇌전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결국 검은빛이 번뜩이고 연려를 쥔 푸른 대붕은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고공에서 천천히 내려오던 원요가 그것을 보고 기함했다. 그녀가 즉시 피하려했지만 검은 소용돌이가 일시에 밀려들어 그녀를 집어삼켰다. 그녀 역시 검은 뇌전이 번뜩이는 소용돌이 속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번갯불이 번득이는 순간 한립은 사방이 모호해지며 하늘과 땅이 빙빙 도는 느낌을 받았다. 다행히 전송되는 것에 익숙했기에 다른 곳에 떨어지자마자 어지러움을 참고 수결을 맺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재빨리 회색 기운을 뿜어 자신과 곁에 있던 연려를 보호했다. 그제야 그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옥을 조각해 만든 높은 대(臺) 위에 있었다. 높은 대 주변에는 열댓 개의 푸른 돌기둥들이 서있었고 표면에는 주술 문자가 반짝였다.
놀랍게도 그들이 있는 높은 대는 소형 진법이 펼쳐져 있었다. 돌기둥들은 반짝이는 하얀 빛의 장막을 펼쳐 대를 감싸고 있었는데 그 빛의 장막 밖은 검은 기운이 요동쳐 도저히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한립은 슬쩍 미간을 좁혔다.
“한 형, 이곳은…….”
겨우 정신을 차린 연려가 창백해진 얼굴로 연신 두리번거렸다.
“보아하니 귀무에 빨려 들어와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 같습니다.”
“그럼 이곳은 명하의 땅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한립의 말을 듣고 연려가 기뻐하며 물었다.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전송되는 느낌으로 보아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으니 아직 명하의 땅일 겁니다.”
한립이 신중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연려가 무언가를 떠올리고 주위를 살피더니 깜짝 놀라 말했다.
“큰일 났어요. 검은 안개 밖에 있던 원 사매가 전송되어 오지 않았어요. 이러다가 서로 잃어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할 것 없습니다. 원 소저라면 잠시 홀로 있다 해도 큰 사단이 나지는 않을 테니까요. 우선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야합니다. 명하의 땅을 벗어나지 않았다면 원 수사와 합류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한립의 말에 초조해하던 연려도 약간 긴장을 풀었다.
“저와 사매는 수행을 시작한 이래 떨어져 지낸 적이 없어요. 사매를 걱정하는 마음에 한 형 앞에서 추태를 보인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연 수사의 마음을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시급합니다.”
한립이 쓴웃음을 지으며 성큼성큼 걸어가 돌기둥 하나로 다가갔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주술 문자를 살피던 그가 고개를 틀어 빛의 장막 밖을 바라보았다.
그는 명청령안을 발동해 검은 안개 속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흠…….”
“무언가 발견하신 건가요?”
한립의 표정이 달라지자 연려가 다가와 걱정스레 물었다.
“우리가 있는 곳 말고도 비슷한 건축물이 6개가 더 있고, 원을 그리며 세워져 있습니다. 게다가 이곳은 산의 내부인 것 같군요.”
“산의 내부요? 정말 이곳이 명하의 땅이라면 누가 이런 걸 만들었을까요?”
“글쎄요. 그것보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그자가 어떻게 귀무를 조종해 우리를 이곳으로 빨려 들어오게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라후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지…….”
한립도 실마리가 없는 상황에서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이곳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고요.”
연려가 탄식했다.
“그렇지요. 이곳의 주인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 모를 일 아닙니까. 이곳은 어찌 보면 우리를 보호해 주고 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우리를 가둬두는 구속이기도 합니다. 일단 이곳을 떠나시죠. 돌기둥 위의 주술 문자들이 굉장히 오묘해서 제 실력으로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강제로 결계를 깨고 나가는 수밖에 는 없을 듯합니다.”
“그렇게 대단한 금제란 말입니까? 저도 이전에 진법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으니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한립의 말에 연려가 자신 있게 나섰다.
“아, 연 소저께서 금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멈칫하던 한립이 미소를 머금고 비켜주었다. 그러자 연려가 돌기둥 앞으로 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립은 뒷짐을 진 채 빛의 장막 바깥을 주시했다.
일다경이 지나자 연려가 한숨을 내쉬며 창백한 얼굴로 쓴웃음을 지었다.
“금제가 제가 생각한 것보다 너무 심오해서 이해하지 못하겠군요. 부끄럽게도 제 능력 밖이에요.”
“괜찮습니다. 그럼 이제 제 비검으로 시도해보죠.”
한립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개의치 않고 곧바로 소매를 털었다. 그러자 맑은 울음소리가 들리고 한 촌 크기의 금색 비검이 날아올랐다.
비검은 그의 머리 위를 돌며 세 척 길이의 장검으로 변해 금빛을 찬란하게 휘날렸다.
“가라.”
금빛이 번득이고 빛줄기로 변한 비검이 날카롭게 빛의 장막을 베었다.
펑.
그러나 뜻밖에도 금색 빛줄기는 금빛과 하얀빛을 반짝이고는 힘없이 튕겨나갔다. 이에 한립의 안색이 급변하며 비검을 멈춰 세웠다.
