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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97화 (654/2,000)

897화. 한립의 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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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벽돌의 중심에 주먹 크기의 선홍색 액체가 찰랑이고 있었다. 비록 수정 벽돌 안에 들어있었지만 그 안에서 놀라운 영기가 우윳빛 안개로 흘러나와 벽돌 주변을 맴돌았다.

“이건 쉬정전(淬晶磚)이라는 물건입니다. 부유족이 명하신유를 빨아들이고 저장하기 위해 특별히 제련한 것이지요. 보통 쉬정전을 궁전 연못에 두면 주변 영맥과 일체화되어 분리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다 부유족 특제의 부적을 사용하지 않는 한 합체급 수사도 쉬정전 안에서 단시간 내에 명하신유를 다시 꺼내지 못합니다. 몸 안에서 십여 년을 연화시켜야 겨우 벽돌을 녹일 수 있으니까요. 다들 쉬정전 안에 명하신유가 얼마나 적게 고여 있는지 직접 확인하십시오.”

“이 물건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연못의 기운이 같습니다. 명하신유인 것은 확실하군요. 허나 우리가 겨우 이것을 깨서 내용물을 취하지 못한다는 것을 어찌 믿겠습니까.”

지혈이 벽돌을 수차례 살펴보고는 반신반의했다.

“말로만 해서는 당연히 믿지 못하시겠지요.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제가 쉬정전을 허공에 띄울 테니 딱 한 번씩 전력을 다해 공격해 보십시오. 만일 조금이라도 쉬정전에 손상이 간다면 명하신유를 내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명하신유는 제가 갖고 두 분에게는 합당한 보상을 하지요. 솔직히 혈주술을 발동하면 두 분도 원기가 크게 상할 테니 그런 일은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심이십니까?”

백발 미부인이 구미가 당기는지 눈을 빛냈다.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잖습니까.”

“좋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지요!”

미부인이 퍽 자신이 있는지 힘차게 답했다.

“만일 제가 쉬정전을 깰 수 없다면 다른 보상은 필요 없고 육족 형과 마분에 가길 원합니다. 그곳에서 딱 보물 두 개만 갖고 나올 수 있게 도와주시면 명하신유는 포기하겠습니다.”

눈을 굴리던 지혈이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

“마분을요? 천외마두(天外魔頭)들이 죽어나간 지 오래라지만 그들이 지닌 마기(魔器)들은 이미 영성을 지녀 통천령보 보다 더욱 강력해져 있을 것입니다. 거기다 마분 심처에는 마기와 음기가 두텁게 쌓여 일반적인 수사들은 진입하기도 힘들고요. 지난번에 목청 수사와 쳐들어갔다 별 수 없이 되돌아온 곳 아닙니까?”

육족이 원치 않는다는 얼굴로 미간을 좁혔다.

“육족 형도 다 아시면서 그러십니다. 한 녀석이 죽지 않았으니 벽사신뢰로 길을 트고 육족 형까지 합세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목청 수사가 도중에 갑자기 사라진 것도 아마 그 녀석을 찾기 위해서겠지요.”

지혈의 말을 들은 백발 미부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분에 들렀다 가려면 적잖은 시간을 허비해야 합니다. 게다가 부유족 원군이라도 당도하면 아무도 살아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육족은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하하, 부유족 원군이 그렇게 빨리 이곳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면 그 부유족 꼭두각시가 필사적으로 달려들지 않았겠지요. 한동안은 그 누구도 이곳으로 들어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마분에 들어가려면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겠지만 홀로 명하신유를 차지하는 대가인데 감수하셔야지요!”

지혈이 웃으며 말했다. 육족은 입을 다물었지만 겹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이해타산을 따져보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마분에 같이 가드리지요. 하지만 딱 마기 두 개를 얻는 것만 도울 것입니다. 더 많은 보물을 원한다면 그때부터는 능력껏 알아서 하십시오.”

“허허,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그럼 저는 쉬정전 일은 나서지 않겠습니다. 육족 형의 말을 믿으니 굳이 시험해 볼 이유가 없지요.”

지혈의 신형이 흐릿해지고 갑자기 몇 장 뒤로 물러났다.

“남 수사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지혈과 이야기가 잘 끝나자 백발 미부인을 보는 육족의 눈빛이 조금 딱딱해졌다.

“제 조건도 지혈 수사와 같습니다. 그렇지만 쉬정전을 깨트릴 수 있을 지는 시도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공격해 보셔도 됩니다.”