결계가 대단한 만큼 빛의 장막도 단단하리라 예측했지만 청죽봉운검이 튕겨나갈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연려도 놀라 곧바로 입을 벌려 검은 파초선을 꺼내 빛의 장막을 내리쳤다. 검은 화염이 출렁이며 뻗어나갔지만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검은 화염이 빛의 장막에 닿자마자 하얀빛을 번득이며 튕겨나간 것이다. 연려는 놀라 헛바람을 들이켰다.
“이렇게 강력할 수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한립이 이번에는 한 손을 들어 새까만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다섯 손가락이 빛의 장막에 가까워지고 대량의 회색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우웅.
미동도 없던 빛의 장막에 회색 기운이 밀려들자 낮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한립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오행의 속성을 지닌 금제라면 원자신광이 효과가 없을 리 없지.’
그는 전신의 법력을 움직여 손바닥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더욱 강화했다. 그러자 빛의 장막이 더욱 극심하게 흔들렸다. 그의 손바닥을 중심으로 빛의 장막이 점점 왜곡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연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전에도 그가 원자신광을 쓰는 것을 보았지만 금제를 파훼하는데도 이렇게 효과적일 줄은 몰랐다.
둔중한 소리를 내며 빛의 장막이 원자신광에 의해 갈라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외부의 검은 기운이 즉시 옥대로 밀려들었다.
한립은 즉시 푸른 대붕으로 변했고 연려도 미리 준비해둔 푸른 깃털로 몸을 숨기고 그의 뒤를 따랐다. 이미 주변 상황을 살펴두었기에 대붕으로 변한 한립은 주저 없이 검은 안개를 따라 어딘가로 날아갔다.
곧 눈앞이 환해지고 이번에는 푸른색과 노란색의 장벽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간단한 격리용 금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보고는 서슴없이 대붕의 발톱으로 금제를 갈랐다.
촤락.
다행히 장벽은 손쉽게 뜯겨나갔다. 신형이 흐릿해진 한립은 순식간에 그 틈으로 장벽 반대쪽 돌무지로 이동했고 푸른빛 속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연려 역시 그에게 바짝 붙어 장벽 밖으로 따라 나왔다.
한립이 서둘러 고개를 돌리니 그가 갈라놓은 노란 장벽이 순식간에 복구되어 검은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그제야 한립은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때 연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형! 여기에 입구가 있습니다. 들어가서 확인해 봐야 할까요?”
그 말에 한립이 흠칫 놀라 바라보자 그들과 수십 장 떨어진 푸른 절벽에, 우윳빛 광채가 발하는 통로가 보였다. 한립이 눈썹을 끌어올리며 좌우를 살피고는 아연해졌다.
뜻밖에도 그들이 나온 곳은 가파른 절벽에 볼록 튀어나온 암석 위였는데 그들이 있던 대들이 절벽 아래에 위치한 듯했다. 동굴을 바라보던 한립은 바로 움직이지 않고 손가락을 튕겼다.
쉬쉭!
웽!
금색 꽃잎 두 개가 날아올라 딱정벌레로 변해 동굴 속으로 날아갔다. 한립은 바닥에 앉아 두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보고 연려가 조용히 곁에서 기다렸다.
한식경이 지나 갑자기 한립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두 눈을 번쩍 떴다.
“이런, 동굴 안에 누군가 있습니다. 게다가 수행이 깊어 실력을 파악할 수 없어요. 제 영충들도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노쇠한 목소리가 그들 주위로 울려 퍼졌다.
“칠문쇄음진(七門鎖陰陣)에 문제가 생겼다 했더니 손님이 오셨구만. 기왕 이곳까지 왔으니 들어와 쉬었다 가시게!”
한립과 연려는 깜짝 놀라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갑시다. 영충에 남겨둔 의식으로 감응해 보건데 요왕들보다 더욱 무서운 존재일 가능성이 큽니다.”
한립은 마음속으로 좌불안석했지만 겉으로는 무척 침착해 보였다. 연려가 고개를 끄덕이자 둘은 천천히 동굴 입구로 향했다.
통로는 따라 백여 장을 가다보니 눈앞이 밝아지며 하얀 모래가 깔린 고풍스런 대청이 나왔다. 대청 안에는 몇 개의 의자와 탁자 그리고 기괴한 꽃나무 몇 개가 전부였다.
꽃나무는 높이가 한 척은 되는 듯 했고 멀리서도 싱그러운 향을 뿜어냈다. 덕분에 마치 깊은 숲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대청 중간에 놓인 의자에 회색 장포를 걸친 노인이 앉아 있었다.
길게 수염을 기른 노인은 빛나는 눈빛으로 대청에 들어온 이들을 훑어보았다.
“자네들은 인족이구만!”
노인이 의외라는 듯 말문을 열었다. 이에 한립도 노인을 훑어보고 화들짝 놀라 살짝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선배님께서도 인족을 아십니까. 저희가 선배님을 어떻게 불러드리면 되겠습니까?”
“허허! 알다마다. 노부 역시 인족일세. 이전의 이름은 이제 와서 거론할 것 없고 지금은 ‘강’ 씨 성을 쓰고 있지.”
노인이 미소 지으며 한립과 연려를 향해 온화한 시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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