육족은 대수롭지 않게 답하고 정말 손을 뻗어 쉬정전을 머리 위 7, 8장 위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수정 벽돌을 올려다보는 미부인의 눈빛이 뜨거웠다. 그녀가 소매를 털자 여덟 귀왕들이 미부인에게 달려들었다. 백발 미부인은 다시 거무튀튀한 갑옷을 입고 손에는 기괴한 망치를 들었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망치에서 괴이한 악귀의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고 주변에 여덟 해골 머리 허상이 둥실 떠올랐다. 망치를 훑어본 육족이 표정 없이 입을 열었다.

“수사의 보물이 강력하기는 하나, 미리 말씀드리자면 쉬정전을 부수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수사께서 쉬정전을 공격해 깨트리려는 것은 상관없으나 이 틈에 다른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라면 제가 어떻게 반응해도 원망하지 마십시오.”

“되고 안 되고는 직접 확인하겠습니다.”

백발 미부인은 그의 위협어린 말투를 무시하고 괴이한 망치를 투척했다.

키에에에엑!

찰나의 순간 귀기가 음산하게 퍼지고 서늘한 바람이 크게 일었다. 표면에 여덟 개의 해골머리가 꿈틀거리며 괴성을 지르는 동안 쇠망치는 몇 배로 커져갔다.

화륵!

녹색 화염 덩어리들이 망치 주변에 떠올라 결국에는 망치를 품은 거대한 불덩이로 변했다.

육족은 뒷짐을 지고 미부인의 공격이 끝나기를 기다렸고, 뒤쪽으로 물러나 괴상한 망치의 위력을 보는 지혈의 눈빛은 조금 이상해졌다.

그 순간 미부인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빙글빙글 돌며 날아간 괴상한 망치가 한 척 정도밖에 안 되는 수정 벽돌을 호되게 내리쳤다.

거대한 망치는 떨어지는 순간 몸을 떨며 녹색 화염을 더욱 키웠고 수백 개의 망치 환영을 만들어내 사방팔방에서 수정 벽돌을 때렸다. 말이 일격이지 백여 번의 공격과 다름없었다.

쿠콰콰쾅!

허공에서 연달아 폭음이 들려오고 백여 개의 천둥소리가 동시에 울리는 듯 하늘을 울렸다. 지혈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지하 궁전에서는 이만한 위력을 내지 않았던 망치가 아닌가!

쉬정전이라는 벽돌은 눈을 찌를 듯한 녹색 화염과 빛에 가려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백발 미부인이 허공을 쥐자 망치 허상이 사라지고 괴상한 망치 본체만 녹색 화염에 싸여 되돌아왔다. 서둘러 수정 벽돌을 살핀 그녀는 난색을 표했다. 표면이 반질반질한 수정 벽돌은 갈라지기는커녕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 남 수사께서도 제 말을 믿으시겠지요. 저 안에서 명하신유를 꺼내려면 특수한 방법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지금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명하신유는 수사가 챙기세요. 그 대신 우리와 같이 마분으로 가시지요.”

미부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마음 속 답답함을 일부 풀어냈다. 이어 여인이 양손으로 수결을 맺자 갑옷과 괴상한 망치가 사라졌고 다시 여덟 개의 검은 그림자가 분리되어 미부인의 등 뒤에 섰다.

“결정 잘하셨습니다. 마분이 이곳에서 꽤 멀어 서둘러도 보름은 걸릴 터이니 일단 그 녀석이나 찾으러 가십시다.”

육족이 고개를 끄덕이고 하늘로 손을 뻗자 쉬정전이 흐릿하게 변해 그 자리에서 소실되었다.

나머지 두 요왕들은 육족이 어떤 수단으로 쉬정전을 회수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서로 눈빛을 교환 하고는 육족에 대한 경계심을 높였다.

“한 가 녀석의 몸에는 우리의 표식이 심어져 있습니다. 어디로 달아나도 위치를 감응할 수 있지요. 잠시 후 제가 표식을 발동해 위치를 찾아보겠습니다. 간덩이가 부어도 유분수지 감히 제 제자들을 데리고 달아나다니요!”

미부인이 한립을 언급하는 순간 그 녀의 얼굴에 살기가 어렸다.

“허허! 남 수사, 그 녀석과 여 제자들의 관계가 남다르지 않았습니까. 수사께서 그녀들의 음기를 취하려하시니 그 녀석이 구출한 것이겠지요. 저는 그 녀석에게 조금 놀랐습니다. 명뢰수를 상대로 무사히 탈출한 것도 모자라 우리가 지켜보는 앞에서 여인들을 데리고 달아나다니요. 쯧 쯧, 수년간 고심해서 제련한 제혈괴뢰 화신도 그 녀석을 막지 못했습니다. 인재는 인재예요!”

지혈이 혀를 차며 한립을 칭찬했다.

“흥! 그렇게 좋으면 데려다 제자로 삼으시지 그럽니까? 앞으로 청출어람청어람(靑出於藍靑於藍) 하는 꼴을 볼 수도 있을 텐데요.”

미부인이 기분이 상했는지 대놓고 빈정거렸다.

“노부는 혈도(血道)를 수행하는 몸이라 그 녀석이 육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제자로 받아들일 수 없지요. 게다가 이때까지 홀로 지내왔는데 무슨 제자가 필요하겠습니까? 게다가 그동안 수련해온 신통을 누군가에게 물려줄 마음도 없고요.”

지혈은 냉소하며 가볍게 받아넘겼다.

“그 녀석이 수행은 높지 않아도 상당한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게다가 법체쌍수의 길을 선택해 지금의 경지에 이렀으니 법력도 동급 수사를 월등히 초월할 테고요.

만일 그가 우리와 동급이 되는 날이 온다면 우리가 모두 힘을 합쳐도 적수가 되지 못할 겁니다. 물론 그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요. 법체쌍수를 하며 경지를 높이는 일은 보통의 수련법보다 배는 더 어려우니까요.”

돌연 육족이 유유히 말했다.

“법체쌍수요? 잘못 보신 것 아닙니까?”

백발 미부인이 놀라 반문했고 지혈도 눈을 번뜩이며 멈칫했다.

“제 신통 중 상대의 육체의 강함을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녀석은 천원대륙 구석에 거주하는 인족 수사이지 비령족이 아닙니다. 어찌 비령족 성자들의 시련에 끼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족은 천원대륙 종족들 중 육체적으로 가장 약한 부류에 속합니다. 그런데 그 녀석의 몸은 우리와 비교해도 될 정도였지요. 평범한 보물로는 아마 상처 입히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아마 특수한 몇 가지 신통을 발휘하면 영사 후기의 적도 상대할 수 있을 테지요.”

육족은 마치 한립에 대해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다는 듯 담담히 설명했다. 뜻밖에도 육족이 한립을 높게 평가하자 백발 미부인과 지혈이 놀라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도 한립이 동급 수사보다 강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그래봐야 영사 초기나 중기 수준일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지금 육족의 말대로라면 상대는 합체기 이하의 수사 중 가장 고계의 존재란 말이 아닌가!

“영장(靈將) 후기의 수사가 영사(靈師) 후기를 상대할 수 있다니요! 세상에 그런 역천의 신통이 있을 수 있답니까? 실력으로 수행 차이를 세 단계나 뛰어넘을 수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봅니다.”

백발 미부인이 불신을 드러냈다.

“하하, 남 수사! 저는 육족 형의 말씀을 믿습니다. 사실 오래 전 연허급 인족 수사가 검진을 펼쳐 합체 초기 수사를 참살하는 것을 본 일이 있거든요. 인족 자체는 약하지만 그들이 지닌 기괴한 수련법과 신통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혈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과거를 회상했다. 그 말에 백발 미부인은 코웃음을 치고는 입을 다물었다.

“됐습니다. 그 녀석이 비밀이 많고 잠재력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의 경지에 오르려면 아직 멀었지요. 지금 중요한 것은 그 자를 찾는 것입니다. 무슨 방법을 쓴 것인지 잠시 우리의 감응을 막고 있지만 표식을 발동하면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마분에 가고 싶다면 두 분이서 술법을 펼치시지요.”

육족이 냉랭히 상황을 정리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남 수사, 그럼 우리…… 어, 엇……. 내 표식이 어찌 훼손되었단 말인가!”

지혈이 낮게 웃으며 미부인을 향해 무어라 말하려다 주변의 핏빛 기운을 부르르 떨며 소리쳤다.

“그럴 리가요. 제가 해보지요.”

미부인이 서둘러 눈을 감고 속으로 주술을 외웠다. 잠시 후 그녀가 사나운 눈빛으로 눈을 떴다.

“제 표식은 아직 존재하지만 강력하게 은폐해 놓아 단시간 내로는 봉인을 뚫을 수 없겠습니다. 육족 형, 저와 함께 표식을 발동하시지요!”

“그건 안 될 것 같습니다. 제 표식은 지혈 수사보다 먼저 사라졌으니까요.”

“뭐라고요?”

미부인과 지혈이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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